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메론 Dec 28. 2020

9. 엄마, 나 난자 냉동 보관하려구.

- 요즘 삼십 대 사이에선 필수라던데? -



  아무것도 모르던 중학생 시절, 나는 스물세 살 즈음엔 결혼할 줄 알았다. 하지만 여중 - 여고 - 여초 학과를 거치며 이른 결혼은커녕 연애도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막학기를 마치자마자 방송작가로 일을 시작하게 되며, 결혼이고 나발이고 생각할 겨를도 없게 됐다.

  그러던 중 스물다섯 살이 되던 해, 친구들 중 A가 처음으로 결혼했다. 친척 결혼식 외에 처음으로 가보는 친구의 결혼식이었다. 나는 어설프게 원피스를 차려입고 결혼식장엘 갔다. 그곳에 교복을 입고 머리를 질끈 동여맨 친구는 없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스물다섯 살의 신부가 좀 멀게 느껴졌다. A는 짧은 신혼생활을 즐긴 뒤 아이를 가졌다. 친구 중에서 아이 엄마가 된 것은 A가 처음이었다. SNS를 통해 본 친구의 아이는 정말 예뻤다. 나는 종종 댓글을 달아주었다.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나서 평생을 약속한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을 닮은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부럽기도 했고,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A는 고작 이십대 중반이었지만 회사를 그만 뒀고, 둘째를 가지며 전업 주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나와 A, 친구들이 모일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언제였던가, 나는 함께 나이 먹어가는 친구들과 모여 술 한잔을 했다. 나이가 나이인 지라 임신, 출산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임신이나 출산에 대해 주변에서 이것저것 주워 들은 게 많았다. 아이 가졌을 때 매운 음식 먹으면 아이한테 안 좋다고 하더라. 그러자 매운 음식 킬러인 친구가 몸서리를 쳤다. 우리 앞에서 바글바글 끓고 있는 훠궈 홍탕의 매콤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 이후로 임신 중이나 출산 후에 먹으면 안 되는 음식들이 나열됐다. 당연히 술도 마시면 안 된다 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나는 버럭했다. 술도 못 마시면 어떻게 살아? 라고 말이다. 한바탕 밤샘 작업 후 아직 밥 먹을 체력이 남아있으면, 나는 혼자서 반주를 하곤 했다. 그와 함께 재미있는 책을 보거나 유튜브 보기를 곁들이는 게 소소한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그러면 나는 임신하면 도대체 뭘 먹고, 뭘로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단 말인가? 그날따라 안주인 훠궈는 무지하게 얼큰했고, 맥주는 유달리 시원했다.

  한 친구가 말했다.

  그래서 요즘엔 난자 보관을 해놔야 한대. 지금 당장 결혼 생각 없고 임신 생각이 없어도, 마흔 넘어서 아이를 가지고 싶을 수도 있잖아? 서른다섯 넘어가면 임신이 힘들어져서 필수라고 하더라.

  나는 그 자리에서 난자 보관을 검색해봤다. 정말 2020년대의 뉴스 미다시들은 30대 여성들의 난자 보관이 필수이며, 난자 냉동이 급증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몇몇 여성들이 난자 보관 방법, 난자 채취 과정 등을 묻고 있었다. 나는 난자 보관 비용까지 든다는 사실을 보고 남은 맥주를 들이켰다. 삼십 대의 우리는 그 자리에서 왜 난자를 보관해야 하는지, 언제 난자 보관을 시작할 것인지에 대해 한참이나 이야기를 나눴다. 술자리가 파하고 난 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 뱅킹으로 난자 보관 비용 마련을 위한 적금을 들었다.


  

- 소액으로 들고 있는 난자 보관 비용 마련 적금

또 다른 적금과 합쳐서 비용을 마련할 계획 중 -


  사실 나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결혼과 출산에 대한 생각이 명확했다. 지금도 육아 예능 프로그램을 본방사수하고 유튜브에서 방송본을 찾아보기도 할 만큼 아이를 좋아한다. 서른을 넘길 무렵의 나 또한 미래의 남편과 나를 반씩 닮은 아이를 한 명 낳아 알콩달콩 사는 삶도 종종 생각하곤 했다. 지금껏 만나온 남자친구들과도 결혼과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나누기도 했다. 그때마다 남자친구들은 당연하다는 듯 이야기했다.

  아이는 무조건 두 명은 낳아야지.

  나는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왜?

  이후에 남자친구들의 구구절절한 설명이 이어졌다. 외동은 너무 외로울 것이고, 나는 딸이 로망이고, 두 명이어야지 서로 도우며 자랄 것이고 등등.


하지만 아이를 두 명은 가져야 하는 수많은 이유 중에 내 이야기는 없었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 앞에서 나는 너무나도 쉽게 잊혀졌다.


어쩌면 아이를 두 명 낳고 더없이 행복한 삶을 살 수도 있다. 보통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그때에는 지금 이렇게 생각한 나를 이해 못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네 명의 가족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내 희생이 필요하다. 수년간 쌓은 경력, 몇 달간 겪어야 할 고생, 지금의 내가 소소하게 누리고 사는 것들, 그리고 임신과 출산으로 더 약해질 내 체력까지. 이러한 일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겪어야 한다. 왜 가족의 행복을 위해 내가 희생되어야 하는가. 하지만 남자친구는 이런 내 생각을 눈치 못 챈 것 같았다. 나는 귀를 막고 등을 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전 남친이 됐고, 결혼과 아이 이야기는 상상 속의 이야기가 됐다.

  이른 나이에 결혼한 친구들의 SNS는 예쁜 아이들의 사진으로 채워져 갔다. 나는 종종 내 친구의 사진도 보고 싶긴 했지만 그때마다 하고 싶은 말을 꾹 참았다. 아이의 생일 축하 관련 피드가 올라오면 어떻게 댓글을 달아야 할지 한참 고민했다. 그리고 고심 끝에 아이에게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아이 키우느라 너무 고생했어 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녀는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한 내 친구이기도 하다.




  난자 냉동 보관 비용 마련 적금에는 적지만 돈이 착착 쌓여가고 있다. 나는 내년 초 즈음에 먼저 난소 나이 검사를 먼저 받아본 뒤, 가장 좋은 해결책을 찾을 예정이다.

  아직 부모님은 내가 좋은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할 거라고 생각하실 것이다. 하지만 엄마, 아빠에게 말하고 싶다. 나는 내가, 내 삶이 너무나 소중해하다고. 밤샘해서라도 쌓고 싶은 내 경력, 적지만 일한 대가로 들어오는 페이, 밤이 깊어갈 때까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친구와 전화로 떠는 수다, 새벽에 나가 24시간 카페에서 테이크아웃한 찐한 아이스 라떼 한 잔의 맛, 스트레스받을 때 쪼그려 앉아 보는 좀비 영화 한 편, 함께 곁들일 수 있는 매콤한 안주와 쓰지만 단 소주 한 잔까지 말이다.


이전 10화 10. 대표님, 페이가 입금 안됐는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