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서영 Jan 21. 2020

슬럼프인지, 번아웃인지._03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겪은 것은 가스라이팅이었다.


가스라이팅: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



사실 플랫폼에 연재를 하기 전, 그러니까 SNS에 연재를 했을 때부터, 내 만화는 꽤나 많은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저스툰에서 유료 연재를 시작하면서 그것은 자연스럽게 사그라들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첫 책 <썅년의 미학>이 발간된 후 나는 책을 구입한 독자분들이 책의 내용을 한두 장 정도 찍어 SNS에 올리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터치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나도 그런 식으로 영업(?) 당해서 산 책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은 많은 공감을 얻었는지, 다행히도 꽤 많은 공유수를 기록했고 나도 신나서 일부러 서치(검색)까지 해가며 적극적으로 책을 홍보했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이라 했던가, 전에 없던 시비가 심심찮게 걸려왔다.

물론 이전에도 플랫폼에 연재된 무료 분량을 작품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각색해서 남성 커뮤니티에 업로드하거나, 내 사진을 내 SNS에서 불펌 해와 외모 품평/욕을 하는 일들이 있기는 했었다. (이들은 모두 고소를 당했고, 실제로 처벌도 받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쪽이 아니었다. 일명 "래디컬 페미니스트" 혹은 '진영'의 내부라는 곳에서 내 작품을 가지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사실 갑론을박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일부의 목소리가 너무도 일방적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아,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날 선 비판은 관심이고, 나를 위한 충고라고 생각했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으니까. 내 만화가 교과서는 아니니까. 그래서 반영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반영하기도 했고 반성도 했다. 하지만 갈수록, 그들은 '페미니즘을 위해서'라며 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연재 전, 그러니까 SNS에만 업로드하던 때에 있었던 논란이라고 해봤자 그림체 정도였는데 지적의 영역이 묘사, 연출까지 침범하더니 제목을 비롯한 작품 그 자체는 물론이고 작가인 나에게까지 뻗어왔다.


내가 기억하는 '비판'의 시작은 작품에 등장하는 남성에 비해 여성의 외모가 다양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래, 그렇게 보일 수 있지. 내가 그린 의도가 "현대 사회가 다양한 남성의 생김새는 용인하는 반면, 여성의 다양한 외양은 인정하지 않는다"였을 지라도, 그것이 독자에게 충분히 전달 되지 않았다면 그 의견을 반영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후에 연재되는 분량에는 여성의 외향도 다양해졌고, 그 지점만큼은 퍽 마음에 든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흐를 수록, 그들은 나의 머리 길이와 옷차림, 화장 등을 두고 '탈코르셋'을 하지 않은 나는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고 했다.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심지어 유튜브까지, 자시들이 가진 모든 SNS 계정을 동원해서 나를 비난했다. 염증을 느낀 내가 제발 그만 좀 하라고 하면, "민서영은 탈코르셋을 지지하지 않는다"며, 내가 "탈코를 조롱했다"는 근거로 삼았다. 


그 과정에서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았는데, 외모 품평과 패드립, 성희롱을 포함해 욕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그래도 된다고 했다. 패야 알아듣는다고, 그들은 그렇게 말했다. 나의 만화를, 그리고 존재를 '백래시'라 칭하며 내가 뭐를 하던 "민서영은 백래시다"라는 말로 일축해버렸다. (나는 아직도 이들이 말하는 "백래시"가 뭔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수전 팔루디의 책 <백래시>에 나온 뜻과는 다르다는 건 알겠다.)


어떤 여성 혐오 범죄가 발생하던 당시에는, 즉각 입장표명을 안 했다는 이유로 나를 욕하기도 했고, 심지어 그 책임을 내게 묻기도 했다. 그들은 짐짓 논리적인 척했지만, 실제로는 앞뒤 말이 전혀 안 맞았고, 했던 말도 안 했다고 하고, 안 한 말도 했다고 하면서 자기들 멋대로 각종 '논란'을 만들었고, 나라는 사람을 '논쟁거리'로 만들었다.





그들은 페미니즘이라는 '대의'를 위해서 나라는 개인을 희생하라고 아주 뻔뻔하게도 주장했다. 

자라나는 "새끼 페미"들에게 모범을 보여라. 

너는 "공인"이니 소수인 우리가 하는 말은 인신공격이든 욕이든 참아라. 

너는 스피커일 뿐이고, 우리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존재다. 그렇지 않은 너는 쓸모없다. 


아무리 봐도, 그들의 목적은 페미니즘, 그러니까 여권 신장이 아니라 나를 꺾는 것에 맞춰져 있는 것 같았다. 자꾸 자신들이 만들어낸 논란에 대해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마치 하나의 목을 베면 두개의 목이 자라나는 히드라처럼,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하나에 대답하면 두 개의 어처구니 없는 해석이 따라왔다.  



지금 와서 보면, 이게 다 뭔 개소리인가 싶다.

니들이 뭔데 나보고 이래라 저래라이고, 내 가치를 정하는가. 폭력과 강요, 비난의 말을, 이런저런 단어와 존댓말로 번지르르하게 포장하면 그게 예의 바르고 합당한 지적이 되고 비판이 되는지? 똥에 향수 뿌리고 금띠 두르고 글리터 뿌린다고 그게 똥이 아니게 되는가. 똥은 똥이지. 그런데 그런 똥을 퍼 나르고 던지는 사람이 몇백 명씩 있다고 생각해보라. 진짜 미치고 팔짝 뛸 노릇 아닌가?


근데, 씻어 낼 새도 없이 똥을 한 1년 가까이 내리 처맞고 온몸에서 똥냄새가 진동을 하다 보면 어라, 내가 진짜 똥인가 싶어 진다. 내가 똥이라서 똥을 맞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내가 틀려서, 잘못해서 이런 말을 듣나 보다. 솔직히 잘못되었다고 생각도 안 하는데, 너무 지친 나머지 차라리 잘못했다고 하고 그들에게 맞춰주고 싶어 진다. 이게 가스 라이팅이라는 것이다.

근데, 나는 똥이 아니잖아. 당연히 똥독이 오르지.


답답함과 억울함, 분노, 슬픔이 모두 한데 뒤섞인, 울긋불긋한 발진 같은 이 감정을 뭐라 불러야 할지 최근까지 몰랐다. 얼마 전에 JTBC 차이나는 클라스를 보니, 그게 울분이라더라.

유명순 교수님 말씀으로는, 울분이란 공정하지 못한 일을 겪었을 때, 정의롭지 못한 일을 겪었을 때, 책임자 처벌에 소극적일 때 생긴다고 한다.



나는 자신들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집단(자칭 랟펨)으로부터 부당하게 괴롭힘을 당했고, 누구도 그것에 책임을 지지 않았다. 내가 이것에 대해 유감을 표하자, 그들은 나의 팔로워 수와 '공적인 위치'를 들먹이며, 외려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실제로 나는 심각한  외상 후 울분장애(PTED) 증세를 보였는데, 아마도 작년 봄 즈음인가, 지인의 행사에 참석할 일이 있어 광화문 광장을 가로지르던 중에 있었던 일이다. 꽤나 오랜만의 외출이었고, 나는 신이 나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검은색 나비 날개 무늬의 소매가 너울거리는 옷을 입고 나온 참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내가 좋아하는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말이다. 그렇게 신나서 길을 가고 있는데, 반대쪽에서 검은색 마스크를 쓴 짧은 머리의 여성 패싱으로 보이는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 내가 그 사람을 감히 여성으로 패싱 한 이유는, 그가 세계 여성의 날 기념 티셔츠(한국 여성 단체 연합 티셔츠)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나를 스쳐 지나가는 순간, 나는 페미니스트로서의 반가움이 아닌- 공포감을 느꼈다. 혹시라도 저 사람이 나를 알아봤으면 어떻게 하지? 나를 괴롭히던 그 무리의 일부라면? 혹시 목격담이라면서 자기들끼리 조리돌림 하는 거 아냐? 그 후, 나는 관리하던 일부 SNS를 접었고 내 치장 유무와 상관없이 밖에서 짧은 머리를 한 노메이크업 여성이나 페미니스트 굿즈 등을 소지한 사람을 보면 슬금슬금 피하게 되었다. 


솔직히, 내가 이런 글을 쓰면 그 사람들은 자신들이 나에게 이런 영향을 준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할 것 같다. 뭐 실컷 기뻐하시기 바란다. 당신들의 불행한 삶에 불을 지피는 땔감이 된 것에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



지금도 생각한다.

내가 괴롭힘을 당했던 바로 그때, 누군가 그 괴롭힘은 부당하다고 딱 그 한 마디만 해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를 안타깝다고 표현하지 말고, 마음으로 응원하지 말고, 슬퍼요 화나요 이모티콘 말고, 저 사람들 신경 쓰지 말라고, 똥은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상처 받지 말라고 상대하지 말라고 나에게 와서 나누는, 지극히 개인적인 그런 말 말고...


내가 잘했고 못했고 잘못했고 안 했고를 떠나, 이것은 폭력이고 이 폭력은 부당하다고 누군가 내 이름과 함께 공개적으로 외쳐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이래도 되나 앞뒤 생각 않고 그저 대놓고, 이 사람 건드리지 말라고 나 이 사람 도울 수 있는 사람이라고, 실제로 힘도 뭣도 없어도 그 말이라도 해주길 바랬다.


하지만 그런 이는 없었다.


다들 왜 그렇게 소극적이었는지, 머리로는 알고 있다. 엮이기 싫었겠지. 논리도 없고 말도 안 통하고, 무차별적으로 조롱과 모욕으로만 받아치는 고장 난 로봇 군단을 누가 상대하고 싶겠어. 다음 타깃이 될까 봐 무서웠겠지. 다들 나를 응원했던 거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얘기하건대, 나는 그때 가장 큰 상처를 받았다.


그리고 (고) 설리 님이 세상을 떠나던 날, 마침내 내 안의 무언가 역시 조용히 숨을 거둔 것 같다.

나를 괴롭히던 그들은 내가 (고) 설리 님에 대해 쓴 추모글마저 퍼가서 조롱을 하더라.




그래,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더 이상 페미니즘에도, 그 어떤 논재에도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 진 것은. 우리 모두 다 말로는 하지 않지만, 어떤 '상징'이었던 여성 연예인의 잇따른 죽음과 그에 대한 사회의 차가운 반응에 어떤 확신 같은 것이 생긴 모양이었다.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고.


나는 내가 (고) 설리 님만큼 유명한 아이콘이 아니라서 힘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비난을 당해도 당당하게 존재하는 사람이 있잖아. 그럼 나도 저렇게 살면 돼. 그럼 나도 괜찮을 거야. 하지만 그렇게 살아남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마저,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란 사람마저 그렇게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나 역시 자신이 없어졌다. 아무리 구원은 셀프라지만, 이건, 이건 아니잖아. 그래도 어떻게든 내 안에 남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 간신히 100화를 마감한 후 나는 조용히 작품을 정리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텅 비어버렸다.




얼마 전에 받은 그림 상담에서, 나는 OO색을 사용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색의 이름을 쓰지 않은 이유는, 혹시라도 앞으로 그림 상담을 받을 계획이 있는 사람들에게 선입견을 심어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색채심리학에서 OO색은 유일하게 다른 색과는 달리 중의적인 의미를 내포하지 않은 색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빨간색은 에너지를 뜻하는 동시에 분노를 상징하기도 하는 대에 반해, OO색은 딱 한 가지 방향으로만 해석되는데 그것은 '갈등상태로, 변화를 기다리고 있음'이라고 한다.


나는 기다리고 있다. 내가 다시 글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쓸 수 있는 그 날을.

다시 말할 수 있는 그 날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슬럼프인지, 번아웃인지._0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