계란말이김밥
지난 일요일 인천에서 열렸던 마라톤 대회를 다녀왔다. 내가 자라난 곳에서 나이를 먹고 다시 그곳을 찾아가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늘 어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행위이다.
대학교 진학으로 서울로 올라오기 전까지 쭉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현재는 인천에 아무 연고도, 만날 사람도 없기에 작년 대회 이후 1년 만에 다시 인천을 찾았다.
대회를 뛰고 난 후 항상 뒤따르는 일정이 있다. '청해김밥'이라는 곳을 가서 계란말이김밥을 먹는것까지가 일정이다.
올해도 이 일정을 지키기 위해 주안이라는 동네로 이동을 한다.
이곳에서 중고등학교와 대학교 1학년을 통학을 했다. 그리고 졸업을 하고 내려와 취업을 할 때까지 다시 1년 정도를 살았었다. 이곳을 1년만에 거닐었다.
주안이라는 곳은 전형적인 저물어가고 있는 인천의 구도심 동네이다. 새로운 건물이 들어온 곳도 군데군데 있었지만, 많은 사람이 찾지 않는 구도심의 특성상 대부분이 아직 그때의 풍경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풍경은 그대로여도 시간은 많이 흘러갔는지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던 구축 아파트는 최근 안전등급 E등급을 받았다며 경축 현수막이 아파트 곳곳에 걸려 있었다. 안전등급 E등급이 과연 경축할 일인것인지 약간은 (재건축 때문이라는 것은 알지만) 의문을 가지며 길을 나아간다. 그리고 아파트에서 조금 더 오른쪽으로 길을 걷다 보면 이제는 그만 없어질 때도 된 것 같은데 여전히 위용을 뽐내고 있는 성인 나이트클럽이 있다.
대학교 시절 꿈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이 방황만 하다 시간을 보냈고 그 결과로 준비하던 시험도 낙방하고 취업도 하지 못한 채 졸업을 하게 되었다. 100만 청년구직자중의 한명이 되고 말았다. 대학교 재학중에 회계사를 붙은 동기나 삼성 같은 대기업에 간 후배분들을 보며 좌절감을 느끼며 졸업과 동시에 도망치듯이 고향인 인천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무조건 싼 자취방을 찾아야 했기에 보증금 30만 원, 월세 30만 원의 나이트클럽 바로 윗블록에 있던 원룸 빌라를 얻었다. 그리고 이 나이트클럽 밑 횡단보도를 하나 건너면 '청해김밥'이 있었다. 나름 인천 내에서는 유명한 맛집인지 내가 처음 갔었던 10살 때부터 제일 최근에 방문했던 지난주 주말까지 항상 테이블이 비어 있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주메뉴는 계란말이김밥인데 다소 까칠까칠할 수 있는 김의 느낌을 계란말이가 가려주는 느낌이 제법이다.
졸업을 하고 내려와서 낮에는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이력서를 쓰는 삶이 반복되었다. 지금도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사람인데 더 내세울게 없었던 그때의 나를 억지로 뽑아 달라는 글을 작성하다보니 진도는 느렸고 밥도 안먹고 머리를 싸매면서 이력서를 쓰다보면 어느덧 새벽이 찾아왔었다. 그 늦은 시간에 열려 있는 식당은 '청해김밥'밖에 없었다. 위치와 시간적인 특성상 그곳에는 주로 나이트클럽에서 술을 거나하게 잡수시고 나온것 같은분들과
그분들을 태우려는 택시기사, 혹은 업무를 마친 택배기사분들로 가게 안은 늘 북적북적했다.
그때의 나는 마치 전쟁에서 패배한 사람처럼 웃음이 없고 숨어만살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가게의 분위기는 거나하게 술을 드신 분들 때문이었는지 다들 계란말이김밥을 먹으며 대화는 활발했고 웃음소리는 시끄러울정도로 컸다.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같은 공간에서 같은 메뉴를 먹는다는 일종의 동질감이 들어 위로를 받았다. 아마 위치특성과 시간특성을 고려해봤을 때 그곳에 있던 나를 포함한 대부분은 사회에서 객관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것들을 떠나 밝게 웃으시던 분들을 보며 꼭 행복의 조건이 돈이나 명예, 직업의 높고 낮음으로만 채워지는건 아닐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힘든 삶(취업준비, 늦은시간 택시기사/택배기사분들의 피로, 술드신분들의 숙취 등)을 그곳의 계란말이김밥으로 위안을 받았다. 그거면 된것이 아닐까. 아직도 가끔 서울생활에서 힘든 순간이 찾아오면 그때의 계란말이김밥이 떠오르곤 한다. 그러기에 내년에도 나는 인천에 가서 대회를 나가고 계란말이김밥을 먹고있지 않을까. 그리고 서울에서도 그런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을 수 있게 된다면 조금이나마 삶이 덜 외로워지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