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 때문일까, 가족력 때문일까, 습관 때문일까 -
사실, 내가 입봉(막내작가에서 서브작가로 승진하는 것)을 할 수 있게 된 계기는 기가 막힌 기억력 때문이었다. 그 기억력이 어느 정도였냐면 십 년 전 여름, 친구들이 각각 카페에서 시킨 메뉴를 기억하거나, 친구가 스쳐 지나가듯 말했던 가족 이야기를 기억하기도 했다. 또 대학 입시 실기를 약 10여 개월간 준비하면서 배운 수백 개의 예제를 모조리 암기한 채, 당당하게 실기를 보러 가기도 했다.
이 기억력은 막내 작가 때도 유효했다. 1년 치 아이템과 아이템 방영 날짜, 담당 제작진, 촬영 장소 등을 전부 외웠던 것이다. 내 기억력이 신통방통하다며 눈여겨본 선배님들은 내게 여러 기회를 제공해주셨고, 그렇게 나는 서브 작가로 입봉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서른을 넘긴 요즈음,
자꾸 깜빡깜빡한다.
참 희한하지. 대화 도중에도 어울리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거나, 대본이나 자막을 쓸 때도 막혀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지난번에는 ‘픽셀’이라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서, 검색창에 비슷한 단어를 한참이나 검색한 적도 있었다. 또 ‘A를 검색해야지’라고 생각하다가 1분만 지나도 내가 뭘 검색하려고 했지? 라며 멍을 때리는 경우도 수십 번이었다. 그래서 내 스마트폰 속 인터넷 창은 수백 개가 넘는다. 생각이 난 순간, 바로 인터넷 새 창을 띄워서 검색부터 해놓는 것이다. 혹은 나에게 보내는 카톡에 메모하듯 톡을 보내놓는다. 아마 내가 나에게 보낸 카톡은 수만 개가 넘을 것이다.
갑작스럽게 깜빡깜빡하니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은 나 자신이었다. 처음에는 인정할 수가 없어서 방치했다가, 뒤늦게나마 나는 두뇌에 좋다는 견과류나 홍삼 같은 음식을 챙겨 먹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문득 가족력 때문은 아닐까 라고 의심도 했었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동갑내기 친구들과 톡으로 대화를 했는데, 하나같이 요즘 깜빡깜빡한다며 자신들의 경험담을 털어놓는 게 아닌가. 특히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고들 했다. 이제 겨우 30대인데, 벌써 기억력이 떨어지고 있다니 -
예전에 서른 살이란 것은, 내게는 언제 올까 싶은 까마득한 나이였다. 또 ‘진정한 어른_완성_최종_진짜 완성.hwp’이라고 이름 붙여줄 수 있는 나이인 줄로만 알았다. 왜냐하면 불과 15년 전만 해도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서른 살의 삼순이가 노처녀 취급을 받지 않았던가. 또한 우리 아빠가 가정을 꾸리고 나를 낳은 나이가 서른 살이었다.
막상 내가 서른 살이 되고 보니, 서른 살의 나는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온전한 어른은 아니었다. 나는 나 혼자만의 삶을 챙기기도 벅찼고, 30대의 부모님처럼 타인의 경조사까지 챙길 수 있을 만큼 여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100% 어른이 되기도 전에, 신체는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이 조금 서글퍼지기도 했다.
“예전에 같은 팀의 30대 선배랑 일하면, 자꾸 뭘 까먹거나 잊어버리더라고. 그때만 해도 ‘어떻게 저런 중요한 일을 잊어버릴 수 있지? 너무 마음 놓고 일하시는 거 아니야?’ 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선배 나이가 되어보니 나도 자꾸 까먹거나 잊어버리더라고. 요즘 그 선배에게 너무 미안해.”
동갑내기 친구는 본인이 나이를 먹어보니, 나이 들어가는 선배를 이해해주지 못했던 것이 미안하다고 했다. 왜 그때 당시에는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을 이해해줄 수 있는 여유조차 없었던 걸까. 그것마저도 미안하다고 했다.
고심 끝에 나는, 아직 어른으로 완성되지 않았지만 나이가 들어감은 인정하기로 했다. 40대가 되면 또 어떤 어른이 되어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40대가 되기 전에는 알 수 없다. 40대만의 기쁨, 외로움, 힘듦 같은 것들 말이다.
그래도 늦게나마 완성형의 어른이 되고 싶다. 조금 덜 깜빡이는 어른이 되고 싶고, 40대 선배의 나이듦을 이해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