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수정 Jun 03. 2024

사랑이 넘치면 아프다.

9. '괜찮아, 괜찮을 거야.'


유난히 다정한 남편이었다. 같이 걸을 땐 내 손을 꼭 잡았고, 끝도 없는 수다를 들어주었고, 날 바라봐 주었고, 늘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웃는 얼굴이 예쁘다는 그의 말에 얼마나 웃었는지, 눈가의 잔주름이 웃음과 비례해서 생겨날 정도였다. 그는 내가 웃는 모습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했다.


그래서 울지 않으려고 했다.




# 서울병원


서울 병원에 진료 예약을 잡고 드디어 의사와의 면담일, 그와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진료실 들어섰다.

소화기내과 교수님은 우리가 가져간 진료 기록지와 영상 자료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하셨다.  

교수님은 MRI를 다시 찍어 보자고 하시며, 아직은 정확하지 않으니 편하게 기다리라는 말씀을 덧붙였다. 

우리에게는 교수님의 말씀이 무척 희망적으로 들렸다.

   

MRI 검사를 예약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메이저 병원의 진료는 우리의 조급한 마음과는 달리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1주일 후 잡힌 MRI 검사, 검사 후 다시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한 진료 예약, 그리고 교수님과의 면담.  그렇게 우리 집과(우리가 살고 있는 청주) 서울을 가며 검사와 진료를 이어갔다.


결국, 조직검사를 하기  입원했다.

조직검사 결과를 듣기까지, 처음 응급실로 향했던 그날로부터 4주의 시간이 지나갔다.


더디게 흐르는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함께였고, 희망은 그 시간을 견디게 했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나는 그가 주었던, 기도를 많이 할수록 반짝이는 묵주를 서랍 속에서 찾았다. 그리고 기도했다.

묵주가 반짝이면 우리의 마음도 다시 반짝일 거라 믿으며...



의사는 조직검사 결과지를 들고 우리 병실로 들어왔다. 마음 졸이며 기다렸던 조직검사 결과는, 우리의 믿음과 예상을 빗나갔다. 피하고 싶었고 아니길 바랐던 췌장암이었다. 의사는 종양 크기가 작아 다행히 수술할 수 있고, 수술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확률적으로 운이 좋은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암이 아니라고 끝까지 믿고 싶었던 우리에게는 절망적인 소식이었다.


그가 암 환자라니, 그것도 췌장암이라니, 우리에게 드리워진 그림자가 너무 두려웠다.


의사가 병실에서 나간 뒤 우린 참았던 울음이 터지고야 말았다.


'암이 아니길 얼마나 바랐던가... 그냥 일상으로 돌아가길 얼마나 기도했던가...'



큰애가 중1 때, 그는 지방 공장의 외주 관리팀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주말부부가 시작되었고, 다시 통합 팀장을 맡아 본사로 돌아오기까지 10여 년을 주말부부로 생활했었다. 그 시간이 우리에게는 애틋했고,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그를 사랑하고 존경했다. 어려웠던 지방 외주관리팀장을 마무리하고 이제 막 청주로 돌아와 편안해진 그였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이 사람 불쌍해서 어떡하지.., '


울다가 바라본 그는 눈에도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런 그가 날 토닥이며 말했다.


"괜찮아... 신랑 알잖아, 튼튼한 거!,
잘 이겨내서 너 옆에 오래오래 있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

나는 그를 꼭 안았다.

마음속에 커다란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서울서 내려오며  형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카톡을 받은 큰형과 작은 형에게서 바로 전화가 걸려 왔다.

"막내야.. 막내야!!" 목이 메인 큰형의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들려왔다.



이전 08화 어제와 다른 오늘, 그리고 내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