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천천히, 진지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숯에 불을 붙여본 적 있는가? 번개탄이나 토치 없이 말이다.
먼저, 종이뭉치에 불을 붙인다. 이 경우에는 종이가 좀 많이 필요하다. 종이에 불이 붙으면, 그 위에 종이나 작은 나뭇가지를 조금씩 얹는다. 불이 조금 커지면, 그 위에 재빨리 숯을 얹는다. 그럼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숯에 종이의 불이 옮겨 붙을 때까지 부채질을 하며 조금씩 불을 키운다. 입바람을 불어도 되지만, 그 경우에는 눈이 좀 매울 수 있다. 그렇게 천천히 부채질을 하다 보면, 어느새 숯의 한쪽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숯 전체가 다 빨개져야 한다. 그 과정에서 종이 불씨가 꺼질 수도 있고, 아예 숯에 불이 옮겨 붙지 않을 수도 있다. 온몸에 검댕이 묻거나, 온 얼굴이 벌겋게 익기도 한다. 그래서 캠핑 등에서도, 이 불을 피우는 작업이 가장 고역이다. 하지만 일단 한번 붙기만 하면, 두세 시간은 거뜬히 간다. 마른 장작이 30분 만에 타서 없어지는 걸 생각해본다면, 꽤나 긴 시간이다.
나는 언제나 숯 같은 연애를 꿈꿨다. 오래오래, 길게 타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연애는 단 한 번도, 길게 이어진 적이 없다. 물론, 그것은 언제나 떠돌며 살아왔던 나의 과거 때문일 수도 있다. 길게는 1년, 짧게는 6개월 단위로 이곳저곳, 나는 언제나 떠나 있었다. 그것이 여행이던, 유학이던, 이사던, 나는 항상 어딘가를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때문에 나는 누군가가 마음에 들면, 그를 천천히 알아가기보다는 우선 연애를 시작하는 쪽을 택했다. 언제 떠날지 모르니, 그렇게 느긋하게 알아갈 시간 따위는 없다고, 연애하면서 알아가면 된다고, 그렇게 조급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번개탄 같이 사랑에 빠졌고, 활활 타는 마른 장작 장작처럼 사랑했으며, 하얗게 재가 되어 헤어졌다. 한국에 반쯤 정착한 지금도, (아니, 지금도 반쯤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보니 아직 정착할 준비가 안된 모양이다.) 마찬가지이다. 다만 이제는 그런 물리적인 분리가 없다 보니, 감정적인 분리가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버릇이라는 게 참 무섭지.
친구관계에서는 그러지 않았는데, 왜 연애 관계에 있어서만큼은 그렇게 느긋하지 못했던 걸까?
그런 나의 연애사를 아는, 뼈 때리기 맛집 장인인 나의 친구의 말에 따르면, 나는 “성숙한” 연애를 해본 적이 없는 듯하다.
나는 그동안, 남자 친구와 말싸움을 할만한 상황이 되어도, 싸우지 않는 쪽을 택했다. 괜한 감정 낭비는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뭐하러 싸워, 어차피 헤어질 텐데.
사실 생각해보면, 나는 지금까지의 남자 친구들을 마음속 깊이 신뢰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물리적인 거리가 조금만 멀어져도, 만나지 못해도, 그것을 이해해주리라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의 여행에, 나의 떠돌이 생활에 그들이 나와 함께 하지 못한다고 해서 아쉬워하지도 않았다. 내가 그렇게 훌쩍 떠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그들은 믿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멀리 떨어진 후에도 이 감정이 계속 유지될 거라, 서로를 사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당시 사귀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어딘가를 가려할 때마다 그토록 기를 쓰며 따라오려 하거나, 가지 못하도록 막지 않았을 테니.
숯은 나무를 태워, 불완전연소 후 탄화되어 만들어진다고 한다. 무른 나무는 타서 없어지지만, 단단한 나무는 숯이 된다. 연애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가벼운 마음은 금방 타서 사라진다. 하지만 무겁고 단단한 마음은, 쓸데없는 의심, 잡념, 조급함을 태워 없애고 나면, 그 안에는 온전한 사랑만이 남는다.
나는 그런 연애를 원한다. 그런 온전한 형태로 오랜 시간을 거쳐,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연애 말이다.
그래서 다음 관계는, 다음 연애만큼은 좀 천천히 다가가 보려고 한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상대가 나에게 익숙해지고, 내가 상대에게 익숙해지고, 종이의 불씨가 숯에 옮겨 붙듯- 천천히 붉게 달아오른 숯 역시 언젠가는 재가 된다 하더라도, 그 느긋함을, 그 여유를 즐겨보기로 한다.
나는, 숯 같은 연애를 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