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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서영 Nov 28. 2017

어느 만만한 여자들, 그리고 더 만만한 임산부.

임산부 배지와 임산부 배려석을 증오하는 어떤 남자에게.

우리 언니는 키가 작고 머리도 검고 길고 화장도 청순하게 하고 다닌다. 팔다리도 가늘다. 대중교통을 타면 번호 따려는 젊은 남자부터 소리지르는 할아버지, 몸을 더듬으려드는 변태까지 그렇게 많이 들러붙는다. 자리를 옮겨도, 전철에서 내려도 따라와서 내가 언니를 마중 나간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와 달리, 나는 키가 크다. 머리는 짧고 500미터 밖에서도 눈에 띄는 금발이고, 화장도 아주 강하게 하고 다닌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나는 지금껏 그런 남자한테 걸린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오히려 지하철에서 남자가 치고 지나가면 사과하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이게 뭐냐면 말이지, 변태던 범죄자던, 만만한 사람한테 달라붙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만한 여자는 대부분 우리 언니같은 여자들이다. 젊고, 작고, 약해보이는 여자. 그들은 정말 귀신같이 알아챈다. 만만한 여자를.  


하물며 임신부는 어떨 것 같은가. 임신한 여자는 더 약해진다. 당장 나 한 몸이면 소리를 지르거나 악을 써서라도 싸울텐데, 그럼 팔이 부러지든 다리가 부러지든 한대 맞을 각오만 하면 되지만(애초에 왜 그래야하나? 왜냐하면 자기 kibun을 거스른다고 사람을 때리는 인간들이 정말 있기 때문이다! 그 중 압도적으로 남자가 많고!) 원하는 임신으로 가졌지만, 내 뱃속에 조금만 충격을 받아도 사라질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나 말고는 지켜줄 수 없는 존재가 있다면? 그래서 임신부뱃지를 달고 있는 여자는, 그런 '만만한' 표적이 되기 쉽다.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방어적인 자세만을 취할 걸 알기 때문이다.



게다가 복수라도 차지 않는 한 임신 4개월이 넘지 않으면 여성의 배는 불러오지 않고, 사실 그때쯤이면 이미 안정기이다. 즉, 3개월, 아직 배가 불러오지 않았을 때, 타인이 겉으로 봐서는 임신을 했는지 안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유산이 훨씬 많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만큼 위험한 상황에서, 과연, 어떤 여자가 임산부 배려석에 다리를 쫙 벌리고 앉아있는 중년의 남성에게 뱃지를 보여주며 자리를 비켜달라고 할 수 있을까? 어떤 여자가 임신한게 유세냐며 주먹을 휘두르는 할아버지가 앉아있는 노약자석에 가서 앉을 수 있을까?


혹자는 그럼 임신부를 어떻게 구분하냐고 되물어 볼 수도 있겠다. 글쎄, 그건 나도 모르겠다. 출산을 해본 여자도 초기임신부는 구분하지 못한다는데 내가 어떻게 알겠나. 하지만 이거 하나는 알겠다. 구분하지 않으면 된다. 판단하지 않으면 된다. 거기 앉아있다면 아, 임신부이겠거니 하는 것이다. 그 자리에 앉은 것은 당신이 아니니까, 앞에 있는 사람에게 자리를 비켜줘야겠다는 생각을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남자는 임신하지 않으니까 그것만은 너무나도 투명하겠지


얼마 전 자신의 아내가 임신을 했는데 임신부석에는 젊은 여자만 앉아있더라며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글을 SNS에 남긴 남성을 보았다.그 아래에는 '무슨 소리냐, 그 자리에 앉은 중년남자가 훨씬 많다'는 댓글이 수없이 달렸지만, 그 남성의 결론이 '그럼 아예 임산부 배려석을 없애면 되겠네, 이렇게 싸우지 말고 사람들의 배려를 믿자'인 것을 보고 더이상 말하기를 포기했다. 이게 무슨 불이 많이나서 소방차가 출동을 많이 하니 소방서를 없애고 마을 사람 다 모여 양동이로 불끄자는 소리야.


배려, 그래 말이 좋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만큼은 배려를 논할 자격이 없다. 만만하지 않은 당신이 그동안 배려를 하지 않았고 그 증거를 투명하게도 SNS에 남기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리바운드가 일어난 거니까. 당신은, 그에 대해 투덜댈 자격이 없다. 당신은 그 자격이 없다.


지금이라도 그 리바운드를 멈추려면, 당신이 변해야 한다. 임신부석에 앉아있는 젊은여자에게만 가있는 아니꼬운 시선을 거두고 그 자리에 다리를 쫙 벌리고 앉아있는 중년 남성을 욕해라. 정말 임신한게 맞냐며 임신부의 배를 향해 손을 뻗는 할아버지를 욕해라. 그럼 언젠가는 분명히 바뀔 것이다. 그것이 배려이든, 사람들의 눈치가 보여서이든.


그래도 지금 당장 와이프가 임신부 배려석에 못 앉은게 천추의 한이라고? 그럼 당신이 직접 차로 모셔다 드리고 모셔 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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