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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메론 Dec 08. 2020

6. 전전전 남친에게 연락이 왔다.

- (할 말은 많지만 너무 많아서 글로 좀 써야겠습니다) -

 


  최근에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연히 전전전 남친 소식을 들었다. 아니, 사실 흘려들었다. 이틀 뒤, 전전전 남친에게 연락이 올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4년 전에 헤어진 그 애와는 자존감만 낮추는 연애를 했다. 나도 불행한 걸로 따지면 어디 가서 지지 않는데, 그 애는 정말 불행했다. 하지만 불행함의 무게를 함께 나눠지려 하기보다, 상대적으로 덜 불행한 나를 탓하기 일쑤였다. “너는 평범한 집에서 태어났잖아. 부모님에게 충분히 받을 만큼 받았잖아” 등등. 그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그럼 나도 너를 따라 불행해져야 하는 걸까?


  결국 나는 더이상 불행해지지 않기로 했다. 이후 내 인생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지만, 그 애가 옮겨주려 했던 불행함의 무게만큼은 덜고 살 수 있었다.

  그런 전전전 남친(이하 전3 남친)은 4년간 아무 소식도 없다가, 급작스럽게 연락을 해왔다. 처음엔 전화를 했는데 너무 뜬금없는 연락이라서 받지 않았다. 그리고 몇 분 있다가 문자가 왔다. 그 내용은 이렇다.


문득 네가 생각나서 연락해본다. 4년 전에 내가 정말 미안했다. 일부러 연락 안 받는 거니? 나 동종업계에서 일하게 됐어.


  본래 전3 남친은 내가 일하는 업계랑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었다. 헤어질 당시에도 영업 관련 계약직 근무를 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왜 늦은 나이에 방송을 시작하게 됐을까?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그 자리에서 휴대폰만 내려다보았다(문자를 미리보기로 보고, 읽지는 않았다).

  그리고 또 다른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미국의 유명한 영화배우 케빈 베이컨의 이름을 딴, ‘케빈 베이컨의 6단계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할리우드 영화배우들 대부분은 두세 단계만 걸치면 케빈 베이컨 배우와 연결된다는 법칙인데, 우리나라 방송계는 이 법칙 정도는 우습게 여길 정도로 좁다고 자신한다.

  그 예로, 이번에 새로 시작한 프로그램에서 한 작가를 만났다. 이름이 어디선가 들어본 듯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게 웬걸. 1년 전에 내가 그만둔 프로그램의 후임 작가였다. 또 오디션 프로그램 마지막 촬영 날엔 뜬금없이 먹방 프로그램 때 함께했던 친한 촬영 감독님을 만났다. 알고 보니 굉장히 바쁜 시기인데도 불구하고 해당 프로그램 팀장님과 친분이 있어서 나와준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친구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해주다 마지막에 흘러가는 제작진 스크롤에서, 함께 일했던 작가 이름을 발견하는 것도 대다수였다. 그만큼 우리나라 방송계는 좁고, 또 좁았다. 그러므로 동종업계로 이직한 전3 남친을 언젠간 나도 한 번쯤 마주치거나 함께 일할 확률도 높을 것이다.

  나는 전3 남친이 동종업계의 어느 계열에서 일하는지 알고 싶지도 않다. 이 좁고 좁은 방송계에서 마주치지 않으면 더 땡큐다. 하지만 만약 마주친다고 해도, 덜 불행하려 노력하는 나는 인사쯤은 해줄 수 있다.

  

  ... 라고 생각을 정리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아직 덜 자란 어른이라 문자를 보고는 어쩌라고, 동종업계에서 일하는 걸 왜 나한테 이야기하냐, 진짜 짜증 나네 하면서 바로 매운 소대창에 소주를 때렸다. 매콤한 소대창 한 입, 차가운 소주를 한 잔 마시면서 생각했다. 어른스럽게 대처하고자 생각했지만, 결론은 제발 안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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