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집 마련과 빚, 그 어디쯤의 이야기 -
그날도 나는 새벽까지 자막 작업을 한 뒤, 아침에서야 까무룩 잠이 들었다. 혹시나 팀원에게 연락이 올 수도 있어서 항상 버릇처럼 휴대폰 음량을 켜놓고 기절했는데, 아침부터 문자 도착 알람이 울렸다.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하고 확인한 문자 내용은 이렇다.
처음엔 스팸문자인 줄 알았다. 평생을 빌빌대며 살아온 내게 이런 행운이 찾아올 리가 만무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문자를 살펴보니 정말 은행 번호가 맞았고, 어플로 확인해보니 내가 아파트 청약 당첨자라고 했다.
서른한 살을 맞이한 어느 날, 7평 원룸에 사는 프리랜서 작가는 로또 아닌 로또를 맞았다.
나의 첫 독립은 자그마한 고시텔이었다. 보증금 5만 원, 월세 35만 원. 약 2~3평의 창문 없는 고시텔에서 나는 1년 8개월을 버텼다. 부모님 도움 없이 무작정 혼자 시작한 서울 독립은 너무나 비좁고 서툴렀다. 결국 고시텔에서 원룸으로 이사를 가던 날, 아빠는 내가 버텼던 고시텔 방을 한참이나 둘러봤다. 나는 아직까지 아빠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7평의 원룸살이 6년째 되던 해에 아파트 청약에 당첨된 것이다.
하지만 급격하게 찾아온 현실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내 신분은 프리랜서 작가이며, 페이가 들쑥날쑥하고 몇 년째 변변치 못하다는 것. 나는 1년에 주5일을 꽉 채워서 일하지 못 할 때가 많다. (그렇다고 토요일과 일요일을 온전히 쉬는 것도 아니다) 다음 프로그램이 없어서 수입이 0원인 달도 있고, 기획 중인 프로그램에 들어가서 원래 받는 페이의 반만 받는 달도 있고,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본방송 페이로 꽉 채워 받는 달도 있다. 나는 자잘자잘하게 받은 페이로 내일을, 한 달을, 두 달 후를 생각해야 했다. 내가 몇 개월 후까지 백수일 수도 있고, 또 다음 프로그램에서 기획료가 현저하게 적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아파트 청약 당첨 소식을 전하자, 예상했던 대로 아빠는 전혀 기뻐하지 못했다. 아빠는 방송계의 복잡한 생리는 잘 모르지만, 딸내미가 지지리도 돈을 못 버는 건 알고 있었다. 어떻게든 손은 벌리지 않고 살고는 있지만, 평범하게 월급 받고 살아가는 동생이랑은 크게 비교가 됐다. 아빠는 계약에 대해서 좀 더 고민해보자고 했다.
계약을 하러 가던 날까지도 아빠는 고심했다. 별천지 같은 모델하우스를 둘러보며 허참, 좋긴 하네, 라고 연신 감탄하면서도 딸의 처지를 생각했다. 본가의 자그마한 아파트를 떠나 고시텔과 원룸살이를 몇 년간 했던 나는 모델하우스를 둘러보기만 했다. 나 또한 내 주제를 잘 알고 있어서, ‘7평짜리 원룸 집세도 버거운데 억대의 아파트를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부터 앞섰다.
계약금은 내 본방송 페이의 수십 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그 돈은 순식간에 계약금으로 입금됐다. 무척이나 허망했다.
계약금을 치루고 나온 뒤, 우리는 8,000원짜리 칼국수를 먹었다. 나는 내가 몇 달, 몇 년을 벌어야 하는 계약금을 생각하며 쪼로록 면을 흡입했다. 뜨거운 국물을 들이키고 난뒤, 아빠는 말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돌이켜보면, 중학생 시절의 나는 서른한 살의 나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어떻게든 살아내면 훌륭한 어른이 되는 줄 알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왜 현실의 나는 서른한 살까지 부모님의 걱정을 좀먹고 사는 걸까.
방송작가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됐을 때, 엄마는 딱 한 번 내게 공부를 더 할 생각은 없냐고 물었다. 방송작가랍시고 일주일에 3~4일을 집에 들어오지도 못 하고, 돈도 못 버는 딸을 생각해서 어렵게 꺼낸 말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때 밤샘 프리뷰를 하던 중이라 나중에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방송작가를 그만 두고 좀 더 공부를 해서 다른 일을 알아보라는 뜻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그런 대화는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기획료고, 시즌제 프로그램이고 잘은 모르지만, 어쨌든 묵묵하게 딸의 일과 삶을 지지해주는 것. 아빠, 엄마는 변변치 못한 딸을 응원하며 나이가 들어가는 중이다.
+ 덧) 그리고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아빠의 말을 책임지기 위해 변변치 못한 딸은 전보다 더 열심히, 밤낮으로 일을 하고 있다. 방송, 각종 홍보영상, 프리뷰까지 잠을 줄여가며 열일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