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서영 Apr 23. 2020

덕질은 인생을 이롭게 한다. (다양한 의미로)

얼마전부터 (데뷔 초에 아주 잠깐 좋아하다 그만 두었는데 어느새 N년 차 아이돌이 된) 모 그룹의 어느 멤버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당연하지만 그의 데뷔 연차만큼 엄청난 양의 영상과 짤, 일화 등 "떡밥"이 쌓여 공식만 따라가기도 벅찬데, 솔직히 말해서 엄청... 편하다. 너무 좋다. 정말 짱이다. 이래서 K돌, K돌 하는구나 싶을 정도로 젖과 꿀이 넘쳐 흐르는데- 이게 다 그동안 수많은 팬분들이 만들어 낸 투쟁의 결과겠지요. 리스펙합니다. 암요.


사실 나에게도 덕질의 역사(?)가 있긴 하다.

역사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아주 조촐한 덕질이다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덕질은 일본 아이돌계 배우였다.

(서브컬처-주로 만화, 게임 등을 무대화한- 무대에 주로 출연하는 배우를 아이돌 배우라 칭한다)


첫 데뷔 무대를 보고 빠졌던지라 공식 홈 외에는 정보가 전혀 없어서, 카더라 소문까지 널려있는 일본 2ch스레까지 흘러들어 갔는데 당시만 해도 파파고나 구글 번역기가 나오기 전이라 직접 일본어를 공부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공부한 엉성한 일본어로 배우한테 편지를 썼고, 편지만 보내기는 심심하니까 슈퍼에서 산 한국 과자를 보내거나 무대 연습 때 입을 티셔츠 등을 만들어 EMS로 선물을 보내곤 했다. 시 나는 고등학생이었는데, 빤한 용돈을 털어서 그런 짓(?)을 했으니 생각해보면 정말 그런 지극 정성이 없었던 것이다.


하여간 그의 블로그는 물론이고 알음알음 주변 배우들의 아메브로(이때만해도 트위터랑 인스타가 없었다)까지 찾아가서 떡밥을 모으고, 맨날 미술실 컴퓨터 새로고침을 눌러가며 블로그 코멘트 1빠로 달겠다고 부릉부릉 하던 아아, 나의 청춘.

처음에는 무대만 덕질했는데 나중에는 일본에서만 방송되는 방송과 니코동 라이브를 보겠다고 VpN 돌리고 (다시 말하지만 유튜브도 없던 때였다) DVD를 직구했다. 무대는 뭐 보기 쉬웠느냐 하면, 티켓 구매 대행하고 옥션질하고 낙찰되면 일본 날아가서 2박 3일 삼각김밥이랑 레드불만 삼키면서 무대만 보고 돌아왔다. 심지어 무대도 없는데 최애와 주얼리 브랜드의 콜라보 이벤트 때문에 일본에 간 적도 있었다(지금은 그 브랜드 목걸이 어디 갔는지도 모름) 아, 이렇게 쓰니까 너무 라때는~ 같네. 


바로 그 최애 배우와의 유일한 투샷.


여하튼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왜 그랬을까? 기회가 된다면 정말 그때 당시의 나에게 묻고 싶다. 뭐가 그렇게 좋아서 밥 먹을 돈, 잠 잘 돈 아껴서 그 흔한 관광 한번 안 하고 그를 보러 다녔냐고. 심지어 그는 내가 좋아하는 이상형의 얼굴도 아니었고, 연기를 소름 돋게 잘한다던가 가창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남들은 모르는 마이너 한 취향에 취했던 걸까 아니면 그냥 최애 배우의 얼굴이 짜릿했던 걸까, 그의 노력하는 모습이 좋았다고 했지만 정말 그랬을까.

이유야 어찌 되었든, 나는 정말 즐겁게 덕질을 했고, 심지어 꽤 성공한 팬-일명 성덕-이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이벤트 등에서 나를 알아보는 것은 기본이고, 개인 인증도 여러 번에(이제 와서 말하지만 친필 편지도 받았다. 직접 국제우편으로 부쳐줬다!) 그 배우의 한국 팬 하면 당연히 내 이름이 나오고 2ch에 박제될 만큼 엄청난 성덕이었는데, 나는 왜 탈덕을 했을까.


그것은, 여느 때와 같이 내가 그의 무대를 보기 위해 일본으로 간 어느날에 생긴 일이다.


늘 그렇듯이 무대 위에서 열정적으로 연기하고 노래를 하는, 반짝거리는 그를 바라보는데 그날따라 갑자기, 정말 문득... 질투가 났다.

나를 비롯한 수많은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무대 위에 서있는 그가 부러웠다. 그리고 동시에 그 아래 관객석에 앉아 한낱 점으로 존재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그렇다고 그 당시의 내가 남부끄럽게 살고 있었냐고 묻는다면, 그건 절대 아니었다. 솔직히 그때의 나는 정말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살았다. 당시의 나는 웹툰 편집자로 일하고 있었고, 내가 섭외 해온 작품들은 모두 플랫폼에서 나란히 1,2,3위를 할 만큼 대히트를 치고 있었다. 일은 일대로 덕질은 덕질대로, 그 와중에 연애까지 하는 에너지 뿜뿜한 삶. 하지만 그때의 나는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 같다. 나는 단지 여기에 머무르고 싶지 않다고.

그래서였을까. 공연이 끝난 후, 오후 공연과 저녁 공연 사이의 시간 동안 홀린 듯이 근처의 편의점에 뛰어 들어가 대충 아무 편지지나 집어 들고 나와선 그 배우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벌써 5년쯤 전의 일인 데다 서투른 일본어로 써서 내용이 자세히 기억나지 않아도 이해 바람)


OO군에게

안녕하세요, 한국의 XX에요.
(중략) 이전의 편지에서도 말했지만 저는 지금 한국에서 만화 편집자를 하고 있어요. 오늘 OO군의 무대를 보면서, 언젠가 OO군이 제가 기획한 만화의 무대에 서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화의 외국 수출, 거기다 무대화라는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힘내 보려고 해요. 조금  괜찮은 사람이 되어서 OO군을 만나고 싶어요. (중략) 다시 만나는 날까지 부디 건강하길.  그렇듯이 언제나 멀리서 응원하겠습니다.

-한국의  XX


사실 이 편지를 정말로 그에게 전달했는지 안 했는지는, 솔직히 기억나지 않는다. (심지어 지금 생각하면 좀 부끄럽다... 어쩔 거야 저 비장미...) 하지만 나는 정말로 그 편지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그의 무대를 보러 가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러 그로부터 5년 후.

바로 오늘.

일본에 <썅년의 미학>이 출판 되었다.

일본에서는 クソ女の美学(빌어먹을 여자의 미학)로 출간되었다.


솔직히  말이 정말 이루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썅년의 미학> 무대에 올릴  있는 스토리 작품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좋아했던 배우에게 그렇게 호언장담하고 떠나(?) 만든 결과물  하나가 <썅년의 미학>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기분이 이상하다.


이제와서 한 권 보내줘도 되는 걸까, 그전에 나를 기억이나 할까 머릿속에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스치우는데 어쨌든 그것과는 별개로, 한때 나의 최애였던 그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그런 의미에서 확실히 팬질과 덕질은 정말로 인생을 이롭게 한다.

어쩌다 보니 마지막에는 <썅년의 미학> 일본 단행본 홍보처럼 됐는데 어쨌든 결론은 00 늘 응원할게 앞으로도 좋은 모습 보여줘(!)

매거진의 이전글 펜은 칼보다 강하다. 그래서 더 아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