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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메론 Jul 02. 2020

2. 수제비와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 대표님, 도망친 게 부끄럽지만 도움이 되셨나요? -


 입봉에 실패했다. 약 1년 3개월간 김치찌개만 먹으며 일하다, 간신히 옮겨온 새 프로그램에서 말이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고 하지. 멀리서 보면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이었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지옥이 따로 없었다. 제작사(라고 하지만 사실 그 안의 PD, 작가들)끼리 피 튀기는 시청률 전쟁을 펼쳤고, 더 자극적이고 화제가 될 아이템을 선점하려 죽을 힘을 다했다. 일주일에 3~4일은 꼬박 밤을 샜다. 서브작가로의 입봉을 꿈꾸며 몇 개월을 버티고 버티던 나는, 그곳에서 나가떨어졌다.




 경주장에서 달리는 말들은 눈 옆을 가린다고 한다. 달리고 있는 옆과 뒤의 시야를 차단하고, 앞만 보고 달리라는 의미란다. 내가 꼭 그랬다. 입봉을 향해 앞만 보고 달리고 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옆과 뒤를 보고 지레 겁을 먹은 채 멈춰선 거다.     


 그런 막내 작가를 측은하게 여긴 선배 작가가, 다음 행선지를 알려줬다. 물론 막내작가 포지션으로였다. 그곳은 작은 방송사의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외주제작사였다. 1월까지 다큐멘터리를 완성해야 했고, 출연자 섭외와 취재, 메인 작가님 서포트, 프리뷰(촬영해온 영상을 문서로 옮기는 작업) 등을 하면 된다고 했다. 대표는 근처 식당에서 네 돈으로 밥을 먹고, 영수증을 꼭 챙기라고 일러줬다. 나중에 일괄 정산해서 식대를 챙겨주겠노라 했다.      


 어두컴컴하고 고요한 사무실에는 늘 나 혼자였다. 메인 PD님은 늘 촬영장엘 가 있었고, 메인 작가님은 본래 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서였다. 그래도 나는 짬이 좀 찼다고 같은 건물 1층에 있는 분식집에 혼자 갔다. 바삭바삭한 돈가스나 보들보들한 달걀이 있는 오므라이스를 먹었다. 좀 더 배가 고픈 날은 고구마 돈가스도 먹었다. 맛은 있는데 조금 부끄러워서, 휴대폰만 쳐다보며 먹었다.
 

 면접 첫날 봤던 대표는, 갈수록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어느 날은 내 월급이 들어오지 않아서, 메인 PD님이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대판 싸웠다. 아무리 회사에 관심이 없어도 그렇지, 막내 월급은 챙겨줘야 할 거 아닙니까! 나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메인 작가님에게 네이트온 쪽지를 보냈다. 작가님, 빨리 와주세요. PD님 엄청 화나셨어요. 월급은 모르겠어요... PD님이 싸워주신 덕분에 내 월급 90만 원은 들어왔지만, 그날 이후로 내 점심 메뉴는 저렴한 수제비로 변경됐다.      


 아마도 매일같이 점심시간 즈음에 혼자 찾아와, 수제비를 시키는 건 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어쩌면 주인아주머니도 한 번쯤 묻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매일 맛있는 메뉴를 시키던 아가씨가, 왜 이제는 매일같이 수제비만 먹느냐고. 멸칫국물로 우려낸 맑은 국물을 한 숟가락 먹으면 시리던 뱃속이 따뜻해졌다. 제멋대로 뜯어낸 수제비 반죽은 쫀득쫀득했고, 잘 익은 감자를 함께 먹어도 맛있었다.


 저렴하고, 뜨끈해서 오래 먹을 수 있고, 든든한 수제비.
아마도 나는 PD님과 대표님이 싸웠던 그날, 어렴풋이 지금까지 먹었던 돈가스와 오므라이스 값을 못 받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당시 이십 대 초반이었던 나는 치즈돈가스도, 라면과 만두도 먹고 싶었다. 하지만 월급을 90만 원밖에 받지 못하는 나에겐 그것마저도 공포였다.




 크리스마스 날, 1월 1일 날까지 손을 호호 불며 출근했다. 다큐멘터리는 점차 윤곽을 갖춰가기 시작했지만, 제작사는 몰골이 엉망이 됐다. 건물 관리비를 내지 않아서 화장실 청소도 스탑됐다. 화장실에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았고 대걸레와 청소도구 등이 자리를 차지했다. 내가 엉덩이를 붙일 작은 공간도 주어지지 않은 것이다. 참고 참던 나는 결국 뛰어서 지하철역 화장실을 이용했다. 하지만 지하철역까지 자주 나가기엔 너무나 추워서, 오줌을 참고 또 참았다. 그해 나는 방광염을 얻었다.     


 어떻게든 다큐멘터리는 완성이 됐고, 무사히 방송을 탔다. 그리고 대표는 모습을 감췄고, 막내 작가인 나에게 남은 건 약 두 달간 쌓인 식대 영수증뿐이었다. 영수증의 90%엔 ‘따끈감자수제비 4,000원’이라고 적혀있었다. 삐쩍 곯은 통장엔 적은 월급도, 챙겨준다던 식대마저도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또 실패했다.  


 그 무렵, 나는 3평짜리 고시원에 머무르고 있었다. 외창은 없지만 방안에 화장실이 있어서 35만 원이나 하는 곳이었다. ‘막내 작가 주제에’ 비싼 곳이었지만 제작사가 가까워 선택한 고시원. 그곳으로 도망친 나는 불도 켜지 않고 오래도록 잠만 잤다. 선배 작가들은 방송을 잘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쪽은 쳐다보기도 싫었다. 밥도 먹기 싫었고, 수제비는 더 먹기 싫었다. 가끔 목이 말라서 깨면 물을 조금 마시고, ABC 초콜릿 하나를 까서 먹고 또 잠이 들었다. 그곳은 스물네 시간이 밤인 곳이었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피접이 상해있었고, 통장은 바짝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일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했다. 방세 35만 원만 빌려달라고. 나는 밤새 울었다.




 그렇게 실패를 거듭하고 울고서도, 나는 또다시 방송판으로 돌아왔다. 그 실패라는 맛이 다시 돌아올만큼 달고 맛있는지는 모르겠다. 수제비는 입에 대기도 싫지만, 가끔 먹고는 있다. 그때 먹었던 맛은 나지 않지만 여전히 맛이 좋다.
 그후로 좋은 일도 있었고 나쁜 일도 있었다, 나쁜 일이 월등하게 많았지만. 하지만 이젠 실패에 대해 더 이상 탓할 수 없다. 언제나 실패가 판치는 곳에 다시 돌아온 것은 나 자신이니까. 그리고 언제나 주문처럼 외우곤 한다. 도망치고 실패했던 모든 것이 부끄럽지만, 도움은 되지 않았느냐고. 
 내 실패는 현재진행형이다. 또, 도망칠 용기가 있었던 그때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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