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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Oct 24. 2017

13화: 주문대로 이루어지는 마법 창고

서귀포 문화예술창고 '몬딱'

#1. 경운기트럭 창고에 오다          


3년 전 제주도에서 검은 소(흑우)를 촬영하러 다니던 중, 중산간 도로를 여유 있게 달리고 있는 이색적인 트럭 하나를 만났다. 네 바퀴에, 박스형 운전석을 갖춘 데다, 앞에는 경운기 엔진을 얹어 놓고 뒤에는 경운기 화물칸을 달았다.


고향이 시골이라 경운기는 어렸을 적부터 많이 보았지만, 경운기를 개조한 트럭은 처음 보았다. 이것을 경운기라고 해야 할지, 작은 트럭이라고 해야 할지, 알쏭달쏭하다. 번호판도 없는 경운기트럭은 제주도의 시골길에서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특히 서귀포의 감귤밭에서 자주 보는데, 감귤 농사에 매우 유용하게 쓰인다. 감귤을 실어 나르고, 농약을 치는 데에도 쓰이는 다목적 트럭이다. 실은 나도 꽤 이색적인 트럭 하나를 가지고 있다. 푸드트럭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중고 트럭을 합법적으로 개조한 것인데, 나는 이것을 ‘갤러리트럭’이라 부르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실용적으로 개조된 경운기트럭을 보니 부쩍 호기심이 생긴다.     


감귤 창고를 ‘문화예술창고-몬딱’으로 탈바꿈시켜 가면서 나는 경운기트럭을 꼭 전시해 보려고 마음먹었다. 이것을 전시하고자 하는 데에는 다른 의미도 있다. 농촌에 경운기가 보급되면서 소는 ‘일소’에서 ‘식용 소’로 바뀌게 되는데, 경운기는 현대사에서 제주흑우를 쇠퇴시킨 중요한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대체 이걸 어디에서 구해오지?’   

  

나는 마음속으로 주문을 잘한다. 그러면 곧잘 그 주문이 이루어진다. 승환은 나의 이런 주문 능력에 놀라, 창고에 책상 하나를 놓고 주술사가 되는 게 어떻겠는가 하고 농담을 건넨다. 난 긍정의 힘을 믿고 산다. 믿으면 이루어진다.  

   

저 집 뒤에 경운기트럭이 많네요!”     


모슬포로 일 보러 가는 길에 조수석에 앉아 있던 승환이 말했다. 거기에는 항상 집 앞에 경운기트럭 2대가 놓여 있었는데, 실은 그곳을 지날 때마다 주문을 걸었었다. 그런데 오늘은 집 뒤편으로 몇 대가 더 보이는 것이 아닌가. 나는 다시 주문을 걸었다.  

   

내일이면 우리 주차장에 들어와 있을 거야!’     


집주인이 없어 보기만 하고 되돌아 나왔다. 다음 날 장시봉 선생을 만나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함께 가 보자며 선뜻 동행하여 주신다. 집주인을 만나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전시용으로 쓸 것이고, 굴러가지 않아도 되니, 딱 한 대만 고철 값으로 내게 팔아 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알고 보니 집주인은 젊었을 때부터 경운기트럭을 제작해 온 공업사 사장이다. 지금 이곳에 있는 경운기트럭은 누가 수리해 달라고 맡겨 놓은 것들이라고 한다. 요즘은 부품 구하기도 어렵고 제작이 불법으로 되어 있어, 더 이상 만들지는 않지만 고쳐 주기는 한단다. 그래서 팔 수도 없다고 한다.  

    

내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니, 근처 고철상에 폐차가 한 대 들어와 있는데 그걸 사가면 어쩌겠냐고 정보를 준다. 그리고 전화를 넣어 아직 있는지 확인하고는 그곳까지 함께 가 준다.   

  


고철상에서 만난 트럭은 경운기 엔진이 아니라 자동차 엔진을 달고 있었다. 아쉽지만 일단 이것이라도 사야겠다는 생각으로 가격을 물었더니 고철 값이라는 금액치고는 생각보다 비쌌다. 나는 견인비라도 빼 달라며 가격을 조금 깎고 견인차를 불러서 창고로 옮겼다.

   


진짜로 오늘 경운기트럭이 왔네요!”  

  

승환은 또 한 번 놀란다. 때맞춰 고등학교 친구들이 보내 준 창고 오픈 축하금으로 경운기트럭을 사들이고, 남은 것으로는 오디오 기기와 업소용 청소기를 주문했다. 고마운 친구들이다.   

  

‘문화예술창고-몬딱’ 오픈을 이제 며칠 앞두고 승환과 나는 경운기트럭을 틈틈이 튜닝하고 있다. 녹이 슨 부분은 그라인더로 갈고 페인트로 다시 색칠하여, 창고 옆에 번듯하게 전시할 계획이다.    


 

#2. 까미창고에 오다     


경운기트럭을 들여오고 나서 며칠 후, 창고에 강아지 한 마리가 더 들어왔다. 영민이 카톡으로 강아지 사진 한 장을 보내고는 전화로 알린다. 강아지 한 마리가 이틀째 쓰레기장에 있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형님 이걸 우짜죠개 밥그릇도 여기 있는 걸 보니 누가 버리고 갔네요.”

어쩌긴가져오렴!”     



나는 바로 내게 갖다 달라고 했다. 강아지를 쓰레기장에 버리다니 세상이 참 그렇다. 사진 속 강아지는 까맣다. 털빛이 내가 특히 좋아하는 검은색이어서 마음에 든다. 창고에서 ‘제주흑우’는 키울 수 없지만, 검은 개 하나는 꼭 키우고 싶었던 차였다.     


드디어 창고에 검은 강아지 한 마리가 도착했다. 이름이 바로 지어졌다. 검은색이고 암컷이니 ‘까미‘로 했다. 강아지 식구가 늘어 창고는 개 소리에 정신이 없다. 강아지 세 마리가 짖어대고, 다투고, 뛰놀며, 창고 마당을 누비고 다닌다. 태어난지 얼마 안된 까미는 체구는 작아도 용감무쌍하다. 세미 세콤과 2대 1로 붙어도 눌리지 않고 야무지게 짖어댄다. 가슴에 있는 흰 털은 마치 반달곰 새끼 같다. 턱 밑의 조그만 흰 수염은 내 수염과도 비슷해 보이는 것이 자꾸만 정이 간다.   


  

갤러리 공간 꾸미기 작업에 이어, 지금 창고는 승환과 나의 작업실 겸 내가 기거할 방을 만드는 공사가 연일이다. ‘문화예술창고-몬딱’ 오픈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막판 대공사가 한창이다. 아직 할 일이 태산 같고 오픈식 준비도 걱정되지만 나는 긍정의 힘을 믿는다.     


<다음연재>          




'제주 문화예술창고 몬딱' 밴드로 초대합니다.

https://band.us/n/aaaav4Mctcg0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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