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서영 Mar 13. 2020

펜은 칼보다 강하다. 그래서 더 아프다.


작년 말 즈음 굉장히 유명한 A 작가의 작품을 B작가가 표절했다는 논란(?)이 있었다. 어디서 시작된 논란이었는지는 몰라도 그 '의혹'은 삽시간에 퍼졌고 자칭 A 작가의 작품의 독자라는 사람들은 우르르 B작가의 작품에 몰려가 그를 공격했다.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난 오늘, A 작가는 면밀히 살펴봐도 B작가의 작품은 표절로 볼 수 없다며 B작가에게 유감을 표하며 그를 응원했다. 하지만 그때 B작가를 조롱하며 욕하던 자칭 독자들은 말이 없다.

그리고 오늘, 그 건과 전혀 상관없는 C작가가 표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남겼던 글을 언급하며 C작가에게 실망했다는 글을 남긴 독자를 우연히 보았다. 그 글을 발견한 C작가는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물었고, 그 독자라는 사람은 C작가가 썼던 글이 위의 사건과 시기가 겹친다며 B작가가 받았을 마음의 상처를 헤아려달라고 말했다.

여기까지 보는데 숨이 턱 막혔다.
아니, B작가가 공격을 받은 것이 C작가의 잘못인가? 그저 지나가는 단어, 문장에 반응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했을 뿐인데 그것에 멋대로 살을 붙인 건 대체 누구인가? 작가는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도 아니고, 눈에 불을 켠 채 모든 이슈에 반응하는 사람도 아니다. 성자도 아니고 영웅도 아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며 작가가 그 롤을 해내지 못하거나, 거부하거나, 혹은 그냥 그런 롤을 행해야하는 것조차 몰랐다 해도 실망을 내비치는 위의 '독자' 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 잣대는 유독 여자작가들에게 더 심하게 드리워진다. 남자작가는 준범죄 혹은 그 이상의 짓을 저질러도 활동에 별 지장이 없지만 여자작가에게 그런 관용 따위는 없다.)

나 역시 나라는 사람을 드러낸 채로 연재하던 순간부터 이것에 시달려 왔다. 누군가는 자신의 글을 홍보하기 위해 멋대로 내 글을 가져다 썼고, 누군가는 말 그대로 '관심'을 받고 싶어서 내 만화를 멋대로 편집해 올렸다. 자신의 논리나 위치에 정당성을 얻고 싶어 타인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 나는 그것을 도둑질, 아니 강도질이라고 말하고 싶다. 칼만 안 들었지, 아니지. 펜을 든 강도다. 팔게 없으니 남의 이름을 빼앗아 파는 강도들.

내 이름을 멋대로 자신들의 싸구려 매대에 올려놓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그 독자라는 사람은 끝까지 자신의 무례를 사과하지 않았다. 착잡하다. 그것보다는 억울하다. 아무리 타인은 나를 오해할 권리가 있고 나는 해명할 의무가 없다지만, 작정하고 악의적으로 짠 프레임은 너무도 해롭고 끈질기다.

그래서 이름이 알려진 사람은 늘 욕설과 루머에 시달린다. 피해를 호소하면 자신들의 주장은 정당한 비판이라며 이쪽을 몰아세운다. 대응을 하면 오히려 자신들을 약자이자  피해자라 주장한다.

이런 사이버 폭력에 대해 이야기할 때 아무리 모니터 뒤에 사람이 있다고 눈물로 읍소해봐야, 애초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뒤에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상처를 받는 사람이 있고, 무려 자신이 그 상처를 입혔다는 사실이 너무 좋아서 견딜 수 없는 것이다. 무시를 하라고, 대응하지 말라고 참 쉽게들 말하지만 그럴수록 폭력은 점점 더 세질 뿐이다. 반응할 때까지 "죽어라" 때리니까. 그 폭력을 막을 수 있는 건 아주 강한 처벌뿐이고 이미 생긴 상처를 위로할 수 있는 건 아주 많은 돈뿐이다.

하지만 작가만큼 모두가 나를 알지만 아무도 나를 모르고 돈은 못 버는 직업 없을 것 같다. 누구나 자신의 말을 기록(SNS)할 수 있는 이 시대에는 칼 대신 펜이 날아와 박힌다. 그러고 보면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은 정말 누가 한 말인지 몰라도 정말 맞는 말 같다. 칼은 찔리면 그 자리에서 죽지만 펜은, 문자는 영원히 그곳에 남아 서서히 나를 죽인다.

마음이 먹먹하다. 만약 담배를 피우는 습관이 있었다면 내 방 창문에 기대 밤새도록 두 갑은 피웠을 것 같다. 무 많이 열면 확 뛰어내려버리고 싶을지도 모르니 딱 반 뼘만 열어두고 말이다.

내 작가 친구들이 건강했으면 좋겠다. 밥도 잘 먹고 돈도 많이 벌고 즐겁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제발, 그만 아팠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서 불감증'이라면 이 방법을 시도해보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