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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 클레어 Sep 27. 2023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0) 이모, 죽고 싶어요

어느 30대 청년의 ㅈㅅ예고 카톡  From.진국이

올해 여름 어느 날. 새벽 3시 52분.      


이상하게 전날 감기 초기증상이 있어 종합감기약 판콜을 마시고 저녁 6시께 잠들었다. 잠깐 잔다는 게 일어나니 밤 10시가 다 되어 갔다. 할 일이 태산 같은데 이참에 밤을 세자 싶었다. 새벽에 내린 비로 세상은 축축하게 젖어 물방울의 습기가 가득하다. 담벼락은 반복해서 내리는 빗물에 언제 무너질지 모를 그런 날처럼. 밤은 정적으로 고요를 모으나 저 아스팔트 빗글자 모서리를 타고 세상의 흉금을 떠다닌다.


밀린 일들을 한다며 밤을 세고 있었지만 상념들이 밀려와 기도하고 큐티하고 글을 쓰다 새벽을 넘기고 있었다. 잠깐 화장실 갔다 나오면서 핸드폰으로 몇 시인지 보는 김에 카톡을 보았다.


3시 52분. 내 카톡은 항상 알림 기능이 모두 꺼져 있다. 그래 내가 일부러 보지 않으면 카톡이 왔는지 모른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가 카톡을 확인한 시간인 3시 52분에 바로 카톡메시지가 떴다. 뜨자마다 초단위로 나는 폰에 반응하고 있었다.


“모든 가족들한테 미안해

나도 정말 잘 해보려고 노력 아닌 노력하는데

잘 안 되는 게 슬프고 서럽고

이제 힘이 다 떨어진 거 같아

현실을 마주하는게 너무 괴로워서

이제 좀 쉬고 싶어”


TV드라마나 그것이 알고 싶다에선가, 언뜻 봤던. 메슥거리며 혼미한 문구. 그 짧은 순간 별의별 상상을 다했다. 몹쓸 약을 먹었나 목에 줄을 감고 있나. 얼마 전까지도 내 아파트분양권에 대해서 조언을 주던 나름 씩씩했던 조카다. 나는 이 모든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손은 바로 답톡을 보냈다. 그리고 바로 핸드폰으로 조카 연락처를 더듬어 찾아 긴급하게 발신 버튼을 눌렀다. 다행히 바로 전화를 받았다. 죽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정말 죽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죽고 싶다는 태반의 경우 살고 싶다의 반어적 외침이라는 것, 이 순간 이 대목이 얼마나 감사했던지.      


진국(조카의 가명)이의 엄마는 나의 어머니의 여섯째 자녀, 딸로는 넷째다. 우리 어머니의 아픈 손가락이다. 내 아버지의 알코올 가정폭력의 최대 피해자랄 수 있는 사람. 중학교 시절 가출을 반복하며 이른바 날라리들과 어울리기도 하고 그러다 유치장에도 몇 번 갔다. 물론 큰 범죄는 아니고 다툼 같은 그런 류여서 전과는 전혀 없다. 넷째 언니는 다니던 중학교에서, 그 학년에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미모의 학생이었다. 요즘 애들 말로 그 학교 3대 얼짱이었다. 인물이 좋으니 학생인데도 이상한 남자들이 자꾸 꼬이는 것 같았다. 나는 가끔 방과 후에 언니네 학교에 가서 언니를 에스코트해서 집에 데리고 가기도 했다.


언니는 19살에 한 남자를 만났다. 그리고 남들은 대학 가야 할 나이 20세에 그 남자의 아들을 낳았다. 그 남자는 한동안은 우리 집에 얹혀 살았다. 얹혀 살았지만 굉장히 당당했다. 그러나 그 남자는 반 사기꾼이었다. 언니 명의로 비싼 외제차를 사서 갚지도 않아 수년동안 그 빚을 언니가 갚아야 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언니는 그 남자와 결국 헤어졌다.


오랜 뒤에 그 남자는 뉴스에 나오기도 했다. 유명 연예인의 매니저로. 누가 알까 무엇보다 조카가 알까봐 끔찍하고 창피했다. 그 남자는 또다시 재기해 지금은 영화투자사를 운영한다는 풍문만 들릴 뿐이다. 두 사람은 경제적인 문제 때문인지 혼인신고는 끝내 하지 않았던 듯싶다.


사실상 미혼모의 아들. 진국이는 태어나면서부터 기구하게 새겨진 제 인생의 주홍글씨를 억지로 떠안아야 했다. 서글서글하고 사람 잘 따르고 친구 많은 진국이. 힘들어 죽을 듯해도 대놓고 우울하게 쳐져있는 모습을 잘 보이지 않는 아이. 나를 제외한 이모, 삼촌들은 그 아이가 자기 아빠와 같은 인생을 살까 봐, 내내 노심초사하는 것 같았다. 매번 사고 치고 일 만들어 자기 엄마 고생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 말이다.


그러나 나는 진국이가 끝내 건실한 인생을 살 것을 늘 믿었다. 진국이가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 자기 외할머니집에서 분가해 나가기 전까지. 나는 진국이와 20년이 넘게 같은 집에서 살았다. 나는 진국이와 꽤 대화를 많이 한 어른 중 한 사람이다. 진국이가 실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지원한 대학에 세 군데 합격했고, 그중 한 곳은 괜찮은 대학이었는데도 안 갔다는 사실을 아는 몇 안 되는 어른이기도 하다. 진국이는 하루라도 빨리 돈 벌어 성공하고 싶다고, 그래서 엄마 카페라도 차려주고 싶다고 자주 말했다. 진국이가 대학 합격소식을 쉬쉬했던 것은, 주변 사람들이 모두 대학을 가라고 성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자기 신념이 흔들릴 것이 싫었는지 배수의 진을 치는 듯했다.

 

그리고 남들 대학 입학해 캠퍼스 낭만을 즐길 그때. 진국이는 밤낮 가리고 않고 일하고 아르바이트하며 종잣돈을 모아 20대에 핸드폰 대리점을 차렸다. 그러나 잘 되던 대리점이 모종의 사기를 당해 몇 년 만에 문을 닫았다. 한 번은 중국에 좋은 일자리가 있다 해서 갔는데, 알고 보니 사기적 조직이라 목숨을 걸듯 겨우 탈출해서 한국으로 도망 나왔다.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 사업 시도였다. 올초 결혼 예정이던 진국이는 사업의 쇠락과 더불어 결혼도 보류했던 차이다.





진국이의 좌절과 절망. 이유 있는 한숨, 다 말하지 못하는 진위. 세상은 진국이의 실패와 현금손실, 실책을 거듭해서 주목하는 것 같았다. 이 젊은 청년의 중간 과정을 세밀이 들어보려 하지 않았다. 왜 성공했을 때 명품옷을 사고 비싼 결혼 혼수를 샀냐고, 돈을 모았어야 하지 않냐고 말이다. 그러나 나는 진국이에게 허세가 찾아온 이유를 알 것만 같다. 대학 합격증을 반납하며 소신껏 세상을 살아보려 했지만. 세상은 보여지는 타이들, 학벌, 뒷배, 부유함, 외모 등으로 서열 매겨진다는 것을 뼈저리게 절감했으리라. 진국이의 친한 친구 중에는 재벌 3세도 있다 한다. 이 아이는 헬스트레이너부터 재벌 3세까지 친구 인맥의 스펙트럼이 빈부격차 만큼이나 굉장히 넓다.


그 새벽 죽고 싶다며 절규하듯 카톡을 남긴 진국이. 나는 진국이와 1시간 넘게 통화하며, 밀린 은행 이자 1000만 원은 내가 어떻게든 수습해 줄테니깐 안심하라고 했다. 그 대신 우선 잠좀 자라고 했다. 진국이는 이틀 동안 거이 잠을 자지 못했던 터이다.       


그리고 이모, 삼촌 7남매 단톡방에 조카의 카톡메시지를 조심스럽게 캡처해서 상황을 공유했다. 이모, 삼촌들은 제 각각 각자의 역할을 했다. 행동파 셋째 이모는 진국이의 전셋집에 찾아가 주기도 했다. 큰언니는 조카집의 주소를 셋째 이모가 알도록 전송해 주고. 둘째 언니는 진국이 어머니를 토닥여 주고 호주에 있는 막내 삼촌은 처음 접하는 상황에 응원문구를 카톡에 날렸다. 큰삼촌은 늘 그렇듯 조카를 도와줄 자금계획을 나와 함께 고민해 주었다.      


낮 12시. 오전 내 잠자고 일어난 조카와 다시 통화를 했다. 진국이는 코로나 전후로 자기 주변에 자살한 친구들이 3명이라고 했다. 그중 한 명은 TV 모 프로그램에도 나온 모 연예인의 남자 친구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자살한 3명의 친구는 조카 인맥에서 그다지 절친은 아니라고 했다. 재벌 3세도, 평범한 청년도 이유는 제 각각이지만 자살에 무너지는 것을 가까이에서 지켜봤을 조카. 진국이는 거듭 그 자신이 지켜온 생의 의지에 스스로 반문하지 않았을까.


그날 진국이의 힘든 속내를 자세히 더 나눌 여유도 없이, 나는 진국이의 연체중인 은행 이자 1000만 원에 대해 수습을 거듭 약속하고. 조카에게 병원비라며 돈을 입금해 주고 우선 정신과에 가서 우울증이나 수면제약을 처방받아 복용하라고 했다. 조카는 바로 병원예약을 했다.   





     

오전과 낮. 진국이와 그의 이모, 삼촌들과도 모든 통화를 마쳤다. 우선 상황은 수습한 것이다. 흐릿해져 가는 한 청년을 살려 놓은 것이다.


그렇게 평온하게 시작한 하루가 흐트러지며 나의 시야도 흐려지려는 오후. 마음이 얼얼하다 못해 내 세계가 휘청일 것 같은 깊은 고뇌가 밀려왔다. 어렸을 때 너무 깊은 우울의 밑바닥을 경험한 나. 나는 우울감에 또다시 휘둘리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다. 열고 싶지 않은 과거의 문을 따라 극심한 고통으로 호출되는 기억들. 무엇보다 내가 가장처럼 책임져야 하는 가족과 지인 등 여러 사람들이 떠올랐다. 내 수입의 50~70% 이상은 사실상 가족과 타인들을 위해 쓰고 있다. 내가 무너지면 도미노처럼 절망에 빠질 사람들이 떠오르는 이유다.


슬픔과 연민, 우울이 밀려오려는 그때.

비가 그친 창밖을 보며 전자레인지에 햇반을 돌렸다.


“먹어야 한다, 밥을 먹어야 한다”


나는 전자레인지에 2분간 돌아간 햇반 꺼냈다. 그리고 국 국물과 마른 김, 간장, 김치. 아주 단출하게 차려 놓고 숟가락을 들었다. 더없이 씩씩하게 수저를 들고 젓가락을 움직인다. 그러나 이내 또 자꾸 손가락에 힘이 빠지려 했다.


‘이 아이는 어떻게 하며, 언니는 또 나는...’


그러나 또 곧이어 이런 생각들을 털어 내동댕이 치듯 다시 되내인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인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


나는 이럴 때 의례 하는 나만의 처방을 의식처럼 시작한다. 핸드폰을 꼼지락거리며 유튜브를 클릭해서 컬투쇼 관련 재훍 영상툰이라는 채널을 클릭했다. 컬투쇼를 아는가? 일반인들이 자기 인생의 재밌는 사연을 보내면 소개하는 코너로, 그것을 만화로 재구성한 것이 재훍 영상툰이다.

마침 처음 클릭한 영상에서는 할아버지와 고딩들의 대화가 나온다.

할아버지에게 말대구하는 고딩들의 말주변이 너무 웃기다.


"이마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어디서 담배질 담배질이야 임마!"

"이마의 피는 17년 전에 이미 다 말랐는데요?"


혼자 있는 집안이 움찔할 만큼 아주 오랜만에 큰 소리로 웃었다. 눈물샘을 삐집고 나오려던 눈물이 부끄러워 구멍 아래로 내려가 버렸다. 눈물은 나의 웃음에 처연히 숨죽여 저 밑바닥에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한바탕 웃고 나니 인생의 파고가 별거 아닌듯 만만하게 느껴진다. 늘 그렇듯 나의 처방은 오늘도 유효했다. 그리고 현재 나에게 익숙한 감정들이 회복되는 것 같다. 긍정, 도전, 밝음, 희망. 그 감정들을 끌어모으듯 나는 오후 내내 20편 가까이 유머 영상을 틀어놓고 회사 잡무를 봤다. 밥을 먹어야 한다는 이내 일을 해야 한다로 수렴되던 그 찰나의 순간.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저 웃긴 사연을 보냈던 숱한 일반인이라 일컫는 사람들. 그분들 인생에도 모두 고통과 슬픔의 문제가 있겠지. 자기 인생의 많고 많은 아프고 슬픈 사연 안에서 재밌는 한 장면을 건져 올리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삶의 애환과 비극은 또한 희극을 넘나들며 날실, 씨실처럼 자라. 과거의 뿌연 기억과 현재의 선명한 먹자국, 이름 모를 미래의 초조와 간절한 희망을 담아. 그 오후 나는 현재를 채워갔다.


그날 오후 회사 프로젝트 하나를 마무리하며 그것이 성료되면 나올 성과급 800만 원을 오롯이 조카에게 전달할 궁리를 했다. 나와 아주 가까운 혹자-모두가 아는 그 남자-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기 혹시.. 사채로 돈 빌린 것 있어?” 내 연봉에 통장의 현금 잔고가 너무 적다는 것이 늘 의문이었던듯 싶다. 내가 모든 사람 몰래 사채돈에 시달리는 게 아닌가 상상했나 보다. 그런 그도 수년동안 나를 지켜본 후엔 나의 이유 있는 통장잔고에 지금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그러한 내 삶에 반문이 아니라 동의와 응원을 해준다. 농담 삼아 “나도 불우이웃인 거 알지?”라며 너스레를 떨면서 말이다.

 

무소유. 나의 고등학교 때 삶의 철학 중 하나이다. 몇 년 전 내 명의로나마 어머니 집도 사주고 내 종신보험도 들어 이젠 나도 실격이지만. 통장잔고는 조금 유효한 듯하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나는 어렸을 때 어른들이 격언이나 진리 아니 최소한 자기 말한 대로 인생을 살지 않는 것에 의문과 반발심이 들었었다. 본인들도 살지 못하면서 왜 가르치느냐를 필두로.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는 그들의 변명 아닌 변명까지. 그래서 나는 어른이 되면 이론과 현실을 일치시키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러나 내 인생을 두고 한 이 실험적인 도전, 그 대가는 가히 혹독했다. 나는 가족 대소사에 되도록 손해를 자초하며 여러 짐들을 짊어지면서, 결혼적령기를 넘겨 출산이 요원한 나이가 되어 버렸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한다는 것. 나처럼 아둔한 머리와 능력의 소유자에겐 쉽지 않았다. 내 삶을 오롯이 챙기며 크고 작은 가족과 타인의 짐을 두루 챙길만한 케파가 내겐 없었나 보다. 물론 늦어진 결혼의 상당 부분은 아버지 가정폭력 트라우마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굽이 도는 좁은 골목길로, 내가 살았던 봉천동 산 81번지의 정겨운 이웃들이 기억 너머 또렷이 보인다. 70년대 보릿고개를 넘어 새마을운동이 한참이던 그때. 서울 끝자락의 한 산에는 동네가 있었다. 산 정상에는 무허가 천막집이 산 중턱에는 무허가 집들이 한 채, 두채 빼곡히 메우고 메웠다. 나는 그런 서울이지만 시골 같은 산 중턱 그 동네. 주택이 즐비하지만 마당도 없고 개별 수도도 없는 그곳에서 자랐다. 그 동네는 턱없이 결핍이 많았고 가난한 어른들 투성이었지만 무서운 어른은 못 본 것 같다. 마당 없는 집들 사이로 난 넓은 골목길에는 하루에도 숱한 사람들이 오고 갔다.      



어렸을 때는 몰랐다. 그 동네 어른이라 이름하는 그분들의 삶이 얼마나 처절하고 하루하루 벼랑 끝을 오가며 버티고 견디는 무게의 것이었는지. 그들은 마당 없는 집에 살면서도 힘을 모아 나무 마루를 만들었다. 여름이면 그 나무 마루에 모여 동네 이웃들이 막걸리, 안주와 더불어 수박을 함께 먹곤 했다. 겨울이면 함께 길 앞에 쌓인 눈을 치웠다. 돈이 부족하면 옆집에서 ‘며칠만 쓸께’하며 몰래 속삭이는 어른들의 모습도 흔히 목격되곤 했다. 할머니가 긴 담뱃대로 옛날 연기를 뿜어내는 나무 마루. 여름철 초저녁에는 동네 꼬맹이들이 잠자기 싫다며 그 나무마루에 나와 누워 매연 없는 하늘의 별들을 헤아렸다. 내 아버지가 주도가 되어 만들었던 그 나무마루는 어느덧 온 동네 명소가 되었다. 그 이웃들 사이로 열심히 살려했지만 역부족이었을 한 남자, 나의 아버지. 그 진국이의 외할아버지의 외로운 뒷모습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나는 어른이 되어 아니 어른이 되고도 한참 뒤에야 내 아버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멀쩡했던 가장이 알코올 중독과 가정폭력의 괴물로 변해갔을 그 진위에 대해서. 그리고 슬프게도 자주 그 가난과 무거움, 역부족은 대를 이어 되물림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죽고 싶다. 죽고 싶어”


빈부격차,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인생 살면서 누구나 수없이 되뇌었을 이 한 마디. 그러나 우리는 그때마다 “살고 싶다”는 나의 다른 목소리에 무너지듯 홀로 울먹이게 된다. 진국이가 그랬듯이.


나는 우리 진국이가 늠름하게 다시 일어설 것을 믿고 확신한다. 먼저 어른이 된 내가 든든히 버티고 있을 것이며, 그들이 살고 싶은 인생, 살고 싶은 나라를 만드는데 미력하게나마 최선을 다할 테니깐. 진국이가 철이 없고 나약해서 무너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 청년들이 남몰래 무겁게 담고 있을 그 고뇌와 실책을 먼저 산 어른들이 무겁게 세상에 담아낼 수 있도록. 이모는 세상 모든 조카들을 오늘도 응원하며 열심히 앞서 걸을 것이다.








ㅡ 다음 본편 1회에서 계속됩니다 




*상기 글 참고 영상 : 할아버지 VS 고딩 | 컬투쇼 영상툰 - YouTube

**얼마전 송파 일가족 뉴스를 보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본 글은 정말 내밀한 저희 가족사인데요. 지금도 자살을 생각하는 분들이 혹여 계시다면, 그분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지만 용기 내어 오픈합니다. 자살하지 말고 용기 내어 꼭 살아내시기 바랍니다. 살아내면 꼭 길은 열립니다. 힘내세요. 모든 분들을 위해 날마다 두 손 모읍니다.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  연재 목차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0) 이모 죽고 싶어요

어느 30대 청년의 ㅈㅅ예고 카톡  From.진국

발행된 글: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0) 이모, 죽고 싶어요 (brunch.co.kr)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1)

어느 흙수저 장남의 꺾이지 않는 인생  

발행된 글: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1) (brunch.co.kr)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2)

우주가 돕는 이 남자의 사는 법 : 통기타로 직장생활 평정한 사원  

발행된 글: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2) (brunch.co.kr)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3)

우주가 돕는 이 남자의 사는 법 : 보신탕으로 거머쥔 천사 아내 - 인연

발행된 글: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3) (brunch.co.kr)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4)

할머니 이귀애의 단상

발행된 글: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4) (brunch.co.kr)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5)

미싱, 목욕탕과 인형놀이  feat. 전태일

발행된 글: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5) (brunch.co.kr)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6)

우주가 돕는 이 남자의 사는 법 : 보신탕으로 거머쥔 천사 아내 - 학벌

발행된 글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6) (brunch.co.kr)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7)

우주가 돕는 이 남자의 사는 법 : 보신탕으로 거머쥔 천사 아내 - 녹색불

발행된 글 :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7) (brunch.co.kr)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8)

우주가 돕는 이 남자의 사는 법 : 보신탕으로 거머쥔 천사 아내 - 첫사랑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9)

우주가 돕는 이 남자의 사는 법 : 불운이 목돈 된 기묘한 불테크(불운테크)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10)

운남은 오늘도 절대자 임재연습 중





<포레스트 운남 잭팟>의 다음 목차들 (쓸 수 있을지는 고민 중입니다)  


00. 도둑놈 잡아 직장에서 갑으로 사는 남자

00. 나거만 과장과의 징검승부

00. 장인 장모의 1등 사윗감 등극 비법

00. 사내 최초 간 큰 육아 휴직남

00. 재테크, 퍼줄수록 들어오는 퍼줌 복리의 기적

00. 여동생의 말은 순종해야 산다

00. 중년 남편은 을이 더 좋아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과 연관된 청년 클레어 글

카프카의 < 변신 > (brunch.co.kr)

우리가 꾸는 꿈 (brunch.co.kr)

<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 (brunch.co.kr)








*그림,사진 출처 : 핀터레스트(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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