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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서영 Dec 09. 2019

“원하는 마음이 갖고 싶어”

<Ciel>, <그리고 스물셋 죽기로 결심했다>

Ciel 이라는 만화에, 주인공인 이비엔이 이런 말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원하는 마음”이 갖고 싶다고. 갖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바라는 것도 아무것도 없던 그는 유일하게 “원하는 마음”을 갖고 싶다고 말했고 나는 그것이 내 마음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때 내 나이는 이비엔과 꼭 같은 열네살이었다.

<Ciel> 4권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


그로부터 14년 뒤 나는 <스물셋 죽기로 결심하다> 라는 책을 만났다. 당시 스물세살이던 저자는 지금의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었다. 사는 의미를 도통 알 수가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다 어느날 갑자기 훌쩍, 아프리카로 떠나버렸다. 자신이 사는 곳과 물리적, 심적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말이다. 저자는 10개월간의 방랑 끝에, 정말 죽을지도 모르는 벼랑 끝같은 상황에 몇번 처한 후 비로소 자신이 사는 의미를 찾게 된다. 그러니까 말그대로, “사는 것”말이다.


반나절만에 책을 다 읽고 덮은 나는, 문득 부끄러운 동시에 부러워졌다가, 이내 외로워졌다. 부끄러움과 부러운 이유는 같았는데, 만 27년 내 인생 중 장장 17년을 외국에서 보냈음에도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가 단 한명도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나를 굉장한 인싸이자 외향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나는 그저 아싸 중에서 제일 인싸 같은 사람일 뿐이고 굉장한 내향인이라 사람들에게 쉬이 연락하거나 만나지도 못한다. 여행을 다니면서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딱히 그들과 인연을 이어가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그런 나에게 친구가 생길리는 사실 만무했다. 사실 여행 뿐만이 아니라 일, 모임 자리 등에서도 그랬는데 밝고 재미있는 첫인상에 비해 내가 어둠의 다크한 사람임을 눈치챈 건지(쳇) 대부분을 그저 얼마 안가 멀어졌다. 아니, 사실은 내가 그런 우울한 사람임을 알아챌까봐, 첫인상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 나 스스로를 가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에게 여행은 사람들에게서 멀어지는 핑계가 되어있었다. 누군가 불러도, 혹은 부르지 않아도 어차피 나는 외국에 있으니까 그 부름에 응답하지 못한다고 일종의 정신 승리를 한 것이다. (참 재미있는게 한국에서는 프라이팬에 눌러붙은 인절미같이 늘어져 있을때는 없던 연락이 외국에만 오면 카톡창에 불이 났다) 그렇다고 여행에 가서 적극적으로 사람들과 교류를 했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가끔 마음이 잘맞아 하루 저녁나절 재미있게 놀지언정 웬만하면 다음날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접근하는 대부분이 그저 나와 하룻밤 어떻게 해보려는 남자들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아프리카와는 전혀 다른 스위스의 겨울 풍경.


얼마전에 그림 상담을 받았는데, 내가 그린 그림을 찬찬히 해석해주시던 선생님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많이 외로우신 것 같아요.”라고 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아하하, 하고 웃고, 아 아니, 음, 네... 그렇게 듬성듬성한 대답을 하다 말고 펑펑 울었다. 맞아요. 외로워요. 가족이 있어도, 내 곁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너무 외로워요. 내 마음 속에 끝없이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도와달라는 말을 하기도 지쳤어요. 죽으면 끝날까요. 어떻게 해야할까요.

사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 책을 꺼내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저자처럼 생고생을 해야하지만 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나는 솔직히 사양하고 싶다. 아직까지는 따뜻하고 푹신한 침대에서 그 깨달음을 얻고 싶다. 아직 니가 고생을 덜 해봐서 그래, 라는 말을 나조차도 스스로에게 하고 싶어지지만 어쩌겠는가.


이래도 죽고 싶은 사람이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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