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에 ‘문화예술공간-몬딱’ 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이제 이곳을 가꾸어 가야 한다. 70 평이나 되는 공간의 안팎에 전 임차인들이 남기고 간 쓸모없는 건축자재와 쓰레기 따위가 널브러져 있다. 대청소를 해야 한다. 승환과 나는 청소를 시작하기로 하였지만 뜨거운 여름 날씨 탓에 막상 팔을 걷어붙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올여름 최고의 땡볕 더위를 넘기고 한 며칠쯤 되어서, 승환과 영민이 창고로 왔다. 영민은 그 특유의 목소리로, 몸 쓰는 일은 잘 한다면서, 마침 스노클링 강습이 없는 날이란다.
“형님! 오늘 물청소 하시죠!”
그렇게 우리는 제주의 뜨거운 여름이 채 다 물러가기 전에, 갑작스레 일을 시작했다. 이리저리 옮기고, 이것저것 버려가며 창고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물청소를 하려면 바닥을 다 드러내야 한다. 세 사람이라 한결 쉽다. 하지만 몸을 쓰는 일이 창고 안에서 계속되다 보니 금세 땀으로 범벅이다.
정오가 거의 다 되어서 창고는 맨바닥을 모두 드러냈다. 중문의 장시봉 선생이 우리 세 사람 일을 염려하던 차에 점심을 사주겠다며 창고에 왔다. 검은 선글라스를 쓴 그의 모습은 늘 카리스마가 넘쳐 보인다. 하지만 굉장히 다정다감하다.
“많이 했네!” “밥 먹고 합써!”
장 선생 특유의 짧고 정감 있는 목소리다. 그는 우리를 차에 태워 대정골 돔베고기 맛집으로 향했다. 맛있게 점심을 먹고, 우리는 다시 돌아와 맨바닥을 드러낸 창고에다 물청소를 시작했다. 오는 길에는 장 선생이 소개해 준 농기계 자재 판매소에서 50m짜리 수도 호스를 싼값으로 사 왔다.
수도 호스에서 물줄기가 쏟아지니 여름날 물청소가 제법 시원하다. 한 사람은 뿌리고 두 사람은 쓸고 닦아낸다. 장 선생은 검은 선글라스를 쓴 채 의자에 앉아 감독(?)을 하다가, 갑자기 양복바지와 양말을 벗어 던지고 사각팬티 바람에 맨발로 나선다. 그의 카리스마는 갑자기 옆집 아저씨 분위기로 바뀌어 정겹다.
“수도 호스 줘봐라!”
“네?” “괜찮습니다.”
우리는 만류했지만 그는 아랑곳없었다. 호스를 잡고 물까지 뿌려주겠다는 장 선생이 그저 감사할 뿐이다. 늘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의 장 선생은 재미있다면서 마지막까지 함께하였다. 그렇게 우리 네 사람은 물청소를 해가며 창고 대청소를 마쳤다.
모두가 함께하는 ‘몬딱’ 문화예술 창고, 이미 많은 사람이 함께해 주니 고맙다.
창고 청소와 정리가 시작되면서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시간이 더디게 가기도 한다. 이유인즉 세콤, 세미가 어미젖을 떼고 3주 후쯤 창고로 온다는데 이 녀석들 기다리는 시간이 더디기만 한 것이다. 나도 승환도 녀석들을 몹시 기다린다.
“형님, 내일 세콤, 세미 데리러 가시죠?”
드디어 영민으로부터 강아지를 분양받으러 가자는 연락이 왔다. 다음 날 영민은 승민의 트럭을 타고 창고로 왔다. 승민은 제주에서 펜션을 운영하면서 인테리어 사업을 하고 있는데, 얼마 전 영민에게서 소개받아 서로 형, 동생으로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차 안에서 또 한 명이 내려 인사를 한다. 승민과 친구 사이인 박성하이다. 제주 애월에서 펜션을 운영하고 있는 친구라고 한다.
우리는 인사를 나누고는 바로 세콤과 세미를 가지러 떠났다. 나는 내 차에 승환을 태우고 트럭을 뒤따르기로 했다. 나선 길에 중문에 들러서, 누가 기증 삼아 값싸게 내게 넘겨준 중고 냉장고와 김치 냉장고도 실어 오기로 했다. 때마침 도착한 승민의 트럭과 네 사람이나 되는 장정 덕분에 이것도 쉽게 해결되었다.
냉장고를 실은 트럭을 따라 도착한 곳은 어느 솜씨 좋은 목공의 작업장이었다. 강아지는 그곳에서 일을 배우고 있는 한 남자의 것이었다. 그의 강아지는 우리와 첫 대면을 하고 비로소 세콤과 세미라는 이름을 얻었다. 녀석들의 처진 눈망울이 커진다. 우락부락한 사내 5명이 일제히 귀엽다고 쳐다보고 있으니 그도 그럴 것이다.
나는 목공의 작업장에서, 잘 만들어졌지만 오랫동안 방치되었음 직한 나무 탁자 하나를 발견하였다. 그것도 목공과 이야기 끝에 좋은 값에 손에 넣었다.
마침 점심때이고 몹시 고마워서 나는 중국집으로 가서 모두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오는 길에 영민은 서건도 쉼터 주인에게서 개집까지 얻어다 준다. 강아지 두 마리, 냉장고 두 대, 수제 나무 탁자 하나, 개집 하나를 트럭에 싣고 기분 좋게 창고로 돌아왔다.
그 반나절 사이에 친해진 박성하와도 형, 동생이 되었는데, 그가 내게 뜻밖의 말을 건넨다.
“형님! 고양이도 한 마리 키우세요!”
“제 펜션에 러시안블루 고양이가 있는데 드릴게요!”
어느 날 펜션 손님이 묵고 간 방에 고양이 한 마리가 남겨져 있길래 그냥 데리고 있다고 한다. 나는 고양이 종류는 전혀 모르는데 귀족 고양이로 혈통이 좋다고 한다. 혈통보다는 주인이 버리고 간 게 안쓰럽다. 키울까?
“어! 저는 고양이 알레르기가 좀 있는데요?”
잠자코 듣고 있던 승환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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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김민수
도서 '쉽게 스마트폰 예술사진 잘 찍는 법' 출간 작가 / 스마트폰 사진 잘 찍는 법 강의 / 아티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