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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 클레어 Nov 09. 2024

우주적 유머의 남자

일상이 유머인 연인은 행복합니다  

문맥상 보석 작가 연재는 다음주에 발행하고 아래 글을 내 의사 남친의 이솝우화 카테고리로 재발행드리는 점 양해 부탁드려요.


본글은 보석 같은 작가님들을 소개합니다12. 정호승 '내가 사랑하는 사람'편의 서두글입니다.










1장. 우주적인 유머를 가진 남자



밤하늘
            - 정호승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별들이 하나씩 있지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의 마음속에 있는 그 별을
빛나게 해주는 일이야

밤하늘에 저렇게 별들이 빛나는 것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별들이
빛나기 때문이지
          




내 짝꿍 천재는 밤에 잠잘 때면 꿈을 많이 꾼다. 20대에 돌아가신 아버지, 4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는 그의 꿈에 단골 주인공이시다. 대개 배경은 시험 치는 학교 교실이나 스펙터클한 전쟁의 한복판, 세계, 우주 등이다.


내 고등학교때 남자 이상형은 '나라와 민족을 가슴에 품은 남자'였다. 공교롭게도 천재가 고등학교 때부터 품은 꿈은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였다. 천재가 머리가 비상한데도 돈 버는 일에만 골몰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이다. 아니, 이 남자의 그녀 곧 내가 더 희망했고 날마다 희망한다. 비현실적으로 들리겠지만, 돈 버는 일은 내가 할 테니, 나라와 민족을 가슴에 품고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집중하기를 말이다. 명의 허준, 이순신, 독립운동가, 선교사 등등 대의를 품은 남자가 맨날 부동산이나 주식 시세 같은 투자 기회에만 골몰하겠는가 싶었던 것이다. 천재도 그런 쪽은 본래 무심한데다 그나마 조금 묵혀 놓았던 미국 주식도 거이다 팔아가고 있는 이유다. 부모님께 상속 받은 집과 땅 등도 먼훗날 대의를 위해 구상 중이다.


그래서일까. 천재는 예전부터 (밤에) 스케일이 큰 꿈들을 자주 꾼다. 상당 부분 주제는 도시를 구한다거나 나라, 세계 심지어는 우주를 구하는 꿈이다. 그렇다고 이 남자가 해괴망측한 과대망상증이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현실에선 냉철한 사고를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모두가 잠든 밤에 피어오르는 그의 무의식의 세계, 그곳에서 자신의 오랜 포부를 구현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근데 이 스케일이 큰 남자의 꿈에, 이젠 나도 부쩍 여주 곧 여자 주인공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멀쩡한 사람으로만 출연하면 좋은데, 종종 기상천외한 캐릭터로 진화해서 등장한다 것이 문제다. 그래 어제는 무슨 꿈을 꾸었는지, 그 꿈에 나는 나왔는지, 내가 나왔다면 어떤 캐릭터와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이었는지가 대화의 주제가 되곤 한다.


얼마 전 우리의 대화는 그런 일상 중 한 토막이었다. 천재가 대뜸 말한다.


"(어제도) 내 꿈에 (또) 너 나왔어"


얼마 전 그의 꿈이 떠올라 내가 말했다.


"이번에도 나 꼴뚜기로 나왔어? .."





천재는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듯 예능 PD처럼 흥에 겨워 말했다.


"아니, (이번엔) 우리 엄마로 (나왔어)"

"정말?"

"근데 엄마가 철딱서니가 없었어ㅋㅋㅋ"

"흥! 일루 와!"


돌아가신 어머니를 너무도 절절히 그리워하는 천재, 그는 일상 속에서도 내가 종종 엄마 같다는 말을 한다. 나랑 있으면 자주 아니 과도하게 편안해 하고 안정감을 갖는 이유 중 하나인 듯하다. 그의 꿈의 메인은 그날도 우주였다. 천재는 전날 꿈에 대해서 말을 이어갔다.


"근데 (어제) 꿈이 왜 이렇게 힘든 거야?"

"무슨 꿈인데?"

"AI시대 로봇들이 사람들을 죽이려고 하니깐 도망가는데.."


내가 브런치에 나중에 쓸 수도 있으니 스토리를 말해 보라 하고 메모를 하려니, 이렇게 쓰라 정리해서 읊어 준다.


"화약이 사라진 2099년에, 들리는 것은 우리를 쫓아오는 기계들의 발자국 소리와 그들이 쏘는 광선 소리, (그리고) 쿵하고 넘어지는 사람들 소리뿐이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일단은 그렇게 해서 탈출해 나가서 전열을 준비해서 돌아온다."

사실은 내가 (어제) 꾼 꿈은 우주정거장에서 일어난 일이었거든. 내가 우주를 지키는 꿈이었어.



그날 내 남자는 꿈조차도 우주적이라며, 클레어는 엄지를 치켜 세우며 늘 그러듯 칭찬 퍼레이드를 펼쳤다.


아무튼 이번엔 천재의 꿈에, 내가 꼴뚜기로 나오지 않아 다행이다. 그간 그의 꿈속 나의 배역은 휘황찬란했지만 꼴뚜기는 좀 가오가 너무 없지 않은가. 그의 꿈속에서 내가, 그가 사랑하는 어머니로 분하여 나왔다니 위신이 회복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아니 꿈 밖에서고, 꿈 안에서고 그가 사랑하는 사람은 결이 같은 '나, 클레어'라는 사실이 뭉클하게 감동으로 다가왔다.








*1장 스토리의 에필로그는 본글의 댓글에서 발췌해 아래 기술드려요.


클레어: 근데 왜 꿈에 내가 꼴뚜기로 나왔어? 꿈은 무의식 반영이라는데.. 내가 어디 봐서 꼴뚜기로 연상돼?


천재: 꼴뚜기가 인류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가치가 있는데?


클레어: 그래? 무슨 가치가 있는데?


천재: 어물전 망신은 누가 시킨다 했지?


클레어: 꼴뚜기.. 우씨! 그거 욕이잖아!!!


천재 : 어물전에 중요한 존재야


클레어: 모래?


천재: (만화) 둘리에 보면 꼴뚜기별 왕자님이 나오잖아요.


클레어:... 일루와. 그것도 좋은 말 아닌 것 같아.


천재: ㅋㅋㅋ


그날 천재는 등짝 스매싱을 피하려 거실 쇼파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 바둥거렸다. 그러나 결국 파다닥!


아기공룡둘리 - 꼴뚜기별의 왕자님편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프롤로그 :  연극을 개막하기에 앞서 작품의 내용이나 작자의 의도 등에 관한 해설. 소설의 시작부분.첫머리. 같은 것입니다.(서사,서막,서시) 에필로그에 대응하는 말이기도 하다.


**에필로그 : 시나 소설 등의 맺음 부분. 연극에서는 극의 종말에 추가한 끝대사 또는 보충한 마지막 장면을 말한다. 프롤로그에 대응하는 말이기도 하다.







2장. 그들의 그늘





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아래는 2023년 11월 10일 청년 클레어의  아주 웃는 날에 에서 발췌했습니다



아주 웃는 날에

삶의 고단을 산화시키는 웃는 말 사전



몇 주 전 천재와 나는 이렇게 아옹다옹 서로의 마음을 토로하였다.


천재 : 내가 이렇게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다니. 너에게 늘 고마워.

클레어 : 웅... 살면서 듣던 말 중 가장 감동적인 말이당.  

천재 : 응, 나도 이렇게 동물의 도움으로 살게 될 줄은 몰랐어ㅋㅋㅋ

클레어 : 네가 또 날을 잡는구나. (등짝 스매싱 폭격)


그는 7년 가까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던 슬럼프에서 벗어나고 있다. 연애 초반 내가 자신의 죽마고우 남자 절친들보다 더 편하다더니, 언제부터는 내가 그의 엄마를 능가하게 더 편하다 할 때도 있다.


한편 나는 그를 물가에 내놓은 아들처럼 하루에도 수없이 그의 안전을 헤아린다는 것을 그는 잘 모른다.


청년 클레어 <광화문 글판(1) 제일 아름다운 풍경> 글 중


그런 우리에게 유머는 삶의 고단함을 닦아주는 서로의 손수건 같다.


천재는 나랑 손 잡고 걷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클레어 : (다이어트 중인 천재에게) 배 많이 슬림해졌네? 무슬림~

천재 : (눈을 찡긋하며) 어....

클레어 : 내가 오늘도 (유머가) 너무 갔다. 그지?

천재 : 돌탱크

클레어 : 그럼 너는?

천재 : 원조 돌탱크

클레어 : 그럼 돌탱크 커플이네. 커플이면 돌탱크도 좋아 ㅋㅋㅋ  


우린 두 손을 꼬옥 잡고 만면 가득 웃음을 터뜨렸다.


고무머리. 천재가 어렸을 때 그의 어머니와 격이 없이 장난칠 때 쓰던 단어 중 하나였다 한다. 어머니를 3~4년 전 암으로 떠나보낸 후 더 극심한 우울증으로 고통했던 남자. 그간 더 많은 약물들로 20대~30대처럼 두뇌 회전이 되지 않는다 자책했던 그이다.


지금은 점점 약물의 개수와 양이 줄어들고 삶의 균열이 아물고 오늘이 중요해지는 그. 별도로 먹던 수면제 약은 끊었고 주치의 선생님께서는 우울증 약도 잘하면 끊어도 되겠다 하셨다.


그와 나는 돌탱크 커플을 자칭하며 삶의 고민을 공기 위로 산화시키곤 한다. 내가 그를 '천재'라 애칭 하는 것은 그의 절정기의 회복을 응원하는 애절한 기도인 것이다.


돌탱크란 단어에서 그가 고무머리를 연상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래서 돌탱크는 우리의 단골 메뉴이며 그가 돌탱크를 연발할 때 나는 안도한다. 삶의 '애(哀)'를 '희(喜)'로 승화시킬 수 있을 때, 사람은 단단해지고 의연해지기 때문이다. 


우린 삶을 이름하기 어려울 땐,

그렇게 치타, 흑돼지, 코알라, 짱구, 잠탱구리, 삼만이, 엉아, 고무머리, 돌탱크들을 호출하곤 한다.




우린 서로의 아픔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내 아픔을 모르는 듯이 잘 알고 있고

나는 그의 아픔을 하루에도 몇 번씩 무너질 듯 의연하게 잘 알고 있다.

오래 기다려 사랑을 조율하게 된 남자.

한때 그의 생명은 바람 앞에 촛불처럼 날마다가 위태로워 보였다.

나 없을 때 수면제 다량복용할까

차운전 하다 홧김에 핸들을 꺾을까 


약속시간, 나는 그가 언제 도착하는지 묻기를 주저했다. 다만 내가 몇 시에 도착하는지 열심히 전송할 뿐이었다. 아직 다 벗어나지 못해 바둥거리며 자기 자신과 싸우는 그. 그의 오늘을 채근하지 않고 넉넉히 기다리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젠 내가 묻지 않아도 그는 도착할 시간뿐 아니라 출발하는 시간을 촘촘하고 섬세하게 남긴다. 이젠 나의 도착할 시간도 동동거리며 실시간으로 묻는 그. 우린 그렇게 온도를 높여가며 삶의 시간을 조율해 가고 있다


삶이 고단한 날.

그간 인생이 너무 초췌해서

과거의 시무룩한 감정이 또다시 올라올 때

우린 웃는다. 웃었고 아주 웃을 것이다.









3장. 내가 사랑하는 그와의 일상


짝꿍 천재는 일상적인 일, 행정적인 일에 서투를 때가 많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화장실 문제다.


2주 전, 7월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클레어는 누군가 급전이 필요한 사람을 어떻게 도와줄까 고심하던 차였다. 때마침 아니 공교롭게 1년에 몇 번 없는 거사가 일어난 것이다. 바로 천재네 집 양식 변기가 막힌 것이다. 왜 막혔는지는 그의 프라이버시니 비밀에 부쳐 둔다. 물론 모두가 아는 바로 그 이유일테지만 말이다.


그는 막힌 변기 뚫는 일도 서투르다. 혼자 시도해 보았지만 성공한 적이 내가 아는 한 다. 자연스럽게 몇 년 전부터 이 업무는 내 몫이 되었고 꽤 여러 번 거사를 성공적으로 치른 례가 있다.





그날도 천재네 집에 도착해서 거실에서 폰을 뒤척이고 있는데, 화장실에서 나온 천재의 얼굴에서 예의 부끄러움과 미소년의 앙증맞음이 살포시 겹쳐져 묘한 실루엣을 자아냈다. 천재가 말했다.


"화장실 가려면 안방 화장실 가. 거실 화장실 또 막혔어.."

"아.. 또? 어.. 얼마나?"


여기서 '얼마나'는 얼마나 심각하게 막혔는가란 질문이다. 화장실 막힘도 상. 중. 하가 있다. 몇 번 심각하게 막힌 적이 있어, 한 번은 동네 수리점 사장님께 출장서비스를 요청해 거금 몇 만 원이 나간 적도 있다. 천재네 아파트는 30년이 다된 구식이라, 아파트 여기저기 아픈 듯하다. 변기 막힘이 반복되자 쿠O에서 고도의 전문화된 변기 뚫어 장비를 장만했다. 그 장비는 우리 집에서도 종종 쓰던 요긴한 물건인데, 사용 방법만 잘 숙지하면 진실로 만병통치약이다.


한편 천재는 좀 전까지 폰을 뒤적거리는 내게서, 지인을 도와주려 급전을 고민하는 내색을 감지했던 듯도 싶다. 7월은 엄마 병원비, 재산세, 조카 진국이, 친구 그리고 큰언니 500만 원까지 도와주느라 또 한 번 통장 잔고 현금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내 개인 생활비 외에 얼마가 나갔는가, 가늠하기도 번거로울 지경이었다.


천재는 내 안색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캐취 하는데, 이 이전 상황들도 대부분 다 알고 있던 터였다. 천재는 잠깐 머리 자르러 미용실 갔다가 그곳에서 톡을 주었다.


"변기 어주면 10만 원 줄게"


자신의 부끄러움을 명분으로 내가 불편하지 않게 그 급전에 힘을 실어 주고 싶었나 보다. 이에 머리 자르고 집에 돌아온 천재에게 말했다. 물론 변기 뚫기는 늘 내 담당이며 항상 무료 봉사였다. 허나 이날은 나도 급전이 아쉬운지라 안면 몰수하고 말했다.


"매번 (변기 막힌 거) 부끄러워하지 말고, 적립금 개념으로 연 단위로 선지급하고 편하게 일을 보는 건 어때?"


그러자 천재가 좋은 아이디어라며 가격협상에 들어갔다. 1년에 얼마로 할 건지로 시작한 협상은 급기야 2년으로 기간을 늘렸고 금액도 올렸다. 변기 막힘은 아주 많아야 1년에 2~3번임을 감안해서 드디어 가격을 책정했다. 2년간 "부끄럼 없게" 변기를 뚫어 주되 횟수에 제한 없다는 전제로 100만 원 선지급 말이다.


"탕탕탕!"


마치 솔로몬왕의 지혜의 판결처럼, 판관 포청천의 호탕한 결론처럼, 우린 모두가 웃을 수 있는 방법으로 애매한 두 가지 이슈를 잘 해결했다. 나는 사랑의 인준을 남기듯 천재와 거실에 함께 있음에도 일부러 답톡을 남겼다.


"변기 2년간 100만원 프리패스 땡큐!"



                                                                                                                    






무던하고 편안하고 손익을 크게 따지지 않는 우리. 내 사랑하는 남자의 큰 마음은, 그가 오래도록 품어온 꿈을 일상의 작은 실천부터 구현하는 진정어린 모습인 것이다.


내 손이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명분을 만들어 급전을 만들어준  남자, 그의 부끄러운 에피소드를 밝은 위트로 변환시켜 준 한 여자, 사랑은 너그러움을 만들어 내는 금가루 레시피이다.







*프리패스(free pass) : 박물관, 극장, 영화관, 대중교통 승차 등을 비용 지불 없이 이용할 수 있는 문서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젠 프리패스는 어디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이용권에서 조금 더 확장된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느 장소나 관문을 쉽게 통과'하는 뜻으로 쓰입니다.











※저희 짝꿍 천재(가칭)는 브런치 작가활동은 전혀 하지 않아요. 비슷한 필명'들'에 헷갈리지 마셔요 :)

*사진, 그림 출처 : 핀터레스트(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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