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루룩 호로록, 기가 / 막힘, (네글자) 침 샘 포 텐 -
사실, 나는 입도 짧고 편식도 심하다. 안 먹어본 음식이 천지삐까리다. 내 편식의 역사는 여섯 살 즈음부터 시작됐다. 쓴 맛이 나는 것 같아서 싫어했던 김치, 펄떡거리는 미꾸라지를 본 뒤로 입에 못 대게 된 추어탕, 이유는 모르겠으나 자라면서 못 먹게 된 무와 양파까지. 편식대장인 나는 성장해서, 음식 프로그램을 맡게 됐다.
최근에 알게 됐는데, 나는 책도 음식에 관련된 것을 좋아한다. 어릴 때의 어렴풋한 기억 무렵엔, 음식명이 들어가있는 책을 펼쳤다가 음식 이야기가 아니라 실망하고 덮었던 것 같다(그 책은 「내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였다. 얼마나 맛있어 보이는 제목인가!). 주말마다 방영했던 음식 관련 방송도 꾸준히 챙겨봤다.
고등학생 시절에 즐겨읽었던 음식 관련 만화책이 있었다. 그 작가는 「제 상상 속 주방에서 조리된 ‘그림과 대사로 만들었을 때 맛깔스러워 보이는 요리’」를 추구했다. 작가는 말대로 만화에 나오는 음식 그림과 대사는 침샘을 자극했다. 하지만 작가 본인은 만화책에 나온 요리법대로 믿고 시식해봤자 맛과 건강상태를 책임 못 진다고 했다. 그때 글만으로도 얼마든지 음식의 비주얼과 맛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천성 덕분인지, 나는 처음 맡은 음식 프로그램을 움츠러들지 않고 진행할 수 있었다. 물론 처음 맛보는 음식도 있었는데, 훠궈가 그랬다(당시엔 훠궈, 마라탕 등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때였다). 그럴 땐 인터넷 서치보다는 직접 먹어보는 게 장땡이다.
훠궈는 가게에 들어서는 순간, 코끝을 간지럽히는 매콤하면서도 묘한 향, 그리고 가게를 도배한 새빨간 인테리어가 기억에 남는다. 양고기와 소고기, 돼지고기 무엇이든 잘 어울린다. 홍탕 국물에 푹 적신 다음, 채소와 함께 먹어도 별미다. 난생처음 보는 두부피, 중국당면, 푸주도 용감하게 시식했다. 각종 면은 국물에 다양한 식재료의 맛이 충분히 우러나오고 졸아들기 시작할 때 즈음 넣어야 맛있었다.
그렇게 훠궈 가게 답사 후, 기본적인 자료조사와 내가 느낀 맛이 토대가 되어 촬영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나는 편집본을 보고 음식에 맞춰 자막을 썼다. 처음 훠궈를 맛볼 때는 크게 네 글자로 ‘대륙의 맛’이라고 표현해주거나, 다양한 채소를 듬뿍 넣은 홍탕은 ‘얼큰X담백 컬래버레이션’이라고 맛을 설명했다. 또 훠궈 가게 사장님이 추천하는 소스는 영상의 좌측 하단에 ‘훠궈 가게 사장님 PICK 소스 꿀팁’이라는 제목을 달아서, 각종 소스 제조법을 소개하기도 했다.
음식을 열심히 먹는 출연자의 캐릭터나 행동 또한 빼먹을 수 없다. 경쾌하게 국물을 들이킨다면 ‘후루룩’, 조심조심 국물을 맛볼 땐 ‘호로록’이라는 자막이 잘 맞아떨어졌다. 맛있어서 멍한 표정을 지을 땐 얼굴 양옆으로 ‘기가 / 막힘’이라고 써주기도 했다.
또 음식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맛있어 보이고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지만, 음식을 해주는 사람, 먹는 장소, 시간도 맛으로 표현된다. 주말에 엄마가 끓여주던 칼칼한 콩나물국이나,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 먹는 바삭한 파전과 시원한 막걸리가 그렇다. 보기만 해도 맛있는 음식 위에 ‘보글보글’, ‘파전 한 입 막걸리 한 잔’이라는 자막을 얹으면, 맛은 더 실감나고 더 깊어진다.
반대로 내가 못 먹거나 싫어하는 음식을 맡게 될 때는 참 난감했다. 어쨌든 일은 일이니까, 먹어는 봐야했다. 회나 장어덮밥이 그런 경우였는데, 먹고난 뒤엔 어떤 맛이었는지, 식감은 어땠는지, 다른 재료와의 궁합은 어떤지를 고민했다. 또한 내가 더 표현하지 못하니 친구들의 소감을 빌려오기도 했다. 여기에 기초 취재를 한 음식의 유래, 음식의 비주얼, 색다른 음식과의 조합이 이뤄지니 맛있는 나레이션과 자막이 완성됐다.
어느덧 내가 글로 표현한 음식은 수없이 많아졌다.
식재료인 채소, 생선, 고기, 과일, 면. 또 한 그릇의 요리인 전골, 피자, 치킨, 족발, 보쌈. 그리고 마을의 솜씨 좋은 할머니가 두부를 숭덩숭덩 썰어넣어 바글바글 끓여준 된장찌개나, 장작불을 지펴서 지은 고슬고슬한 가마솥밥까지. 그렇게 열심히 나레이션과 자막으로 음식을 맛봤는데도, 못 먹어본 음식이 더 많다는 건 참 아이러니하다. 오늘도 나는 한 그릇의 맛있는 요리와 그 감칠맛을 글로 써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