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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 클레어 Feb 06. 2024

풍금소리와 명세서

우리 삶을 질시하는 오합지졸, 그 고난들을 향한 명징한 한 마디, 용기

본글은 작년(2023년) 연초 썼던 에세이로,

직장일로 알게 된 분 중 2000명 넘는 인재분들에게 공유했던 글입니다 :)

본글의 추신글인 100만 부 책 vs 글쓰기 고통 총량 도 함께 보시면 좋습니다 

댓글도 함께 보시면 유익합니다 



진정한 용기에
대적할 만한 마법이 있겠느냐?
마법사들이 내게서
행운을 빼앗아 갈 수 있을지는 몰라도
노력과 용기를 빼앗아 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ㅡ <돈키호테> 중 ㅡ



엔틱 한 난로에 아늑한 모닥불이 피워진 거실. 오래된 카펫에서는 묵은 향기가 정겹게 귀를 간질거리고,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도 맹수처럼 달려들지 못할 묵직한 문지기가 든든히 지켜주는 곳. 폭설이라도 오는 날이면, 이 따뜻한 공간은 모든 적수를 무찌른 자의 달콤한 휴식처럼 전의가 배가 된다. 소파에 누워 누군가 잔잔히 풀어내는 풍금소리라도 들릴라치면 전리품을 흔들어 대는 어린아이 마냥 웃음이 만면에 가득하다. 어디에선가 한번 즈음은 본듯한 정겨운 풍경. 가끔 내가 상상하며 그렸던 안착한 노년의 이미지다. 하지만 이 아늑한 상상은 이내 우편 배달부가 전해주는 각종 명세서와 세상 소식들 속에 속절없이 현실, 리얼 다큐멘터리로 바뀌곤 한다. 때론 야속하리만치 속절없이 진짜 현실적으로.   





얼마 전 오랜 죽마고우의 소식이 그랬다. 나는 한번 친구를 사귀면 깊고 오래가는 것 같다. 지금도 초등학교 3학년, 6학년,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등등 족히 20년에서 길게는 40년을 알고 지낸 친구들과 가끔 만나고 밥도 먹고 소식을 주고 받는다. 그 옛날 백지 같이 철없던 시절을 함께 났던 친구들. 선후배들. 오랜 세월이 지나 그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런 나의 향수 어린 그리움에 다정히 답을 내미는 오랜 내 인생의 동행자들.  



작년, 그러니깐 2022년 연말 미국에서 살고 있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친구 A에게 연락이 왔다. 12월에 한국에 급하게 귀국할 예정이란다. 그 친구는 작년 여름에도 잠깐 한국에 나와서 코엑스 근처에서 함께 밥 먹고 쇼핑도 했던 터라, 무슨 일일까 뒤엣 말이 궁금했다. 1남 2녀의 장녀인 그 친구. 조심스럽게 전한 소식은, 자신의 여동생이 자궁암에 걸려 자궁 전체를 드러내는 큰 수술을 받게 될 거란다. 씩씩하게 담담히 현실을 타자 치듯 카톡을 빌어 눌러 전하는 친구. 외국인과 결혼해서 미국에서 살고 있는 아메리칸 드리머 같지만, 사실 그간 마음 고생이 많았던 친구다. 남동생이 오래전 싱글대디로 양육하던 딸을 자기 호적으로 입양하고, 남동생은 새로 결혼해 두 자녀를 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두 자녀를 둔 다른 여동생이 갑작스럽게 암진단을 받은 것이다. 초등학교 때 친구집에 가면 가끔 봤던 두 동생들이기에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친구의 어머니는 지금도 나를 알고 내 소식을 묻는다 하신다. 친구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그렇게 정신없이 오전이 흘렀다. 숨을 고르고 친구와 친구 어머니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찾아 오래된 사진들을 훑어봤다. 내가 나이 들듯 늘 어릴 것만 같던 친구의 남동생, 여동생도 못 본 지 수십 년 만에 중년의 부모가 되어 있었다. 뽀얗게 이쁘기만 했던 친구의 여동생 Y. 숨이 답답하게 묶여오며 창문밖의 매서운 추위가 한기처럼 옆에 있는 듯하다.



작년 여름 몇 년 만에 한국에 온 친구에게서 뭔지 모를 고단한 미소, 여유 속에 눌러진 내밀한 고뇌가 느껴져 못내 마음이 쓰였던 나. 할인매장에서 친구에게 어울릴 원피스 두 벌을 사고 어머니 갖다 드리라고 요즘 핫하다던 냉동떡 세트와 음식 몇 가지를 사서 친구 손에 들렸다. 돈 많이 든다고 손사래를 치는 친구에게, 나 요즘 돈 잘 번다, 이 정도는 할 수 있다며 장난스레 허세를 부렸다. 친구가 미국에 돌아가기 며칠전엔 봉투에 50만원을 넣어 몰래 찔러 주었다. 우리가 우정에 기대어 살아온 세월만큼, 그 친구의 인생이 꽃길 가득 탄탄대로이기를 은근히 바랬는지 모른다. 그랬기에 현실이 모아다 준 친구의 소식들이, 왠지 과다청구된 명세서인 것처럼 서운하고 억울한 마음마저 든다. 착한 친구, 인생을 열심히 산 친구인데. 그 친구만일까? 너무도 모범적인 고등학교 아들이 하루아침에 학폭에 연루되어 피해자, 가해자로 나뉘는 동창들 소식도 있고, 벌써부터 몸이 여기저기 아파 병원을 전전하는 친구들 소식도 간간히 전해진다.



반면에 일찍부터 금융권에 취업해서 억대 연봉자로 집과 땅, 주식 등을 잘 갖추고 필라테스와 헬스에 빠져사는 고등학교 동창들도 있다. 이 친구들과도 작년 12월에 종로에서 만났는데, 아직도 고등학생 같은 명랑함과 극 동안의 외모가 미소를 자아낸다. 하지만 이 친구들도 깊이 들여다 보면 다들 고민이 있다. 아들이 공부보다 운동에 빠져 체육특기생으로 빠져 뒷바라지에 힘이 지난한 친구, 결혼해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었지만 승진이 늦어지는 남편과 그에 비해 고속승진으로 은행의 높은 자리를 꿰차고 있는 친구. 이 친구는 실은 자신이 다른 친구들 남편 소식을 들을 때면 서운함과 열등감이 느껴지는 듯했다. 한 번은 자기 남편이 실력도 좋고 성실한데, 그에 비해 승진과 보상이 덜한 것에 대한, 남모르는 가슴앓이를 토로하기도 했다. 동창모임에서는 드러내지 못 했던 그들 웃음뒤에 묻혀있는 현실의 명세서들, 그들 역시 한겨울 추위를 피해가지는 못 하는 것 같다.


 



그들만이랴. 나 역시 풍금소리와 명세서를 오가는 삶을 살고 있다. 재작년 여름 뇌경색으로 급하게 병원 응급실을 가셨던 어머니. 다행히 초기에 빨리 병원에 가서 왼쪽 다리만 살짝 마비가 왔고, 나와 언니들이 번갈아 24시간 간병태세로 1년 가까이 재활을 해서 지금은 두 다리 모두 잘 걸으신다. 작년 초에도 어머니는 그 컨디션에 심장 수술-스텐스가 안돼 관상동맥우회술을 받았던-까지 받으셔서 우리 7남매는 또 한차례 가슴을 쓸어 내려야 했다. 게다가 어머니는 저번주에는 당뇨로 한쪽 발가락 끝을 절단해야 하는 수술을 권유받기도 했다. 80세 어머니의 노년이 그저 모닥불 옆 풍금소리로 안착할 것이라고 고집하진 않았지만, 그분이 살아온 삶이 또 현실이 꼬장꼬장 또 얄미우리만치 상세 기술된 명세서가 또 한 번 나의 숨을 가쁘게 했다.



그러나 또 그럼에도. 2022년 나는 직장에서 한 번 더 내 경력을 초과 갱신했고, 중요한 글로벌 프로젝트들을 성사하므로 좋은 커리어를 쌓아 인정을 받았다. 재작년 내가 어머니를 위해 사준 집은 집값 폭락 시즌임에도 그 사이 꽤 많이 올라 실거주지만 실속을 챙긴 듯하다. 또 로맨틱한 내 멋진 왕자 짝꿍님과 요즘 낭만적인 한때를 보내고 있다. 마치 연거푸 내 발걸음을 끌어내리려는 매서운 추위에 대해서, 모닥불 옆에서 문이 열릴까 겁나 도망쳐 쭈리고 있는 초조한 어린 애송이 따위가 아닌, 당당히 문을 열고 나가 소복이 쌓인 문 앞의 눈을 치우고, 더 나아가 배포 있게 눈사람도 만들어 놓고, 우리 집을 방문할 손님들을 위해서 눈밭에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워놓는 여유. 내가 내 인생에도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매서운 겨울과 폭설들을 맞는 내 식의 환영사다. 겨울을 피하려고 가슴 조리고 지레 걱정하기보다 닥칠 테면 닥쳐라. 인간의 존엄함과 고귀함은 눌리지 않는 용기와 담대함일 찐데, 배포 있게 맞으리라. 더없이 객기와 기개를 부려 본다.



그리고 내 오랜 친구들도 나와 같이 그들의 인생 명세서들에 그때마다 응전하고 있는 게 아닐까. 비록 그 전투가 때론 숨이 벅차게 차오르고 힘이 많이 들 수는 있어도, 승리를 기약하며 두려워하지 않고 마주하는 일대 격전. 삶은 여기저기 치열한 국지전과 전면적을 요구하지만, 인간이 맞닥뜨리는 고난과 고통들은, 적어도 내가 해석할 수 있고 용기 있게 대전할 수 있는 선택권이 나에게 있다는데 묘미가 있는 게 아닐까.  





올해 겨울은 예년보다 추운 날수가 더 많은 것 같다. 영하 19도까지 오르내리는 날씨에 출퇴근 대란을 걱정하기도 하고 잔뜩 몸을 웅크리게도 한다. 하지만 생각건대 내 유년시절, 지금보다 훨씬 더 추운 어느 겨울 폭설이 가득했던 날. 허리까지 차오른 눈 속을 헤치며 동네 친구들과 추운 줄도 모르고 썰매도 타고, 눈싸움도 신나게 하고 가끔은 모자 쓴 눈사람도 만들며 한바탕 즐거웠던 기억이 또렷하다. 그런데 왜 우리는 나이 들수록 그때의 단순한 기개와 건강한 용맹함을 잃어가는 것일까? 크고 작은 삶의 고난과 수고가 남겨준 겁박에, 마음이 지치고 용기보다는 적당히 내려앉아 쓸려가는 소극적인 삶으로 우회되곤 하는가. 용기. 커다란 추위도 놀이처럼 만만하게 볼 수 있는, 그러나 또 그 엄중함을 알기에 치열하게 씨름하는 실제적 헌신. 어쩜 우리에게 새로운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미 태고적부터 익혀온 용기를 소환해야 할 때가 아닐까.



몇 년에 걸친 코로나를 지나며 많은 자영업자들이 폐업을 하고 글로벌 경기의 부침과 고금리, 고물가 속에서 2023년을 맞았다. 올해 경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그러나 또 그럼에도. 우리는 이 겨울을 환영하자. 아니 이 겨울을 맞아 그간 놓쳐버린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며, 그렇게 즐거운 전의를 불태우자. 오히려 이 겨울이 전에 없이 아름다운 명세서를 선물코자 변장하고 찾아온 축복일 수도 있으리라. 인생의 위대한 해석자들은 혹한의 겨울도 근사한 축제로 만들 수 있다. 찬란한 금빛 축제의 해를 맞은 우리 모두를 위해 미리 축배를 건넨다.



                 



                                                                                                        새해를 열며, 청년 클레어

                                                                                                         








*명징하다1(明澄하다)  :  깨끗하고 맑다.

**명징하다2(明徵하다)  : 사실이나 증거로 분명히 하다.
















*그림, 사진 출처 : 핀터레스트(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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