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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 클레어 Oct 09. 2023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1)

어느 흙수저 장남의 꺾이지 않는 인생

난 가고 싶은 곳에 가기 위해 뛰었는데
그게 삶의 기회가 될 줄은 몰랐어요
- 영화 <포레스트 검프> 중 -   



             

우리 집안에서 조카 진국이의 외삼촌이자 내 친오빠 운남(저희 오빠의 가명)은 '행운의 사나이'로 통한다. 그러나 대놓고 행운의 사나이라 말하는 가족은 없었다. 그것은 운남 삼촌의 성품을 잘 아는 우리 가족들만의 함의를 담은 배려였다. 운남은 타인의 고통에 감각이 섬세하고 인정 어린 사람으로 불행도 존재하는 세상에서 행운엔 말을 아꼈다. 그러나 운남이 자신의 행운에 겸양으로 옷깃을 여밀수록 그의 수식어는 하나씩 늘어갔다. 그중에 하나가 일명 ‘마이다스의 손’이다. 최근 10년 전후로 그가 손대는 마다 잭팟이 터져 명함이 하나 더 늘어난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때이자 운남이 고등학교 때였다. 나의 시야에 흐를거리며 삐걱이는 그의 인생은 자주 벼랑 끝 대치 상태 같았다.


'저래서야 원 인간구실을 잘할 수 있을까?'

'자살로 삶이 꺾이면 어쩌나?'

'이상한 여자 만나 호구로 지내다 버림받진 않을까?'


그 시름의 이유 중 하나는 운남이 너무 착하고 너무 참고만 산다는 이다. 다혈질 아버지와 성인군자 같은 어머니 DNA 중 어머니 쪽 성향을 몰빵으로 받은 이 남자. 이 몰빵으로 받은 DNA는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워, 퀘스천(?)과 느낌표(!)를 넘나들며 보는 이들을 롤러코스터에 태우곤 했다. 적어도 나에겐 말이다. 30대 초반에 장가갈 때도 모아둔 돈이 거의 없어, 그의 아내이자 내겐 올케언니인 다정이 월세보증금 3000만원을 동원해야 했다. 이 현금 3000만원마저도 올케언니의 친언니 곧 처가에게 돈을 빌려서 신혼을 시작했다. 이 까마득해 보이는 흙수저 장남, 흙수저 장녀는 그 서두부터 답답증 고구마이지 않는가.     


그런 분들을 위해 운남의 현재를 말하며 서사를 시작하겠다. 너무 착해서 찌질했던 운남. 그는, 우리나라 명문대 서열 1위 S대 공대를 나온 지금은 의사인 아내 다정(올케언니 가명)의 남편이다. 그는 모두 들어가기 어렵다는 직장인 공사에 장기재직 중이며, 그 공사 경력직 입사 때는 준재벌집 아들이 아닌가 오해 받았던 묘령의 남자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서울 반포로 이사했고 나름 순자산 30~40억대 가장이다. 초등학교 3학년 총명한 아들은 영어를 잘하며 사회성이 두드러진다. 운남과 다정의 풀스토리를 속속들이 가장 잘 아는 나는 생각한다. 이 착한 부부에게 하늘에서 은혜의 마법이 지나간 듯하다고 말이다.      






운남. 그에게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세상 찌질한 날들이 있었다. 그 옛날 운남의 역사와 행적을 잘 아는 나로서는 그의 현재가 산전벽해와 같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는 나보다 5살 위이고 우리 어머니 인애(우리 어머니의 가명) 여사의 넷째 자녀이자, 첫아들 장남이다. 맞다, 그 아들을 낳기 위해서 우리 어머니는 산통을 세 번을 치러내야 했다. 네 번째에 이르러 아들을 낳은 우리 어머니는 며느리로서 입지를 아슬하게나마 거머쥐게 되었다. 운남은 날 때부터 효자 아들인셈이다.     


귀하디 귀한 장남, 우리 칠 남매 중 부모님과 집안 어르신의 기대주인 운남. 그러나 그는 성별상의 우월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핸디캡이 있었으니 흙수저 집안의 장남이라는 아득한 불상의 이름이다.      


운남이 자랐던 곳, 봉천동 산 81번지. 서울 끝자락의 이 산동네엔 무허가 주택들이 즐비했다. 동시에 스스럼 없이 달동네라 자평하는 순박한 사람들의 마을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 동네 사람들 누구도 ‘무허가 주택’이라는 위험한 뇌관을 대놓고 말하진 않았다. 수천 채, 수만 채가 될 수 있는 그런 집들이 봉천동 일대에는 수두룩 했기 때문이다. 딱히 자가 집이랄 순 없지만 '자기 집'이라 위신을 세워주는 아슬아슬한 집주인들. 끈질기게 좇아 다니는 가난을 응시하듯 그들의 집 소유권은 자기 엄포에 가까웠다. 다행히 산 꼭대기의 무허가 나무집, 천막집에 비해 산 중턱의 시멘트 벽돌집들은 꽤 그럴듯한 주택이긴 했다. 먼 훗날 재개발이 확정되고 보상을 받아낸 것을 보면, ‘무허가 주택’을 어른이고 아이도 대놓고 내뱉지 않았던 어떤 모의는 제 값을 톡톡히 한 것 같다.      



빽빽이 밀집되어 있는 집들 사이에서, 우리 집의 위상은 9평으로 이름 지어졌다. 내가 국민학교 저학년 때는 가끔 가정환경조사서를 작성해서 제출했다. 거기에는 집 평수를 쓰는 항목이 있었다. 그때 알았다. 사람의 집은 ‘평수’라는 개념이 있고, 그것으로 집 크기를 재기도 하고, 다른 집과 비교도 하고 심지어 인생의 서열 인간의 존엄마저 가늠되곤 한다는 사실을. 그것은 나이가 들수록 하나의 계급언어가 될 수 있음도 말이다.


9평의 아늑했던 내 고향집. 나는 그 집에서 태어났고 고등학교 1학년때까지 살았다. 적어도 집 평수를 적어냈던 국인학교 저학년 전까지는 나는 한 번도 그 집이 비좁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먼 훗날 알았다. 그 집에서 11명의 식구가 살았다는 내 얘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을 껌벅이며 놀라는 것을 보고, 내가 꽤 많이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살았다는 것을.


9평이지만 이래 봬도 방 세 칸에 마루와 부엌이 있었다. 마루와 부엌이 같은 말이라는 것과 세수하는 공간인 세면실은 이내 현관이라는 사실이 꽤 아쉽긴 했다. 즉 다른 집의 현관이라 일컫는 공간에서 우리는 신발을 신고 벗었고 동시에 그곳에서 세수를 하고 여름이면 목욕도 했다. 집에 개별 수도가 없었기에 양동이로 공동수도에 가서 물을 받아 채워놓는 것은 어른들 하루 일과였다. 겨울에는 그 물 중 일부를 연탄 아궁이나 곤로-가스레인지 전 세대 부엌 가열도구-에 올려 데웠다. 그 데워진 온수는 세수나 목욕 시 찬물과 조금씩 섞어서 썼다.      


겨울 온수 얘기하니깐 끔찍한 참사가 떠오른다. 겨울 어느 날, 언니가 출근하려고 세숫대야에 이제 막 데운 뜨거운 물을 쏟아부었다. 이내 찬물을 섞어 쓰려는 찰나 늦잠을 잤던지 작은 쥐 한 마리가 그만 그 뜨거운 물에 뛰어든 것이다. 그것은 순식간에 벌어진 참사였다. 그러나 가난과 불편, 결핍이 일상인 우리는 그 참사 앞에서 단발성 비명과 투정만 내지를 뿐 사고현장은 급하게 수습되었다. 우리는 쥐 한마리, 그 생명의 허망함을 공감해 주기에는 먹고 살기에 빠듯했다. 그 하루하루의 아침이 늘 전쟁 같았다.      





운남은 이 9평 집에 총망 받는 기대주로 무럭무럭 자라 갔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이자 나에게도 아버지인 김목수(아버지 가명)는 무렵부터였을까, 삶이 점점 버거워졌다. 술을 먹는 횟수가 많아지더니 조금씩 언성이 올라가고 나중에는 밥상을 뒤엎었다. 술만 마시면 인사불성이 되는 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어머니는 늦은 밤 때론 새벽까지 술 시중을 들어야 했다. 어떤 날은 그 어머니를 이유 없이 마구 때리기도 하고 말리는 언니들의 머리채를 잡고 그녀들도 마저 때렸다. 운남은 늘 말리는 입장을 고수하려 안간힘을 썼고 아버지를 때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참을성이 남다른 장남 운남도 한계상황이 온 것 같았다. 하루는 아버지와 맞붙은 것이다. 운남이 아버지 얼굴을 쳤는지 아니면 어버지아들의 따귀를 때렸는지는 가물거린다. 아버지그를 다시는 보지 않겠다 말한 것으로 미루어 운남이 단단히 잘못한  같았다. 당시 운남은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그 일 이후로 미친 사람마냥 길길이 날뛰는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과 가정폭력. 그는 급기야 부엌에 가서 식칼을 갖고 다 죽인다 소리쳤고 그때마다 온 가족은 이웃집이나 친척집으로 도망가 쪽잠에 밤을 설쳐야 했다.      


운남은 그리 오래지 않아 아버지와 담판을 지었다.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한 것이다. 정작 용서를 구해야 할 어른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는 예민한 사춘기 청소년. 운남은 무릎 꿇은 자세로 한 시간은 족히 넘게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그날도 술을 마셨고 다 필요 없다며 장남의 못내겨운 사죄를 받아주지 않았다. 가족들은 오빠가 무릎 꿇은 자세로 너무 오래 있었다는 것, 그 자리가 뜨거운 온돌방 바닥이라는걱정이 되었다. 어머니와 언니들이 오빠를 억지로 일으켜 세워서야 그날의 담판은 어정쩡하게 끝났다. 용서를 받았는지, 아니 누가 용서해야 마땅했지는 모르겠다. 또렷이 기억하는 것은 그날 운남의 발등은 심각한 화상을 입었고 그 흉터는 지금도 선명하다는 것이다.      


그때였던 것 같다. 운남은 총명하고 상당히 성실한 모범생이었는데, 공부만 하면 두통이 와서 책에서 점점 손을 놓기 시작한 것이. 운남의 묵혀 놓은 분노와 고통에 그의 몸이 반응을 시작하는 것 같았다. 그의 우울증과 신경쇠약증이 처음 발병한 것이다. 병원에서는 이 상태로는 신경쇠약이 더 심각해진다며 조치를 취하도록 푸시했다. 어머니는 없는 형편에 아주 값싸고 비좁은 단칸방을 구했다. 바로 운남 오빠의 월세집인 것이다. 남의 신경쇠약은 고등학교 내내 그를 괴롭혔다. 병원에서도 공부보다는 마음에 안정을 취하라는 처방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당연히 운남의 고등학교 내신 성적은 곤두박질을 치곤 했다.      


운남이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막노동판 공사장에서 술 마시고 일하다가 3층 현장에서 낙사해 돌아가셨다. 전라북도 임실에서 상경해 고달픈 서울살이를 해왔던 아들이자 가장이자 남편이었던 한 남자. 그날 공사장 3층 아래 우리의 아버지 김목수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는 아스라한 낙엽 같은 자기 생의 마지막 숨에 무슨 생각을 남겼을까. 운남은 아버지의 죽음에 가족 중 가장 많이 슬퍼했다. 먼 훗날 혼자서도 아버지 산소를 따로 찾아가곤 했다. 김목수의 사후에도 그의 인생을 돌이켜 헤아려 주고 가장 많이 슬퍼해주고 무덤을 가장 깊이 토닥여준 것은, 다행일까 그의 기대주였던 장남 운남이였던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를 상실한 고통과 슬픔, 막막함을 복기하고 충분히 애곡 하기엔 운남의 당시 삶은 잔인하게 무거웠고 정서는 여전히 불완전했다. 흙수저 운남의 인생에는 학교 내신성적 루저라는 족쇄마저 덩그러니 유산으로 남겨진 것 같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운남은 다시 집으로 들어왔고 학업에 열중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운남의 우울증과 신경쇠약은 가난처럼 하루아침에 나아질 수 없는 찰거머리 같았다.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그가 남긴 자손들 삶에는 질곡들이 애곡의 다른 이름인양 내내 끈질기게 좇아 다녔다. 운남이 고등학교 2학년 때 그의 담임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 그 선생님의 절대자를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ㅡ 다음 편 2회에서 계속 됩니다 






*곤로[일본어] konro [焜爐]  : 1. 화로의 하나. 흙이나 쇠붙이로 만드는데, 아래에 바람구멍을 내어 불이 잘 붙게 하였다. 2.석유나 전기 따위를 이용하는 취사용 도구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  연재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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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30대 청년의 ㅈㅅ예고 카톡  From.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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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스트 운남의 잭팟(1)

어느 흙수저 장남의 꺾이지 않는 인생  

발행된 글: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1) (brunch.co.kr)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2)

우주가 돕는 이 남자의 사는 법 : 통기타로 직장생활 평정한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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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이귀애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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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싱, 목욕탕과 인형놀이  feat. 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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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가 돕는 이 남자의 사는 법 : 보신탕으로 거머쥔 천사 아내 - 학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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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가 돕는 이 남자의 사는 법 : 보신탕으로 거머쥔 천사 아내 - 첫사랑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9)

우주가 돕는 이 남자의 사는 법 : 불운이 목돈 된 기묘한 불테크(불운테크)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10)

운남은 오늘도 절대자 임재연습 중




<포레스트 운남 잭팟>의 다음 목차들 (쓸 수 있을지는 고민 중입니다)  


00. 도둑놈 잡아 직장에서 갑으로 사는 남자

00. 나거만 과장과의 징검승부

00. 장인 장모의 1등 사윗감 등극 비법

00. 사내 최초 간 큰 육아 휴직남

00. 재테크, 퍼줄수록 들어오는 퍼줌 복리의 기적

00. 여동생의 말은 순종해야 산다

00. 중년 남편은 을이 더 좋아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과 연관된 청년 클레어 글

카프카의 < 변신 > (brunch.co.kr)

우리가 꾸는 꿈 (brunch.co.kr)

<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 (brunch.co.kr)











*그림,사진 출처 : 핀터레스트(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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