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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서영 May 31. 2020

나는 내가 페미니스트라 밝힌 것을 가끔 후회한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탈코르셋'과 페미니스트에 관하여

2018.12


언젠가, 여성서사 작품을 쓰시는 모 작가님이 인터뷰에서 자신을 페미니스트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자 단호하게 아니라고 하신 적이 있다. 그 반응을 접한 나는 그분의 태도에 다소 의아했다. 분명히 페미니즘적으로 해석 될 여지가 많은 작품을 두고, 왜 페미니스트라고 선언을 하지 않는 걸까.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면 많은 응원을 받을텐데.


하지만 지금 와서는, 실제 그 작가님께서 이런 마음이셨는지를 떠나 그저 뼈저리게 공감한다. 나도 페미니스트라고 밝히지 말 걸 그랬다고. 그럼 적어도, 이런 소리까지는 안들었을텐데, 라고 말이다.



본격적인 글에 앞서 분명히 밝히건대, 나는 탈코르셋 운동을 지지한다. 1차적으로 당장 개인의 편안함과 꾸밈에 쓰이는 비용 절약을 통한 경제적 이득, 2차적으로는 전통적 여성성 탈피를 통한 대상화 거부, 3차적으로 꾸밈'노동'압박 타파 도모 및 후세대를 그것으로부터 보호 한다는 점에서 탈코르셋은 응원받아 마땅한 활동이다.


하지만 어떤 특정한 모습만이 탈코르셋으로 '쳐주는' 행태나, 그것을 서로 평가하고 검증 받는 모습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인 것도 사실이다. 나는 더 다양한 여성상이 추구될 필요가 있다 생각하는 쪽이다. 하지만 꾸미지 않는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꾸밀 자유를 논할 수 없단 의견에도 동의한다.


나도 사람이기에, 어떤 한가지 의견만을 가지고 일관되게 살지는 못한다. 어느날은 이 생각이 맞는 것 같았다가, 어느날은 저 생각이 맞는 것 같았다가, 또 어느날은 에라이 될대로 돼라 싶다가 한다. 외모로 인해 왕따를 당해본 나이기에, 그 누구보다 외모가 바뀌었을때 사람들이 얼마나 다른 반응을 보이는지 알고 있다. 성적대상화가 뭔지도 몰랐을 때, 성적대상화를 즐겼던 때도 있다. "남자들에게 인기있는 ㅇㅇ"같은 것을 검색해보거나 잡지에 등장하는 모델을 보고 동경하고 질투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 때를 부끄러워하거나, 감추거나, 혐오하지는 않는다. 그것도 '나'이기 때문이다. 그 모든 과정을 거쳐 지금의 내가 되었고 나는 그것이 자랑스럽다. 미학적으로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나는 지금의 내 자신이 마음에 든다.


나는 모두가 그런 치열한 고민을 견디고 지금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탈코르셋 역시 그런 활동의 일환이라고 보고 있고, 그렇기에 탈코르셋이라는 행위를 비웃을 수 없고, 그것에 대해 비웃을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타인도 나를 비웃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하이힐을 전혀 신지 않는다는 사실도, 치마를 거의 입지 않는다는 사실도, 1년365중 330일 가량을 화장하지 않은 체로 지낸다는 사실도, 타인은 알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동시에, 내가 가끔 굽이 있는 신발을 신고, 화려한 옷을 입고, 번쩍거리는 글리터를 얹는 것을 즐긴다 해도 그것은 타인이 알 바가 아니다.


내가 내 사진을 올리는게 탈코에 대한 조롱이라는 의견도 보았는데,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도대체 어떻게 하다 그렇게 논리가 건너 뛴 건지 모르겠지만, 혹여라도 그렇게 보인다면, 그렇게밖에 볼 수 없는 당신의 문제이고 그건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이렇게 글을 올리는 것을 '광광댄다'라고 표현할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당신들을 인정할 이유나 권한이 없듯이, 당신들도 나를 인정하고 말 권리는 없다. 애초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고 안하고를 대체 누가 결정할 수 있느냔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배울 수많은 "새끼 페미"들을 생각하라고, 그들을 위해 부끄러운 줄 알라고 한다. 글쎄, 나는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나 하나만 바라보고 나를 따라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을 거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을 우매한 군중이라고 여기고 깔보는 건 대체 어느쪽인가? 아니, 애초에 내가 대체 뭐라고? 나는 내가 멘토라고 생각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나는 지금 당장 내 앞가림 하기도 바쁜 사람이다. 만화를 그리고 글을 썼던 가장 초기의 그때부터, 나는" 페미니즘"이 목적이 아니라 그저 여성인 나 자신의 이야기를 할 뿐이라고 수도 없이 밝혔다.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은 변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내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지금 내가 하는 말을 들을 이유도 없을 것이다. 다만 내가 어떤 행동을 하니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면서, 한편으론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페미니즘적 메세지를 부여하고 해석(이 경우에는 해독 수준이지만)하고 있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에 대해 본인들도 좀 알기를 바란다.


추가로, 내가 피드백(?)에 대해 먹금(먹이 금지/아마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뜻인 듯)한다는 표현을 자주 보는데, 아니 내가 뭐라고 사람들의 의견을 걸러듣고 그러겠나. 다만 나도 사람이기에, 나한테 싫은 소리 하는 사람 보기 싫은 건 똑같다. 더군다나 그게 외모 품평이나 인신공격, 혹은 욕설같은, 남초 사이트에서 내게 하는 짓이랑 똑같다면 더더욱. 다 날 위해서 하는 말이라는 생각은 결코 할 수 없는게, 보통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하는 말은 돌팔이들이 하는 말이기도 하고, 아무리 좋은 약도 억지로 팔 붙잡고 코 막고, 입벌리고 호스로 밀어넣는데 달게 받아 마실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


아, 혹시라도 우리들은 "강요한 적 없다"라는 말도 안했으면 좋겠다. 굉장히 무책임 하게 들린다. 왜냐하면 그걸 보고 듣는 , 그 일을 겪은 당사자는 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들은 하나씩 보내는 멘션일지라도, 나는 나에 대한 그런 반응을 일주일에 수십개를 본다.


아니 뭐, 좀 솔직히 말해보자. 나에게 탈코르셋을 운운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내가 실제로 "탈코르셋(짧은 머리, 노메이크업, 헐렁한 옷)"을 하는 것에 관심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본다. 왜냐하면 얼마전에 머리를 짧게 자른 (과거)사진을 시험삼아 올려봤을때, 나를 비난하던 사람 중에서는 아무도 관심 없었다는 걸 알았거든! 대체 왜 그런 걸까? 혹시라도 그런 식으로 나를 비난하는 것을 통해 페미니즘 진영(?) 내에서의 우위를 차지하고 싶은 마음이거나, 그냥 나를 괴롭히고 싶은 거라면 또 모를까. 아, 설마 그게 목적일리는 없겠지! 에이! (맞음_2020년의 내가)



나는 가끔 후회한다.


내 만화가 페미니즘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하지 말걸. 내가 페미니스트라는 것을 밝히지 말 걸, 하고 말이다. 아니, 적어도 얼굴은 밝히지 말 걸, 고스트 라이터로 살 걸. 그랬다면 적어도 외모에 대한 이야기는 안들었을텐데. 남초 사이트는 물론이고, 같은 페미니스트 진영에서 외모를 평가 당하는 일까지는 없었을텐데 말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미 저지른 것을.


나는 여전히 여성이, 여성 자신의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페미니즘적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그동안 말하는 것조차 금기시 되어왔기 때문이다. 언제적 얘기냐고 할 수도 있지만, 여전히 저밖에는 페미니즘이라면 몸서리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그럴 용기가 없는 사람이나 그럴 환경이 안되는 사람도 많이 있다. 비슷한 사람을 보고 안심하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하지만, 1차적으로 자신이 편한게 우선 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굳이 페미니즘이나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을 달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탈코르셋이라는 이름으로 이것저것 시도해봤으면 좋겠다. 그것이 핑계든 계기든, 각자에게 가해져왔다고 생각한 코르셋을 벗을 수 있었으면 한다. 항상 긴머리를 고수해 왔다면 조금씩 잘라도 보고, 어느날은 화장도 안하고 나가보고, 또 어느날은 몸의 활동성에 초점을 맞춘 옷을 입고 말이다. 그게 익숙해지면 그 다음 수순으로 넘어가도 된다고 생각한다. 여성성 탈피나 노동시장에서의 꾸밈 노동 거부가 단계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고, 혹은 모든게 한꺼번에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 과정이 반드시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기에, 각자 가능한만큼만 실천했으면 좋겠다.


"이수역 폭행남 사건"에서, 실제로 '탈코'를 실천했다고, 머리가 짧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한 여성 피해자들이 있다. 그리고 그 사건이 준 메세지는, 공개적으로 페미니스트로 보이면, 혹은 '탈코'를 하면 남성에게 폭행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분명한 공포다. 나는 얼굴이 드러난 채로 활동하는 오픈리 페미니스트이기에,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공감하고, 연대한다는 의미로 해당 사건에 관해 꾸준히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내게 돌아온 것은 이런 반응뿐이었다.




왜 범죄, 가해를 저지른 것은 저 남성인데, 페미니스트 여성인 나에게 그 책임을 묻지?


타인이 나를 페미니스트라고 인정하지 않을지 몰라도, 나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며, 이미 페미니스트로 알려져 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어떤 여성혐오자가 눈이 훼까닥 돌거나 썩어빠진 영웅심리에 미쳐서 해꼬지를 하려면 표적으로 삼기 가장 손쉽고 효과적일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물리적 공격을 당한다면? 온갖 미디어에서 신이나서 떠들어대지 않겠는가? 내 가죽을 걸어놓고 광장에서 소리를 칠 것이다. 얼굴을 드러난 체로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하면 이게 그 결과입니다, 그러니까 조용히 사세요. 이게 백래시다. 그 어떤 누가, 앞으로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얼굴 걸고 공표하겠는가? 그런데 그 폭행마저도 내 탓으로 돌리는 것은, 정말이지 듣도보도 못한 억지주장이라는 생각이 안드는가?


그래, 내가 가지는 공포까지 이해하라고는 안하겠다. 하지만 나는 록산 게이 작가가 <나쁜 페미니스트>에서도 말했듯이 구멍투성이의 이기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그 방패를, 희생자 역할을, 추모 기념비가 될 생각따위는 개미 눈꼽만큼도 없다. 나는 페미니즘을 위해 "완벽한 인간 같은 포즈를" 취할 마음은 요만큼도 없다는 뜻이다. "한두 번 대차게 말아먹으면 사람들이 달려들어 가차 없이 끌어" 내리는 경험은 이미 충분한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이 경험은 다른 여성들에게도 이미 충분하다고 믿는다.


우리는 누가누가 더 전통적 여성성을 탈피했는지 서로서로 감시하는게 아니라, 그 힘을 서로 인정하고 연대하는데 써야한다고 생각한다. 그 어떤 페미니스트적 성격(책을 읽고, 자신의 언행과 행동을 반성하고, 같은 남자들을 바꾸기 위해 애쓰는)을 가진 남자보다, 안티페미적인 성격을 가진 여성이 훨씬 더 페미니스트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여자의 몸으로 태어나서, 어쩔 수 없이 여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체화된 피해가 있기 때문이다. 서로 알잖아. 알고 있잖아. 그러니까 적어도 우리끼리라도, 서로만이라도, 평가를 좀 내려놓으면 안되는 걸까?


나 역시 어느날 머리를 자를 수도 있다. 브라를 안한지는 이미 꽤 되었고 화장을 안한 사진은 이미 가끔 올리고 있는데, 다들 내가 가끔 꾸민 사진만 보이는지 아무도 관심이 없더라. 어찌 되었든, 그 순간이 와도 평가 되고 싶지 않다면 너무 큰 욕심일까?


이 글을 읽고도 여전히, 내가 나 자신을 꾸미는 것을 합리화 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미안하지 않아서 미안하지만, 누가 뭐라건 지금 나의 모습은 나의 치열함의 일부분이고, 굉장히 사랑하고 있고, 나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 다들 각자 자신에게 중심을 두고 스스로를 신경썼으면 좋겠다는 말밖에 해줄 게 없다.


우리 모두 잘 살기 위해, 우리 모두 편하게 살기 위해.

탈코르셋도, 페미니즘도, 목적이 아닌 수단이다.


---


2020.5


오래전에 작성한 글을 재발행 해봅니다.


이 글을 쓴 1년후에도 여전히 저를 향한 검열은 줄지 않았고, 오히려 더 심해졌습니다. 결국 2019년 여름, 저는 홧김에 머리를 잘랐고, 솔직히 말해서 그것을 정말로 후회하고 있습니다. 머리를 잘랐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제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원해서 머리를 자르지 못했기 때문에요. 이 지긋지긋한 머리를 자르면 나를 향한 저 비난의 말이 좀 덜해질까? 나를 좀 덜 미워할까?


https://youtu.be/rfc-fRgvkGI


그럴리가요, 제가 머리를 자르고 오니 그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 저를 조롱했습니다. 그 중에 "단백질 히잡"하나가 줄은 것 뿐이죠. 저의 옷차림이나 화장 유무 등 외모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제 작품, 그림, 글, 주변의 인간관계, 제 라이프 스타일 하나하나를 나노단위로 꼬집으며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너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니, 네가 한 것도 탈코르셋이 아니라고요.


맞아요. 제가 한 건 탈코르셋이 아니에요.

내가 원해서 한게 아니라, 당신들의 눈이 무서워서 한 것이 어떻게 탈코르셋입니까.



얼마전에는 어떤 분이, 제가 탈코르셋을 조롱했다는 증거라며 아래 사진을 가져오시더군요.



그러면서 "(탈코가 어려운 직종에 근무하는)탈코실천인 입장에서는 조롱으로 느껴졌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원론적인 답변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 탈코가 어려운 직종의 코르셋을 제가 만들었나요? 제 외모에 대한 평가를 멈추라는 자조적인 말이 당신에 대한 조롱으로 느껴지셨다면 그것까지는 제가 어떻게 해드릴 수 없네요. 그런데 그게 저에게 폭력을 가해도 되는 근거가 되는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도를 넘은 폭력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 말하고 있고, 지금 그쪽의 말씀은 제가 당할만해서 당했다는, 전형적인 피해자를 탓하는 말로 보입니다. "


그러자 답변이 왔습니다.


"민서영씨가 그런 직종을 만든 건 아니죠. 또 평소 당했을 외모 평가에 대해서도 한 번 더 깊은 위로를 드립니다만 탈코를 실천하는 입장에서 이름 있는 페미니스트 작가가 탈코 광인 같은 말에 마음을 찍을 때에 그걸 실천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느낄 고립감과 상처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위에 올린 이수역 사건의 건과 같은 논리였습니다.  

뭣보다, 내가 겪은 외모 평가는 그쪽 진영으로부터 온 것이었는데요?


"네, 그렇게 느끼셨다니 다시 한번 유감입니다. 하지만 제 머리길이, 화장여부, 옷차림을 검열하고, 제 사진을 가져와 좆빨러라 칭하고, 메세지함을 열면 탈코 왜 안했냐는 DM과 지금 그쪽과 같은 멘션을 수십통을 받는 제 입장에서는 광기로 보이지 않겠습니까? 더군다나 그게 제가 페미니스트가 아닌 근거로 쓰인다면 말입니다. 아무리 타인은 절 오해할 권리가 있고, 전 해명할 이유가 없다지만 그 반응이 ‘실망했다’수준이 아니었다는 얘기를 지금 하고 있습니다. 저 때문에 소외감을 느끼셨다면 대단히 죄송하지만 이걸 굳이 뒤져서, 캡쳐해서 남겨둔 광기에 (수년째) 시달리는 제 생각도 해주시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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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도, 제 책에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쓴 것을 후회합니다. SNS에서 페미니즘과 관련된 의제에 말을 얹은 것을 후회합니다. 만약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이 이렇게 까다롭고 힘든 줄 진즉에 알았더라면, 얼굴과 이름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한쪽에서는 남성들의 물리적인 살해, 강간 위협에 시달리고, 다른 쪽에서는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며 정신을 탈탈터는 사이버 테러를 겪을 줄 알았더라면 저는 절대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칭하지 않았을 겁니다.


제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모든 종류의 차별을 반대하고, 약자와 소수자를 혐오하지 않고, 동일노동에 대해 동일임금을 받는 것이었는데 그게 아니라고, 너는  (탈코르셋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아니고, (탈코르셋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차별받아 마땅하고,  (탈코르셋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혐오받아 마땅하고,  (탈코르셋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페미니스트로써 돈을 벌 자격이 없다고 하는 것을 보면서 그럼 내가 알고 있는 페미니즘은 뭐가 싶었습니다. 페미니스트로 스스로를 칭하는 대에, 타인(특히 소수자)을 혐오하고 죽도록 괴롭히고, 그것에 대해 합리화 하는 것이 필요했다면 저는 결코 저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칭하지 않았을 겁니다.


얼마전에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만 없을 뿐이지 완전히 페미니즘 책이더군요. 저는 그 작가님이, 정말 못내 부러웠습니다. 나도 저렇게 할 걸. 괜히, 괜히 페미니즘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제 생각과는 달리 페미니스트/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영원히 저를 따라다니겠죠. 제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한동안은 그 사실이 너무 싫어서, 죽도록 도망가고 싶어서 정말로 창작을 그만둘까 생각도 했습니다. 외국으로 나가볼까 생각도 했고요. 하지만 지금의 저는 제 나름대로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중입니다. 그러다보니 결국,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게 되더라고요.


내 얘기를 하자. 여성인 내 얘기를.

그리고 이 글도, 제 이야기를 하는 것의 일부입니다.


아마 아무리 제가 그 이렇게 얘기를 해도, 저를 미워하는 사람들은 영원히, 계속 저를 미워할 겁니다. 예전에는 그들과 말을 잘해보면 각자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음, 저는 이제 그럴 에너지가 없습니다. 한 사람과 얘기를 마치면 다른 사람이 또 똑같은 얘기를 들고 오고.... 그런 사람이 수십수백명입니다. 그 와중에 말 지어내고(허위사실 유표), 욕하고, 인신공격하고, 스토킹 하는 건 뭐 말할 것도 없고요. 얼마전에는 제가 중학생을 소재로 야설을 썼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하더군요. 진짜, 범죄자 남자를 미워해도 이 정도로 미워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진심으로, 그런 거짓말과 오해를 상대할 시간에 창작에 힘쓰고 싶습니다. 다른 여성을 응원하고, 함께 가고자 노력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혹은 그래서, 느리게나마 그때 제가 겪었던 일을 기록해두려고 합니다. 혐오가 왜 혐오인지 남겨두고자 합니다. 만약 이 기록이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보이고, "악마화"로 보인다면 스스로의 행동을 좀 돌아보세요. 제가 행동을 간접적인 공격이라고 부풀리는 것의 1/10 만큼이라도, 직접적인 공격을 받고 있는 사람 생각을 좀 해보세요. 만약 그걸 알고, 그 행동이 즐거워 미치겠다면 정말... 진지하게 병원을 가보시길 권합니다. 저는 그쪽들 때문에 병원에 신세 진지가 몇 년째거든요. 꼭 병원에 가서 이런 방법이 아니라 다른 건강하고 행복한 방법으로 즐거워지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저는 이제 잘 살아요.

책도 잘 팔리고요, 외국에도 출판 되었고 거기서도 잘 팔리고요, 차기작도 곧 나올 거고요, 재미있고요, 공교롭게도, 다시 페미니스트 얘기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서, 이 기록을 통해서 여기 살아남은 사람이 있고, 잘 살고 있고, 앞으로는 더 잘 살거라는 걸 꼭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같이 살아남아요. 같이 잘 살아요.


저는 제 얘기를 할테니, 당신도 제발 자기 얘기를 해요.

남의 이야기를, 남의 존재를 폄하하고 혐오하지 않아도 당신의 이야기는 충분히 가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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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신지는 본인이 제일 잘 알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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