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는 강남에 있다. TV에서도 자주 그려지는 화려한 도시. 멋들어진 화이트 칼라들이 분주하게 드나드는 도시, 모든 직장인들의 로망.그러나 실상 이 도시의 근간을 이루는 분들은 저 저변의 오롯한 얼굴들이다. 도시의 새벽을 깨우는 건물 청소부 어르신, 경비원, 요구르트 배달부 아줌마,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트럭 운전기사, 구두닦이 아저씨, 시계 수리상, 식당, 여러 물품을 파는 상점, 햄버거 배달하는 청년, 버스 운전기사, 지하철 역무원 등등.
나에게 선릉역 옷가게의 스마사장은 그런 오롯한 얼굴 중 한 분이시다. ‘스마’라는 이름은 ‘카리스마’에서 가져온 말로, 그 사장님을 부르는 나 혼자만의 애칭이다. 스마사장은 50대 중반은 넘은 듯 보이는 여자분이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그분도 싱글이시다. 순수싱글인지 돌싱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키는 대략 150cm도 안 되실 듯하고, 깡마른 몸에 볼이 움푹 파여 다소 배고파 보인다. 첫인상은 이제 막 깡시골에서 올라온 선이 강하고 다소 날카로운 분위기였다. 딱이 눈길을 사로잡을 매력이랄 순 없다. 목소리도 약간 허스키한데다, 톤이 올라가면 당황스러운 어감에 처음엔 흠칫 놀라게 된다. 상점도 눈에 띌 것이 없다. 1.5평이 될까 말까인 데다, 별다른 인테리어도 없다. 나는 처음엔 여타 폐업세일하는 그런 가게 중 하나인줄 알았다.
우리 회사 근처에는 여러 개의 랜드마크 전철역이 있다. 강남역, 압구정역, 선릉역, 삼성역, 좀 더 멀리 가면 잠실역 등등. 그 전철역을 중심으로 수많은 식당과 상점들이 즐비하다.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내 눈에 들어온 스마사장. 남들은 모르겠는데, 내게는 너무도 흥미로운 매력이 풍겨져 나오는 옷가게다. 옷의 품질이나 디자인이 개성이 있는 데다, 무엇보다 가성비가 높다. 그리고 단연 투박한 스마사장의 샘물 같은 인간적인 매력이 날 끌리게 한다.
저번주에 있었던 일이다. 나는 쇼핑을 아주 빨리 하는 편이다. 특히나 스마사장 가게에 갈 때는 그 쇼핑 시간은 초단위로 빨라진다. 그 가게는 구제옷을 파는 곳이다. 사실 나는 남들은 모르는 고상하고 유쾌한 소비생활이 있다. 바로 구제옷을 아주 가끔 뭉치로 사는 것이다. 구제옷이 무엇인지 모르는가? 다른 사람이 한번 이상 입었던 헌 옷이나 백화점등에서 재고로 안 팔린 옷을 파는 시장을 구제라고 하다. 구제옷은 그곳에서 유통되는 의류다. 그리고 스마사장은 지하철에서 곧잘 볼 수 있는 그런 구제옷을 파는 상점의 주인이다.
그날도 곧 올 전철시간을 계산하며 그 가게에 들렀다. 사장님께 인사하고 6개 고르는데 4~5분, 4만 원 돈계산하고 안부인사에 2분. 그렇게 초스피드로 쇼핑을 마쳤다. 사장님은 내가 워낙 스피드 하며 시원시원하게 쇼핑을 하는 데다가, 본인이 아끼는 디자인의 옷들을 잘 챙겨 간다며 칭찬하곤 한다. 물론 립서비스인 것을 알고 있다. 그날도 말씀하셨다.
“아우, 너무 좋은 옷들만 사가신다. 오늘도 살 것 만 빠르게 잘 골랐네.”
그러면서 내가 산 옷을 이른바 검정 비닐 봉다리에 담아주신다. 우리가 보통 재래시장이나 야채가게에서 자주 보는 고전적이고 고향냄새 가득한 검정 봉다리 말이다. 스마사장은 터질듯한 검정 봉다리의 입구를 잘 묶어 나에게 건네며 말한다. 카리스마 가득한 여사장님은 검정 봉다리를 내밀 때면 유독 목소리 톤이 더 유쾌하게 올라간다.
“에구 여기요. K봉지 밖에 없어서 늘 죄송합니다”
내가 이른바 강남에서 일하는 화이트칼라고 말투나 태도를 보건대, 검정봉다리를 건네기가 매번 송구하신 듯하다. 그럼 나는 또 늘 그렇듯 그 검정봉다리를 갖고 아무렇지도 않게 전철을 타러 간다. 스마사장과 나, 우리 두 사람의 전혀 아무렇지 않음은 화려한 도시에 삑사리 나는 모습일까.
K봉지. 나는 사실 이 대목에서 속으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역시 오늘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나는 스마사장의 호탕함이 좋다. 대한민국 전역에 퍼져있는 검정 봉다리. 이 비닐봉지에 그녀만의 네이밍을 해서, 자기 브랜드화하는 사람은 내게 스마사장이 처음이다. 이 얼마나 위풍당당한 위트이며 자신감인가. 스마사장은 언제나 카리스마가 넘친다. 지하철 상가 넓이 1.5평이 무색하리만큼 자기 업에 대한 신념과 자부심이 가득하다. 옷을 너무 오래 구경만 하는 손님은 이 스마사장의 날카롭고 쩌렁쩌렁한 호통을 들어야 한다.
“그렇게 구경만 할 거면 그냥 가세요. 제가 다 고르고 골라서 갖다 놓은 옷들이에요.”
아마도 그 손님은 올 때마다 아이쇼핑만 하다 갔던 모양이다. 때로는 나한테도 쑥 들어오신다. 그 가게는 보통 가격대가 5,000원에서 10,000원 정도의 옷이 대부분이지만 가끔 3만 원에서 10만 원을 넘는 고가의 옷들도 있다. 스마사장은 평균가에서만 고르는 내 눈치를 살피며 말을 건네는 것이다.
“이거 3만 원~5만 원짜리인데. 옷이 너무 좋아서 다들 사려고 하는데, 사이즈 안 맞아 못 가져갔어. 사이즈 맞는 임자가 없어 못 팔았지. 내가 좀 깎아줄게 이거 가져가요. 사이즈 딱이네”
사장님이 어쩌다 권하는 것이지만 나도 5번에 1번 정도는 흥정에 응하곤 한다. 그러나 그날은 전철 올 시간이 가까워 다음을 기약하며 발길을 돌렸다.
나는 스마사장이 건네준 K봉지를 받고 전철 개찰구를 향해 빠른 걸음을 재촉했다. 어디선가 내 등뒤에서 그녀의 콧노래가 들리는 듯하다, 늘상 나만 들을 수 있지만 늘 듣고 싶은 그 콧 노랫소리 말이다.
나는 안다. 코로나 시즌에 이 가게도 매상이 많이 줄었다는 것을. 그래 코로나 기간 중엔 평소보다 더 사드린 적도 있다. 그러나 사장님이 앓는 소리를 하는 것은 들어 본 적이 없다. 나는 무너질듯한 상황에서도 자기 업에 자부심이 넘치는 스마사장이 든든하며 동질감마저 느껴진다. 나 역시 화려한 도시가 표방하는 가치관과 우선순위에 역행하며 살아가는 다소 생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 직장에서 친한 여자 동료 중에는 내가 스마사장으로부터 공수받아 입고 간 옷을 백화점표인양 부러워하는 이들도 있다. 나는 자타 공인 꽤 검소한 편이다. 남들한테는 굉장히 많이 퍼주는 편인데도, 나한테는 많이 인색하다. 귀도 한 번도 안 뚫었고 목걸이나 반지도 잘 안 한다. 손목시계도 저렴한 것으로 하다 말다 한다. 옷도 비싼 옷은 잘 안 입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명품 옷이나 명품 가방을 못 사는 가정형편에 열등감과 초라함을 느낀다고도 하는데, 나는 반대로 내가 명품 옷을 입어야만 자존심과 자존감이 채워져야 할 사람이라는 것에 초라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지금도 운전면허증이 없고 연봉이 아무리 올라가도 특별한 사유가 아니면 운전면허증 딸 생각도 없다. 나에게는 또 다른 오롯한 얼굴 택시기사님들이 계시기 때문이다.
흙 수저, 금 수저에 다이아몬드 수저까지 회자될 때, 그런 생각을 했다.
‘누군가 잔망스럽게 만들어낸 그 프레임에 갇혀 살게 무엇이냐’
수저론은 나의 인생을 환경 탓으로 돌리며 자기 합리화의 명분은 줄지언정, 결코 나에게 비전을 주진 못 한다. 또한 TV를 뒤흔드는 비전만이 가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1.5평도 안 되는 지하철 가게에서 구제옷을 팔더라도, 나만의 비전과 열정이 있다면 그가 비져너리이다. 우리나라를 이만큼 경제대국으로 만든 근간은 그런 비져너리의 산업역군, 오롯한 얼굴들 때문이지 않을까.
오늘도 용광로 같은 도시의 폭염 속에서, 곳곳에 퍼져있는 수많은 스마사장님들의 목소리는 내게 에어컨 같은 시원함을 준다.
*봉다리 : 봉지의 방언(경기, 전남)
**구제(舊製): 쉽게 말해 사용하던 중고물품을 파는 시장을 말한다. 특히 의류 종류가 압도적인데, 그냥 구제라고 적혀있으면 십중팔구는 중고 의류 가게라고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