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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Sep 09. 2017

5화: 이름을 짓다

#1. 창고의 이름     


창고는 70평이다. 감귤 창고로 지어진 곳이라 4m 정도의 높이에 넓고 깊다. 이 넓은 창고에서 무엇을 할까? 그 생각은 고민이자 즐거움이었다. 일단은 내가 먹고 자고 할 생활 공간으로 10평 정도를 쓰고 나머지는 차차 채워가기로 마음먹었다. 문제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생각은 복잡했지만, 방향은 쉽게 잡혔다. 현대는 융복합의 시대이다. 이곳을 ‘나 홀로 작업 공간’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하는 융복합 문화예술 공간’으로 만들어 보자. 생각은 점점 구체화되었고, 나는 이러한 생각을 PPT 형식의 제안서로 만들어 창고 주인인 교수께 보냈다.        

    

제목서귀포 안덕면 감산리 210-4 창고복합 문화예술공간 제안서

내용감귤 창고를 문화/예술/인문학/SNS 교육 및 다양한 문화예술 콘텐츠 개발 장소로 조성    

      

창고에 사람을 채우자. 감귤이 아니라 아름다운 사람을 채우고, 함께 만들어 가자.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 오며 가며 쉬어 가는 곳, 문화와 예술을 함께 만들어 가는 곳으로 만들자. 나는 이러한 생각을 제일 먼저 창고 주인이자 마케팅 전문가인 교수께 보내고 그의 의견을 구했다.     

 

    

제주도는 많은 창고가 개조되어 커피숍, 갤러리 등의 상업적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나는 이곳을 단순한 상업적 공간도 아니고 나만의 갤러리도 아닌 공동 문화예술 공간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이다. 궁리 끝에 창고 이름도 지었다.    

 

복합 문화예술 창고 - ART SPACE 몬딱

몬딱!’  

   

‘몬딱’은 제주어로 ‘모두, 다’라는 뜻이다. ‘몽땅’과 가까운 발음의 제주 토속어로 보면 되겠다. 궁리 중에 우연히 이 단어를 알게 되었는데 그 순간, 공간의 취지와도 잘 어울리는 이름이겠다 싶어 망설임 없이 창고 이름으로 결정하게 된 것이다. 창고에 이름이 생겼다. 이제 이름을 부르고 사랑해 주고 열심히 가꾸면 된다.      

    

#2. 강아지 이름         

 

나의 창고 이야기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오늘은 이영민 님의 이야기다. 그와는 ‘김민수와 함께하는 제주 사진여행’ 밴드의 제주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첫인상은 동글동글하고 다부져 보였다. 경상도 말을 정겹게 쓰는데, 바닷가 어시장에서 만날 만한 재미 가득한 남자 같았다.  

   

그는 전직도 비범했다. 군 특수부대 심해 잠수요원 출신으로, 전역 후 해경특공대에서 20년을 일했다. 해경 근무 도중에는 ‘세월호’ 구조・인양 현장에서 활약한 적도 있는데, 그도 세월호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세월호 사건 후 해경에서 퇴직한 뒤로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다가 제주로 와서 생활하고 있다. 




지금 그는 제주에서 여름 바다놀이요 해양 스포츠의 하나인 ‘스노클링’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자신의 주특기를 살려 바다를 주 무대로 한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그의 유쾌한 성격 덕에 우리는 금방 형, 동생이 되었다.     


그는 정리가 안 되어 있는 나의 창고를 보더니 손발을 걷어붙이고 도와준다. 또 몸 쓰는 일에 불러 달라면서 창고 일을 적극적으로 거들겠다고 한다. 고맙기 그지없다. 제주에서 만나는 분들이 늘 감사할 뿐이다. 물론 나도 그가 필요로 하는 일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겠다. 쉽지 않게 제주살이를 시작하는 우리는 서로에게 힘이 되고자 한다. 세상은 혼자가 아니다.   

         

창고에서 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내가 개를 한 마리 키우고 싶다고 했다. 제주에서는 ‘세콤’ 같은 보안 설비를 주로 개가 대신하고 있으니, 나도 강아지나 한 마리 길러 보는 게 좋겠노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이튿날 영민에게서 카톡으로 사진 한 장이 도착한다.    

      

형님강아지 구했습니다!”

암수로 두 마리 분양받아 드릴게요!”         

 


빠르기도 할 수가! 절묘하다 싶을 정도다. 하룻밤 사이에 강아지가 두 마리나 생겼다. 갓 태어난 녀석들이라 3주 후에 어미 젖을 떼고 가져오겠다고 한다. 기쁘기 그지없는 가운데 또 생각이 많아진다. 오기 전에 이름들을 지어 놓아야겠다. 불현듯 이름이 떠오른다.    

 

세콤세미         


보안 설비 대신 기르는 개니, 일단 수놈을 ‘세콤’이라 하자. 그리고 암놈은 이름이 좀 예쁘장하면 좋겠는데, 세콤과 혈육이니 ‘세미’로 하면 되겠다. 둘 다 그럴듯하고 재미도 있지 않은가? 나는 요즘 세콤과 세미가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다음 연재>


'제주 문화예술창고 몬딱' 밴드로 초대합니다.

https://band.us/n/aaaav4Mctcg0e

밴드명을 검색해 가입할 수 있습니다.

From 김민수


도서 '쉽게 스마트폰 예술사진 잘 찍는 법' 출간 작가 / 스마트폰 사진 잘 찍는 법 강의 / 아티스트

김민수 www.kimminso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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