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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메론 Jun 20. 2020

1. 불효녀 막내 작가 한 끼 먹여보겠다고

- 밤샘을 밥 먹듯이 하던 불효녀를 위한 엄마의 김과 밥 -

 

 대학 종강 일주일 후, 무작정 뛰어든 사회는 전쟁터였다. 엄마·아빠가 총을 쥐여주고, 교수님이 총알을 장전해주긴 했는데 나는 쏘는 법을 몰랐다. 어리바리해가지고, 밥도 못 챙겨 먹어서 비실비실한 그런 신참. 그리고 하필 첫 전쟁터가 어마무시한 방송판, 그것도 가장 열악한 외주제작사였다.




 21년 인생에 혼밥도 못해본 막내 작가가 할 줄 아는 게 뭘까.

 나는 선배 작가들이 던져주는 폭탄을 막아내기에 급급했다(나는 정말, 섭외를 못 하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다). 이른 폐경이 온 20대도 찾아야 했고, 첫눈 올 날짜에 맞춰 등산도 할 수 있고 대피소에서 ‘그림 잘 나오도록’ 라면을 먹을 수 있는 산도 찾아야 했다.

 그러려면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서 집을 나서곤 했다. 버스와 지하철, 버스와 지하철을 반복하다 보면 두 시간이 후딱 지나가 있었다. 그나마도 꾸벅꾸벅 졸아서 마치 삼십 분 같았지만.

 그런 막내 작가는 아침밥 챙겨 먹기도 혼자서는 못 했다.




 여느 때처럼 세네 시간 기절했다가 출근하려는데, 식탁에 김밥이 올라와 있었다. 분식집에서 파는 그런 김밥이 아니다. 도시락용 작은 김에 밥만 돌돌 만, 그야말로 ‘김과 밥’ 말이다. 어떻게 보면 오징어무침이 없는 충무김밥처럼 생긴 맨둥맨둥한 김밥. 언제 말았는지 김이 살짝 눅눅해져 있었다. 들고 가면서라도 먹으라고 김이 담겨있던 용기에 담아준 건 엄마였다.

 김이 눅져서 해조류 냄새가 좀 올라왔다. 그것도 잠시 짭쪼름함과 구수함이 입속을 휘감는다.


조미 김에 밥을 싼 것뿐인데, 어쩜 이렇게 맛있을까. 어쩜 물리지도 않을까.
김밥을 만 엄마는 푸르스름한 새벽 속에서 자고 있었다.


 당일 새벽에 기어들어 와서 화장도 지우지 못하고 침대에 쓰러져 내가 잠이 들면, 반대로 엄마는 분명 비몽사몽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밥솥에서 뜨끈한 밥을 푸고, 김 한 장에 밥 한 숟가락 얹어 돌돌 말았겠지. 그리고 또 김 한 장, 또 밥 한 숟가락. 김밥을 차곡차곡 쌓고 나선 무너지듯이 잠들었을 것이다.

 버스에 타기 전까진 다 먹어야지. 나는 아직도 미지근한 기운이 느껴지는 김밥을 들고 출근길에 올랐다. 겨우 김과 밥 뿐인데, 배가 좀 든든한 것 같았다.




 그 후로도 엄마는 매일 내 새벽밥을 돌돌 말았다. 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내 걸음으로는 십 분 거리였는데, 용기 안에 가득 쌓인 김밥을 다 먹기엔 딱 맞는 거리였다. 새벽 동이 터 오는 출근길은 짭쪼름하고 달큰했다. 처음에는 김에 밥만 말아서 구수하고 짭쪼름한 맛이었고, 다음번에는 김치를 쫑쫑 썰어넣은 맛이었다. 매콤하고 짭쪼름한 김밥이 조금 물릴 때를 위해 비장의 신메뉴도 준비하고 있었다. 꿀과 간장을 넣고 약불에서 조린 멸치볶음이 김과 밥 속에 들어 있었다. 김과 밥, 그리고 바삭한 멸치볶음은 아주 잘 어울렸다. 며칠 후에는 또 다른 메뉴를 내놓았다. 매콤달콤한 진미채를 넣은 김밥이었는데, 내 입맛에는 이 김밥이 가장 잘 맞았다.

 몇 시간 후 출근해야 하는 엄마는 김밥을 말기 무섭게 모자란 잠을 채우곤 했다. 새벽같이 나갔다가 새벽에 들어오는 나는, 색색 잠든 엄마의 정수리만 보였다.

 그리고 몇 달 후, 집에서 여의도까지 출근하기엔 체력에 무리가 있다며 나는 독립을 선언했다. 엄마의 김밥 돌돌 말기도 거기서 멈췄다.




 자취를 시작한 후, 나는 오븐이나 냄비도 사들이고 이것저것 요리를 시도해보곤 했는데, 결론은 나는 요리에 재능이 없고 한없이 게으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매일 새벽, 엄마는 김밥을 말면서도 가족들의 아침 메뉴를 생각하고 내일은 어떤 김밥을 싸줄까 고민했을 것이다. 내가 먹기 편하도록 멸치볶음과 진미채를 잘게 자르면서 말이다.

 똑같이 일하는데, 엄마보다 내가 더 젊은데.

 구 년 째 자취를 하는 나는 아직도 아침밥은 챙겨먹지 못 한다. 예순이 넘은 엄마를 따라잡으려면 아직도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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