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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환 Feb 28. 2019

내? 일을 위하여

내 일생에 다시없을 1년 살아보기

  33년 근무하던 직장에서 나와 다시 인생을 시작하고도 벌써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하던 시기 나를 찾아 무척이나 헤맸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세링게티의 다양한 모습들



  앞으로 무엇을 해야 될지?  나는 어디에 있고 어떻게 살아야 되나?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며 무엇을 할 것인지 찾아보기도 하며 또 영어공부도 하고 각종 강좌에 쫓아다니며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다가 일단 한번 나가 보자고 떠난 세계여행이 그 후로도 계속 이어져 8회에 걸쳐 총 3년간을 여행으로 다니며 다양한 경험들을 하였다.


  그래서 한번 만들어 보았다.   앞으로 나와 같은 길을 걸어야 할 사람들과 또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나를 위하여 새로운 방향을 찾기 위해서 말이다.   내? 일이라는 제목이 조금 이상한데 내가 해야 할 일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나에게 지금 무엇이 중요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한번 생각해 본다.   남자들은 이야기할 때 군대와 축구 이야기를 빼면 할 말이 없다고 하는데 나도 군대 이야기를 꺼내 본다.   신병 훈련을 마치고 자대에 처음 들어가 군기가 바짝 들어있는데 선임들이 들어와 물어본다.   군대 계급 중에 장군의 계급 순서는?   예... 준장, 소장, 중장, 대장입니다.   다시 물어온다.  대장 위는?   예 원수입니다.   선임이 그런다.  이 짜샤 대장 위는 병장이다.   병장이 오성장군이란 말이다 하며 꿀밤을 먹인다. 


 


  또다시 이어지는 질문, 소령 위는?  중령입니다.  그 위는?  옙! 대령입니다.  그럼 그 위는?  준장입니다.  이 새끼야 대령 위는 요령이다.  요령...


  그렇다.  군대에서 대장보다 높은 계급이 병장이고 하느님과 동격이며 군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요령이다.    특히 가정과 학교에서 모범생으로 자란 아이들이 군대에서의 생활을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게 되는 경우는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에 적응하는 요령이 부족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왼쪽 나무를 자세히 보면 표범이 있다.


  군대와 마찬가지로 직장에서의 생활도 요령이 필요하다.   요령이라는 의미가 좋게는 일의 원리나 이치를 깨닫는 것이지만 게으름을 피우는 이치를 아는 것으로도 이해되어 오해가 있지만 어쨌든 20년 이상 직장생활을 하였다면 직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이치를 깨달았을 것이고 수입도 만만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활하여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아야 된다.   다니던 직장을 나와 새로운 일을 찾으려면 어떨까를 즉 수입면에서만  본다면 현 직장이나 내가 일하는 업종에서 2년이면 벌 돈을 새로운 직장이나 직업에서는 10년이 더 넘게 걸릴 수도 있을 것이며 진입 장벽을 깨는 것도 어렵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될 것이다. 


 

  은퇴를 앞두고 있다면 정말 문제 되는 것이 자녀들의 문제이다.   특히 배움이 끝나지 않았을 때의 문제는 심각하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부모가 만들어놓았다는 사실이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의 당대표를 하고 있는 이해찬 씨가 교육부 장관을 할 때 우리나라 부모들이 자식에게 너무 투자를 많이 하여 투자 수익이 제일 적다는 식의 발언을 해서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적이 있었다.


  나는 정말 옳은 소리를 했다는 생각이다.   남과 비교하여 내 자식은 좋은 대학, 좋은 학과를 나와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무리하게 투자하여 과외, 재수와 또는 해외 연수에 수입의 많은 부분을 자식 교육에 몰빵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나중에 회수하는 것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보아야 될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모든 가족과 함께 의논하고 특히 가족들에게 가정의 수입과 지출 또는 미래에 대비한 재산 형성 상황도 같이 공유하여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도 꼭 필요한 사항이다.


  

  가정의 재정상태와 현재의 상황에 대하여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교육문제뿐만 아니라 나중에 결혼하거나 다른 일에도 자녀 또는 가족들도 대비를 하도록 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에 라디오에 음식점 사장과 대담하는 프로에 불륜과 부부의 차이에 대해 설명하는 중에 사장이 이야기하는데 부부와 불륜은 척 보면 안다고 한다.  불륜은 음식점에 들어와 주문하면서 여기서 제일 비싼 거나 제일 맛있는 것을 시키는 반면에 부부는 싼 것 아니면 제일 빨리되는 것을 주문한단다.


     

   다음에는 불륜은 음식을 먹으며 대화가 끊어지지 않고 맛있는 것을 서로 나누어 먹으며 여유롭게 식사를 즐기는 반면 부부는 음식이 들어오면 아무 말 없이 후다닥 음식만 먹고 나간다는 것이다.   우리도 연애시절에는 그랬다.   상대방에게 잘 보이려 수많은 미끼로 유혹하고 대화하며 결국 결혼에 골인했는데 가끔 아내와 다툼이 있다 보면 낚시꾼이 잡은 고기에 미끼 주는 것 보았느냐 윽박지르고 그랬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불륜이라는 것이 결코 나쁘지 않다고 생각되어  우리 부부는 불륜으로 살기로 했었다.   불륜으로 살기로 했다고 어른들께 이야기했다 무척 혼나기도 했었지만.  


  나는 5개월 간 중국과 남미를 다시 4개월 간의 아프리카 여행을 혼자 갔었다.   남미와 아프리카는 위험하여 아내와 함께하지 못하였는데 혼자 하는 여행 기간 중에 가족들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되었고 특히 아내의 빈자리는 정말 컸었다.  


  하지만 그 기간이 있어 더욱 가족들과 끈끈한 정이 깊어졌고 언젠가는 이별을 해야 된다면 그 예비단계를 경험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잔지바르 해변의 아름다운 모습들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부부가 같이 여행하는 사람들도 많고 또 혼자 다니는 사람들도 많다.   부부가 같이 여행하는 것을 보면 부럽고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의 사연을 듣다 보면 안타까운 경우도 있고 이기적인 사람들도 있다.


  남미에서 만난 70대의 남자는 교사로 근무하다 정년퇴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부인이 세상을 떠났단다.   정말 집안일은 하나도 모르고 통장이며 재산과 채권, 채무가 어떤 것이 있는지 자기는 오로지 집과 학교만 왔다 갔다 했는데  혼자가 되고 보니 정말 막막하더란다.   지금도 할 일이 없고 집에 있으면 결혼 안 한 아들과 같이 있는 것이 답답하여 그냥 무작정 해외로 나와 돌아다닌다고 한다.   그런 반면에 집사람하고 같이 다니면 서로 싸운다고 혼자 다니는 사람도 있고 정말 다양하다.



  우리는 요즘 수명에 대하여 많은 정보가 쏟아진다.   이제는 100세를 넘어 120세가 된다고 난리가 났다.   그때까지 건강을 유지해야 되고 남 부럽지 않게 살려면 어마어마한 돈을 모아야 된다고 겁을 준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녹녹지 않다.   자식과 부모를 함께 부양해야 하는 우리 세대는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정말 많다.   자식의 행복이나 가정 형편에 맞지 않는데도 남보다 더 잘 키우기 위해 지출하는 엄청난 교육비와 부모나 가족에게 지출되는 뜻하지 않는 병원비 등은 미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그러나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여 걱정으로 나날을 지새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살다 보면 요령이 생기고 또 살아가는 방법이 있게 마련이다.   얼마 전 혼자서 중국을 거쳐 남미로 여행을 떠나려 준비하는데 대금 동호회에서 같이 활동하는 회원이 이야기한다.  


  자기 아는 사람은 중국에 패키지여행 갔다가 장기매매단에 붙잡혀 장기를 적출당하고 죽었다는데 그 위험한 곳을 어떻게 혼자 가느냐며 여행을 가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가뜩이나 불안한데 그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힘이 든다.   같이 이야기를 듣던 아내도 포기하라고 종용을 한다.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아름다운 사막의 모습들


  그러나 세워 놓았던 계획이고 비행기표도 예약해 놓았고 중국 비자도 나왔던 터라 그냥 가기로 했다.   위험은 한국을 돌아다녀도 마찬가지이라는 생각이다.   돌아다니지 않더라도 집에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하여 확실한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지는 말자는 이야기이다.   여행도 걸을 수 있을 때 가야 되는 것이고 돈도 쓸 수 있을 때 쓰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 생각된다.


  오랜 기간 VIP팀장으로 근무하면서 많은 부자들을 보아왔다.   결론은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행복이 좌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전에서 만난 70대 할머니는 부부가 교사로 정년을 마쳤는데 남편은 중풍으로 쓸어져 아예 거동을 못하여 음식 수발과 대소변도 모두 할머니의 손을 거쳐야 한다고 했다.



  은행 거래도 물론 할머니가 모두 했었는데 웬만한 금융상식은 어설픈 은행원 뺨치게 더 잘 알고 있으면서 창구에서 트러블을 일으키고 또 민원을 제기를 한다.   어느 날도 창구가 시끄러워 나가 보았더니 예의 그 할머니이다.   흥분된 할머니를 진정시키고 VIP실로 모시고 들어와 자초 지총을 들어보고 고객정보를 검색해 보니 통장개수는 많은데 그리 큰 액수가 예치되어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이번에 적금이 만기가 되어 찾으니 세금우대로 가입했는데 직원이 잘못하여 세금우대 혜택을 받지 못했으니 물어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농협에서도 그랬다며 따지니까 물어줬으니 여기서도 물어달라는 거였다.   무조건 막무가내다.   사실관계를 따져보니 할머니의 주장은 정말 터무니가 없다.   


  그때 당시의 세금우대상품은 다른 은행에 가입되어있는 상황을 알 수 없었기에 일단 세금우대로 가입을 했다가 나중에 세금우대한도가 넘어가는 것을 통보받으면 고객에게 연락하여 본인이 세금우대상품을 선택하는 것으로 했었는데 분명 연락이 갔을 것이고 다른 계좌를 선택했기에 이것은 세금우대가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창구에서 큰소리치면 직원이 크지 않은 돈이니 개인 돈으로 물어주니 이번에도 그것을 노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흥분되어있는 할머니를 달래 일단은 본부와 확인을 해보고 다시 전화를 드린다 하고 돌려보냈다.    불과 이천 원 남짓한 세금우대 혜택을 받기 위해 창구에서 큰소리를 치던 할머니에게 다음날 전화를 드려 세금우대 안 되는 사정을 이야기하니 다른 데는 큰소리치면 다 주는데 왜 국민은행은 안 주느냐며 다시 흥분한다.


  그러고 얼마가 지났다.   창구가 조금 소란스러워 나가 보았더니 통장을 한 묶음 들고 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며  해지를 해달라는 것인데 빨리 처리를 해 주지 않는다고 큰 소리를 치고 있는 것이다.   일단은 안으로 들어와 상속예금 지급 절차에 대하여 설명을 하며 통장을 보니 얼마 전 창구에서 소란을 부렸던 그 할머니 통장인데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정말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다.   무조건 창구에서 큰소리만 치면 다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가 보다.   하기야 그것이 통하니 그렇게 하는 것이겠지만.   호적등본을 떼어 상속인을 확인하고 상속인이 은행에 나와 상속절차를 받아야 되고 상속인이 은행에 오지 못하는 경우 인감증명서와 함께 인감도장을 찍은 위임장을 제출하여야 됨을 안내하였고 절차가 마무리되어 상속예금이 주된 상속인에게 입금 처리되었음과 함께 해지를 위해 맡겨 두었던 어머님의 손때가 묻은 통장을 찾아가라 하니 필요 없다며 그냥 없애버리라고 한다.


  정말 사람의 삶은 어떤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자식들을 위하여 한 푼이라도 더 저축하기 위하여 남의 지탄을 받는 것을 서슴지 않았지만 말년에 자식들에게 인정받는 부모는 아니었던 것 같아 조금은 씁쓸했다.


 

  대전에 근무할 때의 또 하나의 기억은 고교 때 은사님의 이야기이다.   고객 중에 노년의 부인이 통장을 들고 오셨는데 통장 명의가 고등학교 은사님 성함과 같아 혹시 선생님이 1972년에서 1975년 사이에 상고에 근무하시지 않았느냐 여쭤보니 그렇다고 하신다.   2학년 때 상업부기를 가르치셨던 선생님이 맞았다.   안부를 여쭙고 시간이 되시면 저녁이라도 같이 하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로부터 얼마 후 돌아가셨다며 사모님께서 통장을 들고 오셨다.


  옛날을 돌아보며 그 선생님만큼 기억에 남는 분도 드물다.   선생님께서는 많은 부분 눈치와 요령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눈치가 빠르면 절간에서도 새우젓을 얻어먹을 수가 있다거나 군대에서 오늘 메뉴가 무엇인지 미리 알아 생선국이 나온다면 늦게 가야 건더기라도 하나 먹을 수 있고 돼지고기가 나온다면 빨리 가야 비계라도 한점 얻어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찌 되었거나 선생님께서는 정년 퇴임하셨고 아들 둘을 하나는 의사로, 하나는 판사로 키웠으니 정말 눈치껏 잘 키우셨는데 그렇게 사시다 정작 선생님께서는 암으로 아까운 연세에 세상을 떠나셨으니 안타깝다.



       정말 삶과 죽음은 누구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것 같다.   너무 스트레스받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최선의 방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고 두렵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다.


   衣 + 一 + 口 + 田  =?    우리가 원하는 이상이 아닌가? 하지만 얼마나 단순하고 소박한 꿈인가?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입고 먹고사는 일에는 그렇게 문제가 되지는 않다고 생각하는데 어떤지?


  옛말에 배가 고픈 것은 참을 수 있지만 배가 아픈 것은 견디기 어렵다고 하였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 했다.  사촌이 그럴진대 남이 그러면 어떨까?  너무 높은 곳을 쳐다보지 말고 밑에도 살펴보는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가까운 사람들과 어울려 소통하며 현실에 만족하며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그러려면 우리는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배워야 될까?  여러 사이트를 돌아보며 같이 생각해 보자.   시청의 여러 곳을 둘러보고 나에게 맞는 것을 찾아보자,  내가 거주하는 지역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또한 내가 좋아할 만한 카페들을 찾아가 많은 정보를 얻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천국과 지옥은 내 마음에 달렸다고 생각하며 이야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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