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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 클레어 Nov 04. 2023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6)

우주가 돕는 이 남자의 사는 법 : 보신탕으로 거머쥔 천사 아내 - 학벌

학벌 위주 사회
속앓이 하는 청춘들의 비애란?



천국의 열쇠


세상에는 두 개의 창문이 있다. 나의 눈으로 보는 창문과 너의 눈으로 보는 창문. 이 두 개의 창문은 너무도 거리가 멀어서 절대 만날 수 없었다. 동시에 절대로 만날 수 없는 두 개의 창문 때문에, 세상엔 미움과 분노, 오해, 편견, 시기와 질투, 다툼, 복수 등 온갖 악들이 그 사잇길로 스며들었다.


절대자께서는 인간들에게 이 두 개의 창문이 만날 수 있는 열쇠를 주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창문과 창문 사이의 먼 격차과 공간 사이에 빼곡히 채워진 독기 가득한 감정들은 이 사랑으로 불태워지며 증발되곤 한다. 이내 그 두 개의 창이 하나가 될 때, 우리 내면엔 천국이 임하며 세상은 태곳적 눈송이들로 새하얀 색이 오른다



창문 하나. 운남의 어느 겨울이야기


운남은 직장을 오갈 때면 불현듯 옛날 생각이 나곤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삼수를 해도 원하는 대학에 못 갔던 여러 해 겨울. 그렇다고 변변한 직장도 없어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던, 자신. 그 초라함은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끌어안으며, 벌레만도 못한 자신의 쓸모없음을 낙서하며, 그렇게 날마다 무너지는 자신과 씨름해야 했다. 그 시절 밤이 오는 것이 두려웠다, 잠을 잘 수 없는 불면의 밤을 견디기가 버거웠기 때문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슬펐다. 또깍또깍 출근하는 누군가의 구둣소리가, 탄탄한 운동화를 튕기며 쫑알거리는 학생들의 대화가, 부러우면서도 세상 가운데 자신을 소외시키는 차단막 같았다. 운남은 그 옛날 자신을 주저앉혔던 어둠이 다시 목을 조여 오는 것 같았다. 집에서도 투정 한번 내뱉지 못하는 성격인 운남. 유독 자신에게만은 허락되지 않을 것 같은  밝은 미래가 서러워 남몰래 눈물로 베개를 적시곤 했다. 그럴 때면 혼자 철야기도로, 산기도로 절대자 앞에 나아갔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고통을 토설하며 통곡의 기도는 길어지곤 했다.


그런 운남이기에 현재의 자신이 가끔 낯설었다. 어느새 어엿한 대졸자에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다닌다는 사실이 말이다. 공사에 다닌다고 하면 다들 번듯한 직장이라며 예의 호감 어린 시선을 보낸다. 그러나 운남은 사람들의 호감이 담고 있는 얕디 얕은 함의를 익히 알고 있다. '네가 좋은 직장 다닌다니깐..' 그들이 만들어 놓은 보이지 않는 차선 안에 들어가야 유지되는 인간들의 호감. 그런 조건부는 언제든 등을 돌릴 준비를 하는 비릿한 웃음이었다. 


전에 다녔던 봉천동 교회에서도 그랬다. 운남이 고등부 때 열심히 헌신하며 눈물로 함께 기도했던 따뜻한 공동체. 그러나 또 그런 공동체이건만 운남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동안 교회 나가는 게 불편했다. 그 교회는 고등부를 졸업하면 청년부로 올라가는데, 청년부 이름이 '대학부'였던 것이다. 숨이 턱 막혔다. 운남은 그해 대학에 낙방했고 그 후로도 두 번 더 대학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름 갖고 예민하게 그러냐 할 수 있지만, 인생이 대학에서 막혀버렸다 절망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은 쇄기 같은 절벽이고 낙오자란 죄패 같기 때문이다.


'대학부가 뭐람, 열의는 느껴지나 배려는 부족한 간판. 나는 태생적으로 간판이 후지다, 앞으로도 내내 그럴 것 같단 말이야'



열등감. 운남에게 전에 없이 열등감의 시험이 찾아온 것이다. 대학에 못 들어간 사람들은 왠지 믿음이 없는 것 같고, 그 자신이 꺼림칙함 없이 대학부에 다닌다 해도 왠지 신분을 속이는 것 같은 속상함이 따라다녔다. 당시동네교회에선 의례 헌금 낸 사람들 이름이 주보에 실리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 또한 힘든 시절 서로 돕고자 으싸으싸 힘을 모은다는 명목이었으리라, 애써 좋은 공동체임에도 그들이 놓친 무심한 약점들을 덮어주고 덮어주던 이들. 그런 대목에서 상처받는 이들은 태반이 세상에서 낙오자나 사회적 약자로 지칭되는 것 같았다. 실은 운남뿐 아니라 사소한 소외의 벽들 앞에서 속앓이 하는 청춘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그리고 이들, 자신이 부족하다 느끼는 이들은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하나, 둘 자리를 비우는 것으로 미안함을 대체하곤 다.


운남은 중학교 때까지 총명했지만 아버지의 알코올중독과 가정폭력으로 우울증과 신경쇠약이 찾아왔다. 그 때문에 고등학교 내내 공부 자체를 할 수가 없었다 한들, 그건 또 한번 신앙심 곧 믿음으로 승리하지 못한 실패 같았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그 교회 부목사님의 아들이 운남과 동갑이었는데, 그해 최고대(해당 학교 가명)에 당당히 합격한 것이다. 듣지 않으려 해도 들렸다.


"믿음으로 공부하더니 거봐 하나남이 도와주시잖아"


어느 권사님은 이렇게도 말했다.  


"상익 군(부목사님 아들 가명)은 어쩜 고등부 회장하면서 학교 공부도 잘해요? 믿음의 좋은 본이네요. 우리 아들이 이제 고등학교 2학년 되는데, 언제 한번 과외 좀 해주세요."


운남은 모태신앙은 아니나 뜨겁게 예수님을 만났건만 이 모든 상황들에 남몰래 마음이 무너졌다. 내 열등감이고 질투라 자책하고 회개해 보지만 대학부에 갈 때마다 이방인이 된 것만 같았다.


'대학을 못 나오면 사회에서도, 교회에서도 인정받기 어려운 것인가. 분명히 성경에서는 아니라고 배웠고 다들 아니라고 하는데, 왜 이 허들 경주에서 나는 삶이 턱턱 막히는 것일까. 믿음이 부족하고 인격이 부족해서인가.'


운남이 고등부 때, 화이트데이면 사탕이며 초콜릿을 주고 크리스마스땐 손장갑을 떠서 주던 자매들도 이젠 보기가 불편하다. 아니 그네들이 자신에게 보여준 호의는 이내 대입시즌과 더불어 바쁨이라는 허울 좋은 이유로 거리 두기가 자연스럽게 되었다. 인간들이 주는 호감, 인기란 상대적이며 평가적임을 교회인들 다르겠는가. 운남은 홀로 자초한 상처라며 누구도 탓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절대 같은 교회 안에서 호감에 도취되어 연애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다짐한다. 운남은 그렇게 대학부에서 조금씩 멀어져 갔다. 간신히 대예배를 드리며,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던 신앙생활을 돌아보며, 광야와 같은 날것으로 절대자와 독대하는 시간을 더욱 갖기 시작했다.


그즈음 운남의 방에는 신앙 위인전, 종교개혁, 십자군전쟁의 비극, 종교재판과 마녀사냥, 마틴 로이드 존스의 여러 책 등 나름 개혁적인 기조의 개념 있는 신앙서적들이 늘어갔다. 운남은 자신의 시야를 가득 채웠던 사람들을 잠시 밀어내며, 절대자인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는 믿음이란 무엇일까 치열하게 궁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성 프란체스코의 작은 불꽃들>이란 책을 읽던 중 한 대목에서 긴 여운을 반복해서 훑고 있었다.


성 프란체스코는 제자들과 함께 40일 금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하루를 남겨 놓은 39일째 되는 날 젊은 제자 하나가 맛있는 수프 냄새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한 숟가락을 입에 떠 넣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함께 금식을 하던 다른 제자들은 눈을 부릅뜨고 그 젊은 제자를 쏘아 보았습니다.

그 눈길 속에는 유혹에 넘어간 불쌍한 영혼을 향한 애처로움이 아니라 분노에 찬 정죄의 따가운 시선들이 가득했습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았던 제자들은 유혹에 넘어간 젊은 제자를 엄하게 꾸짖어주기를 바라며 스승, 프란체스코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프란체스코는 말없이 수저를 집어 들더니 젊은 제자가 먹었던 수프를 천천히 마저 떠먹기 시작했습니다. 경악의 눈길로 스승을 쳐다보고 있는 제자들을 향해 프란체스코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우리가 금식을 하며 기도를 드리는 것은 모두가 예수님의 인격을 닮고 그분의 성품을 본받아 서로가 서로를 참으며 사랑하며 아끼자는 것입니다. 저 젊은이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수프를 떠먹은 것은 큰 죄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를 정죄하고 배척하는 여러분들이야말로 지금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굶으면서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는 실컷 먹고 사랑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순간 한창 유행하던 책 한 권이 운남의 팔꿈치에 부딪힌다.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실까?> 1896년에 미국의 조합교회 목사인 챨스 먼로 쉘던이 쓴 오래된 기독교 소설이었다. 운남은 '그래 바로 이거야' 하며 한동안 그 책을 끼고 살았다. 운남은 예수님의 사랑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날마다 순간마다 이 말을 반복하는 습관이 생겼다.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실까?'


그렇게 군대에 입대하고 집이 안양으로 이사 가는 내내 운남의 광야훈련은 줄기차게 이어졌다.




창문 둘. 전남 전도사의 도시이야기


운남이 같은 직장 다니는 지인을 통해 소개받아 다니게 된 말씀교회. 엄마 인애가 멀리 서울까지 교회 다니기가 힘들다는 명분으로 용기 내어 문을 두드렸다. 교회 입구에 상당히 마른 남자 한분이 하회탈 같은 표정으로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느낌상 이 교회 전도사 같았다. 근데 혈색이 창백하니 다소 아파 보였다. 그렇게 새 가족 교육기간을 마치고 청년부 전체 모임에 갔을 때였다. 그 하회탈 전도사가 다가와 묻는다. "운남형제님이시죠? 저번에 얼핏 들으니깐. 기타를 칠 줄 안다고 하던데? 저희 기타 담당자가 개인 사정이 생겨 공석이에요. 혹시 도와주실 수 있으실까요?" 운남은 전도사님의 애처로운 간청에 망설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은 조용히 개인신앙을 다지고 싶다고, 운남은 자신의 바람을 차마 주장할 수 없었다. 그렇게 찬양인도자와 기타 연주자로 호흡을 맞추게 된 두 사람.


운남은 이전남(가명) 전도사와 친해지면서 그를 여러모로 알게 되었다. 전남 전도사는 깡시골 출신으로 대학도 한참 지방에서 나왔다. 수도권 대학에 갈 성적이었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전액장학금을 타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머니를 두고 객지에 나가 사는 게 아직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 무엇보다 몸이 약해서 매년 어머니가 보신탕이니 개소주 등 갖은 노력을 기울여야 그나마 체력이 유지되는 약골이었다.


그래서일까, 전남 전도사는 자주 도시살이가 몸서리치게 외롭고 두려웠다. 시골 교회 선후배들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도시교회에 전도사로 부임한 자신을 치켜세우며 부러워도 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이곳 도시 대형교회 교역자들 중에는 내놓라 하는 최상대나 해외대에 다닌 후 뒤늦게 신학대 나온 이들도 많았다. 어떤 교역자는 대기업 다니다 온 있었다. 게다가 성도들은 어떠한가. 시골에선 한 명도 못 봤던, 교수니 변호사, 의사도 수두룩하고 번듯한 대학교를 나와 너무도 화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자신은 고작 노래 잘하고 성실한 것 빼곤 이 도시에서 경쟁력이 없어 보였다. 게다가 자신의 아버지는 다니던 교회도 요즘은 안 다닐 뿐 아니라 어렸을 때는 폭력도 자주 휘둘렀던 사람이었다. 성도들에게 본이 되기는 커녕 숨겨야 하는 가정사가 부끄럽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매년 보신탕으로 몸보신 시켜준 시골 사는 어머니의 취향은 이곳에서는 말도 못 꺼낸다. 한 번은 교회 청년들과 식당에서 메뉴를 정하다 장난으로 "여름엔 보신탕을 한번 땡겨줘야 하는데" 얘기를 꺼냈다, 딱 부러진 청년부 자매가 대놓고 면박을 주는 것이었다.


"전도사님, 그런 미개하고 야만스런 식성을 농담이라도 말하면 어떡해요? 교회가 세상 가운데 빛과 소금이 되려면 사회참여를 적극적으로 해야 된다고 봐요. 동물보호, 환경보호, 비건 나아가 정치참여도요. 침묵하는 게 다가 아니에요. 그런 비겁한 회색지대에 있어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어요"


그러면서 자매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젓가락으로 김치찌개를 깔짝깔짝 거린다. 다른 사람들은 아랑곳 않고 쩝쩝 소리를 내며 신경질적으로 식사를 한다. 그 자매의 모든 것이 순간 거슬리며 역한 비위가 올라온다. 그러나 전남 전도사는 이내 자신의 신분을 도로 더듬으며 웃음  띈 얼굴로 묵묵히 밥을 먹었다. 밥을 먹어냈다.


때마침 함께 있던 운남은 대화의 소재를 바꾸느라 진땀을 빼며, 전남 전도사의 오늘 말씀이 얼마나 도전이 되는가를 오버스럽게 나눈다. 운남이 보기에도 그 당시 교회 안에선, 보신탕 먹는다고 하면 야만은 물론이거니와 전문 사역자로서 덕이 안 된다는 상식적 동의가 있는 듯도 보였다.


그  일이 있고 그 주 수요일. 운남은 주일 찬양 콘티 관련 의논드릴 내용이 있어 전남 전도사에게 전화를 드렸는데 안 받는다. 같은 신학대 다니는 전도사님도 오늘은 학교에서도 못 봤다 다. 운남은 회사 마치고 전도사님 자취방에 갔더니 열이 펄펄 끓고 있었다. 응급실이라도 데려가려는데 꿈쩍도 않았다. 전도사 월급에 병원비, 약값 아낀다며 한사코 병원은 안 간다고 고집이었다. 병원비 대준다니깐 더 안 된다고 쩍 뛴다. 그냥 며칠 있으면 낫는다고만 한다.


문득 전에 전도사님이 보신탕을 좋아하는 이유는 어머니가 생일 때마다 유일하게 챙겨준 보양식이라고 했던 기억이 났다. 타지에서 아프고 눈물 나는 고독한 사역자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그려지며, 운남은 눈물이 울컥 올라올 뻔했다. 운남은 잠깐 기다리라며 차를 끌고 근처 잘 하는 보신탕 집을 검색하며 찾아다녔다. 다행히 아직 문 연 식당이 있었다. 보신탕을 포장해서 전남전도사의 자취방으로 갖고 갔다. 운남은 넉살 좋은 미소를 띠며, 교회 공동체엔 비밀이라며 사실 나도 보신탕 좋아한다며 포장해 온 보신탕을 펼쳐 내놓았다. 운남은 그렇게 무려 세 번이나 전남전도사에게 보신탕을 대접했다. 그것은 그냥 보신탕도, 그냥 밥도 아니었다. 자신이 이해받지 못하고 수용되지 않는 차가운 도시가 내미는 사과와 격려의 온도였다. 지방대 나온 비실거리는 보신탕이나 좋아하는 무식한 전도사라는 자기 비하적 자책에 대한 사과 말이다. 성도들 하소연만 들어주었지 자기 속얘기를 하기엔 아직 서툰 순박하고 착한 성직자. 전남 전도사는 그간 운남의 살아온 삶의 여정과 가정형편을 알기에 못 이기는 척 보신탕을 먹었다. 힘 꺾인 몸을 일으키며, 목에 막혔던 체증을 게우듯 정성스러운 보양식으로 눈물을 달랬다.


먼 훗날 운남이 전도사에게 보신탕 3번 사주고 지금의 올케인 다정을 소개 받았다 말했을 때, 의경은 생각했다. 근데 사실 운남이 보신탕을 좋아할리는 없다고 말이다. 의경이 국민학교 저학년 때, 집안에는 아이들 동심을 깡그리 파괴하는 만행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목수가 아이들이 애지중지 기르던 바둑이를 뒷산에서 이웃 아저씨들과 잡아먹은 것이다. 맞다, 보신탕으로 먹은 것이다. 우리 집을 지나가던 술 취한 낯 모르는 아저씨가 바둑이가 짖는 소리에 발길질을 해서 그만 바둑이가 죽고 만 것이 발단이었다. 우리들은 바둑이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는데, 그다음 날 바둑이 장례식은 커녕 게걸스러운 어른들의 술안주로 전락한 것이다. 그때 의경과 바로 손윗 언니는 뒷산에서 가죽 타는 냄새를 풍기며 거나하게 소주에 취한 무식한 남자들에 대해 분개했다. 그네들에 의해 짓밟힌 가족 같은 진돗개 바둑이를 생각하며 아픔이 너무 컸고 언니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 후로 우리 집에는 보신탕을 먹는 사람은 없어졌다. 오직 아버지 김목수가 남몰래 밖에서 가끔 사드시고 오는 눈치였다. 운남도 그 시절의 악몽을 함께 꾸었고 보신탕을 좋아하긴커녕 거들떠도 안 볼 위인이었다.


의경은 생각했다. 운남이 비위가 좋거나 약간 맛이 갔다고 말이다. '군대 다녀오더니 변비만 완치된 게 아니라 식성도 야만적으로 바뀌었던 거야? 참을 수 없는 배신의 식성. 바둑이만 불쌍하다 불쌍해.'





창문 셋. 다정과 둘의 이야기


한편 다정이 말씀교회를 다닐 무렵 그녀는 다른 고민이 있었다. 집 앞 동네교회는 교인수도 적고 가족적이라 좋았는데, 너무 친하다는 게 상당히 부담이었다. 그 집에 숟가락 몇 개, 젓가락 몇 개인지까지 알 정도로 친밀한 관계라는 것은 늘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다정이 동네교회 청년부에 교인 등록하며 어쩔 수 없이 대학생인 것이 자연스레 공유되었고 또 어쩔 수 없이 최고대(서울대입구 근처 대학의 가명) 다니는 것이 자연스레 알려졌다.


다정이 워낙 수수하고 털털해서 사람들과 금세 친해졌던 터이다. 그러나 최고대 출신인 것이 알려지면서 처음엔 한없이 반가워하던 눈빛들은 이내 뭔가를 숨기려 해도 드러나곤 했다. 다정은, 어색함과 반색, 경계와 선망, 인정과 흠을 찾으려는 복잡한 인간의 내면들을 이곳 교회에서 맞닥뜨릴 것이 조심스럽고 두렵기까지 했. 최고대란 타이틀은 비슷한 테두리를 떠나면 의례 경계와 질시를 깔고 보게 된다는 사실엔 이젠 익숙해졌다.


사실 어렸을 땐 이해할 수 없었다. 나보다 공부든, 운동이든, 신앙이든 나은 점이 있는 사람을 만나면 배우고 성장하면 되는데, 아닌 척하면서 뒤에선 뭐라도 약점을 뜯어내려는 인간들 속성 말이다. 담임 선생님이 일을 시키면 공부 잘하니깐 쟤만 편애한다고 속닥거리고, 선생님이 일을 빼주면 공부 잘하니깐 쟤만 사정을 봐준다면 속닥거린다. 그래 존재감 없이 조용히 지내면 반을 위해서 앞장서서 하는 일이 없이 자기 공부만 한다고 하고, 반을 위해서 팔 거둬붙여 일할라치면 나댄다고 디스한다. 그런 인간들의 편협하고 질시 어린 본능이 교회에서는 다르리라 기대했지만 과연 그럴까, 회의를 묻어 놓고 모른 척 지내려 애쓸 뿐이었다. 예전 동네교회에선 이미 뭔지 모르게 불편하고 어려운 감정들 아니 정확하게는 불안한 감정들이 예민하게 차곡차곡 쌓일 무렵이었다. 친구 유정이 경건 교회를 소개해 준 것이 말이다. 인원수가 많은 대형교회라면 익명성도 있을 테고 묻혀 지내면 낫겠다 싶었다. 무엇보다 우울증이 점점 심해지고 있던 터라 깊이 있는 성경 공부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름 세련되고 규모가 큰 말씀교회에 와서는 마음이 다소 놓였다. 인원수가 많다 보니 호구조사 하듯 지체들의 스펙이나 직장을 일부러 알려하지 않았다. 그래 일부러 최고대 출신임을 꽁꽁 숨겼지만 조모임 나눔 시간엔 오픈이 되고 말았다. 착하고 순수한 자매들의 눈에 야릇한 불편함 그러나 애써 누르며 편안하게 대하려는 노력. 최고대 출신인 것이 드러나면서 여기서도 도드라지는 게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다정은 사법고시 2차 낙방을 끝으로 바로 공사에 취직한 였다. 최고대에, 선망하는 직장 공사에 다니는데다가 나름 참한 외모의 다정. 한 자매가 지나가는 말로 하는 농담에서도 자신을 흠집 내고 디스 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학벌위주 사회를 살아오면서 익숙해진 타인들의 경계심과 그에 대한 자신의 조심스러움이 이내  자신의 민감함과 맞물려 스스로 꾸짖고 또 꾸짖었다. 그러나 예민함은 남들은 전혀 눈치 못 채고 있는 다정만의 속앓이였다.


다정은 그런 점에서 전남 전도사가 처음부터 정겨웠다. 그 사람 출신이 지방대니, 인서울대니 그런 구분 없이 그의 눈빛은 안정적이었고 그의 어감은 일관성이 있었다.

'이 분은 나를 존재로 보는구나. 최고대 나온 나 다정이나 고등학교 때부터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며 전문대 겨우 나온 남동생이나 동일하게 바라봐 줄, 그 안정된 품성. 다행이다'

다정은 청년부 담당 전도사에게 감사한 친근감을 느꼈다.  






그해 가을 청년부에서는 이색적인 행사를 기획하고 있었다. 바로 '말씀 청년부 사랑의 잣대기'(가칭)란 행사였다. 해당 청년부가 30세 이상이었는데, 다들 시집, 장가를 안 가니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만 같았다. 그 행사를 열기 전에 사전에 대화하고 싶은 다른 이성 곧 형제나 자매의 이름을 우선순위별로 3명씩 적어내는 작업을 할 터였다.  그 얘기를 듣는데, 예배시간에 앞에서 기타 반주를 하며 종종 찬양도 인도하던 한 형제가 떠올랐다. 그러나 자매 자존심에 대놓고 이름을 적기도 뭣하다 싶었다. 그보단 그 형제와 대화도 한 번도 안 한 처지에 그를 떠올리는 자신이 우스꽝스러웠다. '다정 미쳤어. 자매 체신이 있지' 스스로를 꾸짖는 동시에 냉소로 쐐기를 박았다.'뭐 이런 남사스러운 행사가 있나' 다정은 이름도 안 적어낼 것이고, 행사하는 날엔 예배만 마치고 줄행랑을 쳐야겠다 다짐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혼자 속닥거리고 있는데, 다정 등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두드린다.


"혹시 다정자매시죠?"


무심히 뒤를 돌아보는데, 일순간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바로 통기타 형제였다. 작은 아주 작은 호감이 생긴 것뿐인데, 그게 들통난 건가 싶다가는 순간 정신을 수습했다. 그리고 예의 단단하게 정색하며 밋밋한 표정으로 또박또박 입을 열었다.


"네?"


다정은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최고대 나온 자매란 존재감을 죽이고자 조용히 지냈는데, 그것이 드러나 질투의 소재가 생긴 것이 불편했던 터였다. 근데 이 훈남 형제와 대화하는 것을 누군가 본다면 자매들간 관계의 묘한 균열이 증폭될 것에 우려가 먼저 생겨났다. 빨리 이 대화를 짧게 끊어야겠다 이를 앙당그렸다. 그런데 통기타 형제는 아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죄송한데요, 잠깐만 밖으로 나와 주시겠어요?"


다정은 균열이고 불안이고 머리 저편으로 던져버렸다. 훅 들어온 이 멘트에 묘한 설렘이 범벅되면서 말이다.


"아, 잠깐만요."


책상 밑에서 속 편하게 꼬고 앉은 다리는 나가려니 쥐가 나려 했다. '아이 창피해' 절뚝거리지 않게 다리를 살살 풀면서, 콩닥거리는 마음은 내 마음이 아니라며 정신없이 복도로 나갔다.


진중한 표정으로 복도 창문을 응시하고 있는 운남 그리고 그 뒤를 따라나간 다정.


창밖 나무들은 가을에 맞는 채도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한 남자와 한 여자에게, 이 계절의 채도에 맞는 인생은 어떤 빛깔일까. 다정의 딸깍거리는 구둣소리는 더없이 신중하며 경쾌하게 복도를 울렸다.





ㅡ 다음 편 7회에서 계속됩니다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  연재 목차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0) 이모 죽고 싶어요

어느 30대 청년의 ㅈㅅ예고 카톡  From.진국

발행된 글: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0) 이모, 죽고 싶어요 (brunch.co.kr)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1)

어느 흙수저 장남의 꺾이지 않는 인생  

발행된 글: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1) (brunch.co.kr)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2)

우주가 돕는 이 남자의 사는 법 : 통기타로 직장생활 평정한 사원  

발행된 글: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2) (brunch.co.kr)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3)

우주가 돕는 이 남자의 사는 법 : 보신탕으로 거머쥔 천사 아내 - 인연

발행된 글: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3) (brunch.co.kr)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4)

할머니 이귀애의 단상

발행된 글: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4) (brunch.co.kr)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5)

미싱, 목욕탕과 인형놀이  feat. 전태일

발행된 글 :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5) (brunch.co.kr)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6)

우주가 돕는 이 남자의 사는 법 : 보신탕으로 거머쥔 천사 아내 - 학벌

발행된 글 :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6) (brunch.co.kr)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7)

우주가 돕는 이 남자의 사는 법 : 보신탕으로 거머쥔 천사 아내 - 녹색불

발행된 글 :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7) (brunch.co.kr)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8)

우주가 돕는 이 남자의 사는 법 : 보신탕으로 거머쥔 천사 아내 - 첫사랑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9)

우주가 돕는 이 남자의 사는 법 : 불운이 목돈 된 기묘한 불테크(불운테크)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10)

운남은 오늘도 절대자 임재연습 중




<포레스트 운남 잭팟>의 다음 목차들 (쓸 수 있을지는 고민 중입니다)  


00. 도둑놈 잡아 직장에서 갑으로 사는 남자

00. 나거만 과장과의 징검승부

00. 장인 장모의 1등 사윗감 등극 비법

00. 사내 최초 간 큰 육아 휴직남

00. 재테크, 퍼줄수록 들어오는 퍼줌 복리의 기적

00. 여동생의 말은 순종해야 산다

00. 중년 남편은 을이 더 좋아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과 연관된 청년 클레어 글

카프카의 < 변신 > (brunch.co.kr)

우리가 꾸는 꿈 (brunch.co.kr)

<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 (brunch.co.kr)








*그림,사진 출처 : 핀터레스트(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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