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see how it goes, 무책임의 말.

aka, "그때 가서 어떻게 되는지 보자"

by 민서영

내가 스위스에서 호텔 매니지먼트를 전공으로 유학하던 당시, 우리 학교는 인턴쉽이 필수였다. 그래서 학생들은 학기 중에는 전 세계의 호텔, 리조트와 면접을 보았고, 학기가 끝나면 제각각 전 세계로 흩어지고는 했다. 그곳에서 일을 잘하거나 좋은 성과를 내면 그대로 호텔에서 일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으니, 학생들에게는 꽤 괜찮은 기회였던 셈이다. 나 역시 그것을 해야 했고, 어쩌다 보니 영국에 있는 유명 호텔 체인의 인턴쉽 기회를 얻었다. 나는 언제나 영국을 동경했다. 스위스에 있을 때마저도 방학중에는 런던의 웨스트앤드로 달려가 뮤지컬을 볼 정도였으니, 그게 얼마나 나에게는 큰 기회였는지는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턴쉽 합격 메일을 받자마자, 나는 부푼 마음을 안고 약 1년 가까이 사귄, 졸업 후 싱가포르로 돌아간 싱가포르인 남자친구 M에게 스X이프 통화를 걸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이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시간으로는 새벽이었지만 그는 전화를 받았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나의 희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M의 반응은 내가 예상했던 것이 아니었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더니, 그가 입을 뗐다.


"그럼 나는?"


나는 그 말을 듣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지금, 그토록 꿈꾸던 영국으로 인턴쉽을 간다는데, 가장 처음 한 말이 축하해, 도 아니고 그럼 나는, 이라니? 하지만 그가 이어서 했던 말이 더 가관이었다.


"너는 영어도, 중국어도, 일본어도 하고, 한국인이잖아. 그냥 3학년까지만 마치고 싱가포르로 와서, 여기서 일하면 안 돼? Then let's see how it goes."


Let's see how it goes, 어떻게 되는지 보자,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그렇게 무책임한 말이 있을 수 있구나.


그는 스물여섯 살, 나는 스물두 살. 4살 차이는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지. 하지만 그가 아무런 능력도 없으면서 나를 싱가포르로 끌어들이려 하는 것이 문제였다. 아주 큰 문제! 나는 어떻게 4개 국어를 한다 치자. 하지만 그는? 꼴랑 영어, 중국어가 아닌가! 중국계 싱가포르인이라면 모두 하는 그것 말이다!


그는 나에게, 나의 언어적 능력을 살려 스튜어디스를 하라고 했다. 싱가포르가 베이스인 싱가포르 항공에서 일하라고. 그런데, 싱가포르 항공의 경우 내국인은(싱가포르인) 2~3년제의 전문학교 졸업 성적으로도 취직을 할 수 있지만, 외국인의 경우 4년제 정규대학을 졸업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2012년 당시의 규정, 지금은 어떤지 모름) 그런 것도 모르면서, 나보고 오라고?


무엇보다, 내가 아무리 이리저리 떠돌아다녔다 해도, 그곳은 어찌 되었든 남의 나라이다. 내게 전혀, 요만큼의 접점도 없는, 기반이 없는 나라라는 뜻이다. 그는 스위스로 떠나오기 전부터 살았던 싱가포르 그 나라 사람이지만 나는 아니라고. 더군다나 직업도, 집도, 그 어떤 기반도 없으면서 나보고 무작정 오라니, 그런 무지와 무책임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거지? 아무것도 없는 너를, 내가 당연히 "따라갈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건데?


하지만 그런 속물적인 이유를 다 떠나, 내가 그에게 가장 실망한 이유는 나의 꿈을, 나의 미래를 전혀 응원하지 않는 그의 사고방식 때문이었다. 내가 영국으로 인턴쉽을 가는 것이 마치 이기적인 선택인 양 취급한 것이 기분이 나빴다. 그것이 아무리 백번 양보해서 그가 나를 놓치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해도, 그는 그랬으면 안 됐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그것은, 집착이었고 족쇄였다. 그는 겨우 스물두 살이었던 나에게 그 모든 부담을 지우려고 하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헤어졌다. 하지만 또 완전히 관계가 끊어진 것은 아니라 우리는 드문드문 연락을 주고 받았는데, 그때마다 그는 나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나를 떠보곤 했다. 하지만 학기를 마치고 내가 결국 영국으로 떠나자, 그는 연락을 끊었다. 내가 혈혈 단신 영국에 도착해, 모든 것이 낯설고 지독히도 외로웠던 바로 그 순간에 그는 나를 매몰차게 거절했다. 그는 아마, 고소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여하튼 가장 필요했을 때, 그는 곁에 없었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 5년 내내, 나의 생일이 되면 생일 축하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영원히 나의 생일은 잊지 않을 거라는, 자신만의 싸구려 감상에 취해서 말이다. 한번은 그에게 여자친구가 생긴 것을 뻔히 아는데도 그가 문자를 보내길래 '그만 보내라' 했더니 자신과 여자 친구의 관계를 "신경 쓰는 것이냐"라고 묻길래, 그가 사진마다 태그 해놓은 여자 친구에게 "나는 너의 남자친구의 전여자친구인데, 정말 당신의 남자친구에게 관심이 없고, 당신의 남자친구는 이런 식으로 나에게 연락하고 있다. 잘 판단하기 바란다며"그의 메시지를 모두 캡처해서 보내자, 그 후로 한동안은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렇다, 내가 이렇게 무서운 사람이다) 하지만 또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또 메시지를 보내길래 도대체 언제까지 연락이 오려나 싶어 내버려둬 봤는데, 올해 드디어 그 문자가 끊겼다! 할렐루야!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게" 된 것이.

나에게 불확실한 것, 애매한 것은 독이었다. 그래서 확실한 시작점과, 확실한 끝맺음을 원한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아니라고. 나중은 없다고.


"Let's see how it goes."

"그때 가서, 어떻게 되는지 보자"


그런 애매하고 무책임한 말로, 상대방을 속이는 것, 기다리게 하는 것.

그건 예의가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