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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메론 Jun 20. 2020

0. 막내 작가가 엄마 손맛이 그리워질 때면

- 모든 것이 서러웠던 시절의 한 끼 이야기 -


 스물한 살이 다 끝나가던 무렵, 여의도에 입성했다. 대학생이란 딱지를 채 떼지도 못하고, 얼떨결에 방송작가가 됐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막내 작가지만.




 내 첫 방송은 4050 주부를 타깃으로 한 생활·정보 프로그램이었다. 다섯 명의 선배 작가들은 재택근무라 일주일에 한 두 번 나올까 말까 했고, 막내작가인 나는 일주일 내내 출근했다. 두 개의 방송을 겨우 제작했던 낡은 제작사 사무실 안. 다른 한 팀은 매일 전원 출근해서 열두 시가 땡 하면 점심을 먹으러 갔다. 그럴 때 혼자가 익숙하지 않았던 스물한 살 막내 작가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 시절의 나는 혼밥이 어렵고 부끄러웠다. 서른이 넘은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결국 혼밥 메뉴는 테이크아웃한 패스트푸드점 햄버거나 카페의 샌드위치.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꾸역꾸역 빵 쪼가리를 먹다가, 네이트온으로 자료를 서치해달라는 선배 작가들의 쪽지가 오면 햄버거는 책상 위에서 식어가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매일 새벽 6시 반에 출근했다가 밤 11시 반 막차를 타고 퇴근해 새벽 1시에 집에 들어가는 딸내미가 엄마 밥상을 받아볼리도 만무했다. 정말 고슬고슬한 엄마 밥에 뜨뜻한 국물이 먹고 싶었다.




 막내 작가로 일한지 2주가 지났을 때였을까.

 점심 손님이 빠져나갈 때 즈음에서야 1층으로 내려가 빌딩 안의 여러 음식점을 훔쳐봤다. 최대한 손님이 적거나 없는 곳을 고르기 위해서였다.


 아직도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콧속을 휘감는 매콤하고 짭짤한 냄새와 열기가 잊히지 않는다.


 그 집은, 두툼한 돼지고기에 불향을 입힌 제육볶음이 인기인 음식점인데 나는 늘 김치찌개를 시켰다. 제육볶음은 2인분부터 주문이 가능했고, 막내 작가 생활 동안 위염을 달고 살았던 나는 위 용량도 부족했던 탓이었다. 또 3.3%의 세금을 떼고 월 77만 원을 받는 내게는 6천 원짜리 김치찌개가 가장 분수에 맞는 음식이었다.


 뜨끈뜨끈 자그마한 뚝배기 속엔 국물이 잘 배어든 김치, 비계가 약간 붙은 살코기, 고운 고춧가루가 촘촘히 박혀있는 두부가 듬뿍 들어있었다. 기름띠가 떠 있는 국물을 한 숟가락, 이른 아침에 주인아주머니가 꾹꾹 눌러 담았을 밥도 한 숟가락. 고슬고슬한 밥 위에 자작한 국물을 끼얹어서 한술 뜨면 밥맛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출근만 두 시간. 항상 빈 속으로 출근하는 막내작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한 한 끼였다. 그 음식점은, 아니 정확히 제육볶음 집의 김치찌개는 내 단골 메뉴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인간이 얼마나 간사하냐면, 김치찌개로 만족하니 옆 테이블의 제육볶음과 달걀말이가 그렇게 탐이 났더란다. 깨를 솔솔 뿌린 제육볶음에, 포슬포슬한 달걀말이가 얼마나 맛있어 보이던지. 그렇게까지 먹으려면 가끔 출근하는 선배 작가 카드 찬스를 써야 했다. 그나마도 선배 작가들 페이가 많지 않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어서, 가끔 사주시는 고기반찬인 제육볶음만으로도 만족해야 했다.


 낡은 제작사에서 온갖 병을 얻으며 방송을 만든 지 1년 3개월간, 수백 번 그 김치찌개를 먹었다.

 따끈하고 매콤하고 구수하고 맛있는 김치찌개.

 그 프로그램에서 몇 번이나 '코너를 맡아 글을 쓸 수 있는 서브 작가 입봉(승진)' 기회가 주어질 뻔했지만 프로그램 CP와 제작사의 이해관계는 좋지 않았다. 그 사이에서 나는 1년간 김치찌개를 먹으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다.

 얼마 후, 운 좋게도 좋은 프로그램에서 입봉 기회를 얻게 됐고, 약 2주간 인수인계를 해준 뒤 낡은 사무실의 자리를 정리했다.

 하루 자고 나면 몸이 근질근질했던 라꾸라꾸도, 밤샘 때문에 자취방 축소판 같았던 내 자리에게도 안녕을 고했다. 1년 3개월간, 6천 원으로 한 끼를 책임졌던 제육볶음 집도 안녕! (물론, 이 프로그램과 제작사를 떠나며 향후 나는 더욱더 힘든 프로그램과 이상한 제작사만 만나게 된다) (그리고 나는 3개월간 김치찌개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대상암의 시대가 열리며 많은 제작사가 상암으로 이전했지만, 여전히 여의도엔 몇몇 개의 제작사들이 남아있다. 나 또한 입봉 후 여러 프로그램을 맡으면서 상암, 일산, 홍대, 강남까지도 가봤지만 이상하게도 여의도에 있는 제작사엔 갈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 빌딩에 제육볶음 집은 잘 있을까?

 여전히 김치찌개는 맛있을까?

 이제 지갑엔 제육볶음과 달걀말이 정도는 사 먹을 돈도 있는데.

 여의도에 위치한 그 빌딩에 갈 기회가 생기지 않으면 이제는 가야 할 시간과 이유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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