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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 클레어 Oct 30. 2024

새로운 하루

새로운 출발, 재기, 도전, 인생 2막

소중한 독자님들 중에 혹여 공포/스릴러물(07화 [동화] 7. 마음숲 (2) 불 프라이팬)을 어려워하실 분들 계시죠?


그러실까봐, [연재 브런치북] 밑줄 긋는 브런치 생존기 중 03화 [연재 3] 퇴직후 브런치 책방에서 의 서두글을 발행합니다. 카테고리는 Letter 에세이 모음 매거진에 넣어 둘께요.


제가 좀 배려심이 있는 작가에요 :)










새로운 출발, 재기, 도전, 인생 2막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단어 중 유독 '처음' , '첫'이 들어가는 말을 좋아한다. 이 처음이란 말은 '다시' 또는 '한번 더'연상시키는 많은 단어들의 뿌리요, 우두머리 같기 때문이다.  



나는 새벽형 인간이다. 새벽에 대한 남다른 열의와 애정은 중학교 때 만난 위인들과의 추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버지, 알코올 중독과 가정 폭력으로 나와 우리 가족을 피폐하게 만들었던, 사랑과 증오가 혼재된 애증으로 점철된 고된 한 어른. 나의 아버지는 내가 중학교 1학년 봄, 막노동 공사장판 3층에서 발을 헛디뎌 속절없이 어쩜 허망하게 돌아가셨다. 그해 대통령선거에서 아버지가 염원했던 그 누군가의 낙선은 이내 한 남자의 발끝에 닿고 말았던 것인가. 술을 좋아했던지 아니면 술로 숨었던지, 그날도 아버지는 약주라 이름하던 그것을 들이키셨다. 그리고 늘 그렇듯 힘겨운 생계에 오르다, 균형을 잃으셨다. 아스라이 떨어지는 낙엽처럼 한 생명이 지구에 쿵 무너지는 순간, 삶이 내내 고달팠던, 내 아버지의 마지막 숨은 어떤 냄새와 색깔이었을까. 마지막까지 무엇을 숨구멍으로 몰아 쉬었을까. 치열하게 붙들고 싶었던 것, 애절하게 남기고 싶었던 것은 아니면 그냥 손 놓고 싶었던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마지막 숨은 모든 인간에게 많은 비밀을 남기기 마련인 듯, 그 어디에서도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한 남자에게 세상은 또 우주는 재기를 허락하지 않은 것인가? 누군가의 종말은 남은 누군가에겐 도리어 재기가 된 아이러니 했던 그해 봄. 세상은 혼미했고 내 내면의 뿌리는 자아의 갈등으로 불화했다.


한 소녀가 자신을 또 세상을 채 해석하기도 전에 봄은 왔다. 봄은 와버렸다. 마치 억지로 등 떠밀리듯, '아니라' 눈짓 지었으나 '그러하다' 손발은 어깃장을 내었고, 달리 또 반대방향으로 삶은 살아졌다.





그 무렵부터였을까. 집 책꽂이에 닳아진 듯 멀쩡한 책들이 눈에 들어왔던 것은 말이다. 9평 집에 어울리지 않게 꾸역꾸역 구획 지어진 궁상맞은 공간, 책상 그리고 책장. 싸구려 책장엔 동네 누구네 집에서 얻어왔을 책들이 적막하게 꽂혀 있었다. 그 활자의 세계에서, 위인이라 이름하는 사람들이 내 생애에 들어왔다. 다행이었다. 그들도 치이고 아프고 무너지고 슬펐다는 것이, 동시에 그들이 완전히 고꾸라지지 않고 견디고 도전하고 투쟁하며 성장하고 성숙해 갔다는 것이.


그들은 왠지 새벽을 닮은 것 같았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던, 그 새벽을 견디고 또 견디었던 강인했던 자 그리고 자, 바로 그들. 누군가의 생애를 글로 채운 그 공간에서, 내 좌절을 일렀고 나의 고통을 통곡했고 무너질 것 같은 나를 붙들어 매 두었다. 지독히 고독한 나와 놀아 달라고 나 좀 붙잡아 달라고 절규했다. 책 속으로 뛰어든 그 순간은, 탄식을 내어놓는 시간이었다. 세상 어디에도 기댈 수도, 목 놓아 울 수 없는, 그런 내 자아가 마음 놓고 무장 해제되는 공간. 책과의 교감은 현실을 도피할 수 있는, 현실의 냉혹함을 처단할 수 있는, 그 현실을 딛고 일어서는 응집된 용기의 발판이었다.


그 책 속의 내 동무들은 대부분 새벽을 사랑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새벽은, 내가 그들처럼 이기고 견디는 삶의 활로를 찾아내는 보물지도 같았다. 그렇게 30년 넘게 새벽을 더듬어 살았나 보다. 새벽은 이내 재기, 도전, 승리, 다시로 삶의 국면마다 나와 함께 했다.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암함을 찾게 되고,  
그러면 인내심이 떨어지고,
피로감을 버티지 못하면
승부 따위는 상관없는 지경에 이른다.   
ㅡ 드라마 <미생> 중 ㅡ



그리고 얼마 전 그 새벽에 은 닿음이 또 있었다.


'세상의 첫차를 운전하는 이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가끔 하루를 제일 먼저 시작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상상하며 되묻고 싶었다. 그날은 그 상상을 현실로 구현하게 된 날이었다.


저번주 월요일 새벽 5시.

온몸의 세포들이 위축되고 근심에 웅크리던 날, 평소처럼 콜택시를 불렀다.


새벽 5시인데도 수초도 안돼 택시의 콜이 잡혔다. 택시 기사님은 날이 새도록 밤이슬을 맞은 듯, 깨어있음이 한참 익숙한 듯, 상쾌하고 충천한 기상으로 승객인 나를 맞았다. 보통 이 시간대 택시 기사님들은 졸린 목소리에 부득이함을 차내에 가득 했었다. 그런데 이 날 만난 택시 기사님은 좀 남달랐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질문이 툭 튀어나왔다.


"평소에도 이렇게 일찍 나오세요? 이 시간대에도 택시 타는 사람들이 있나 봐요?"

"무슨 말씀, (주말이 끝나는 월요일) 새벽 1시, 2시에도 이 일대에 젊은 애들 겁나게 많아요"

"정말이요? 제가 모르는 밤의 세계가 있군요"

"어제도 (일요일) 새벽 1시~오전 8시까지 달려서 20만 원 벌었으니깐."


택시 기사님이 남다른 대목은 수입에서도 여실이 드러났다. 7시간에 20만 원이라. 하루종일 달려도 10만 원을 못 채웠다던 그 어느 날 누군가의 목소리와 오버랩이 되었다. 택시 기사님은 나의 리액션에 흥이 돋아던지 묻지 않은 자신의 서사를 속사포처럼 계속 이어갔다. 그는 젊은 날 직업군인이었고 38년간 복무하다 작년께 퇴역을 했다 한다. 올해 그의 나이는 63세이며, 그의 아내 곧 사모님은 58세 란다. 어제, 20만 원 번 도 오전 8시에 바로 귀가해서 사모님과 사교댄스를 고 돌아왔단다. 자신의 몸무게가 얼마인 줄 아느냐 묻더니, 답을 기다리지 않는 듯 재빨리 말을 이었다.


"가 지금도 운동을 4개나 해요. 탁구, 수영, 바이클 등등. 몸무게도 총각때와 똑같다니깐"


내가 대단하다고 환호에 가까운 호응을 보이자 뒷머리이지만 입꼬리가 승천한 미소가 느껴졌다. 그리고 이내 말을 이었다.


"짧은 인생 즐겁게 살아야죠!"


택시 기사님의 성공적인 재기, 그 인생 2막을 알리는 팡파르 같은 멘트, 그 앞에서 잠시 먹먹해졌다. 그는 직업군인으로서 인생을 잘 살아냈고, 이젠 인생 2막도 잘 살아낼 것 같구나, 안도와 응원의 단어가 내 내면 가득 부유했다. 동시에 30년도 훨씬 전 재기 불능으로 사라진 한 남자의 흔적, 아버지가 택시 안 공기 어딘가에 냄새로 떠다니는 것만 같았다. 너무도 화창해 야속했던 그 봄날에, 종말을 고했던 누군가의 싱그러운 어둠. 그리고 오늘, 어둡지만 생동하는 누군가의 새벽녘 재기와 도전은 이내 냄새로 혼재되는 듯했다.


순간 혼미해지려는 마음을 바로 털어냈다. 과거의 패착을 곱씹기보다 현재의 다시, 현재의 처음을 응시하기로 말이다. 그것이 누군가가 남겨준 처절한 아쉬움과 미련에 대한 건실한 유업이리라, 생각은 광속으로 달려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동시에 택시도 도착지에 멈춰 섰다. 회사 방향 중간지점에서 전철로 환승하기 위해, 택시에서 내리며, 의례히 하던 인사말에 평소보다 힘을 더 보태 목청을 높여 봤다.


"감사해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그래, 그 누군가에게 오늘은 좋은 날이 되어야 한다. 전날까지 쌓아 놓은 그 모든 날보다 더 좋은 날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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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사진 출처 : 핀터레스트(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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