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 같은 작가님들을 소개합니다 매거진 은 내용이 상당히 방대하곤 합니다. 논문 같은 길이에 처음 본글을 접하는 독자분들은 핸드폰 스크롤을 10번도 더 넘게 내렸다는 위트 있는 말씀도 주셨는데요.
그런 연유로 글을 여유를 가지고 충분히 다 읽으시도록 연재 간격을 <3주일 전후>로 늘려 봅니다. 물론 제가 문득 글을 빨리 올리고 싶을 때는, 그 주기가 가끔 더 짧아질 수도 있겠으나 우선 이렇게 시범 삼아 진행해 볼게요.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좀 더 줄이거나 늘리거나 해볼게요. [연재 브런치북] 투덜이 털보와 마음숲 연재하는 주는 쉬고 1주일 뒤 연재됩니다.
브런치에 Top10 에 들어갈 역대급 글 길이에도 지치지 않으시고 함께 해주시는 독자분들을 늘 존경하고 애정합니다 :)
1장. 우주적인 유머를 가진 남자
밤하늘
- 정호승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별들이 하나씩 있지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의 마음속에 있는 그 별을
빛나게 해주는 일이야
밤하늘에 저렇게 별들이 빛나는 것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별들이
빛나기 때문이지
내 짝꿍 천재는 밤에 잠잘 때면 꿈을 많이 꾼다. 20대에 돌아가신 아버지, 4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는 그의 꿈에 단골 주인공이시다. 대개 배경은 시험 치는 학교 교실이나 스펙터클한 전쟁의 한복판, 세계, 우주 등이다.
내 고등학교 때 남자 이상형은 '나라와 민족을 가슴에 품은 남자'였다. 공교롭게도 천재가 고등학교 때부터 품은 꿈은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였다. 천재가 머리가 비상한데도 돈 버는 일에만 골몰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이다. 아니, 이 남자의 그녀 곧 내가 더 희망했고 날마다 희망한다. 비현실적으로 들리겠지만, 돈 버는 일은 내가 할 테니, 나라와 민족을 가슴에 품고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집중하기를 말이다. 명의 허준, 이순신, 독립운동가, 선교사 등등 대의를 품은 남자가 맨날 부동산이나 주식 시세 같은 투자 기회에만 골몰하겠는가 싶었던 것이다. 천재도 그런 쪽은 본래 무심한데다 그나마 조금 묵혀 놓았던 미국 주식도 거이다 팔아가고 있는 이유다. 부모님께 상속 받은 집과 땅 등도 먼훗날 대의를 위해 구상 중이다.
그래서일까. 천재는 예전부터 (밤에) 스케일이 큰 꿈들을 자주 꾼다. 상당 부분 주제는 도시를 구한다거나 나라, 세계 심지어는 우주를 구하는 꿈이다. 그렇다고 이 남자가 해괴망측한 과대망상증이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현실에선 냉철한 사고를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모두가 잠든 밤에 피어오르는 그의 무의식의 세계, 그곳에서 자신의 오랜 포부를 구현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근데 이 스케일이 큰 남자의 꿈에, 이젠 나도 부쩍 여주 곧 여자 주인공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멀쩡한 사람으로만 출연하면 좋은데, 종종 기상천외한 캐릭터로 진화해서 등장한다 것이 문제다. 그래 어제는 무슨 꿈을 꾸었는지, 그 꿈에 나는 나왔는지, 내가 나왔다면 어떤 캐릭터와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이었는지가 대화의 주제가 되곤 한다.
얼마 전 우리의 대화는 그런 일상 중 한 토막이었다. 천재가 대뜸 말한다.
"(어제도) 내 꿈에 (또) 너 나왔어"
얼마 전 그의 꿈이 떠올라 내가 말했다.
"이번에도 나 꼴뚜기로 나왔어? 힝.."
천재는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듯 예능 PD처럼 흥에 겨워 말했다.
"아니, (이번엔) 우리 엄마로 (나왔어)"
"정말?"
"근데 엄마가 철딱서니가 없었어ㅋㅋㅋ"
"흥! 일루 와!"
돌아가신 어머니를 너무도 절절히 그리워하는 천재, 그는 일상 속에서도 내가 종종 엄마 같다는 말을 한다. 나랑 있으면 자주 아니 과도하게 편안해 하고 안정감을 갖는 이유 중 하나인 듯하다. 그의 꿈의 메인은 그날도 우주였다. 천재는 전날 꿈에 대해서 말을 이어갔다.
"근데 (어제) 꿈이 왜 이렇게 힘든 거야?"
"무슨 꿈인데?"
"AI시대 로봇들이 사람들을 죽이려고 하니깐 도망가는데.."
내가 브런치에 나중에 쓸 수도 있으니 스토리를 말해 보라 하고 메모를 하려니, 이렇게 쓰라 정리해서 읊어 준다.
"화약이 사라진 2099년에, 들리는 것은 우리를 쫓아오는 기계들의 발자국 소리와 그들이 쏘는 광선 소리, (그리고) 쿵하고 넘어지는 사람들 소리뿐이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일단은 그렇게 해서 탈출해 나가서 전열을 준비해서 돌아온다."
사실은 내가 (어제) 꾼 꿈은 우주정거장에서 일어난 일이었거든. 내가 우주를 지키는 꿈이었어.
그날 내 남자는 꿈조차도 우주적이라며, 클레어는 엄지를 치켜 세우며 늘 그러듯 칭찬 퍼레이드를 펼쳤다.
아무튼 이번엔 천재의 꿈에, 내가 꼴뚜기로 나오지 않아 다행이다. 그간 그의 꿈속 나의 배역은 휘황찬란했지만 꼴뚜기는 좀 가오가 너무 없지 않은가. 그의 꿈속에서 내가, 그가 사랑하는 어머니로 분하여 나왔다니 위신이 회복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아니 꿈 밖에서고, 꿈 안에서고 그가 사랑하는 사람은 결이 같은 '나, 클레어'라는 사실이 뭉클하게 감동으로 다가왔다.
*1장 스토리의 에필로그는 본글의 댓글에서 발췌해 아래 기술드려요.
클레어: 근데 왜 꿈에 내가 꼴뚜기로 나왔어? 꿈은 무의식 반영이라는데.. 내가 어디 봐서 꼴뚜기로 연상돼?
천재: 꼴뚜기가 인류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가치가 있는데?
클레어: 그래? 무슨 가치가 있는데?
천재: 어물전 망신은 누가 시킨다 했지?
클레어: 꼴뚜기.. 우씨! 그거 욕이잖아!!!
천재 : 어물전에 중요한 존재야
클레어: 모래?
천재: (만화) 둘리에 보면 꼴뚜기별 왕자님이 나오잖아요.
클레어:... 일루와. 그것도 좋은 말 아닌 것 같아.
천재: ㅋㅋㅋ
그날 천재는 등짝 스매싱을 피하려 거실 쇼파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 바둥거렸다. 그러나 결국 파다닥!
*프롤로그 : 연극을 개막하기에 앞서 작품의 내용이나 작자의 의도 등에 관한 해설. 소설의 시작부분.첫머리. 같은 것입니다.(서사,서막,서시) 에필로그에 대응하는 말이기도 하다.
**에필로그 : 시나 소설 등의 맺음 부분. 연극에서는 극의 종말에 추가한 끝대사 또는 보충한 마지막 장면을 말한다. 프롤로그에 대응하는 말이기도 하다.
2장. 그들의 그늘
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아래는 2023년 11월 10일 청년 클레어의 아주 웃는 날에 에서 발췌했습니다
아주 웃는 날에
삶의 고단을 산화시키는 웃는 말 사전
몇 주 전 천재와 나는 이렇게 아옹다옹 서로의 마음을 토로하였다.
천재 : 내가 이렇게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다니. 너에게 늘 고마워.
클레어 : 웅... 살면서 듣던 말 중 가장 감동적인 말이당.
천재 : 응, 나도 이렇게 동물의 도움으로 살게 될 줄은 몰랐어ㅋㅋㅋ
클레어 : 네가 또 날을 잡는구나. (등짝 스매싱 폭격)
그는 7년 가까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던 슬럼프에서 벗어나고 있다. 연애 초반 내가 자신의 죽마고우 남자 절친들보다 더 편하다더니, 언제부터는 내가 그의 엄마를 능가하게 더 편하다 할 때도 있다.
한편 나는 그를 물가에 내놓은 아들처럼 하루에도 수없이 그의 안전을 헤아린다는 것을 그는 잘 모른다.
청년 클레어 <광화문 글판(1) 제일 아름다운 풍경> 글 중
그런 우리에게 유머는 삶의 고단함을 닦아주는 서로의 손수건 같다.
천재는 나랑 손 잡고 걷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클레어 : (다이어트 중인 천재에게) 배 많이 슬림해졌네? 무슬림~
천재 : (눈을 찡긋하며) 어....
클레어 : 내가 오늘도 (유머가) 너무 갔다. 그지?
천재 : 돌탱크
클레어 : 그럼 너는?
천재 : 원조 돌탱크
클레어 : 그럼 돌탱크 커플이네. 커플이면 돌탱크도 좋아 ㅋㅋㅋ
우린 두 손을 꼬옥 잡고 만면 가득 웃음을 터뜨렸다.
고무머리. 천재가 어렸을 때 그의 어머니와 격이 없이 장난칠 때 쓰던 단어 중 하나였다 한다. 어머니를 3~4년 전 암으로 떠나보낸 후 더 극심한 우울증으로 고통했던 남자. 그간 더 많은 약물들로 20대~30대처럼 두뇌 회전이 되지 않는다 자책했던 그이다.
지금은 점점 약물의 개수와 양이 줄어들고 삶의 균열이 아물고 오늘이 중요해지는 그. 별도로 먹던 수면제 약은 끊었고 주치의 선생님께서는 우울증 약도 잘하면 끊어도 되겠다 하셨다.
그와 나는 돌탱크 커플을 자칭하며 삶의 고민을 공기 위로 산화시키곤 한다. 내가 그를 '천재'라 애칭 하는 것은 그의 절정기의 회복을 응원하는 애절한 기도인 것이다.
돌탱크란 단어에서 그가 고무머리를 연상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래서 돌탱크는 우리의 단골 메뉴이며 그가 돌탱크를 연발할 때 나는 안도한다. 삶의 '애(哀)'를 '희(喜)'로 승화시킬 수 있을 때, 사람은 단단해지고 의연해지기 때문이다.
우린 삶을 이름하기 어려울 땐,
그렇게 치타, 흑돼지, 코알라, 짱구, 잠탱구리, 삼만이, 엉아, 고무머리, 돌탱크들을 호출하곤 한다.
우린 서로의 아픔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내 아픔을 모르는 듯이 잘 알고 있고
나는 그의 아픔을 하루에도 몇 번씩 무너질 듯 의연하게 잘 알고 있다.
오래 기다려 사랑을 조율하게 된 남자.
한때 그의 생명은 바람 앞에 촛불처럼 날마다가 위태로워 보였다.
나 없을 때 수면제 다량복용할까
차운전 하다 홧김에 핸들을 꺾을까
약속시간, 나는 그가 언제 도착하는지 묻기를 주저했다. 다만 내가 몇 시에 도착하는지 열심히 전송할 뿐이었다. 아직 다 벗어나지 못해 바둥거리며 자기 자신과 싸우는 그. 그의 오늘을 채근하지 않고 넉넉히 기다리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젠 내가 묻지 않아도 그는 도착할 시간뿐 아니라 출발하는 시간을 촘촘하고 섬세하게 남긴다. 이젠 나의 도착할 시간도 동동거리며 실시간으로 묻는 그. 우린 그렇게 온도를 높여가며 삶의 시간을 조율해 가고 있다
삶이 고단한 날.
그간 인생이 너무 초췌해서
과거의 시무룩한 감정이 또다시 올라올 때
우린 또 웃는다. 웃었고 아주 웃을 것이다.
3장. 내가 사랑하는 그와의 일상
짝꿍 천재는 일상적인 일, 행정적인 일에 서투를 때가 많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화장실 문제다.
2주 전, 7월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클레어는 누군가 급전이 필요한 사람을 어떻게 도와줄까 고심하던 차였다. 때마침 아니 공교롭게 1년에 몇 번 없는 거사가 일어난 것이다. 바로 천재네 집 양식 변기가 막힌 것이다. 왜 막혔는지는 그의 프라이버시니 비밀에 부쳐 둔다. 물론 모두가 아는 바로 그 이유일테지만 말이다.
그는 막힌 변기 뚫는 일도 서투르다. 혼자 시도해 보았지만 성공한 적이 내가 아는 한 없다. 자연스럽게 몇 년 전부터 이 업무는 내 몫이 되었고 꽤 여러 번 거사를 성공적으로 치른 선례가 있다.
그날도 천재네 집에 도착해서 거실에서 폰을 뒤척이고 있는데, 화장실에서 나온 천재의 얼굴에서 예의 부끄러움과 미소년의 앙증맞음이 살포시 겹쳐져 묘한 실루엣을 자아냈다. 천재가 말했다.
"화장실 가려면 안방 화장실 가. 거실 화장실 또 막혔어.."
"아.. 또? 어.. 얼마나?"
여기서 '얼마나'는 얼마나 심각하게 막혔는가란 질문이다. 화장실 막힘도 상. 중. 하가 있다. 몇 번 심각하게 막힌 적이 있어, 한 번은 동네 수리점 사장님께 출장서비스를 요청해 거금 몇 만 원이 나간 적도 있다. 천재네 아파트는 30년이 다된 구식이라, 아파트 여기저기 아픈 듯하다. 변기 막힘이 반복되자 쿠O에서 고도의 전문화된 변기 뚫어 장비를 장만했다. 그 장비는 우리 집에서도 종종 쓰던 요긴한 물건인데, 사용 방법만 잘 숙지하면 진실로 만병통치약이다.
한편 천재는 좀 전까지 폰을 뒤적거리는 내게서, 지인을 도와주려 급전을 고민하는 내색을 감지했던 듯도 싶다. 7월은 엄마 병원비, 재산세, 조카 진국이, 친구 그리고 큰언니 500만 원까지 도와주느라 또 한 번 통장 잔고 현금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내 개인 생활비 외에 얼마가 나갔는가, 가늠하기도 번거로울 지경이었다.
천재는 내 안색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캐취 하는데, 이 이전 상황들도 대부분 다 알고 있던 터였다. 천재는 잠깐 머리 자르러 미용실 갔다가 그곳에서 톡을 주었다.
"변기 뚫어주면 10만 원 줄게"
자신의 부끄러움을 명분으로 내가 불편하지 않게 그 급전에 힘을 실어 주고 싶었나 보다. 이에 머리 자르고 집에 돌아온 천재에게 말했다. 물론 변기 뚫기는 늘 내 담당이며 항상 무료 봉사였다. 허나 이날은 나도 급전이 아쉬운지라 안면 몰수하고 말했다.
"매번 (변기 막힌 거) 부끄러워하지 말고, 적립금 개념으로 연 단위로 선지급하고 편하게 일을 보는 건 어때?"
그러자 천재가 좋은 아이디어라며 가격협상에 들어갔다. 1년에 얼마로 할 건지로 시작한 협상은 급기야 2년으로 기간을 늘렸고 금액도 올렸다. 변기 막힘은 아주 많아야 1년에 2~3번임을 감안해서 드디어 가격을 책정했다. 2년간 "부끄럼 없게" 변기를 뚫어 주되 횟수에 제한 없다는 전제로 100만 원 선지급 말이다.
"탕탕탕!"
마치 솔로몬왕의 지혜의 판결처럼, 판관 포청천의 호탕한 결론처럼, 우린 모두가 웃을 수 있는 방법으로 애매한 두 가지 이슈를 잘 해결했다. 나는 사랑의 인준을 남기듯 천재와 거실에 함께 있음에도 일부러 답톡을 남겼다.
"변기 2년간 100만원 프리패스 땡큐!"
무던하고 편안하고 손익을 크게 따지지 않는 우리. 내 사랑하는 남자의 큰 마음은, 그가 오래도록 품어온 꿈을 일상의 작은 실천부터 구현하는 진정어린 모습인 것이다.
내 손이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명분을 만들어 급전을 만들어준 한 남자, 그의 부끄러운 에피소드를 밝은 위트로 변환시켜 준 한 여자, 사랑은 너그러움을 만들어 내는 금가루 레시피이다.
*프리패스(free pass) : 박물관, 극장, 영화관, 대중교통 승차 등을 비용 지불 없이 이용할 수 있는 문서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젠 프리패스는 어디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이용권에서 조금 더 확장된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느 장소나 관문을 쉽게 통과'하는 뜻으로 쓰입니다.
※저희 짝꿍 천재(가칭)는 브런치 작가활동은 전혀 하지 않아요. 비슷한 필명'들'에 헷갈리지 마셔요 :)
*사진, 그림 출처 : 핀터레스트(pinterest)
문학 소년의 어린 시절
정호승은 1950년 경상남도 하동에서 태어났다. 은행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 1학년 때 대구로 이사하게 되면서 그 후로 대구에서 성장한다. 그가 다녔던 대구 계성중학교는 박목월과 김동리의 모교이고, 대륜고등학교는 이상화, 이육사 등의 문인들이 교직에 있었던 학교이다. 이러한 학교 분위기에 힘입어 소년 정호승은 자연스럽게 문학을 접하게 된다.
중학교 시절 문예반에서 활동했던 정호승은 매달 교내에서 실시하는 문예 현상 모집에 글을 내곤 했는데, 이때 글을 쓰는 재미를 느끼면서 글쓰기에 대해 스스로 공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꾸준히 글을 썼으며, 고교 문예 잡지인 《학원》에서 여러 차례 우수작으로 뽑히기도 하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전국 고교생 문예 현상 모집’에서 평론이 당선되어 문예 특기생으로 경희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하게 된다. 이때 당선된 정호승의 평론은 ‘전국 고교생 문예 현상 모집’에서 평론으로는 처음 당선된 작품이었다. 당시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고등학생이 쓴 것이 아닐 것이라는 의심을 받았는데, 원고에서 계속 한자를 틀리게 쓰는 것을 확인하고는 이내 그 의심을 풀었다고 한다.
시의 본질을 알려 주신 어머니
정호승이 시를 쓰겠다고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16~17세 무렵 정호승은 우연히 부뚜막에 놓여 있는 어머니의 가계부 수첩을 보게 되었다. 무심코 수첩을 뒤적거리던 그는 수첩의 한 귀퉁이에 비뚤비뚤한 글씨로 씌어 있는 어머니의 시 한 편을 읽게 된다.
가네 가네 한 여인이 풍랑 속을 가네.
비바람 세파 속을 헤치며 가네.
기우뚱 기우뚱 풍랑은 쳐도
그 여인 어머니 될 때 바람 잦으리.
마치 소월의 민요조 같은 어머니의 시를 읽으며,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어려워진 생계를 꾸려야 했던 어머니의 심정을 고스란히 읽어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이전까지는 재미와 지적 호기심만으로 시를 썼던 정호승은 시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품고, 장차 시인이 되겠다는 꿈을 꾸게 된다.
일상의 언어로 오늘의 현실을 노래한 시인
정호승은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석굴암을 오르는 영희>가 당선되고,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첨성대>가 당선되어 등단하게 된다. 등단 이후 1970년대를 대표하는 시 동인인 ‘반시(反詩)’에 참여한다. ‘일상의 언어로 오늘의 현실을 노래하는 시를 쓰자’는 취지를 바탕으로 현실에 대한 관심, 소외된 이들에게 전하는 위로와 위안을 담는 동시에 성찰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작품을 현재까지 꾸준하게 발표하고 있다. 정호승은 개인적 서정을 쉽고 간명한 시어와 인상적인 이미지로 담아냈다는 평을 받으며 1990년대 이후 가장 폭넓은 대중적 지지를 받은 시인으로 꼽히고 있다.
한편 정호승의 시는 약 40여 곡의 대중가요로 작곡되었는데, 2008년에는 가수 안치환이 ‘정호승을 노래하다’라는 제목의 음반을 발표하였으며, 매해 정호승과 함께 콘서트를 열고 있다.
ㅡ <교과서가 사랑한 작가 110> 중 ㅡ
정호승(鄭浩承)
생애
초등학교 1학년 때 대구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중학교 1학년(62년) 때 은행에 다니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여 도시 변두리에서 매우 가난한 생활을 해야 했고, 경희대가 주최한 전국고교문예 현상모집에서 “고교문예의 성찰”이라는 평론으로 당선되어 문예장학금을 지급하는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68년 입학)를 들어가게 되었으며, 같은 대학의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첨성대〉가 당선되어 시인이 되었으며,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위령제〉가 당선되어 소설가로도 등단하였다.
1979년 '슬픔이 기쁨에게'를 출간하였다. 슬픔이 담겨있는 시문을 짓는다고 하여서 문학계에서는 '슬픔의 시인' 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고 있다.
1976년 反詩 동인을 결성하여 활동하였고 한국 사회의 그늘진 면과 분단의 현실 그리고 산업화 등으로 변해가는 것을 토대로 이를 달래는 시문을 써 왔으며 소외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따스함을 주는 시문을 지어내기도 하였다.
종교는 천주교이며 신앙에서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는 '서울의 예수', '시인 예수' 등이 있다. 그러나 소설 '연인', 시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와 '풍경 달다' 같이 불교적 색채가 드러나는 작품을 집필하기도 한다.
소월시문학상, 동서문학상, 정지용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학력
대구삼덕초등학교
계성중학교
대륜고등학교
경희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문학 석사
작품 활동
시집으로 《서울의 예수》,《새벽편지》,《별들은 따뜻하다》 등이 있으며 시선집으로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있다. 제3회 소월시문학상을 받았다.[2].
정호승의 시는 “일상의 쉬운 언어로 현실의 이야기를 시로 쓰고자 한다.[3]”는 평소의 소신처럼 쉬운 말로 인간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그려내곤 한다. 이에 1976년에는 김명인 · 김승희 · 김창완 등과 함께 반시(反詩) 동인을 결성해 쉬운 시를 쓰려 노력하기도 했다.
“ 나는 한번도 그 시대에 앞장서 본 적이 없었다. 어떤 평론가는 당신은 이쪽도 저쪽도 아니라고 말했지만, 이분법이 극단적으로 횡횡하던 시절에 나는 시인이 행동하는 것은 시를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만 해도 서정적인 시적 장치는 고운 눈으로 봐주던 시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서정이 빠져 버렸다면 지금까지 누가 내 시를 읽겠는가. ”
한편, 정호승의 몇몇 시는 양희은이나 안치환 등 가수들에 의해 노래로 창작되어 음반으로 출시되기도 했다. 시편 〈부치지 않은 편지〉(백창우 작곡)는 가수 김광석의 유작앨범에 수록되었다.
“그대 죽어 별이 되지 않아도 좋다./ 푸른 강이 없어도 물은 흐르고/ 밤하늘은 없어도/ 별은 뜨나니/ 그대 죽어 별빛으로 빛나지 않아도 좋다.… …”
〈이별노래〉는 최종혁 작곡으로 이동원이 불러 대중에 널리 알려졌다.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 아직 늦지 않으리.… …”
개인적 서정을 쉽고 간명한 시어와 인상적인 이미지에 담아냈다는 평으로, 소월과 미당을 거쳐 90년대 이후 가장 폭넓은 대중적 지지를 받은 시인으로 꼽혔다. 민중들의 삶에 대한 깊고 따뜻한 관심과 애정을 표출해 왔으며 관찰의 성실함과 성찰의 진지함으로 민중들의 애환과 시대의 문제를 시 속에 형상화하였다.[1]
1987년 시선집 《새벽편지》, 1991년 《흔들리지 않는 갈대》 등은 20년 이상 판을 거듭하면서 젊은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그의 시는 민중적 서정성을 특징으로 꼽는데, 〈임진강에서〉는 민요적 운율감을 잘 나타낸 작품이다.
“ 아버지 이제 그만 돌아가세요/ 임진강 샛강가로 저를 찾지 마세요/ 찬 강바람이 아버지의 야윈 옷깃을 스치면/ 오히려 제 가슴이 춥고 서럽습니다/ 가난한 아버지의 작은 볏단 같았던/ 저는 결코 눈물 흘리지 않았으므로/……”
작품
시집
1979년 《슬픔이 기쁨에게》 (창작과 비평사)
1982년 《서울의 예수》(민음사)
1987년 《새벽편지》 (민음사)
1990년 《별들은 따뜻하다》
1991년 《흔들리지 않는 갈대》 (미래사)
1997년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1998년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열림원)
1999년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2003년 《내가 사랑하는 사람》(열림원)
2004년 《이 짧은 시간 동안》(창비)
2007년 《포옹》(창비)
2010년 《밥값》 (창비)
2013년 《여행》 (창비)
2014년 《내가 사랑하는 사람》(신개정판)(열림원)
2015년 《수선화에게》(비채)
2017년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2022년 《슬픔이 택배로 왔다》
소설
《서울에는 바다가 없다》
동화
《에밀레 종의 슬픔》
어른이 읽는 동화
«연인»
동시
2010년 《참새》(처음주니어)
산문집
[2006년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2013년]《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수상
1989년 소월시문학상
2000년 정지용 문학상
2006년 한국가톨릭문학상
2009년 지리산 문학상
2011년 공초문학상
인간의 외로움을 읊조리는 서정시인, 정호승
(2024.04.01)
정호승 시인은 우리에게 「슬픔이 기쁨에게」라는 시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이 시는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와 시험에 지문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라는 문장은 시험 치기 급급한 고등학생들에게 순간의 감동을 줬다.
1950년생인 정호승 시인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지만 학창시절을 대구에서 보냈고 “범어천은 나의 시적 사유의 근원이 되는 모태와 같다”고 언급할 만큼 대구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그리고 그 범어천이 보이는 수성구의 들안길에 정호승 문학관이 자리하게 됐다. 문학관에는 시인을 소개하는 공간뿐 아니라 카페, 강연을 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까지 함께 있어 지역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3월 19일 오후 정호승 문학관에서 정호승 시인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호승 문학관을 가다
수성구 들안로에 위치한 정호승 문학관은 지난해 4월 1일 문을 열었다. 과거 범어3동 행정복지센터를 리모델링한 건물로 새빨간 외관이 돋보인다. 기존 건축물을 재생해 공간적 가치를 구현하고, 시민의 삶을 향상시킨 건축물을 선정해 주는 상인 ‘미터(美터:m)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개관 첫 해에만 만 3천여 명이 이곳을 찾았다. 시인만의 공간이 아닌, 시민들이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꾸려져 많은 사람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19일 만난 정호승 시인은 시인의 역할 중에도 인간에게 위안이 되고 위로를 주는 역할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송이의 꽃을 볼 때, 그 꽃이 피어 있는 존재 자체, 순수성이나 절대성에 의미를 둘 수도 있고 그 꽃이 나를 위안해 주는 부분에 주목할 수도 있다. 시가 꽃이라면, 그 시라는 꽃이 인간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가? 나는 위안을 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 문학관 1층 낙타커피에서 인터뷰 중인 정호승 시인
문학관의 지하 1층은 다목적 강당으로, ‘시인과의 만남’과 같은 강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대관 또한 가능하다. 지상 1층에는 카이막과 터키 커피를 함께 파는 북 카페 ‘낙타커피’가 있다. 카페 벽을 가득 채운 시집들은 입장하자마자 방문객들의 마음 속 문학 감성을 끌어낸다. 2층은 정호승 시인의 공간이다. 시인의 육필원고부터 편지, 신문 기사 그리고 시로부터 영감을 얻는 그림과 음악으로 가득 차 있다. 2층을 둘러보면 시인 정호승의 삶을 따라갈 수 있다. 시인의 방에는 시인의 소품들을 전시해 말 그대로 시인의 공간을 똑같이 옮겨뒀다.
“많은 사람이 오늘을 살아간다. 인생은 고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내 삶의 고통을 위안 받고 싶을 때가 있다. 어머니를 찾아가서 위로받고 싶을 때가 있듯이 위안 받는 방법은 다양하다. 이 문학관에서 시를 만나는 것도 내 삶의 고통을 위안 받는 좋은 방법 중 하나이다.”
▲ 문학관 외관의 붉은색은 시인의 어린 시절, 여름철 마다 범어천 둑 위로 흘러넘쳤던 황톳물 색을 상징한다 .
정호승, 대구를 노래하다
정호승은 1956년, 7살에 태어난 곳인 하동군을 떠나 대구로 이사왔다. 그 후, 삼덕초등학교 계성중학교 대륜고등학교를 졸업하며 학창시절을 대구에서 보냈다. 그래서일까. 태어난 곳은 하동이고 서울에서 청춘을 보냈지만 그의 마음의 고향은 다름 아닌 ‘대구’인 듯하다.
“대구는 나의 고향이다.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 때 바로 여기 문학관이 있는 건너편 옛집으로 이사 왔다. 지금은 형태가 바뀌었지만 바로 이 골목 맞은편에 있는 집으로 이사를 와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3학년 12년 동안 학교를 다니고 자랐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고향도 대구이기에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나의 고향이 모두 대구라고 할 수 있다.”
2020년 11월에 펴낸 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에서도 정 시인은 ‘내 시의 고향이자 내 문학의 모성적 원천이며, 내 문학의 살과 뼈는 범어천에서 형성됐다’고 말한다. 그의 시 속에도 대구에 대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들이 있다. 시 「김밥을 먹으며」 중 한 대목인 ‘서울행 막차를 기다리며 동대구역 대합실 구석에 앉아 김밥을 먹는다’를 소개하며 정 시인은 “동대구역 대합실에서 한 노숙자가 나에게 와서 김밥을 달라해 함께 김밥을 먹으며 한 이야기를 담은 실제 경험을 토대로 한 시”라고 설명했다.
정 시인은 시 「벗에게」 중 한 대목인 ‘내 죽어 범어천 개울가의 진흙이 되어 얼음장 밑으로 졸졸졸 봄이 오는 소리를 내고 있으면’도 함께 꺼냈다.
“고향의 의미는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인간이 형성되는 결정적인 시기는 청소년기이다. 그때 한 인간이 형성된다. 육체적으로 형성되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나’라는 존재의 인격, 사물과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인식 이런 것들이 어디서 형성되고 배웠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 곳이 이곳, 범어동이다. 옛날에 배추밭이었던 이 문학관 자리에서 쥐불놀이를 하던 기억과 범어천을 따라 등교하던 기억이 나를 형성해준 공간이다. 그래서 범어천이 모태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개인으로서의 고향이고, 내 존재로서의 고향이고, 또 시의 고향이자 시인으로서의 고향이다.”
외로움을 노래하다
정호승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정시인 중 한 명이다. 특히 그의 시에서는 ‘외로움’과 ‘슬픔’이라는 키워드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첫 번째 시집 이름이자, 대표시 중 하나인 「슬픔이 기쁨에게」부터, 일곱 번째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와 그에 수록된 시 「수선화에게」까지 수없이 외로움을 노래했다.
그의 시 속에 담겨있는 외로움에 대해 정호승은 “인간은 원래 외롭게 태어나서 외롭게 죽어가는 존재”라며 인간의 본질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어 “왜 외로운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받아들여한다”며 “이러한 인간의 본질을 탐색하고, 그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시인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를 작품으로 표현해 낸 것이 「수선화에게」라는 시이다.
“시인은 인간에 대한 자연에 대한 사물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시를 쓸 수가 없다. 사랑과 같은 모든 본질적 가치 역시 ‘시’를 통해서 찾아내는 것이다. 즉, 시인은 ‘인간 삶의 본질의 가치를 찾아나가는 직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 『수선화에게』
시인 정호승, 작사가가 되다
정호승의 시는 약 80여 편이 노래로 작곡됐다. 시노래(대중가요), 가곡, 합창곡, 교향곡, 동요 등 다양하게 작곡돼 우리나라 시인들 중 가장 많은 시가 노래가 됐다. 최초로 노래가 된 시는 「이별노래」. 최종혁이 작곡하고 이동원이 불러 1985년 한 해에 약 1백만 장의 음반이 판매됐다. 이후 이동원의 「봄길」, 김광석의 「부치지 않은 편지」, 안치환의 「우리가 어느 별에서」,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 등이 작곡, 발매됐다.
“노래를 위해서 시를 쓴 건 아니다. 내가 쓴 시를 많은 작곡가들이 곡에 가사로 붙인 것이다. 보통 ‘시 노래’라고 이야기한다. 합창곡도 있고 동요, 가곡도 있다. 시 속에 멜로디가 있기 때문에 많은 노래로 재탄생했다고 생각한다. 시와 노래는 서로 하나다. 노래 속에 시가 있고 시 속에 노래가 있다. 근데 그러한 것을 발견하는 눈이 있는 작곡가들이 시를 가사로 작업한 것이다.”
정호승의 작품은 음악 외에도 다양한 예술 장르와 접목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시를 읽고 조각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캘리그라피도 있고 서예도 존재한다. 시가 다른 예술의 분야와 접목돼서 영역을 넓히는 것은 그만큼 시를 우리가 나누는 방법이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를 나누는 방법이 많아지면 나는 필자 속에서만 갇혀 있지 않게 된다. 그 점이 시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 수많은 음악으로 재탄생한 정호승 시인의 시
문학 장르의 양면성
‘문학’은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이다. 즉, 정답이 없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작가가 의도한 작가만의 감정만이 존재할 뿐, 필자 속에 갇혀있지 않고 독자들에게 자유롭게 다가갈 수 있다. 그러나 문학이 그러한 자유로움을 펼치지 못하는 곳이 존재한다. 바로 ‘시험지 속 문학’이다.
“대학을 위한 수능 시험을 준비하며 공부하는 시와 한 자연인으로서 시를 읽고 이해하고 이 속에서 삶의 가치를 찾기 위한 시를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능을 대비해서 시를 공부할 때는 명확한 목적이 있다. 문제가 나왔을 때 그 문제에 답을 틀리지 않도록 공부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시에 정답은 없다.”
김영하 작가는 과거 교과서에 본인의 글이 실리는 것을 반대한다는 언급을 했다. 교과서에는 원문이 그대로 실리지 않기 때문에 작가가 추구했던 내적 완결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문학은 문장으로 환원되거나 교과서 '저자'들의 맥락 속으로 폭력적으로 편입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결국은 입시 교육의 한 도구가 되고 있다는 것을 비판했다.
정호승 시인의 작품 역시 수많은 교과서에 게재됐다. 문학 지문으로 등장한 횟수 역시 많다. 입시를 준비한 고등학생이라면 「슬픔이 기쁨에게」는 한 번쯤은 들어봤을 수밖에 없다. 시인의 입장에서 교과서에 실린 나의 시는 어떤 존재일까.
“수능을 위해서 공부하는 시에는 정답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 정답을 파악하고 제시하고 이끌어주는 국어 선생님들의 수업을 따라 공부하는 것이 가장 좋다. 다만 수능을 위해 시를 공부하는 건 억압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정답을 찾기 위해 억압당하는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 그 억압을 벗어났을 때는 시 해석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 시를 읽어도 되고 안 읽어도 되고, 또 내 식대로만 읽어도 된다. 같은 시지만 그것을 이해하는 방법, 접근하는 방법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 목적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나 역시 처음에는 문제들을 풀어보고 정답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런데 답이 틀린 경우도 있고 맞는 경우도 있었다. 다른 시인들의 시도 굉장히 어려웠다.”
▲ 「슬픔이 기쁨에게」육필 원고
정호승이 사랑하는 시
“한국 현대시는 김소월으로부터 시작했다. 무엇보다 그런 시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 윤동주의 「서시」같은 시는 누구나 다 좋아하고 나도 마찬가지로 거기서 벗어날 수가 없다.”
한편, 본인의 작품 중에 가장 애정하는 작품은 「산산조각」이라고 말한다. 시에 대한 애정은 그의 이어지는 작품 활동에서 볼 수 있다. 「산산조각」은 2004년, 시집 『이 짧은 시간동안』을 통해 세상에 나온 이후 에세이를 넘어 2022년 우화소설집 『산산조각』에 포함된 「룸비니 부처님」으로 새롭게 재탄생했다.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 『산산조각』
“시의 마지막 4행이 이 시의 핵심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시를 썼지만, 가장 위안을 얻은 시 한편만 꼽으라고 하면 「산산조각」이다.「산산조각」의 마지막 사행을 항상 가슴에 품고 살고 있다”
정호승이 청춘에게
정호승은 그의 시 「고래를 위하여」를 통해 청년에게 마음속에 ‘고래 한 마리’를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청춘이라는 바다에 고래가 살아야 된다. 그 고래는 꿈의 고래, 목표의 고래, 열정의 고래를 말한다. 고래가 없는 바다는 진짜 아름다운 바다가 아니다. 바다가 아름다운 까닭은 고래가 살기 때문이다. 바다에 섬이 없으면 바다는 아름답지 않다. 섬이 하나도 없고 수평선만 이어진다면 바다는 아름답지가 않다. 바다에 섬이 있기 때문에 바다가 아름답고, 바다 깊은 곳에 고래가 살기 때문에 바다는 아름다운 것이다.”
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
푸른 바다가 아니지
마음속에 푸른 바다의
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
청년이 아니지
푸른 바다가 고래를 위하여
푸르다는 걸 아직 모르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모르지
고래도 가끔 수평선 위로 치솟아 올라
별을 바라본다
나도 가끔 내 마음속의 고래를 위하여
밤하늘 별들을 바라본다
- 『고래를 위하여』
“어떤 사람은 자기 청춘을 강 혹은 냇가라고 생각한다. 냇가에는 고래가 살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크고 깊은 망망대해로 생각해야 된다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다. 그래야 내 꿈, 미래라는 고래가 마음속에 살 수 있다. AI 시대에 20대의 미래는 하나가 아니다. 나의 『내 인생이 힘이 되어준 한 마디』 라는 산문집에 「10년 뒤에 내가 무엇이 되어 있을까를 지금 항상 생각하라」 라는 제목의 산문이 있다. 10년 뒤에 내가 무엇이 되어 있을까를 지금 항상 생각하는 1년이 지난 후, 1년이 지난 그 시점에 또 10년 뒤에 내가 무엇이 되어 있을까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미래의 나를 생각하며 오늘의 나를 소중하게 사랑해야 된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청년들도 많은 것 같다. 10대 혹은 20대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은 너무 안타깝다. 어떤 것이든 견딜 수 인내의 힘이 가장 중요하다. 참고 견뎌야 된다. 아무리 현실적으로 뭔가 힘듦이 있더라도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10년 뒤에 나를 항상 생각하면서 오늘을 자신을 사랑하면서 열심히 살아야 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청춘을 강 혹은 냇가라고 생각한다. 그곳에는 고래가 살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크고 깊은 망망대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래야 내 꿈이라는 고래가 마음속에 살 수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AI의 시대에 20대의 미래는 하나가 아닐 것이다. ‘내 인생이 힘이 되어준 한 마디’ 라는 나의 산문집에 ‘10년 뒤에 내가 무엇이 되어 있을까를 지금 항상 생각하라’ 라는 제목의 산문이 있다. 10년 뒤에 내가 무엇이 되어 있을까를 항상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자. 미래의 나를 생각하며 오늘의 나를 소중하게 사랑해야 한다.그런데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청년들도 많은 것 같다. 10대와 20대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은 너무 안타깝다. 어떤 것이든 견딜 수 인내의 힘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현실적으로 힘들더라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기르자.”
교과서 속에서 작품을 통해 만난 정호승 시인은 슬픔과 외로움 등을 강조하는 조금은 어두운 이미지였다. 그러나 실제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를 나눠본 그의 모습은 따뜻한 마음을 지닌 한 명의 문학 소년과도 같았다.
정호승 시인은 우리 모두는 시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시는 우리 안에 깊이 숨겨진 감정과 상상력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매체이다. 학업 증진을 위한 전공 서적은 중요하지만, 때로는 문학이 주는 감동과 행복에 빠져 보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작은 문학의 순간들이 우리 삶을 더욱 풍요롭고 의미 있는 곳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 『봄길』 中
▲ 문학관 지하 다목적 강당에서 독자들과 소통 중인 정호승 시인
<정호승의 시·산문집>
슬픔이 기쁨에게
1979년 창작과비평사 초판, 『창비시선 19』 정호승의 첫 시집. 표제시 「슬픔이 기쁨에게」는 정호승의 대표작으로 고등학교 국어, 문학교과서에 게재돼 있다.
서울의 예수
1982년 민음사 초판, 『오늘의 시인총서 21』 정호승의 두 번째 시집. 이 시집에 게재된 시 「임진강에서」로 제3회 소월시문학상 수상.
새벽편지
1987년 민음사 초판, 『민음의 12』 정호승의 세 번째 시집. 이 시집에 가수 김광석이 마지막으로 남긴 노래의 가사가 된 시 「부치지 않은 편지」가 게재돼 있다.
별들은 따뜻하다
1990년 창비, 『창비시선 88』 정호승의 네번째 시집.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1997년 창비,『창비시선 161』 정호승의 다섯 번째 시집. 이 시집으로 제10회 동서문학상 수상.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1999년 창비, 『창비시선 191』 정호승의 여섯 번째 시집. 이 시집으로 제11회 편운문학상, 제15회 경희문학상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1998년 열림원, 정호승의 일곱 번째 시집. 이 시집에 정호승의 대표 시이자 중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게재된 시 「수선화에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 「풍경 달다」 「고래를 위하여」 「달팽이」 등이 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2004년 창비, 『창비시선 235』 정호승의 여덟 번째 시집. 이 시집에 정호승의 대표 시 「바닥에 대하여」 「산산조각」 이 게재돼 있다.
포옹
2007년 창비, 『창비시선 279』 정호승의 아홉 번째 시집. 이 시집으로 제23회 상화시인상 수상.
여행
2013년 창비, 『창비시선 362』 정호승의 열한 번째 시집.
밥값
2011년 창비, 『창비시선 322』 정호승의 열 번째 시집. 이 시집에 게재된 시 「나는 아직 낙산사에 가지 못한다」로 제19회 공초문학상, 「물의 신발」 로 제4회 지리산문학상 수상.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2017년 창비, 『창비시선 406』 정호승의 열두 번째 시집.
당신을 찾아서
2020년 창비, 『창비시선 438』 정호승의 열세 번째 시집.
슬픔이 택배로 왔다
2022년 창비, 『창비시선 482』 정호승의 열네 번째 시집. 등단 50주년 기념시집.
천사의 시
2007년 대교베텔스만, 조광호 신부와 공저.
마침내 겨울이 가려나 봐요
1986년 열음사, 『열음시선 3』 김창완, 김명인, 이동순, 정호승의 합동시집.
흔들리지 않는 갈대
1991년 미래사, 『한국대표시인100인시선집 85』
내가 사랑하는 사람
2000년 현대문학북스, 시선집.
(개정판 생략)
정호승 시인의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가치”
(2023.10.18 05:51)
나의 인생 나의 감사
용서에 대해 역설하는 정호승 시인, 사진 = 백맹기
국민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정호승 시인은 인간개발연구원 2077회 경영자연구회 강연에서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가치〉에 대해 고요한 시인의 목소리로 들려주었다.
“인생은 잠깐이다.”
어릴 때는 그냥 스쳐 지나갔으나 나이 들어보니 어르신들의 말씀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내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했는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랑’이라는 가치 외에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를 찾을 수가 없다고 결론을 미리 내렸다.
인생은 여행이다. 우리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어떤 소중한 가치, 그것을 찾아서 지금까지 여행해 온 것이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사랑, 연민, 슬픔, 기쁨, 절망, 희망, 상처, 분노, 미움, 증오 등 수많은 가치가 들어있다. 가장 소중한 가치는 '사랑'이다.
“삶이란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얼마간의 자유 시간이다.” 프랑스 빈민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피에르 신부가 한 말이다. 삶은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사랑을 찾아가는 일은 맨발로 히말라야의 설산을 기어오르는 것과 같아요. 그만큼 고통스럽다는 거예요.”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이 대학생들과 나눈 대화 한 토막을 소개할 때는 목소리를 높였다.
“진정한 성공이란 무엇입니까”
“가까운 사람에게서 사랑받는 것이 진정한 성공입니다.”
4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 얘기도 했다. 돌아가시기 전에 만날 때마다 어머니는 걱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내가 한 달을 못 넘기고 하늘나라 갈 것 같은데 네가 걱정이다”라고 하셨단다. “어머니 제가 나이가 70인데 뭐가 걱정이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도 네가 걱정된다.”
어머니는 사랑의 본질적 가치를 깨닫게 해주는 존재다. 어머니의 희생 덕분에 오늘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희생 없는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머니의 사랑은 무한하다. 상대적 사랑이 아니라 절대적 사랑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머니한테 많은 잘못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항상 용서해 주시지 않은 적이 없었어요.” 어머니의 사랑을 보면 '용서'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삶에서 고통스럽고 중요한 문제는 사실 용서로 귀결된다. 시인이 용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공부한 이유다. 주옥같은 용서의 말씀들이 그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사랑은 용서로써 완성된다.”
“남을 용서하라. 남을 용서하지 않으면 당신이 죽는다.”
“인생이라는 강을 건너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용서'라는 ‘징검다리’를 딛고 건너가지 않으면 안 된다.”
“남을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은 독약을 내가 먹고 남이 죽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용서는 선택이다. 용서를 선택함으로써 내 과거를 해방시켜 현재의 내 삶을 치유할 수 있다.”
이어 헨리 나우웬의 《탕자의 귀환》 한 구절을 소개했다.
“관계가 힘이 들 때 사랑을 선택하라.”
인생은 관계가 좋으면 천국, 나쁘면 지옥이 된다. 관계가 힘이 들면 사랑을 선택할 때 후회가 없다. 그러면서 가수 안치환이 노래하여 더욱 유명해진 〈풍경달다〉 시를 낭송했다. 그는 문단에 등단한지 51년이 되었고, 1,000여 편의 시를 썼지만 유일하게 짧아서 암송할 수 있는 시라고 솔직히 고백하여 박수를 받았다.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풍경은 누구 때문에 자기 존재의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가? 바람 때문이다. 바람은 또한 누구 때문에 자기 존재의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가? 풍경 때문이다. 바람과 풍경의 관계가 바로 사랑의 관계다.
사랑의 가치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가치인 ‘고통’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랑과 고통은 동의어다. 김수환 추기경은 “사랑 없는 고통은 있어도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라고 역설했다. 사랑이라는 말 속에는 이미 고통의 의미가 들어있다.
고통의 예로 하루살이를 소환했다. “하루살이는 하루만 사는데 불행히도 하루 종일 비가 올 때가 있다.”
하루밖에 못 사는데 하루 종일 비가 온다면 얼마나 고통스럽고 불행한가. 어떤 면에서 우리 인생은 하루살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포도가 짓밟히는 고통이 없으면 포도주가 될 수 없듯이 인생은 고통을 넘어설 때 부패하지 않고 발효되어 승화된 삶을 살 수 있다.
괴테가 “모든 색채는 빛의 고통이다”고 한 말이 사랑과 고통의 관계를 잘 묘사하고 있다. 그러면서 “고통은 그 의미를 찾는 순간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의미 없는 고통은 없다”고 한 빅터 프랭클의 말을 소개했다.
“연꽃이 진흙을 필요로 하듯 행복은 고통을 필요로 한다.”
“누구나 자기만의 십자가를 지니고 있다. 십자가의 본질은 무거움에 있다. 십자가를 등에 지고 가지 말고 품에 안고 가라.” 틱낫한 스님과 송봉모 신부의 말을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수선화에게〉 시를 낭독하며 아쉬움 속에서 강연을 마무리했다.
〈수선화에게〉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봄길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아가는 사람 있다
총 2연으로 구성된 정호승 시인의 봄길이라는 시입니다.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는 정호승 시인 특유의 따뜻한 분위기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핵심정리>
갈래: 자유시, 서정시
제재: 봄길
주제: 시련을 극복하고 스스로 사랑을 개척하는 삶의 태도
성격: 의지적, 긍정적
분위기: 따뜻하고 희망찬 분위기
특징: 1. 비슷한 문장구조와 단어 등을 반복하여 운율 형성(~있다)
2.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에 대한 믿음을 통해 희망적이고 낙관적인 화자의 태도를 드러냄
3. 희망을 잃지 않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태도라는 추상적 관념을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라는 구체적 이미지를 통해 나타냄
<표현법>
1. 비슷한 문장구조의 반복 (~이 끝나는 곳에서도 / ~이 있다 / ~ 스스로 ~이 되어 /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 운율 형성, 의미 강조
2. '~이 있다'반복
: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에 대한 화자의 확고한 믿음을 드러내어 희망적 분위기 조성
3. 역설법
: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 길이 있다'라는 표현을 통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있음을 강조
4. 대조적 이미지의 시구 사용
: 지속적이고 희망적인 시구(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와
소멸적이고 부정적인 시구(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를 대조하여 의미 강조
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고래를 위하여
- 정호승
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
푸른 바다가 아니지
마음속에 푸른 바다의
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
청년이 아니지
푸른 바다가 고래를 위하여
푸르다는 걸 아직 모르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모르지
고래도 가끔 수평선 위로 치솟아올라
별을 바다본다
나도 가끔 내 마음속의 고래를 위하여
밤하늘 별들을 바라본다
@오늘의 밑줄@
@신간 소개@
다음주에 민선미 작가님의 책 <기다림은 희망을 낳고>가 출간된다고 합니다. 오래 인고의 시간을 견뎌온 마음이 결실을 맺게 되어 기쁘네요. 많이 축하해 주세요 :)
민선미 (에세이스트) 민들레 홀씨처럼 세상의 만물을 보고, 듣고, 내 언어로 사유하여 나눕니다. 난임을 겪는 부부에게 위로와 용기를 낼 수 있도록, 포기하지 않으면 꼭 성공할 수 있다고 희망을 전합니다. 문장 수집가 이야기 매거진, [브런치북]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 난임부부로 견뎌온 날들 매거진 ,
@잠깐! 보석 같은 작가님들 소개합니다@
브런치에 새로 오셨거나 좀 더 많은 작가님들과 소통을 원하시는 작가님들은, 본글 댓글에 직간접적으로 메모를 남겨주시면, 다음 연재글에 본 코너에서 소개해 드릴게요. 여러 번, 반복 소개도 가능합니다. 쑥스러워하지 마시고요. <브런치 보석 작가님들 소개>는 1주일~10일 간격으로 1회씩 발행됩니다. (작가님들 소개 정보는 발행글 3회 마다 업데이트 예정)
송주 (프리랜서) 두 아들 엄마이자 프리랜서 영어강사입니다. 책읽기를 좋아하며 읽고 쓰며 즐거움을 찾고자 합니다.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글이 독자 들에게도 작은 즐거움 이었으면 합니다. 아침에 눈 뜨면 얘 있다 매거진 , 끼적여 봅니다 매거진 , [브런치북] 차라리 집구석에서 나오자
희야 (상담사) 잘 살아준 나에게 글쓰기로 선물을 주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의 삶도 쉬운 길은 없습니다. 때로는 지치고 힘든 분들께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되는 글이 되고 싶습니다. 너와 내가 있고 우리가 있는 곳 매거진 , 내 마음의 단상 매거진 , 대단한 글쓰기 2 매거진
조선여인 (에세이스트) 은퇴 2년 차로 주변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에피소드를 글로 표현하고자 함. 인간미 담긴 글을 좋아해서 매일 두리번거리지만 제 나이는 잘 모르는 조선여인임. 조선여인의 브런치스토리
호랑 (시인) 시를 쓰며 에세이와 그림일기를 통해 나를 만나고 있습니다. . . 그림에세이 '지금이야, 무엇이든 괜찮아' , '누구나의 계절' 출간. 신간 <모든 다정한 저녁> 출간 호랑의 그림일기 매거진 , 호랑의 북 포레스트 매거진 , [브런치북] 들녘에 사는 이별
꿈그리다 (에세이스트) 자연속에서 계절을 담아내는 초록예찬가, 사계절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해요. 아름다운 사계절의 소중한 순간을 글로 씁니다. 전지적 계절 관찰자시점 -자연관찰자 [브런치북] 꿈꾸는 봄과 여름
최담 (에세이스트) 글쓰는 농부입니다. 인생에서 두 번째로 잘한 선택이 귀농입니다. 농촌에 살면서 지극히 주관적인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거기서 보이는 생각들 매거진 (brunch.co.kr)
아래는 최근 6개 글에서 말씀 나눠주신 작가님들이세요.
판도 (자영업자) 갈짓자 걸음 타박타박. 흔들리며 걷지만 뒷걸음질을 치지는 않지. 나는야 영원한 자유주의자 식당의 탄생 (brunch.co.kr) , 식당의 탄생
꿈그리다 (에세이스트) 자연속에서 계절을 담아내는 초록예찬가, 사계절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해요. 아름다운 사계절의 소중한 순간을 글로 씁니다. 전지적 계절 관찰자시점 -자연관찰자 [브런치북] 꿈꾸는 봄과 여름
은섬 생활 작가 : = ) 2022.08 독립출판사 <오전 열시> 설립. 2022.10 16회 동서문학상 소설부분 맥심상 수상. 2022. 11 단편소설집 <너의 다정이 나를 살리고> 출간 및 <인디펍> 입고. 2022. 05 <너의 다정이 나를 살리고> e북 출간 및 <밀리의 서재> 외 입고. [연재 브런치북] 오늘만 먹었을 뿐입니다 (brunch.co.kr) , 아줌마 버추얼 아이돌 입문기 매거진 , [브런치북] 내 활자들의 모험
○시즌1_교과서에 실린 작가 110명○
*아래는 '가나다순'이고 선호도가 높은 작가님들을 우선순위로 소개해 드릴께요
강은교
고정희
공선옥
곽재구
기형도
길재
김광규
김광섭
김기택
김만중
김소월
김소진
김수영
김승옥
김시습
김영랑
김용택
7. 김유정
김종삼
김춘수
11. 나태주
나희덕
류시화
문정희
문태준
3. 박경리
박두진
박목월
2. 박완서
박인로
박재삼
박지원
박태원
백무산
백석
생텍쥐페리
서유미
서정주
성삼문
성석제
송순
신경림
신동엽
신석정
신영복
심훈
안도현
9. 양귀자
염상섭
오정희
유치진
유치환
1. 윤동주
윤선도
윤오영
윤흥길
이강백
이규보
이근삼
이문구
이상
이상화
이성부
이순원
이양하
이용악
이육사
이청준
이태준
이호철
이황
이효석
임철우
장석남
장영희
전광용
정몽주
5. 정약용
정지상
정지용
정철
정현종
12. 정호승
4. 조세희
조지훈
주요섭
차범석
채만식
충담사
천양희
10. 최인훈
최일남
최치원
프란츠 카프카
피천득
하근찬
한강
한용운
함민복
허균
헤르만 헤세
현덕
6. 현진건
홍석중
황동규
8. 황석영
황순원
황인숙
황진이
황현
○시즌2_추천 작가&외국 작가○
*하단은 브런치 작가들님께서 신청해 주신 작가님들입니다
조정래
공지영
이해인
김훈
남상순
*사진, 그림 출처 : 핀터레스트(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