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감산 문화예술창고 '몬딱'
사실 창고의 가장 큰 문제는 화장실이었다. 마을 감귤창고로 사용하던 곳으로 본래 화장실이 없는 건물이었다. 이제 창고는 내가 기거할 곳이자, 문화예술 공간으로서 손님들도 방문할 곳이 되어 화장실을 꼭 갖추어야만 한다.
화장실은 새로 만들면 된다. 하지만 이것이 제주에서는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뀐 법에 의하면, 화장실은 반드시 땅 밑의 오수관에 연결하게 되어 있다. 예전에는 땅속에 정화조를 묻는 방식으로도 해결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관할 관청에 신고하고 오수관에 연결해야만 한다.
창고는 일주도로와 가까운 편이어서 화장실을 만드는 데 비용이 크게 문제가 되리라고는 애초에 생각하지 못했다. 석 달 전쯤 시청에서 확인해보니 창고와 오수관까지는 97m였다. 그런데 전문업체에 오수관 연결 비용을 알아보니 깜짝 놀랄 만한 견적이 나온다. 대략 4~5천만 원이란다. 배보다 배꼽이 크겠다!
“제주도에서 땅 살 때는 오수관 위치를 잘 살펴야 합니다.”
제주 사람들의 말이다. 나중에 집을 짓다가 이 문제가 심각하게 떠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오수관 하나를 연결하는데 건물을 임차하는 것보다 더 큰 비용이 든다니, 화장실을 어떻게 해야 할지 큰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70평짜리 창고에 내가 기거할 방 5평, 승환과 나의 공동 작업실 5평을 만들기로 계획했다. 60평은 열린 문화예술 공간이고, 우리는 되도록 작은 공간을 사용하기로 했다.
나는 이 작업을 승민과 성하에게 부탁했다. 승민은 제주 삼양에서 펜션을 운영하면서 자신의 전공인 건축 기술을 살려 카페나 펜션 인테리어 일을 하고 있다. 중고시장에서 그가 무료로 내놓은 테이블 하나를 얻어 오면서 인연이 시작되었다. 뒤에 장작 난로도 얻었고, 그와 가깝게 지내는 성하도 그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동식 화장실을 만드세요!”
“행사장에서 많이 쓰는 것인데 요즘 잘 만들어요.”
아, 마치 솔로몬 지혜 같은 해결책이다. 이동식 화장실을 구해서 창고 바깥에 놔두면 된다는 것이다. 나는 조금 불편하겠지만 손님들은 편하게 사용할 수 있겠다. 그래, 그걸로 하자! 마침 고향을 찾은 창고 주인인 교수께 이야기를 드렸다. 적은 비용으로 화장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노라고.
“화장실은 제가 해 드리죠.”
선뜻 화장실 제작 비용을 대 주시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문화예술창고의 기능이 당신의 고향 감산 마을을 위해서도 잘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하신다. 너무나 감사하다. 이동식 화장실 제작비도 수백만 원이 드는데 이걸 흔쾌히 해 주신다니, 그 결정에 그가 바로 내게는 솔로몬이다.
화장실 제작은 서울에 의뢰했다. 2.4m×2m 크기에 좌식과 입식 변기를 하나씩 갖춘 것으로 깔끔하게 디자인된 것으로 주문했다. 제작과 배송 시간을 합쳐 10여 일 걸린다고 한다. 창고 오픈을 며칠 앞두고 시간이 걱정이다.
“화장실 언제 와?”
우리는 매일 서로 묻는다. 그동안 우리는 창고에서 작업할 때는 안덕계곡 입구의 공중 화장실을 차로 다녀야 했다. 솔로몬의 화장실은 오픈 3일 전에 도착했다. 큰 화물 트럭에서 다시 지게차로 옮겨 타고는 위풍도 당당하게 다가와 창고 한쪽에 잘 자리 잡았다. 이제 수도 배관과 전기 연결만이 남아 있다.
그간 창고 안은 계속되는 작업으로 인해 아수라장이 되었다. 창고 밖은 밖대로 앞 사용자들이 남겨 놓고 간 자재들과 폐기물 따위가 산적해 있다. 고철은 고물상으로, 폐기물은 잘 분류해서 폐기물 처리장으로 가져가야 한다.
승민, 성하, 승환, 나 4명은 매일 아침 7시경에 모여 함께 아침밥을 먹고 쉴 새 없이 일한다. 승민과 성하는 환상의 콤비다. 승민에게는 별명이 생겼다. 제주 스티브 잡스다. 못 하는 것이 없고, 못 만드는 것이 없다.
오픈일 공연 무대를 준비해야겠다고 하니, 제재소에서 나무를 구해 오고, 전기 작업에 용접 기술까지 동원하여 무대를 만들어 낸다. 승민과 성하는 버려진 자재를 활용하여 무언가를 뚝딱 잘도 만들어 낸다. 아이디어가 참 좋다. 승환은 묵묵히 열심이다. 오픈을 불과 3일 앞둔 지금도 공사는 계속되고 있지만, 이들이 있어 걱정은 없다.
공사가 한창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제주에서 알게 된, 밴드 회원 김영식 소장님이 애써 다녀가신다. 오픈식 때 출장이 잡혀 참석하지 못하신다며 후원금까지 주고 가신다. 그리고 멀리서 조연옥 님이 배 한 상자를 보내주고, 김현화 님이 오픈 축하금을 보내준다. 모두에게 참으로 감사하다.
우리는 오늘도 ‘문화예술창고-몬딱’ 오픈 준비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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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김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