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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 클레어 Oct 17. 2023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3)

우주가 돕는 이 남자의 사는 법 : 보신탕으로 거머쥔 천사 아내 - 인연


서울대입구 전철역.


1970년대 서울시는 급격하게 증가하는 서울인구와 그로 인한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즈음 정부는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캐치프레이즈를 홍보했고, 20년 뒤 1990년대 군사정권 때는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로 어조는 좀 더 강경하게 변화되었다. 그리고 50년이 지난 현재 인구절벽을 호소하며 출산장려 정책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며 정책의 변화물쌍을 절감한다. 


1974년에 서울역-청량리역 구간을 필두로 지하철이 개통되기 시작한 것은 이런 시대의 필연적인 요구였다. 그리고 전철역 서울대입구 역시 1980년대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 979-2번지에 그 위세를 당당히 드러냈다. 관악구 전역의 어머니들은 새로 개통된 지하철을 타기 위해 일부러 아이들을 핑계로 나들이 일정을 곤 했다. 멋쟁이 아가씨들은 전철역 출입구에서 의례 볕 가리는 양산을 펼치며 이마를 찡긋하는 매력 필살기를 뽐내기도 했다. 한 가지, 서울대입구는 정작 그 일대 사람들에겐 봉사리(봉천사거리의 준말)로 더 많이 불려졌다. 이 어감이 더없이 어울리는 청소년 친구들은 봉사리 근방의 봉천 중앙시장의 순대볶음, 관악프라자의 햄버거를 먹으며 사춘기시절의 비밀을 속삭이곤 했다.


1997년 9월 봉천 7-1구역 재개발현장 (현 우성아파트)  사진출처: https://url.kr/ry4e5c
1990년대 봉천동 풍경(1992년 봉천 2,5동 추정) 사진출처: https://url.kr/7943rs


운남은 그 시절 봉천 6동 산 81번지에 살았다. 당시 그 동네의 명소중 하나게 된 서울대입구는 운남에게도 주요한 생활권이었다. 서울대 입구에서 몇 정거장 안 되는 곳에 운남의 고등학교가 있었다.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의 인도로 다니기 시작한 그의 교회는 서울대입구에 좀 더 바짝 붙어 있었다.


그 시절 서울의 전혀 다른 동네에 살고 있는 다정(지금 운남의 아내이자 나의 올케언니의 가명)이라는 여고생에게도 서울대입구는 남달랐다. 그녀는 필생의 뜻을 모아 이 전철역 근처에 있는 대학에 가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의 이치중 가장 신비로운 것이 남녀의 인연이다. 동시간대에 같은 공간에서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던 두 남녀. 그들의 한 걸음 한 걸음은 아스팔트 저 깊숙이 자국을 남겼고, 그들이 다른 이들과 재잘거렸을 소리는 공기를 공명하며 세상에 훑뿌려졌다. 때론 좌절하여 무너졌던 어깨의 흔들림은 자연과 하늘 어딘가엔 숨겨지곤 했다.



다정은 서울의 중산층이 많이 사는 강동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의 전직이 무엇이었는지 알  없으나 그녀가 한참 고등학교 3 학년 대입공부중일 때 그의 아버지의 직업은 택시 운전기사였다. 사업을 하다 망했는지, 큰 병으로 가세가 기울어졌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녀의 과거를 꼬치꼬치 캐묻는 것은 현재의 그녀에겐 거북한 오지랖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환경에서도 그녀는 공부가 늘 재밌었고 암기력에 있어서는 전교생 중 단연 원탑이었다. 그녀의 명문대 입학은 가족 아니 가문 모두의 염원이었다. 그 가문에서 이 정도의 두뇌와 투지 가진 사람은 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고대학교(서울시 관악구에 있는 대학의 가명)가 다정의 필승의 목표가 된 것은 어쩜 자연스러웠다. 다정 위로 장녀인 언니가 있었으나 몇 해전 아쉽게도 못 들어간 대학, 서울대입구 전철역 이름이 표방하는 대학, 학력고사가 끝나면 그해 커트라인의 대장주가 되는 대학. 최고대는 선망과 질시 때론 적의를 일으키는 뜨거운 감자가 되곤 했다. 입시철에는 특히 말이다.


다정은 고등학교 3 학년 때 학력고사를 보았고 예상대로 좋은 성적을 얻었다. 그 성적이면 최고대 안에서도 의대를 빼면 다 갈 수 있었다. IT열풍, 닷컴광풍과 맞불려 공과대학(약칭 공대) 붐이 서서히 일고 있었던 터라 그녀는 공대에 원서를 다. 한편 그해 운남은 학력고사를 삼수째 치르고도 여전히 턱없이 낮은 성적에 좌절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운남이 원하는 대학에 지원하기 위해 낮은 내신성적을 상쇄할 배수의 학력고사의 성적을 받아내기는 너무도 버거운 것이었다.


운남에게도 서울대입구는  친근하다. 교회를 갈 때, 서울시내에서 친구를 만날 때면 의례 그 전철역을 지나거나 깊숙이 들어가곤 했다. 그해 운남과 다정은 딱 한 번이라도 서울대입구에서 마주쳤을지 모른다. 도수 높은 어정쩡한 안경을 낀 얼굴이 다소 창백한 여고생과 쾌쾌한 아저씨 와이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삼수생 청년. 그들은 그해 삶의 벅찬 설렘과 땅의 지층을 뚫고 내려앉을 깊은 좌절감의 차이만큼. 그렇게 격차가 큰 거리를 멀리 때론 가까이 스쳐 지나갔을지 모른다.


출처: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중


다정은 모두의 염원을 담아 그해 가문의 영광을 외치며 최고대 공대에 당당히 합격했다. 러나 다정은 정작 대학 입학 후 한동안 몹시 앓았다. 당시 공대가 취업이 잘 된다던 풍문과는 별개로 대학의 모든 환경과 공대 과목이 적성에는 안 맞았던 것이다. 남학생들만 우글거리는 공대에서 그녀는 단연 관심거리였다. 그녀는 도수 높은 안경 때문에 가려졌을 뿐 뽀얀 피부와 귀염성 있는 인상, 가지런한 이, 단아한 조심성이 자아내는 자태는 뭇남성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누군가는 흠모하고 있었으리라. 그리고 공대 용기 있는 한 남학생이 친구의 우정을 가장하여 내내 그녀의 뒤를 지키며 좇아 다녔다. 그는 먼 훗날 다정이 서울에 병원을 물색하고 개원의로 간판을 내걸었때, 제일 먼저 진료를 보러 온 지인 중의 한 명이기도 다. 물론 다정이 중매해 준 다정의 친구이자 그의 아내와 함께 말이다.


다정은 청소년기, 대학 때는 물론 학교 졸업하고도 내내 남학생이고 남자고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택시기사를 해야 할 만큼, 전과 다른 집안의 몰락을 자신이 껴안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 때문이었다. 아래로 여동생과 남동생이 있지만 그들에게서 집안의 희망을 보기는 까마득했다. 여동생은 가세가 기울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로 고도비만이 찾아와 현재를 살아내기도 빠듯했다. 부모님의 기대주 유일한 아들 남동생 역시 학교폭력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은 후 오랫동안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고 있었다.                                


최고대 합격의 기쁨도 잠시, 이내 다정은 세상이 회색처럼 무겁게 보였고 자신이 너무 비참하고 처량해 보였다. 공대 동기들은 대부분 부유층의 자녀들이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장관이니 병원장이니, 어머니가 교수니, 집은 강남의 몇 평 아파트니 하는 건 그들에겐 기본이었다. 다정은 학과공부 끝나면 과외 아르바이트로 학비며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반면 대다수 동기들은 부모님이 상속해 준 부동산에 대한 재테크, 주식투자, 결혼정보업체와 엄마표 뚜쟁이들이 실시간으로 보내오는 이른바 쭉쭉빵빵 여자 사진들을 돌려보는 게 취미활동 같았다. 스튜어디스를 많이 배출한다는 인현공전(인하공전 가명) 항공운항과 여대생들은 그들 소개팅의 단골 단체손님 같았다.


다정은 최고대만 들어오면 자신의 인생에 희망이 활짝 열릴 줄 알았다. 그러나 이곳 최고대 공대에서 그녀는 세상의 빈부격차를 더 깊이 예리한 메스에 이듯 쓰리고 아프게 절감했다.  다정은 자주 생각했다. 자신이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몇 발자국 이미 앞서 뛰고 있는 부유층 동기들의 성공기반을 따라잡긴 힘들다고. 그때마다 특정할 수 없는 누군가를 향한 깊은 열등감과 뼈를 썩히는 질투 아니 분노마저 끓어올랐다. "내가 넘을 수 없는 벽이구나. 나의 힘으로는 역부족이구나"  철이 없어도 사는데 지장이 없을 같은 과동기 남학생들에 대한 질시 어린 부러움은 이내 고통으로 점철되었고 그럴 때마다  태생적, 환경적 열등감을 공부로 만회하고 싶었다.


다정의 우울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우울증으로 깊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대학에 들어온 신입생이 우울증 딱지를 붙인다는 것은 인생의 낙오를 자인하는 것이다. 내면의 병이 깊어지고 있었지만 병원도 찾지 않고 학점을 채우며 붕괴하려는 마음을 부여잡았다. 다정은 그렇게 동분서주하며 외롭고 슬픈 청년의 고통을 남몰래 삼키곤 했다.


어느 날 최고대 교내를 거느리고 있는데, 과 동기인 유정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신은 다음학기부터 학교 휴학하고 사법고시 공부를 시작한다고 말이다. 그나마 이 공대에서 말이 통하며 동병상련의 마음이 가는 유정. 그녀도 이른바 흙수저 출신이다. 다정은 신과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유정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안정되었다. 공대 졸업해서 대기업이나 공사 취업하는 것보다는 사법고시 합격이 더 명확한 인생성공임은 두말할 나위 없지 않은가. 다행히 다정은 암기력에는 언제나 자신이 있었다. 다정과 유정은 공대생들 중 사법고시 공부를 이미 시작했거나 시작하고 싶어 하는 선후배들을 규합해서 고시반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음 학기 다정도 휴학계를 내고 그들과 함께 치열하게 공부했다. 그리고 3학년 때 사법고시 1차에 합격했다. 그러나 1차는 쉬웠으나 2차는 어려웠다. 사법고시 2차에 번번이 떨어지며 그렇게 고시 재수생에서 삼수생이 되려던 차.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광풍 IMF가 터졌다. 동생들도 대학에 다니고 아버지 돈벌이도 어려운데 하염없이 고시공부만 할 수는 없었다. 고시공부를 접어야 했다. 그때 함께 고시 준비했던 선후배들 중에 먼 훗날 판사, 검사, 변호사가 여러 명 나왔다는 점을 미루어 보건대, 당시 다정의 좌절감과 삶의 무거움이 극심한 우울증으로 비화된 것은 당연해 보이기까지 하다.


1995년 10월 봉천3동(현 청림동) 사진출처: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그렇게 세월은 흘러 다정은 30대를 바라보는 나이로 가고 있었다. 그해 봄 어느 주말. TV를 잘 안 보던 다정은 멍하니 TV 리모컨을 돌리다 한 채널에 손이 멈춰 섰다. 브라운관을 통해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는데, 무의식에 내재되어 있던 자신의 이상형이었다. 영화배우 주진모. 다정은 첫눈에 반한 사람처럼 진모라는 남자 배우에게 빠져들었다. 차마 고삐리처럼 브로마이드나 팬클럽에 들며 극성을 떨 순 없었다. 틈만 나면 인터넷을 통해 그 배우의 근황과 사진을 수집하는 것으로서 늦깎이 청년의 외로움을 달래곤 했다. 다정은 목소리가 좋은 남자 특히 노래를 잘 부르는 남자를 좋아했는데, 연예인 주진모가 노래까지 잘 하진 않는 듯했다.


다정은 교회에 다니는 유정의 권면으로 한참 전부터 집 앞 동네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우울증은 신앙으로도 잘 다독여지지 않는 듯했다. 그래서 강서구의 동네교회를 떠나, 성경을 잘 가르치고 경건주의로 명성이 자자한 안양의 말씀교회(해당 교회의 가명)로 옮겨 출석하기 시작했다. 당시 크게 유행했던 하버드대 박사 출신의 이용규 몽골 선교사의 <내려놓음>이라는 책을 접한 것도 그때였다. 그동안 자신이 성공만을 추구하며 달려왔고 그런 집착 때문에 우울증이 깊어졌음을 깊이 깨닫고 눈물로 참회했다. 당시 다정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여기저기 중매쟁이를 통해서 검사, 변호사, 의사 이른바 ‘사’ 자 남자들을 남편감으로 강권하곤 했다. 그러나 다정은 그때까지도 남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결혼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남자를 만난다면 자신처럼 성공병에 찌들지 않은 순수하고 신앙심 좋은 남자를 만나고 싶었다. 거기에 목소리가 좋고 노래를 잘 부르며 주진모를 닮았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테지만 실현가능성은 제로라 마음을 비웠다. 다정은 절대자께서 언젠가는 자신의 신앙 순수성을 테스트것만 같았다. 내려놓음 말이다. 그리고 그것 남편감을 선택하는 기준일 수 있겠다는 나지막한 음성이 내내 들리는 듯했다.


한편 그보다 한참 전에 운남은 안양으로 이사 오면서, 어머니 인애가 다닐 교회를 알아보았다. 운남은  무렵부터 말씀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고 이미 청년부에 단단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주의 시간은 두 남녀의 접촉거리를 점점 당겨와 카운트다운을 대뇌이듯 현재의 시간으로 숨죽여 이끌고 있었다.


다정은 처음 말씀교회에 출석했을 때는 대예배만 드렸다. 우울증으로 시달리고 있어 사람 만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고시공부를 접고 OO공사에 입사하고 나서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그렇게 어느 해 봄, 운남의 오래전 뼈아픈 상실이 연상되는 그 계절에 다정은 청년부 모임에 처음 출석했다. 다정은 그때까지도 남자들에게 크게 흥미가 없었다. 당연히 연애를 해본 적도 없고 첫사랑이라 특정할 남자도 없었다. 운남 역시 마찬가지였다. 7남매의 장남은 삶을 살아내기도 버거웠고 장가는 가야 했으나 연애할 시간도, 돈도 무엇보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운남은 언젠가 첫사랑의 그녀를 만나고 싶다는 아련한 희망을 묵히고 누르며 그렇게 힘겨운 청년의 때를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삶에 치이고 지친 운남과 다정은 카이로스 시간에 드디어 한 공간에서 서로의 인생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몇 주 후 청년부예배를 마치고 한 달에 한번 있는 부서별 모임이 있었다. 남녀가 어우러져 모이는 단체모임이 얼마만인가, 다정은 어디에 눈을 두어할지 몰라 창가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다정의 시선이 창가에 가닿을 그 지점으로 한 남자가 통기타를 어깨에 메고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먼발치에 비스듬히 비춰오는 햇살을 등진 한 남자는 어딘가 낯이 익다. '어디서 봤지?' 다정은 자꾸 그를 훔쳐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기를 반복하던 차, 중저음 목소리의 찬양이 흘러 나왔다. 바로 그 통기타를 들고 들어온 남자에게서 나오는 감미로운 멜로디였다. 통기타를 튕기는 흡사 여자손 같은 가늘고 긴 손가락. 입술의 한쪽 끝을 어긋나게 올리우며 띄우는 미소. 그 순간 다정은 속으로 무릎을 쳤다. '맞다. 저 형제 주진모를 닮았어!' 그랬다. 주진모 사진을 남몰래 모아서 훔쳐보곤 했던 다정에게 운남이 익숙한 형제 아니 남자로 보인 이유, 전에 없이 이 형제가 마음에 스며든 이유였다. 주진모처럼 다소 어긋난 입술의 미소, 쌍꺼풀, 다감한 중저음의 목소리, 좌중을 압도하는 감미로운 찬양. 심장의 고동이 이상하다, 다정은 자신의 가슴을 쓸어내리듯 일시적으로 들어온 이 감정들을 털어내려고 애썼다.  


청년부모임이 끝났다. 다정은 오랜만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생각하며 자주 보던 핸드폰 시계를 그제야 쳐다본다. 저녁 6시가 훌쩍 넘었다. 청년들은 삼삼오오 자리에서 일어나 주차장으로, 버스정류장으로, 전철역으로 흩어졌다. 다정은 강동구에서 멀리 안양까지 왔던 터라, 다시 1시간 넘는 거리를 정과 카플로 귀가해야 했다.


그 귀갓길 창밖의 저녁 풍경에 눈을 떨구며 상념에 잠긴다. 힘겹게 달렸던 대학시절, 고시공부, 공사에 들어가기 위해 번잡스럽게 치러야 했던 일련의 과정들. 과거의 피로감이 현재가 되어 잠이 오려했다. 눈을 지그시 감는데, 그 얼굴이 떠오른다. 주진모 아니 주진모를 닮은 형제. '설마 잠깐 본 그 형제에게 마음이 쿵캉거리는건 아니지? 다정아' 다정은 자신에게 훈계하듯 한편으로 호기심 어린 생각의 똬리들이 싫지만은 않은 듯 전에 없이 혼잣말이 길어졌다.


 다음 청년부 예배시간. 저 멀리 익숙한 그 남자가 앞 좌석에 앉는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다정 옆에 앉은 자매도, 그 남자의 대각선에 앉은 자매도, 무엇도 그 남자 바로 옆에 앉은 자매도 자꾸 주진모 닮은 이 남자를 기웃거리는 것 같았다. 마음에 묘한 불구덩이가 일어난다. 승부욕이 남다른 다정에게 질투의 불이 지펴진 것이다. 경건해야 할 예배시간 내내 요동치는 자신의 마음을 순전하고 다소곳하게 정리하느라 애쓰고 애썼다.


잡념으로 시끄러워지던 마음을 잠재우자 바로 그때 설교말씀이 시작되었다. 중간중간 도체 말씀에 집중할 수가 없었기에 죄책감마저 밀려들어와 마음이 어려웠다. 그때 목사님의 설교가 끝나고 광고시간이 되었고 전도사님이 무대에 올라와 마이크를 잡았다. 이 전도사님이 주진모로 빙의한 운남과 다정의 운명에 어떤 일을 저즈릴지 모르는 채, 한 사람은 마음의 불구덩이로 또 한 사람은 기타를 치며 나긋한 목소리로 모임의 종료를 알렸다. 


운남은 무대에서 마무리 멘트를 했다. "다음 주에 반갑게 봬요. 한 주간 승리하세요." 다정은 그의 눈그림이 자기에 닿았다 느꼈다, 아니 닿았으면 하고 바랬다. 다정은 그 마음이 부끄럽고 당황스러운 나머지 급한 사람처럼 총총걸음으로 예배당 출구로 향했다.



탤런트 주진모. (참, 운남이 이 남자를 닮았다는 다정의 생각은 지극히 주관적임)



ㅡ 다음 편 4회에서 계속 됩니다 








*캐치프레이즈 (catchphrase) : 광고, 선전 따위에서 남의 주의를 끌기 위한 문구나 표어.

**고삐리 : 고등학생을 속되게 이르는 말

***<포레스트 운남 잭팟>은 실화인데요. 3회부터는 개인정보 보호상 주변인들 디테일 설정은 <소설적 각색>이 조금 들어가는 점 참고해 주세요.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  연재 목차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0) 이모 죽고 싶어요

어느 30대 청년의 ㅈㅅ예고 카톡  From.진국

발행된 글: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0) 이모, 죽고 싶어요 (brunch.co.kr)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1)

어느 흙수저 장남의 꺾이지 않는 인생  

발행된 글: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1) (brunch.co.kr)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2)

우주가 돕는 이 남자의 사는 법 : 통기타로 직장생활 평정한 사원  

발행된 글: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2) (brunch.co.kr)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3)

우주가 돕는 이 남자의 사는 법 : 보신탕으로 거머쥔 천사 아내 - 인연

발행된 글: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3) (brunch.co.kr)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4)

할머니 이귀애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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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스트 운남의 잭팟(5)

미싱, 목욕탕과 인형놀이  feat. 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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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스트 운남의 잭팟(6)

우주가 돕는 이 남자의 사는 법 : 보신탕으로 거머쥔 천사 아내 - 학벌

발행된 글 :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6)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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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가 돕는 이 남자의 사는 법 : 보신탕으로 거머쥔 천사 아내 - 녹색불

발행된 글 :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7)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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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가 돕는 이 남자의 사는 법 : 보신탕으로 거머쥔 천사 아내 - 첫사랑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9)

우주가 돕는 이 남자의 사는 법 : 불운이 목돈 된 기묘한 불테크(불운테크)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10)

운남은 오늘도 절대자 임재연습 중





<포레스트 운남 잭팟>의 다음 목차들 (쓸 수 있을지는 고민 중입니다)  


00. 도둑놈 잡아 직장에서 갑으로 사는 남자

00. 나거만 과장과의 징검승부

00. 장인 장모의 1등 사윗감 등극 비법

00. 사내 최초 간 큰 육아 휴직남

00. 재테크, 퍼줄수록 들어오는 퍼줌 복리의 기적

00. 여동생의 말은 순종해야 산다

00. 중년 남편은 을이 더 좋아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과 연관된 청년 클레어 글

카프카의 < 변신 > (brunch.co.kr)

우리가 꾸는 꿈 (brunch.co.kr)

<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 (brunch.co.kr)













*그림,사진 출처 : 핀터레스트(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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