섞이지 못해 다행이야.
"그 옷은 어디서 사셨어요?"
일본의 기모노를 모티브로 디자인된, 와(和)풍의 점프수트를 가리키며 교토 토박이 리셉셔니스트가 상냥하게 물어오자, 내 머릿속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혹시라도 교토식 '돌려 말하기(라고 쓰고 돌려 까기라고 읽는)'화법이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댁의 아드님이 피아노를 참 잘 치시더군요."라고 말하면 '=시끄러우니까 그만 쳐라.'는 뜻이고, 집을 방문한 손님에게 "저녁 드시겠어요?"라고 묻는다면 '=그만 집에 좀 가라.'는 뜻이라던가. 혹시라도 나의 근본 없는 옷을 보고 '일본의 격조 높은 스타일을 그따위로 난도질한 옷을 입다니 부끄러운 줄 아세요.'라던가 '일본에 왔다고 일본 스타일 옷을 입은 거야? 기분 나빠.'라던가, 그런 뜻은 아닐까
나는 간신히 대답했다. "ZXRA요."
나의 걱정이 무색하게, 리셉셔니스트는 다시금 상냥한 미소로 "멋지네요!"라고 답하며 카드키를 내밀었다. 나는 서늘해진 등골에 맺힌 땀방울을 몰래 닦으며 그것을 받아 들었다.
숙소인 가라스마에서, 기온 방향으로 이어지는 교토의 거리를 슬렁슬렁 걸었다. 길거리마다 빽빽한, 하지만 결코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는 저 작은 목제 건물 한 채가 100년은 넘었다고 했던가.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것 같은 좁은 길들은 대부분이 일방통행이라, 언젠가 교토에서 택시를 탔을 때 아직 택시 기사 5년 차라 운전이 미숙하다고 사과하던 택시 기사 아저씨가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교토에서는 30년 정도 장사한 걸로는 노포라고 치지도 않는다고 했던 것도 같은데, 그것과 같은 것일까?
일본은 참 기묘한 나라다. 여행자로서 잠시 들를 때는 모든 걸 받아 줄 것처럼 두 팔 벌려 환영하지만, 그 생활 안에 함께 하고자 하는 순간 밀어낸다. 마치 물 위에 둥둥 떠있는 기름 한 방울처럼 말이다. 결코 섞일 수 없다. 그들이 적극적으로 이민자들을 배척하는 이유도, 기름이 무거워지면 물아래로 고여 버리니까, 자신들을 지탱하고 있던 가장 밑바닥의 정신을 빼앗길까 봐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 정신을 가장 오래 간직 한 곳은 바로 교토일 것이다. 교토인은 같은 일본인들끼리도, 도도한 이미지가 강하다고 한다. 과거 수도였던 도시였기에 그에 대한 자부심도 상당하고, 게다가 분지라, 하나의 요새로써 외부와의 교류가 상당히 차단되어 있었던 곳이라 교토 안에서의, 교토 특유의 무언가가 이어져 내려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작은 도시 안에서 부대껴 살기보다는, 자신들의 집과 같이 규격 안에 선을 긋고 살기를 택한 듯하다. 내 기분 나쁘지 않게, 남의 기분 해치지 않게. 그렇게 서로 침범 하지도, 침범 당하지도 않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교토 특유의 이 선긋기에 긴장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낀다.
나는 당신을 존중할 테니, 당신도 나를 존중해달라는 태도. 가짜 같아 보일지는 몰라도, 나는 꾸며서라도 그런 태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무례함을 솔직함이라 포장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남의 나라 아닌가. 여행객으로서, 잠시 스쳐 지나가는 사람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마치 그 자리에 왔다 간 적이 없는 것처럼 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싫어한다, 어느 나라에든 가서 그 나라의 언어나 예의범절을 조금이라도 미리 익혀가지 않는 사람들을. 자신의 가치관만 강요하며 내 나라에서는 이래도 됐다며, 이 나라에서는 그게 무례인 줄 모르고 행동하는 사람들. 물론 집에서 세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는 거겠지만, 딱 그 꼬라지인 사람들이 너무 싫다.
혹시라도 그런 사람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적어도 내 행동을 타인이 민폐라고 느끼지 않길 바라며- 오늘도 좁은 교토의 길거리를 거닐다 누군가와 옷깃만 스쳐도 "스미마셍"을 나지막이 읊조린다. 약간의 교토식 사투리를 의식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