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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메론 Dec 18. 2020

8. 4개월간 6잡러로 지내보았다.

- 6잡러로 일하며 번 돈은 얼마? -


  방송작가는 ‘이상한 프리랜서’다. 프리랜서인데 정해진 시간에 출근을 해야하고, 퇴근 시간은 미정이다(이건 프로그램 바이 프로그램, 팀 바이 팀에 따라 다르기도 하다). 아침 10시 30분에 출근한 막내작가에게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기 때문이다. 점심, 저녁을 거르고 밤까지 일해도 업무가 끝나질 않아서, 남은 일거리를 품에 안고 밤 11시 30분에 막차를 타곤 했었다. 그렇게 일하고 주어진 당시의 월급은 3.3%를 떼고 77만 원이었다. 물론 이것은 수 년 전, 단 한 개의 프로그램만 했을 당시의 이야기다.




  어찌저찌 입봉도 하고 머리도 크고 연차도 쌓이면서, 나이도 함께 먹었다. 올해 했던 프로그램은 사례자 섭외, 아이템에 대한 공부와 촬영도 힘들었지만 상상치도 못했던 변수가 있었다. 바로 코로나19 바이러스였다. 가뜩이나 사례자와 아이템 섭외가 어려운 마당에 모든 것이 제한됐고, 엎어지기 시작했다. 제작진은 어떻게든 방송 일정을 맞추기 위해, 땜빵 처리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우리끼리 “눈 감았다가 뜨면 프로그램이 끝나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우스개소리를 하곤 했는데, 정말 눈떠보니 프로그램 시즌이 끝나있었다.

  그때 나는 무척이나 지쳐있었다. 성격상 아무 일도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고 초조해하지만, 이번만큼은 한 달 정도 쉬어야겠다고 마음 먹은 참이었다. 거기다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지며 운명적으로 집콕을 해야했다.

  그런데 프로그램 종영 일주일 후, 겨울잠 자듯 수면을 보충하고 있던 내게 연락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기업 사내방송, 홍보영상, 교육영상, 제안서 등 무려 여섯 건의 의뢰가 들어온 것이다.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 나는 ‘아무 일도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고 초조해 하지만’, 동시에 ‘물 들어오면 어떻게든 수십 개의 노를 젓는’ 성격이라는 것을 말이다.


프리랜서는 언제나 위태롭다.
 마치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 마냥 아슬아슬한 선 위에 서 있는 것 같다.


의뢰가 들어온 순간 “이번엔 좀...”이라고 하면 그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작업들을 ‘어떻게 해결하지’를 생각한 게 아니라 ‘얼마나 잠을 안 자면 해결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리하여 6잡러 프리랜서 방송작가의 재택근무 막이 올랐다.




  본래 프로그램을 할 때는 프로그램 제작 스케줄에 맞춰 점심시간 즈음 출근해서 열일한 뒤, 늦은 밤에 퇴근하는 게 내 생활 루틴이었다. 하지만 다량의 업무를 맡게 된 재택근무러에게 그런 루틴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마감 순서를 정리한 뒤, 가장 급한 업무부터 쳐내려면 새벽이고 밤이고 일을 해야했다. 3일간 꼬박 밤을 새서 대본 여러 개를 완성해서 보내기도 했고, 아침 해가 뜰 때 두어 시간 눈을 붙이고 다시 일어나는 경우도 있었다. 이틀 밤을 꼬박 샜을 때는 병 든 사람처럼 바닥에 쓰러져서 잠만 잤다. 그렇게 해도 일은 쉬이 끝나질 않았다.

  지난 번에는 아침 일찍부터 제안서 관련 미팅이 있었다. 이틀 밤을 샌지라 정말 한 시간이라도 눈을 붙이고 싶었는데, 이 상태로 누우면 하루종일 잠들 것만 같았다. 그래서 결국 나는 화장까지 마친 상태로 한 시간을 5분 간격으로 나누어 알람을 맞춰두고, 알람이 잘 들리도록 이어폰을 낀 채로 쪽잠을 자기도 했다.

  이번 재택 6잡러로서 가장 큰 변수 또한 코로나19 바이러스였다. 나름 규칙적으로 출퇴근을 하던 프리랜서라서 늦은 시간에 촬영구성안이나 자막 등을 써야 할 때는 억지로라도 카페로 갔다. 커피를 서너 잔씩 시키고, 또 새로운 디저트를 주문하면서 일하곤 했다. 그래야 그나마 늘어지지 않고 제시간 안에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집에 있으면 자꾸 눕고 싶고, 자연스럽게 일을 미루게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격상되면서, 집이 사무실이 됐다. 세상에, 이렇게 편안한 사무실이 또 있을까. 내 몸과 뇌는 자꾸만 사무실에서 눕고 싶어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는 정신머리가 어떻게든 눕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거기다 점심을 챙겨먹으면 자기 딱 좋은 환경이라, 되도록이면 일이 마무리된 뒤에 겨우 한 끼를 챙겨먹곤 했다. 그러다 보니 내 식사 시간은 주로 하루를 쫄딱 굶고난 뒤 새벽 즈음으로 변경됐다. 밤샘작업 후 새벽에 먹는 밥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몇 달 간 집에 갇혀서 일을 하다가, 촬영차 오랜만에 집 밖에 나오니 계절이 바뀌어 있었다. 나는 선입금된 페이로 겨울 옷들을 장만했다.

  아직 후반 작업이 남긴 했지만, 얼추 업무가 마무리 되어간다. 보통은 업무 종료 후, 관계가 잘 마무리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으로 나뉜다. 좋은 인맥을 쌓은 곳도 있고 다시는 얼굴을 안 볼 곳도 있다. 얼굴을 안 볼 곳은 일이 마무리가 됐는데도 아직 돈을 주지 않은 제작사다. 나는 한바탕 싸우기 위해 그간 일한 내역을 캡쳐해두고 전화내용을 녹취하기 위해 녹음기를 장만했다(대표님, 감독님. 제발 양심 좀...)

 기존에 한 개의 프로그램을 하던 것보다는 조금 더 많은 금액이 통장에 꽂히긴 했다. 건강을 포기하고 받은 페이의 행방은 배달 음식이나 커피값으로 꿈결처럼 사라졌고, 또 떨어진 기력 보충을 위한 홍삼 스틱을 구매하는데 쓰였다. 나는 지금도 열심히 홍삼 스틱으로 체력을 다시 쌓고 있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6잡러의 생활이 마무리되어 간다. 나는 또 백수가 될 예정이다. 내가 언제 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일을 해보겠는가. 계속된 밤샘, 수시로 거르던 끼니, 바닥에 쪼그려 자던 쪽잠까지 후회는 없다. 하지만 아, 홍삼 맛이 너무나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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