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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Aug 20. 2017

3화: 제주가 쉽지 않다

#1.  A, B, C의 세 남자



창고에서 만난 한 남자가 내게 자신이 실계약자라고 한다. 알고 보니 이 창고는 1년 전 건축 일로 만난 세 사람이 동업하던 곳이었다.      


셋 중 한 사람은 내가 재임차 계약을 하고 보증금을 치렀던 A, 또 한 사람은 실계약자 B, 나머지 한 사람은 이 창고의 실무를 도맡아서 한 C였다. 나는 이 세 남자 사이의 관계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현재 그들의 동업 관계는 깨졌고 그 와중에 내게 임차의 기회가 온 것이다. 속사정은 알 수 없지만, 삼자 사이에 무언가 사업상의 골이나 감정상의 앙금이 져 있어 보인다.    

 

A는 창고를 빌리면서 주인에게 보증금을 냈던 사람인데 무슨 사정으로 직접 계약을 할 수 없었고 그 과정에서 B가 실계약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상황을 파악하고 나니 문제의 해결이 시급하다. 나는 A와 다시 만나기로 했다. 한편 제주에서 내게 이런저런 도움을 주는 장 선생과 고운기 시인을 급히 만나 이 문제를 의논했다. 그들은 직접 창고 주인과 재계약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나는 이런 일에 서툴다.    

      

고운기 시인이 A를 소개해주었던지라 함께 가서 A를 만났다. 방법은 하나다. 내가 창고 주인과 직접 재계약을 하겠다고 했다. 다행히 A도 그렇게 하라며 선선히 응한다. 다시 확인해보니, 주인은 제주에서 흔히 하는 말로 ‘육지 사람’인 듯한데, 현재 대전에 거주하고 있고 연세도 제법 많다. A는 전화로 C에게 상황 설명을 하면서 대전의 창고 주인에게 전화를 해 놓으라고 한다. 김민수라는 사람이 창고를 재계약하러 올라간다고.       



제주에서 사기를 당하지 않나 하고 마음 졸이는 것은 일단 벗어났다. 마침 1주일 후 육지에서 스마트폰 사진 강의 요청이 있어 대전에 들러 계약을 하고 오는 것으로 계획을 잡았다. 하지만 이내 또 걱정이다. 재계약 시 보증금과 임대료가 인상될 수도 있다. 아니면 이참에 아예 다른 사람에게 매매해 버리겠다 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생긴다. 제주 부동산값이 한창 오르지 않았나. 제주가 쉽지 않다.    

      

뜻밖에 고운기 시인이 서울 갈 일이 있어 대전 길에 동행하겠다고 한다. 고맙기 그지없다. 고운기 시인은 창고에서 함께 무언가 새로운 활력소를 찾아보자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서울에서 만나 창고 주인을 만나러 대전으로 향했다.     


          

#2. 창고 주인          


대전으로 가는 차 안에서 슬며시 또 걱정이다. 육지 사람이 제주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으니 좋은 결과가 나오기가 어려울 것 같다. 서대전역 근처 커피숍에서 창고 주인을 마침내 만났다. 

         

주인은 생각보다 젊어 보인다. 유쾌하고 말씀도 잘 하시는데, 분명 경륜과 학식을 두루 갖춘 분이다. 알고 보니 대학교 경영학 교수로 재직하다 얼마 전에 퇴임하셨단다. 그런데 놀랍게도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감산리가 고향이다. 감산리에 선대가 물려준 감귤밭을 가지고 있는데, 이 감귤밭에 접해 있는 마을 창고를 3년 전 매입했던 것이라고 한다. 아, 다행이다.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루어지고 소통이 되는 느낌이다.     



교수님은 제주가 고향인 고운기 시인과는 나이 차도 얼마 안 되어 한 다리 건너 지인이랄 수 있겠다 싶었다. 창고 계약 문제는 젖혀 놓고 두 사람은 한참 동안 고향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교수님은 직장 때문에 오랫동안 제주를 떠나 있었지만, 고향 감산리를 아주 사랑하는 분임을 나는 금방 느낄 수 있었다.   

      

고운기 시인이, 내가 잘 알려진 사진가에다 제주를 사랑하는 예술가로서 지금 제주 정착을 바라고 있노라고 소개하고, 일이 잘 되기를 바란다며 계약 문제의 부탁도 드린다. 고운기 시인의 과찬에는 몸 둘 바를 모르면서도 나는 순조로운 계약을 위해 잠자코 있었다.  

        

교수님은 기분 좋게 웃으시며 나에게 원래의 계약조건 그대로 잔여임대기간 2년을 승계하면 된다고 하신다. 원계약서를 보여주며 실계약자인 B에게 전화를 걸어 계약 내용을 그대로 승계해도 되냐고 확인하신다. B도 그렇게 하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나의 창고 계약은 순조롭고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교수님은 믿을 만한 사람이 왔다면서 계약을 마무리 짓고 돌아갔다.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제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걱정은 아직도 있다. 전에 서울에서 자영업을 하면서 얼마나 자주 사무실을 옮겨 다녔는지. 제주 정착을 위해서는 주거 공간도 겸한 작업실이 내 소유로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 계속 생겨난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다. 

        


어쨌든, 이제 남아 있는 집기와 자재들을 치우고 창고를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전 세입자들에게 전화를 해서 창고를 비워 달라고 했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기만 한다. 게다가 1년 동안 창고를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는지 잡초와 감귤밭에서 올라온 칡덩굴이 창고를 덮을 기세이다. 창고가 비워질 동안 우선 풀부터 정리해야겠다.  

             

빼닮은 수염을 가진 아티스트 서승환과는 그새 제법 가까운 형과 동생이 되었다. 그동안 그는 혼자 배낭을 메고 울릉도 여행을 떠나 있었다.           


“승환이 동생, 창고 계약 잘 되었어! 울릉도에서 잘 있어?”

“네, 형님! 울릉도 오징어 사 들고 제주 들어갈게요!”          


승환의 밝은 목소리가 반갑다. 카톡으로 그의 울릉도 사진이 도착한다. 

그래, 이제 시작해 보자!     


<다음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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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김민수


도서 '쉽게 스마트폰 예술사진 잘 찍는 법' 출간 작가 / 스마트폰 사진 잘 찍는 법 강의 / 아티스트

김민수 www.kimminso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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