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과 함께 세계로, 기차로 대륙을 누비다
기차가 연착되어 캐나다의 밴쿠버에 가도 예약된 숙소에도 가지 못하고 또 기차표대로 미국의 밴쿠버에 도착한다 해도 숙소도 예약되어 있지 않고 언제 도착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스포칸에서 다음 역인 프랭클린 카운티라는 곳에서 내려 다시 시카고 가는 기차를 타기로 한다.
다시 시카고로 돌아가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미국에서의 마지막 기차 여행이 될 것이다.
우리가 중간에 내렸던 프랭클린 카운티라는 도시는 워싱턴 주의 조그만 도시로 콜럼비아 강과 스네이크 강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경치가 뛰어나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이라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겨울이라 도시가 썰렁하였다. 기차역 한편에 국립공원 안내 전단과 각종 레저 시설에 관한 홍보물이 많다.
이 역에는 하루에 한 번 포틀랜드로 가는 기차와 반대편인 시카고로 가는 기차가 전부이다. 여객을 담당하는 직원도 상주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 두 번 기차가 오고 갈 때를 전후해 근무한다고 한다. 오늘은 기차가 많이 연착되어 기차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나왔다고 하며 평상시에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기차역 안에 그레이하운드 버스 사무실도 있는데 시애틀이나 포틀랜드로 가는 버스도 하루에 한두 번 있고 사무실도 문이 잠겨 있으며 버스 시간에 맞춰 몇 시에 문을 연다는 안내표시가 있다.
일단 여기서 시카고로 가는 기차표를 끊는다. 하루에 한 번 시카고로 가는 기차는 다행히 3시간 후에 출발한다. 기차 시간이 맞지 않았으면 하루를 여기서 묵어야 했는데 천만다행이다.
시간이 있어 밖으로 나와 보니 상점들은 오후 늦은 시간인 탓도 있겠지만 관광객을 주 고객으로 하는 상점들은 거의 철시 상태다. 아직 문을 닫지 않은 가게는 파티 복을 판매하는 의류 상점들이 많다.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들이 자주 모여 파티를 많이 하기 때문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 요깃거리를 사 먹을 요량으로 돌아다녔지만 별로 마음이 당기는 곳이 없다.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니 우리나라의 포장마차 비슷한 것이 있어 보니 타코를 만들어 파는 곳이다. 얇은 빵에 야채와 고기를 넣은 음식으로 파는 사람은 남미 사람 같아 보이기도 하고 인디언 같기도 하다.
살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옆의 차 안에서 타코를 먹던 사람이 나와 맛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사라고 한다.
타코를 2개 사고 편의점에서 캔 맥주도 한 팩 사서 기차역으로 다시 온다. 기차를 기다리다 타코를 먹는데 맛이 괜찮다. 몇 개 더 사와 기차에서 먹어도 좋을 것 같은 기분인데 다시 사러 가기도 좀 그래서 포기하고 만다.
다시 기차여행의 시작이다. 이번의 기차 여행이 시베리아와 유럽 대륙, 그리고 미 대륙에서의 마지막 기차 여행이 될 것 같다. 아직 터키 여행이 계획되어 있지만 터키는 기차보다는 버스를 많이 타고 다닌다 하니... 기차를 타고 조금 가다 보니 날이 저문다. 하지만 기차가 달리다 보면 산속으로 갈 때는 캄캄한 밤이었다가 평지로 나오면 다시 날이 밝아진다.
돌아왔던 길을 되돌아 다시 시카고로 가는 기차 저녁노을이 무척이나 예쁘다. 기차를 타고 가는 여행이 아니었다면 내려 경치를 마음껏 즐기고 사진도 많이 찍었을 텐데 많이 아쉽다. 그래도 이렇게 기차에서나마 볼 수 있는 것만으로 행운으로 삼아야겠지.
아름다운 경치를 마음에 담는다. 그렇게 해가 지고 날이 밝았다. 기차는 쉬지 않고 계속 달린다. 기차가 달리면서 낮과 밤이 바뀌어 엊그제 지날 때 보지 못했던 광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기찻길 옆의 그림 같은 동네들이 지나간다. 장시간 기차를 타고 가다 보면 먹을 것이 문제다. 러시아와 유럽을 여행하면서는 거의 식당 칸을 사용하지 않았다. 기차를 타기 전에 먹을 것을 미리 준비하면 비용도 절약되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댈러스에 갈 때도 한인마트에 가서 한국산 컵라면과 야채들을 준비해 카페 칸에서 뜨거운 물을 얻어 라면과 야채를 먹으면서 거기에서 파는 핫도그나 햄버거 등을 곁들이면 아주 좋은 식사가 되었다.
댈러스에 갈 때의 카페 아저씨는 인상 좋은 나이 지긋한 흑인 아저씨였는데 우리가 컵라면을 가지고 뜨거운 물을 달라고 하면 뜨거운 물의 온도가 조금 낮아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다시 전자레인지에 넣어 라면이 잘 익도록 해서 주었었다. 카페 칸에 전자레인지가 있으니 이번에는 그래서 이번에는 햇반도 좀 준비를 했었다.
근데 여기 올 때의 카페 아저씨는 중년의 백인이었는데 뜨거운 물은 주는데 햇반은 전자레인지에 안 해 준단다. 비용을 지불하겠다고 해도 안 된다고 하여 햇반 먹는 것을 포기하고 가져간 컵라면과 햄버거 등을 먹었는데 이번의 카페 아저씨는 동양계의 젊은 사람이다.
컵라면의 뜨거운 물을 달라고 부탁하자 일언지하에 거절하며 벽면에 붙어 있는 안내문을 가리킨다. 거기에는 외부음식 반입을 금지한다 라고 되어 있다. 그러면서 뜨거운 물도 안 주고 여기서 먹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자기네 것을 사서 먹으라는 것이다.
카페 칸에도 자기네들 것의 컵라면 종류를 판매하고 커피와 핫도그 햄버거 등의 간식거리를 많이 팔아 우리는 컵라면과 햄버거나 핫도그와 같이 먹으면 한 끼가 거뜬히 해결되는데 컵라면을 먹을 수 없고 또 원칙만 고집하는 그 아저씨 얼굴도 보기 싫어 다시는 카페 칸에서 물품을 구입하려 내려가지 않고 식당을 이용하게 되었다.
식당은 의외로 비싸지 않았고 음식도 상당히 좋았다. 종업원도 친절하였고 그러면서 식사 때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기쁨도 주었다. 카페 칸의 스낵바만을 이용하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식당 칸에 들어가면 일단 매니저가 좌석을 지정해 준다. 좌석은 네 명씩 앉는 좌석을 차례로 앉히다 보면 옆에 우리와 비슷한 또래의 사람이 앉게 되는데 자연히 대화가 이루어지게 된다. 영어가 짧아도 서로 어디서 오고 어떻게 여행을 하는지에 대해 물어보고 가족 관계에 대해서도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서도 물어보며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
여기서 만난 사람은 다시 카페 칸에서 만나 이야기를 이어가기도 한다. 장시간의 기차여행에 말동무가 생긴 것도 큰 자산 이리라.
기차를 타고 사흘을 달려왔다가 되돌아가는 기차를 갈아타기 위해 프랭클린에서 약 3시간 머물다 다시 기차를 타고 기차에서만 닷새를 보내게 되니 제일 문제 되는 것이 씻는 문제다. 침대칸이면 샤워도 할 수 있겠지만 일반 객차에는 그런 시설이 없어 불편하기 그지없다.
카페 칸의 이층은 여행객들이 자기들만의 시간을 즐기는 공간으로 밖의 경치를 감상하기 좋게 만들어져 있고 아래층은 스낵바로 맥주나 음료, 핫도그나 햄버거 등을 파는 공간으로 되어 있어 보기 싫은 카페 아저씨 볼일은 없었다.
이러고도 얼마를 더 달려 깜깜한 밤에 시카고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진에는 없지만 밤하늘에 수많은 불빛이 다가온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셀 수가 없다. 많은 불빛이 저 멀리서 작은 점으로 다가오다 점점 커져서 우리 머리 위를 지나간다. 시카고의 오헤어 공항에 착륙하는 비행기가 멀리서부터 고도를 낮춰 오기 때문이다. 정말 아름다운 광경이다.
풍요와 정보의 나라 미국에 들어오면서부터 우리들의 통신은 거의 마비 상태가 되었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크루즈를 타는 순간 Wife는 멈췄다.
데이터 로밍을 하지 않았기에 인터넷이 통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차를 타고 다닐 때도 사용이 안 되고 호텔에 들어가면 연락이 되지만 이번에는 호텔도 들어가지 못하고 계속 기차만 타고 다녔기에 누구하고 연락이 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하였다. 어쨌든 우리는 시카고에 무사히 도착하며 미 대륙을 종단하고 횡단하는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