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수정 Jun 17. 2024

몇 시간의 이별, 생과 사

11. 잘라낸 암덩어리 그리고 희망


# 갑자기 앞당겨진 수술


6주 차, 오전 10시 교수님과의 면담.


전이 여부를 알기 위해 PCT를 찍기로 했고, 수술 가능 여부를 최종 점검했다.

수술일까지 건강관리 잘하라는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는 진료실을 나왔다.


간호사님과 다음 일정을 체크하고 있는데, 교수님이 다시 우리를 부르셨다.     

내일 수술 취소 환자가 생겼는데, 우리에게 수술하겠냐고 물어오셨다.


그의 수술은 원래 한 달 뒤였다. 그 수술을 내일로 앞당길 수 있냐는 것이다.     

우린 잠깐 갈등했지만, 한 달을 조마조마하며 기다리느니 바로 수술하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다.     


갑자기 모든 게 긴박하게 돌아갔다. 휴가도 내고 업무 인수인계도 해야 했던 그는, 망설일 사이도 없이 회사에 전화했다. 그리고 이미 그의 사정을 알고 있었던 관계자분들은 마음 편히 수술받으라며 휴가와 복직 일정을 조정해 주셨다.

길게는 한 달 정도로 잡았던 그의 휴가가 무한정 길어질 줄 그때는 몰랐었다.     



불과 두세 시간 만에 모든 게 수술 일정에 맞춰 돌아가고 있었다. 두 아들에게 전화해서 서둘러 병원으로 오라고 연락했고, 나는 입원에 필요한 것들을 챙기기 위해 다시 청주로 내려왔다. 두 아들이 병원에 도착해서 그와 함께 있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그가 너무 걱정되어 급하게 짐을 챙겼다. 다행히 동생이 서울까지 동행해 주었다.


그렇게 마음 졸이며 올라온 병실에서 웃음소리가 퍼지고 있었. 그를 응원하기 위해 시댁 조카들이 병실을 방문했고, 아들, 조카들과 함께 그가 활짝 웃고 있었다. 일부러 시간 내서 찾아와 준 조카들이 고마웠다. 우리는 다음날 수술이 있다는 걸 잊은 사람들처럼 이야기꽃을 피우며 저녁 시간을 보냈고, 병실이 없어 1인실을 배정받았는데 오히려 편하고 좋았다. 그가 웃는 걸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수술 당일,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두 형님 내외분이 모두 휴가를 내서 병원에 오셨다. 병원 수술실 로비에서, 그가 수술실에 들어갈 때부터 나올 때까지 함께 남편을 기다렸다.     


그렇게 가족들과 함께였지만 난 몹시 초조했고 불안했다.

수술실로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눈에 밟혀, 수술실 문이 닫히고도 한동안 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의 수술 시간은 예상보다 2시간이나 길어지고 있었다.

혹시 무언가 잘못된 건 아닐까.

점점 초조해지는 마음을 애써 다잡은 채, 수술이 잘되기만을 기도했다.


생과 사를 넘나들고 있을,

그를 생각하던 그 몇 시간의 이별이 영겁의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긴 기다림 끝에 6시간의 수술을 마치고, 드디어 수술실 문이 열리며 그가 나왔다.


 그는 막 마취에서 깨어나 웃고 있었다.    


의사는 수술 과정을 보호자인 내게 설명했다. 그는 개복 수술을 했었다. 수술 과정에서, 간에 의심 병변이 있어 조직 검사를 진행했다고 한다. 조직 검사 결과 암이 아닌 것으로 판단되어 수술이 이어졌고, 췌장의 50%와 비장을 같이 절제했다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의사는 전이가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했다. 난 수술실에서 돌아갔던 긴박한 상황에 너무 놀랐고, 다행히 수술을 잘 마쳐서 한편으론 안도했다.  


수술실에서 나온 그에게 가족들은 돌아가며 인사했다.


"막내야, 형! 형 알아보겠어?"  "아빠, 큰아들"   "아빠, 나야 막내"  "삼촌, 고생했어~"


가족들은 힘든 수술을 잘 마친 그를 보며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병실로 올라와 안정을 찾은 그를 보고 가족들은 안심하며 돌아갔고, 나는 그의 옆에 앉아 그의 손을 잡았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 그의 회복   

  

잠들려고 하는 그를 계속 깨웠다. 그는 마취가 완전히 깨지 않았고, 호흡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폐에  염증이 생길 수 있다며 그를 깨우라고 의사는 당부했다. 나는 그의 손을 꼭 잡고, 잠들려고 하는 그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자기야, 나 누구야?"

"사랑하는 내 와이프, 수정이"

"자기야, 우리 첫 키스 기억나? 비 오는 날 우산 쓰고, "

"응, 그때 자기가 입 꼭 다물고 있었잖아..."

"ㅎㅎ 그랬지~"

"우리 약혼 여행 갔잖아, 어디였지?"

"......."     


다시 스르르 잠드는 그를 흔들었다. 5시에 수술실에서 나왔는데 9시 전에 잠들면 안 된다고 해서 아무 말 잔치, 그의 기억력 테스트를 하고 있었다. 전날 청주를 오갔던 피곤함과 긴장으로 나도 졸음이 쏟아졌고, 잠을 쫓으며 그가 말하며 크게 호흡하도록 도왔다. 간신히 9시를 넘겼고 그도 나도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새벽에 그가 깨며 한차례 소동이 벌어졌다. 그의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며 몸살이 온 것처럼 온몸을 덜덜 떨었고, 놀란 나는 간호사를 긴급 호출했다. 의사가 와서 주사제를 처방했다. 주사를 맞은 다음, 이불을 두 개 겹쳐 덮어주고 그의 등을 토닥였다. 큰 수술을 받고 몸이 많이 힘들었는지, 한참을 끙끙거리던 그는 다시 순하게 잠들었다. 그렇게 긴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2일째, 병원에서의 산책이 시작되었다. 장기들이 제자리를 찾 빨리 회복하려면 걷는 게 중요하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기운이 없는 그를 부축했다. 그는 링거를 여러 개 달고 병원 복도에서 한 걸음씩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산책을 마치면 공 불기를 했다. 공을 불어서 띄우며 폐활량을 늘리는 훈련이었다. 그는 수술 후여서 배에 힘이 가지 않았고 처음엔 공이 뜨지 않았다. 두 아들은 재밌어 보였는지 서로 해보겠다고 아빠 옆에서 시범을 보였고, 그가 공 불기를 하도록 도왔다.  


3일째부터는 공을 제법 높이까지 띄웠고, 이제 부축을 받지 않고도 혼자 걸을 수 있게 되었다.


4일째부터 병문안 온 방문객을 맞이했다. 10일 입원하고 있는 사이 정말 많은 사람이 멀리서 병문안을 왔다. 가족들, 친구들, 회사 분들, 그분들의 격려 덕분에 그의 회복이 더 빨라지는 듯했다.






암 덩어리는 잘라냈고 그 잘라낸 암 덩어리가 우리에겐 희망이 되었다.

한고비를 넘겼으니 잘 회복하는 일만 남았다.     

 

그래, 이제 항암만 잘 받으면 된다.



이전 10화 피할 수 없다면 싸워 이기리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