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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서영 Feb 26. 2020

'독서 불감증'이라면 이 방법을 시도해보세요.

번아웃으로 책을 못 읽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문

모든 것은 한 트윗으로 시작되었다.


https://twitter.com/500ml7_/status/1230879366948671488?s=20


이 글처럼, 나는 꽤 오랜 기간 책을 읽지 못했다. 취미가 책을 사는 것이고 특기가 책을 읽는 것이었던 북호더... 아니 책 덕후 입장에서는 이만큼 끔찍한 일도 없으리라.


일단 책을 편다 해도 짧게는 두세 줄, 길어봤자 두어 장을 이어서 읽는 것이 고작이었고, 금세 다른 곳으로 SNS나 넷플릭스로 정신이 팔리기 일쑤였다. (이것이 번아웃 증후군으로 인한 것임을 깨닫는 대에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관련 글 링크) 그럼 책이라도 안 사면 되는데 서점을 둘러보는 내 눈은 여전히 독서광이던 시절에 머물러 있었다. 어, 이 책 재미있겠다. 어라 이 책 중고가 떴네? 아, 존버 하길 잘했다. 전자책이 떴어. 그렇게 야금야금 사모으다 보면 한 달에 책을 열댓 권씩 사고 마는 것이다. 그 와중에 전자책 정기구독까지 하니, 참나.


한동안은, ebook의 TTS(Text to Speech) 기능을 이용해서 책을 들으면서 읽었다. 눈이 읽는 속도를 귀가 따라가려면 속도를 4.2 배속 정도로 설정해놔야 했는데 (들어보면 알겠지만, 문장이라기보다는 딱따구리가 쪼는 소리에 가깝다.) 사실상 한줄한줄 밑줄을 쳐가면서 읽는 것이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책을 전혀 읽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읽을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하지만 전자책으로 나오지 않는 작품은? 어떻게 읽으면 좋지?


문제는 하나 더 있었다. 책을 읽는다 해도 내용이 온전히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그래도 70% 정도가 뇌에 들어오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최대 30% 정도밖에 이해할 수 없었다. 읽는 대에도 전에 비해 3배~5배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한 문장을 읽고 나면 다시 돌아가서 읽기를 수십 번을 반복했고, 어떤 때는 방금 읽은 내용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가서 아예 따로 종이에 필사를 해가며 읽은 적도 있다. 소설은 더 심했다. 아예 인물관계도와 도식까지 그려야 줄거리를 진행할 수 있었으니까. 마치 마른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가듯이 문장이, 단어가 눈을 스치고만 지나갔다.


어떤 사람들은 고작 책 아니냐고, 그냥 노화라고 넘길 수 있는 문제인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진심으로 심각했다. 애초에 나는 직업이 작가가 아니던가! 발전을 하려면 다른 작가들의 책을 읽고 (이 단어를 쓰기는 정말 싫지만) 영감을 받고 자극을 느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으니 정말 미쳐버리겠는 거다. 물론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물은 좀 더 눈에 들어오지만, 텍스트로 먹고사는 사람이 그것에만 기대는 대에는 한계가 있었다. 글도 밑천이 있어야 쓰지. 언제까지고 지금 그나마 남아있는, 제 살 파먹기를 할 수 없잖아. 무슨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데메테르의 저주를 받아먹고 먹고 또 먹다가 자기 몸까지 먹어버린 에리식톤도 아니고 말이야. 무엇보다, 나는 책을 매우, 많이, 엄청 좋아한단 말이야.


여하튼, 하도 집중을 못하니 성인 ADHD가 의심되었던 나는 다니던 정신의학과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다행히도(?) 선생님은 기본 기능(...)에는 문제가 없으니 ADHD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진단을 내려주셨다. 그럼...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거지?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몇 권의 뇌과학 책과 심리학 책과 굳이 읽지 않아도 되는 책 들까지 어떻게든 읽었지만 결국 그 답을 찾지 못하자, 안 그래도 번아웃과 우울감으로 바닥을 찍고 있던 나의 자신감이 내핵을 뚫고 들어가고 말았다. 옛날 같았으면 이 정도 책은 그냥 앉은자리에서 두어 시간이면 뚝딱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럼 속도 뜨끈~하고 든든~... 이 아니고 몇 날 며칠이 지나도 제자리를 맴도니 정말 미쳐버릴 노릇이었다. 예전에는 그렇게 즐겁던 독서라는 행위가,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마저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는 생각에 내가 정말 쓰레기가 된 것 같았다. 책을 읽는 것이 고통스러워졌다.


그러다 정말 바로 얼마 전, 새로 시작한 상담치료(정신의학과와는 다르다)에서 이 증상에 대해 상담할 기회가 있었는데, 선생님이 정말 생각도 못한 조언을 해주셨다. 그 조언은 의외로, 너무도 간단했다.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다시 읽어보세요.


겨우 그거면 된다고요? 나는 마음속에 의심을 가득 품고 집에 돌아왔다. 하지만 잃을 것도 없지 않은가. 뭐, 다시 읽어보고 싶기도 했고. 약간은 츤데레 같은 마음으로 '흐흥..! 읽어주지!'같은 생각 따위를 하며, 나의 최애 책 중 하나였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책장 깊숙한 곳에서 집어 들었다. 맞아, 나 이 책을 참 좋아했지. 약간은 곰팡내가 감도는, 누렇게 변색된 책을 보며 생각했다. 출간일이 무려 2004년이었다. 아직 내가 7차 교육과정 중에 있을 때 발간된 책이라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러고 보니 이 책 꽤 야했던 것 같은데. 다시 읽어도 그때 그 느낌을 느낄 수 있을까?


걱정은 기우였다. 300p가 넘는 그 책을 두어 시간 만에 끝내버린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제법 야했다!) 이렇게 기분 좋게, 개운하게, 한 번도 끊기지 않고 책을 전부 읽은 게 얼마만인지! 온 사방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여러분! 제가 방금 책을 한 권 다 읽었어요! 독후감이라도 써서 좋아요 도장이라도 받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책 한 권을 읽어내니 그다음부터는 술술.... 풀렸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만은, 이 이야기는 아직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여전히 새 책은 잘 읽히지 않고, 다시 읽고 싶을 만큼 재미있는 책은 몇 권 없다. 게다가 예전에 그 책을 읽었던 당시에 비해 내 뇌에도 지식이라는 것이 쌓여서, 예전만큼 책을 즐기지 못하는 것도 한몫한다. 바로 어제 아침만 해도 <허삼관 매혈기>를 읽는데 갖다 팔 피의 양을 늘리기 위해 배 터지도록 물을 마셨다는 문장에서 당장에 책을 덮어버리고 싶은 충동과 격렬히 싸워야 했다. 그나마 달라진 게 있다면, 더 이상은 예전처럼 무턱대고 책을 몇 권씩이나 지르지 않는다는 것 정도?


여전히 내 뇌는 새로운 지식을 갈구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나는 그것을 인정하는 대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기에 더더욱, 지금의 내가 해야 할 일은, 결국 내 머리가 즐거운 일을 하는 것이다. 마치 미취학 아동에게 책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독서에 자신감을 불어넣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지금 새로운 씨를 뿌릴, 나의 오래된 밭을 고르는 중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두 해보시라. 옛날 책 다시 읽기.

의외로 그동안 잊고만 있었던 새로운 기억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누가 또 아는가, 그게 어떤 "자극"이 될지? 아 이 문장 쓰는 거 너무 오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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