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가족관계, 그리고 강아지
12.
남미 햇볕은 정말이지, 장난이 없다.
높은 건물이 적고 바닷가에 인접한 리우라 특히 더 그런 것 같기는 한데, 여하튼 한국에서 챙겨간 선크림이 무용지물이라고 느낄 정도로 햇빛이 강렬했다.
바하 해변에 처음 간 날, 등짝과 종아리에 선크림 바르는 걸 조금 게을리 했더니 그림 그리는 사이에 홀라당 1도 화상을 입어버렸다. 덕분에 사흘정도 따가움에 몸부림쳤고 그 후 일주일동안을 가려워서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 그 어느 나라보다 선크림이 제일 필요한 나라 같은데 왜 선크림이 비싼 걸까? 약 70~80 레알, 우리 나라돈으로 2만원 정도. 물가를 고려해도 한국의 두배 정도의 가격인데 여름이면 400mL 짜리 선크림 한 통을 한달만에 다 쓴다. 주말에 바다라도 갈라치면 2주일도 안걸린다.
비슷한 위도에 있는 아프리카 지역에 사는 아프리카계 사람들은 피부에 멜라닌 색소가 많아 어느정도 보호가 된다지만, 지방에 따라 백인 혈통이 많은 브라질에서 이정도 햇빛 공격이라면 피부암 직행열차를 탈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실제로 피부암 발병율도 높다는 듯.
덕분에 한국에 있을 때는 여름에 외출할 때나 얼굴에 조금 바르고 나가던 내가 여기서는 그 누구보다 선크림에 진심으로 살고 있다. 사실 한국에서는 외출 자체를 잘 안 함 알로에 베라 한 통을 몽땅 처발라도 가시지 않았던 열감과 따가움은 윽, 정말이지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아…
최근에 터득한 방법은 뿌리는 선크림(유기자차)으로 얇게 1차 방어막을 만들고 특히 잘 타는 부위(얼굴, 어깨, 발등 등)에 무기자차를 덧발라주는 것. 여러분도 바다에 갈 때 참고하세요.
13.
결혼 이혼 재혼이 자유롭고 사실혼도 인정하고 동성결혼도 가능한 브라질의 가족관계는 버라이어티 그 자체.
내 남자친구만해도 재혼 가정의 자녀라 아버지쪽 형제가 둘, 어머니쪽에 형제가 하나 있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사실 이것도 사귀도 두달 후에나 제대로 알았다) 어느날 누나의 동생들을 만나게 될 거라고 해서 두 귀를 의심했다.
나: 그러니까 A(시누이 이름)의 동생들을 만나러 간다고?
남친: 응.
나: 근데 그 분들은 자기의 형제는 아니고?
남친: 응.
알고보니 어머님의 이전 결혼 상대(A의 생물학적 아빠)의 자녀들, 즉 이복형제들이었다.
14.
브라질은 가계도가 직렬로도 병렬로도 매우 길고 방대하다.
나같은 아시안 걸, 그러니까 이혼은 그나마 좀 흔해졌다지만 여자의 이혼은 여전히 칠거지악급 흠으로 작용하고 심지어 ”애 딸린” 재혼은 남녀불문 혹으로 치부되는 유교와 개신교의 환장의 콜라보 국가에서 온 나로써는 매우 생소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더군다나 우리는 콩쥐팥쥐와 신데렐라 같은 재혼 가정의 패혜-나쁜 계부, 계모와 짜증나는 이복형제 등-에 대한 이야기를 귀가 닳도록 보고듣고 자라지 않았던가. 그래서 나는 그들의 가족 관계, 더 나아가 가족 간의 유대감이 어떻게 유지되는지 궁금했다.
남자친구와 남자친구의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브라질에서는 이혼, 재혼이 워낙 흔해 한 가정 속 아이들의 아빠, 엄마가 각각 다른 경우가 매우 많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경우에 따라 형제자매가 아주 많아지기도 하고 엄마 아빠의 재혼 시기에 따라 맏이와 막내의 나이차가 띠동갑 이상인 경우도 있다고. 덕분에 이혼 없이 딱 한 사람과 결혼해서 쭉 살고 있다고 하면 오히려 이쪽을 더 놀라워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자, 그렇다면 그 많은 아이들은 어떻게 키우느냐, 브라질은 양육비 지급이 법에 명시 되어 있어 월급에서 일정 금액을 압류한다고 한다. 하루라도 지급이 늦으면 바로 감옥행. 그래서 브라질에서 유명한 연예인들이 이혼 뒤 양육비 미지급으로 수감되었다는 소식이 종종 매스컴을 탄다고 한다. 그에 반해 아이의 양육비 채무를 불이행해도 아~무 일도 안 생기고 주양육자가 소송해서 겨우겨우 법원에서 지급 판결이 나도 지급의무자가 뻗대며 안주는 대한민국에서 온 나로서는 정말 부러운 법이 아닐 수 없었다.
하여간, 형제들끼리는 사이가 좋냐고 물으니 가정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사이가 좋다고 한다. 이복 형제여도 친형제처럼 지내고, 피 한방울 안섞인 형제들도 마찬가지라고. 심지어 재혼가정이 다시 이혼을 해 형제가 갈라진 경우에도 종종 만나고, 갈라진 형재의 새로운 형제들과도 가끔 어울려 논다고 한다.
계모, 계부로부터의 차별은 없냐고 물으니 차별이 있는 집도 분명히 있겠지만 대부분은 자기도 자식이 있어서인지 사랑으로 감싸 안는다고 한다. 차별이 있는 경우 보통 계부, 계모가 초혼인 경우 아이를 대하는 것이 서툴고 친자식이 생기면 팔이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어서 그런 듯.
역시 사람사는 건 다 똑같다지만, 그럼에도 그걸 사회적으로 받아 들이는 분위기라는 게 얼마나 좋은지. 이 나라에서는 이게 정상, 정상 가정인 것이다.
15.
바다에서 먹은 간식: 맥주, 과라나, 마테차, 글로보(카사바 과자), 스피하(아랍빵), 사콜레(과일과즙 쭈쭈바), 코코넛워터(생 코코넛) 등등…
치킨과 맥주가 국룰인 한국 바다와는 또 다르지요. 중국에서는 엄마아빠표 샌드위치랑 과일 많이 먹었는데, 요즘 중국 바다는 어떨까.
16.
바하 바다는 내가 어릴 적 자라난 칭다오 바다가 많이 생각나는 바다였다. 모래가 곱고 물은 깨끗하고, 대서양 해류가 흘러 들어와 생각보다 차갑고 파도가 센 바다.
서핑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탐날만한 바다였다.
아 서핑 배워둘걸~ 서핑하고 싶어~
17.
이 사진 속 리트리버 두 마리는 바다에 들어가서 쫄딱 젖은 몸으로 너무도 자연스럽게 내 스케치북을 밟고 지나간 죄목으로 내 스케치북에 박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