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창고 - 몬딱
창고는 천장에 조명등을 설치하자 빈티지 카페처럼 제법 그럴싸해졌다. 콘센트 공사가 마무리되어 커피 메이커, MP3, 냉장고가 가동되니 비로소 숨통이 좀 트였다. 일하다 듣는 음악과 커피 한 잔의 쉼이 참 좋다.
나와 승환은 드디어 바닥 에폭시 공사에 돌입하기로 했다. 에폭시 작업에 관한 우리의 지식은 주변 경험자들의 조언과 인터넷 정보가 전부이다. 칠은 두 번을 해야 하는데, 하도 페인트를 바르고 잘 말린 다음 그 위에 상도 페인트를 한 번 더 바르는 것이다.
상도용 페인트는 전기 공사를 했던 분에게서 이미 구해 놓았고, 하도용 페인트와 롤러만 있으면 된다. 나는 서귀포의 한 페인트 가게에서 그것들을 사면서 전문가의 조언을 구했다.
“70평이면 하도 4통, 상도 2~3통이면 충분합니다!”
“2명이 한두 시간 작업하면 끝납니다!
“하도가 마른 후 상도 때 경화제를 잘 섞어서 작업하세요. 24시간이면 잘 마릅니다!”
설명은 참 간단하고 쉽다. 칠이 마르기까지 3~4일 작업이면 충분할 것 같다. 나는 내심 ‘어렵지 않군‘ 하면서 하도 페인트 3통을 샀다. 그러나 이 쉬워 보이는 작업이 2주 동안이나 우리를 그토록 난감하게 만들 줄이야.
작업 첫날, 창고 바닥을 깨끗이 쓸었다. 물청소한 지 5일 정도 지나 물기가 바짝 마른 후에 칠을 하라고 페인트 가게 사장이 조언해 주었기 망정이지, 물청소를 다시 할 뻔했다. 오래되어 드문드문 바닥이 팬 곳은 시멘트를 다시 발랐다.
하도 페인트를 시너(신나)와 잘 섞고 긴 막대기를 단 롤러에 묻혀 바닥에 칠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초짜들임에도 제법 폼 나게, 거침없이 쓱쓱 칠해 나갔다. 하도 페인팅은 바닥 방수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렇게 두세 시간 작업하다 보니 페인트 2통에 60평 하도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나머지 1통은 방을 만들기로 한 10평에 쓰려고 남겨 두었다.
“형님! 에폭시 작업 쉽네요!”
“그러게, 별거 아니네!
이튿날 보니까 페인트가 잘 말라 있다. 하도 작업 경험이 생기니 상도 작업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긴다. 승환과 나는 빨간 목장갑을 다시 끼고 의기양양하게 상도 페인팅에 들어갔다.
상도용 페인트는 투명 에폭시가 들어 있는 큰 통 하나에 경화제가 담긴 작은 통 2개가 딸려 있는데, 용법을 보면 ‘에폭시에 경화제를 잘 섞어서 사용하라’고 되어 있다. 우리는 상도 페인트 두 통을 뜯어내 그 위에 경화제를 붓고, 나무 막대기를 사용하여 막걸리 젓듯이 휘저었다.
그리고는 이번에도 거침없이 칠해 나갔다. 페인트양도 충분하니 두껍게 칠하자며 오늘 2통을 바르고 내일 한 번 더 바르자고 하였다. 역시나 이것도 두세 시간 작업하니 마무리된다. 끈적거리는 바닥에 마스크를 벗으니 냄새까지 한층 더해서, 더는 창고 안에 있을 수가 없다.
“형님! 우리 이제부터 에폭시 아르바이트 좀 할까요?”
“그럴까? 제주에서 아르바이트나 하자!”
여유롭게 웃으며 우리는 창고를 빠져나왔다. 밤새 잘 말라 있을 바닥을 상상하며 나는 이후의 작업을 생각했다. 가구 배치, 액자 전시 등 아직 할 일이 쌓여 있다. 다음 날 창고에 가보니,
“어! 아직 안 말랐네요!”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마를 테지.”
24시간이면 마른다는 말과는 달리, 걸으면 신발 바닥에서 쩍쩍 소리가 나고 끈적거리는 데에다 발자국까지 생긴다. 더 기다려 보자. 나는 이튿날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스마트폰 사진 강의가 있어 서울에 갔다가 이틀이 지나 제주로 돌아왔다.
“승환아! 그동안 바닥 잘 말랐어?”
“아뇨. 이상한데요? 그 상태 그대로인데요.”
이상하다. 그리고 수상하다. 4일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바닥을 디디면 여전히 신발이 쩍쩍, 끈적거린다. 무언가 잘못된 느낌이다. ‘에폭시 상도 페인트가 잘 안 말라요.’ ‘네이버 지식’에서 이렇게 검색해 보니, 같은 질문이 수두룩하다. 답변도 다양하다. ‘시멘트 미장 다시 하세요‘, ’경화제를 잘 안 섞었네요‘, ’신나를 발라 보세요‘, ’평생 안 마릅니다‘, 등등. 참으로 난감하다.
종합해 보건대, 경화제를 제대로 안 섞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투명 에폭시와 경화제를 기계 믹서기로 잘 섞는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막대기로 막걸리 젓듯이 대충 휘젓고 말았으니. 아무튼, 큰일이다. 10월 말에는 ‘문화예술창고-몬딱’을 오픈해야 하는데, 일이 꼬여 간다. 에폭시 작업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구나!
나는 ‘네이버 지식’에서 ‘신나를 바르라’는 답변을 해결책으로 선택했다. 시험 삼아 바닥 한 부분에 시너(신나)를 발라 놓고 이튿날 살펴보니 잘 마른 듯한 느낌이다. 마침 승환은 아트 상품을 가지고 이중섭거리로 생업을 나가고 나 혼자였다. 나는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냄새 독한 신나를 신나게 발랐다. 내일이면 다 마르리!
아침에 보니, 웬걸, 이게 더 끈적거린다. 시너 작업도 실패다. 10여 일째 이 문제로 골머리가 아프다. 승환은 내게 말은 못 하지만, ‘형님 왜 그러셨어요?’ 하는 눈치다.
승환과 나는 마지막 방법으로 에폭시에 경화제를 잘 섞어 다시 발라 보기로 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바닥 시멘트 미장을 해야 하는 정말 큰일이 생긴다. 기계 믹서가 없으니까 승환은 전동 드릴에다 구부린 철사를 달아서 맥가이버식 믹서를 만들었다.
“형님, 한 시간 정도 돌려 섞죠!”“
그래, 앉아서 충분히 섞자!”
우리는 농담 반 진단 반 웃으며 말을 건넸다. 이번에는 에폭시와 경화제를 꼼꼼히 잘 섞었다. 승환은 혼자 바르겠다며 나더러 쉬라고 한다. 그동안 나의 칠 솜씨가 미덥지 않았나 보다. 아니면 나의 시너 작업을 무척 수고롭게 생각해서였을까?
승환은 페인트통에 롤러를 담갔다가 꺼내기를 반복하며 바닥에 칠을 한다. 그런데 시작한 지 불과 몇 분도 채 안 되어 큰 목소리로 다급하게 외친다.
“어? 페인트 통이 다 굳어버리네요!”
‘이건 또 뭐지?’ 페인트통에 가득 차 있는 에폭시가 흰 연기까지 내며 굳어 가고 있다. 우리는 부랴부랴 통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철통이 아주 뜨겁다. 10분도 안 되어 비싼 에폭시가 다 굳어 버렸다. 10평도 못 칠했는데 말이다. 이번에는 경화제를 너무 잘 섞은 나머지 에폭시가 통 안에서부터 너무 빠르게 경화되어 가는 것이다.
일단 작업을 중단했다. 하지만 성공 가능성을 엿보았다. 통 안에서 굳어 갈 정도면 바닥에 칠해도 마땅히 잘 굳지 않겠는가? 우리는 조금이나마 칠해 놓은 곳이 어찌 되나 한번 두고 보기로 하고, 또 내일을 기다렸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승환에게서 카톡이 온다.
“잘 말랐어요!”
서둘러 창고로 가 확인해 보니, 어제 바른 부분이 꼬들꼬들 잘 말라 있다. 아, 이제 답을 얻었다. 에폭시와 경화제가 잘 안 섞여도 문제, 지나치게 잘 섞여도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에폭시 작업이 어느새 2주를 훌쩍 넘긴다. 우리는 성공을 위한 마지막 작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에폭시와 경화제를 잘 섞고, 승환은 칠하고 나는 페인트가 굳지 않도록 막대기로 계속 저어 주기로 했다. 그렇게 승환이 칠하는 구역마다 나는 졸졸 따라가며 보조 작업을 하였다.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을 마무리하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걸어 보니 신발이 전혀 달라붙지 않는다. 오래된 창고 바닥 질감이 반짝반짝 살아나고, 조명발에 더욱 빛이 난다. 힘들었지만 우리는 성공했다. 이제 전문가가 다 된 기분이다.
“드디어 에폭시와의 전쟁에서 우리가 승리했네요!”
“그래, 우리 진짜로 에폭시 아르바이트 나가자!”
우리의 에폭시 작업은 우여곡절 속에 막을 내렸다. 내 인생 제주에 와서 새삼 많은 것을 배운다. 그사이 창고 한쪽과 주차장에는 틈틈이 주어 오고 기증받고 사다 날린 다양한 폐품과 중고물품이 쌓여 있다. 이제는 이것들을 이용하여 창고를 꾸며 나갈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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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김민수
도서 '쉽게 스마트폰 예술사진 잘 찍는 법' 출간 작가 / 스마트폰 사진 잘 찍는 법 강의 / 아티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