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10년 넘게 키운 고양이 두 마리가 있다. 스코티쉬폴드 종으로 멋지고 예쁘게 생겼다.
엄마인 멍지는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우리 집에 입양되었다. 모태에서부터 꼿꼿한 고양이로 태어난듯, 매사에 주인들을 왕따 시키며 나 홀로 살이에 익숙하다. 그래도 귀여움을 받았다는 것이 그녀의 묘한 매력이랄까. 멍지는 나름 고양이 족보가 있는 데다가, 멍지의 엄마는 러시아 예쁜이 콘테스트에서 상까지 받았다. 남동생이 운 좋게 아주 싼 대가지불로 모셔온 냥이시다.
꼿꼿하다는 것은 동시에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자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주인 식구들에게 쿠사리 먹을 일이 없으니 내내 꼿꼿한 것이다. 에헴.
고상한 멍지의 몇 년 전 크리스마스때 모습. 10년이 넘어 이젠 좀 늙으셨어요 (_ _)(^^)
멍지는 우리 집에 입양되고 1년 반 만에 자식들을 낳았다. 세 마리는 다른 집으로 입양이 되었다. 우리 집안 살림에 꽤 보탬이 되었다는 후문이다.
처음에는 모두 입양시키려 했는데, 엄마인 멍지가 우울증에 걸릴까봐 막내아들인 브라우니는 남겨두었다. 실은 내가 남동생에서 생돈을 주면서까지 직접 키우겠다고 했다. 우리 집에서 브라우니의 실질적인 주인이요, 책임자가 내가 된 셈이다.
남동생은 브라우니를 포함 고양이 네 마리를 입양시키고 돈 챙겨서 호주로 가서 10년째 안 들어오고 있다.
(농담이고요, 호주에서 개인 사업 중이에요)
멍지가 낳은 네 마리의 새끼 고양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된때)
내가 책임지고 키우기로 한 브라우니. 주인인 나는 사실상 고양이를 처음 키우는 것이었고 브라우니는 인간 세상이 처음이었다. 당연히 집사와 고양이 모두 좌충우돌이었다.
앞서 말한 멍지는 조용하고 세련되게 자라는 반면 브라우니는 사고를 자주 쳤다. 처음에는 그때마다 브라우니를 말로 타일렀지만 극성스러운 사고들은 그치질 않았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다루듯 엉덩이를 몇 번 매매했다. 처음 2번은 주인의 의중을 알고 자숙하는 듯했으나 잡음은 여전했다.
나는 초보 집사로서 나의 교육 철학에 자부심을 느끼며, 세 번째로 브라우니 엉덩이를 매매하던 날 사달이 나고 말았다. 브라우니가 내 팔목을 아주 쌔게 물어버린 것이다. 피가 꽤 많이 나서 바로 병원 가서 치료받고 와야 했다.
초보 집사인 나는 대형 사고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놀라고 서러운 마음에 가족 단톡방에 나의 피해 현황을 팔목 사진과 함께 올렸다. 오빠는 브라우니를 집에서는 유배(쫓아냄) 내지는 사형(안락사) 시키라며 화를 엄청 냈다.
브라우니의 아기 때 모습. 제가 생돈 내 직접 키운 이유를 아시겠지요?
그냥 조금 다쳤다고 올린 건데, 브라우니가 이렇게 수세에 몰려 벼랑 끝에 설 줄은 몰랐다. 그제서야 인터넷에서 고양이 양육에 대해서 검색해 보니 내가 잘못했던 거였다. 고양이에게 매매를 때리면 공격성이 생긴다고 한다. 훈육이 필요하면 목소리만 높여 말해도 고양이들은 알아듣는다고 한다.
그날 가족들한테 쿠사리를 왕창 먹고, 구석에서 눈치를 보고 있는 브라우니를 무릎에 앉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브라우니야, (나는) 너를 용서해.
그리고 나도 잘못했어.
주인이 고양이 키우기로 했으면 집사로서 공부를 했어야 했는데, 미안하다.
매매 맞아서 서럽고 화가 났지?
내가 너 미워서 그런 게 아니고 네가 너무 괜찮은 고양이인데, 가족들에게 욕먹는 게 안타까워서 그랬어. 너도 화 풀어? 알겠지 "
정말 사람에게 말하듯 고양이를 품에 안고 다독이며 대화를 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진짜 피곤해 곯아떨어지지 않는 한거이 매일 행하는 의식이 생겼다. 나는 매일 브라우니를 안고 하루에 한번 이상 아이컨택을 하며 주문을 외듯 말했다.
"브라우니야, 너는 칭찬받는 고양이가 되어야 해. 알겠지?"
그리고는 품에 안아주고 가끔은 머리에 뽀뽀도 해주고 엉덩이를 두들겨 주었다.
그 후로 조금씩 나아진 브라우니는 10년이 지난 지금은,가족들에게 쿠사리 보단 칭찬을 더 많이 듣는 고양이가 되었다.
몇년후형부가 장모님(나의 어머니)에게 선물로사주었던아파트. 곧 우리가 살던 아파트를 형부가 교육사업을 확장하다반사기를 당해 날렸다. 그리고 하루 아침에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5만원 집으로 이사 가야했다.
근데 브라우니가 비뇨기 쪽으로 자꾸 문제가 생겨 누적 병원비가 200만원 돈이 넘어가고 있었다. 사람 살기도 빠듯한데, 이런 상태로는 고양이를 도저히 키울 자신이 없었다.
그때도 틈만 나면 나는 브라우니와 아이컨택하며 나의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브라우니야, 우리는 이제 돈이 없어.
또 병원에 가면 너를 다른 집에 주거나 안락사를 시켜야할지도 몰라.
절대 아프면 안 된다?
브라우니 알겠지? 우쭈쭈"
그런데 놀랍다.
신기하게도 그 후로 10년 가까운 지금까지 브라우니는 예방접종 외에는 병원에 단 한 번도 안 갔다.
나는 우리 브라우니를 보며 동물도 인간의 진심 어린 말에 교감할 수 있고 심지어변화될 수 있다는 사실에 뭉클한 감동을 느낀다.
브라우니와 누님들. 오른쪽 흰고양이 별명은 사료를 많이 먹는다고 돼지ㅎ
몇주 전에 <OOOO>라는 제목의 영상말씀을 본 적이 있다. 너무 감동이 되어 세, 네 번을 반복해서 본 것 같다. 고등학교 때 방황하다 극적으로 수능을 잘 봐 인생을 리셋하듯 새롭게 살게 된 스토리였다. 세상은 물론 자신도 스스로에 희망을 포기한 그때. 그러나 다시 도전했을때 회복된 삶이 잔잔한 감동이었다.
오늘은 수능이 있는 날이다.
모든 분들이 수능을 잘 보길 바라지만 혹여 실수나 실책이 있었다 해도 실망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 운남오빠('포레스트 운남의 잭팟'에 주인공으로, 내 친오빠의 가명)도 삼수도 떨어져 사수째 대학에 들어갔으나 이후의 삶의 태도와 지향을 따라 리셋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브라우니 역시 일개 고양이지만 주인의 말을 경청하고 자세가 교정되자, 리셋되듯 칭찬받는 고양이로 성장해 가고 있다.
하물며 사람은 어떠하겠는가. 이미 살아진 인생은 되돌릴 수 없지만 다시 도전할때, 그 인생은 언제든 새로운 시작이 가능하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