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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 클레어 Feb 08. 2024

100만 부 책 vs 글쓰기 고통 총량

새해 초심자의 행운을 갈망하는 우리 내면에 속삭이는 이야기

이 글은 풍금소리와 명세서 (brunch.co.kr)에 대한 추신 글입니다. 함께 보시면 좋습니다.

댓글도 함께 보시면 유익합니다 



최근에 이른바 100만 부 이상 팔렸다는 신예 작가의 책 리뷰를  적이 있다.


사실 브런치 시작하기 전에, 나의 독서는 백 년 이상은 됐을 법한 고전이나 스테디셀러에 편중되어 있었다. 책뿐 아니라 뭐든 최신 유행을 좇아가는 것을 그다지 내켜하지 않거니와, 테크닉(기술)이 난무하는 세상에 대한 저항감도 한몫 했다. 다수의 군중심리는 옳을 때도 있지만 태반이 오류나 확증편향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는 것을, 역사는 종종 알려주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상하게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은 잘 읽힌다. 가까이 있는 벗이나 선배 작가님들이 따끈하게 길어 올린 글이라서 그런가, 나의 편식에 이제야 특단의 길이 열린 게 아닌가 생각한다.


초심자의 행운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도전은 언제나 초심자의 행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반드시 가혹한 시험으로 끝을 맺는다. (Every search begins with beginner's luck. And every search ends with the victor's being severely tested.)" ㅡ 파울로 코엘로 <연금술사> 중 ㅡ  

어떤 분야에 막 입문한 초보자가 일반적인 확률 이상의 성공을 거두거나, 심지어 그 분야의 전문가를 상대로 승리하기도 하는 기묘한 행운을 일컫는 말. 주로 도박이나 스포츠, 주식 등에서 입문자에게 따르는 행운에 관하여 많이 쓰이는 말이다. 물론 그 이외의 다양한 분야에 있어서도 사용되기도 한다.

발췌글 :  초심자의 행운 - 나무위키 (namu.wiki)



인생이 고달프고 내 몫의 수고와 고통이 버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왜일까?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압도적인 행운을 달고 태어나 '금수저', '다이아수저'라 일컫어진다. 학교에는 왜 그렇게 타고난 수재가 많은가. 또 문학, 예술, 운동 등 각 분야별로 특출 난 재능을 천부적으로 타고나 사람들도 상당하다. 로또는 말할 것도 없고 일회성 응모에도 잘 당첨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 그런 일반인들 입장에선 억장의 고구마가 쌓이게 하는 이놈의 세상이 마냥 불공평하게만 보인다.


그러나 '결국엔' 인생은 공평한 법이라지 않는가. 인생 초반에 행운을 가득 물고 태어난 숱한 인생들이, 사는 내내 굴곡 많은 사연을 되뇌었다던 서사는, 다큐에서도 픽션에서도 익숙하다.


'고통 총량의 법칙'이란 말이 있다. 불운한 인생들과 축복받은 인생들의 행복량 또는 고통량은 동일하다는 말일게다. 나는 이 용어가 회자되기 훨씬 전인 중. 고등학교 때부터 혼자 자주 되뇌던 개념이었다. 든 인간이 일생동안 감당해야 할 고통의 총량은 '사실은' 같다, 이 얼마나 통쾌하고 명쾌한 확언인가. 물론 그것은 물량적으로, 질적으로 인간이 허투루 잴 수 없는 양이란 대전제는 차제에 두자.


그렇게 생각한다면, 인생 초년도에 남들보다 많은 것을 '거저' 등에 업고 태어났다는 것은, 인생의 중년이나 노년 심지어 무덤 가기 직전엔, 아직 지불하지 못한 고통 채무가 남아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절대자는 인생들에게 공평하다. 그리고 것은 이 생(生)과 영원을 이어 생각하면 더욱 만고의 진리이다.





집이 가난해 고초가 많았던, 내 (종교가 없던) 국민학교 학생시절 가끔 상상했다. 내가 세상에 발을 내딛던 순간, 하늘에서 내게 딜(deal)을 제안해 왔다면 어땠을까라고 말이다.


"인생 초반에 고통을 몰아줄까요? 10년 단위로 등분해서 나눠서 줄까요? 아니면 인생 말년에 몰아서 줄까요? 고통의 총량은 당신이 바꿀 수 없지만 고통의 시기는 당신이 설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비롭게도, 나는 다시 갓난아기로 돌아가도 지금 내 생애주기를 선택할 것 같았다. 고통은 초년도에 좀 더 많이 받고 갈수록 줄어들다, 모두가 겪는 노년의 시기엔 평균적인 고통을 받고, 막판 무덤 가기 직전엔 평온하게 잠들고 싶다고 말이다.


고통 총량에 대한 채무를 언제 지불하기 원하는가? 적합한 답을, 우린 각자의 색깔로 이미 감을 잡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의외로 지금의 고통 생애 주기가 다행이라 여길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음이 커다랗게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낄 것이다. 한낱 퍼즐의 한 조각으로, 나와 세상을 섣불리 속단하거나 결론 내려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그래 인생의 여유와 배포는, 퍼즐 전체를 볼 수 있는 사람에게 주어진 하늘의 선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 인생엔 장차 어떤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오늘을 살아낼 건전한 마음과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넓은 뷰를 주신 감사하자. 오늘도, 삶이 버거울 때도 있겠지만, 이 하루 몫의 삶을 성실히 살아낼 수 있어 기쁘다.









*그림, 사진 출처 : 핀터레스트(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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