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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메론 Apr 11. 2021

12. 나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해.

- 누구나 공공연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


 

나는 대다수의 자기소개서 첫 문장처럼 자랐다.


  ‘자비로운 아버지와 온화한 어머니 밑에서 자라…’와 같은 지극히 평범한 문장 말이다. 여느 누구나 그러하듯 시간이 지나니 급격하게 키가 자랐고 체형도 달라졌다. 어릴 땐 공부를 좀 했는데 고등학교 가면서부터 성적이 뚝 떨어졌다. TV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어느 날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고 부단히 노력한 끝에 화려한 무대에 서던데, 그건 내 인생이랑은 달랐다. 내 이야기는 극적이지도, 특별하지도 않아서 물 흐르듯 흘러갔다. 아마 부모님도 10대의 나를 보고 ‘쟤는 커서 뭘로 벌어먹고 살까’라고 고민하지 않았을까. 그만큼 내 인생은 잔잔했다.

  다행스럽게도 어릴 적부터 잘 한다고 칭찬을 듣고 좋아하는(줄 알았던) 글로 밥을 벌어먹고 살려고 이래저래 노력을 했다. 순수문학으로 입시 준비를 했고, 운이 좋아서 합격도 했다. 왕복 다섯 시간 거리의 대학도 열심히 다녔다. 하지만 날고 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껴 보니, 나는 순수문학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나름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일에게 배신을 당하는 건 꽤나 힘든 일이었다. 나는 빨리 방향을 틀었다. 그것이 방송작가로서의 첫 시작이었다.



 

  나는 다른 막내작가들도 으례 이렇게 일하는 줄 알았다. 쥐꼬리만한 내 월급으로 사먹는 점심과 저녁, 매일같이 이어지는 밤샘, 공휴일과 주말에도 당연시하는 출근까지. 모든 팀원들이 비상근으로 근무를 하는 체제라서 나는 항상 혼자 깨우쳐야 했다. 그래서 몇날 며칠을 내 나름대로 습득한 방법으로 섭외전화를 돌리다가, 그 전화 내용을 들켜서 선배 작가에게 혼났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모 방송사의 김메론 막내작가입니다.”

  상대방에게 네가 직책이 낮다는 걸 굳이 알려줄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작가면 작가지, 굳이 막내작가라는 신분까지 알려줄 필요가 있냐는 거였다. 하지만 나는 내가 막내작가라고 벌써 수백군데에 전화를 해놓은 참이었다. 내가 사회생활 짬이 좀 있었으면 알았겠지만, 그때 나는 스물두 살에 출근 3일차였다. 속상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 이후로 나는 선배 작가가 옆에 있으면, 사무실 밖의 복도에 나가서 전화를 걸곤 했다.

  이런저런 일들까지는 참을 만 했다. 하지만 매달 밀린 출연료 때문에 걸려오는 독촉 전화만큼은 참기 어려웠다. 내가 섭외하고 내가 촬영 날짜와 장소를 조율했으니, 당연히 출연료 미지급 전화도 나에게 올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빚진 것도 아닌데 항상 “출연료가 밀려서 죄송하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이때의 기억을 경험삼아 절대로 신용카드를 쓰거나 빚을 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제작사 대표에게 빨리 입금해달라고 부탁도 해보고, 출연자가 본사에 항의 전화도 한대요! 라고 나름의 협박도 했지만, 그 뻔뻔한 인간에게 먹힐 리가 없었다.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던 나는, 결국 내 돈으로 출연료는 선입금해줬다. 그때 당시 내 월급은 3.3%를 떼고 77만 원이었다. 가끔 마시고 싶은 커피를 한 잔 포기하거나 먹고 싶은 점심 메뉴를 포기하면, 독촉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됐다.

  짬이 찬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면, 스물두 살의 나는 왜 거기서 꾸역꾸역 참았는지 모르겠다. 몇 번의 탈출 기회는 있어다. 엄마가 대학원 공부를 제안한 적도 있었고, 다른 프로그램에 몰래 이력서를 낸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 부분만 도려낸 것처럼 그때의 기억은 삭제되어 있다. 아마 파블로프의 개처럼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게 아닐까.

  몇 달 뒤 좋은 선배 작가의 도움으로 그곳을 벗어나고 나서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경리 언니가 있어서 제가 출연료 입금 안 해도 되고, 독촉 전화도 안 받고. 진짜 좋아요!” (진짜 이렇게 이야기했다)

  당연히 누리고 살아야 할 것을 누리지 못하니, 나는 당연하고 자그마한 것에도 기뻐했다. 물론 더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페이를 떼먹고 잠수를 탄 제작사, 수시로 욕지거리를 하던 대표, 하루 1시간 자고 촬영을 했던 순간들까지. 수없이 최악의 상황을 버텨내고 났더니,


어느 날 문득, 내가 무척이나 무감각해져있다는 걸 알게 됐다.


특히 일의 강도에 대해서는 더욱 더 그랬다. 누군가가 밤 10시까지 야근을 했다, 먼 지역까지 가서 미팅을 했다 등등.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나는 힘들었겠다 라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어쩌다 나는 이렇게까지 됐을까.

  사실 더 힘들고 괴로운 상황은 무척이나 많다. 그들도 나도, 겪어보지 못한 최악은 또 있을 것이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지옥 같은 고통들은 또 언제즈음 올까. 다만 내게 고민을 털어놓은 사람에게 공감해주기 위해 나는 최선을 다한다. 그에게 따뜻한 라떼 한 잔을 권하고, 달콤한 딸기 케이크를 권한다. 나는 무감각해지지 않기 위해 그들에게 조금 가까이 다가가서 그들의 생각을, 힘듦의 정도를 배울 필요가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는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테니까. 내게 닥친 일이 가장 무겁고 어려울 테니까. 나는 불쌍하다는 감정을 먹고 자라난다. 나 혼자만 아는 나만의 비밀. 오늘도 축 처져있는 나에게 나는 달콤한 딸기 케이크를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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