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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May 20. 2024

일심동체

7. 남편예찬 - 내 세상의 중심이었던 그

결혼하고 처음 맞는 생일, 퇴근하고 돌아온 그는 장미꽃 한 송이를 내밀었다.


꽃다발이 아닌 한 송이에 약간 실망하려던 차에,

"우리 집에는 예쁜 꽃이 있어서, 사실 다른 꽃은 필요 없는데,

그래도 자기 서운할까 봐.."


"ㅎㅎㅎㅎ"

꽃 한 송이로 행복을 선물하는 그의 재치에 웃음이 터졌다.

한 송이여도 좋았다. 내가 예쁜 꽃이라니, 그의 말처럼 그에게 예쁜 꽃이고 싶었다.




# 아빠와 두 아들


그가 퇴근하며 초인종을 누르면 아이들은 바빠진다.  


"엄마, 잠깐만!!" 문을 열기 전 숨을 시간을 달라는 아이들의 외침,

둘이 후다닥! 한 녀석은 안방으로, 한 녀석은 베란다로 뛰어간다.

그의 퇴근과 동시에 숨바꼭질이 시작다.


아파트에서 숨을 곳이라곤 뻔한데, 옷장 안이나 베란다 구석에 숨어 아빠를 기다렸고

반복되는 숨바꼭질에도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고 재미있어했다.


"아빠 왔다~"


"아빠 왔다~"하며 집 안으로 들어온 그는,  

일부러 큰 목소리로 말하며

"우리 아들들 어디 있나?"

이 방 저 방을 왔다 갔다 하며 아이들을 찾는다.


아이들은 들킬세라 숨죽이며 숨어있고,

그는 어디 숨어있는지 알려 달라는 듯 나에게 눈짓을 보낸다.

나는 고개를 양옆으로 흔들며 아이들과 한편이 되었다.


"어~ 우리 큰아들 어디 숨어있지? 막내는 어디 있나?"(그는 둘째를 막내라고 불렀다.)

여기저기 문 열어보고 짐짓 알면서도 모르는 척, 아이들의 장단에 맞춰 숨바꼭질 놀이를 했다.


그가 "찾았다!!"를 외치면 아이들은 들킨 걸 아쉬워하며 빼꼼히 얼굴을 내밀었고,

꽁꽁 숨어 못 찾는 날은 두 아들이 의기양양 승리자가 되어, "아빠!!" 하고 그에게 안겼다.


그렇게 숨바꼭질이 끝나고 평화로운 저녁 시간을 맞이했다.



아이들은 잠자리에 들기 전, 그가 읽어주는 동화책을 좋아했다.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흉내 내가며 실감 나게 읽어주는 아빠표 동화책에 빠져들었고, 나중에 한글을 깨쳐 스스로 읽을 수 있는데도, 책을 들고 와 읽어 달라며 졸랐다. 나도 그의 옆에 누워 같이 듣기도 하고, 역할 분담을 하며 읽어주다 잠이 들었다.


우리 가족은 꿍짝이 잘 맞아, 

차를 타고 이동할 때나 여행할 때면, 아이들과 끝말잇기나 퀴즈 놀이를 즐겨다.

아무래도 두 살 위인 큰애가 더 유리했는데, 막내는 형한테 지기 싫어 발을 동동 구르며

"아빠아~, 아빠아~~~!! 맨날 형만 이기자나아~~" 자기편을 들어 달라고 떼를 썼다.


"희문아, 게임은 공정해야지?, 떼쓰면 안 돼!"

일곱 살이던 큰애가 동생 이름을 부르며 엄중히 경고하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어휴, 이 뗑깡쟁이~" 그때 큰애가 동생에게 붙여준 별명이 '뗑깡쟁이'였다.


그가 퀴즈를 내면 아이들이 경쟁하듯 풀고, 노래 장기 자랑도 하며 ,

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지루할 틈 없이 우리의 웃음소리로 채워졌다.


그렇게 자상한 아빠의 사랑 안에서 두 아들은 초, 중, 고를 거치며 공부도, 학교 생활도 잘해 나갔다.


나중에 큰아들이
"아빠는 공부하라 소리를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정작 우수한 성적표를 받아오면 엄청 좋아하셨어"라고 말했다. 아빠가 기뻐하는 모습이 좋아 더 열심히 공부했다고 한다. 그는 아이들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하도록 조언했고, 나처럼 일희일비하지 않고 긴 안목으로 아이들을 지켜봐 주였다.




# 딸 같은 막내아들


남편은 아들밖에 없는 시댁에 딸 같은 아들이었다. "막내야~"하고 부르시는 어머님의 목소리가 참 정겨웠다.

형제를 키우면 많이 싸운다고 하는데,  남편 형제들은 다툼 한번 없이 컸다고 한다. 그는 형들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고 따랐고,  형들도 막내를 존중하고 귀히 여겼던 것 같다.


우애 좋은 남편의 3형제는, 결혼해서도 사이좋게 아들만 둘씩 낳았다. 딸이 참 귀한 집안이었다. 고만고만한 녀석들이 모이면 여섯이었는데, 사촌들끼리도 사이가 좋았다. 명절에 만났다가 헤어질 때가 되면 눈물바다가 되곤 했는데, 이산가족이 따로 없었다.


그러니 명절이 되면 시댁에 좀 늦게 가고 싶어도, 남편과 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 서둘러 들어가야 했다.

                  

시댁은 가족 행사가 있으면 3대인 대가족이 모인다. 조카들도 결혼하고 아이들이 있으니, 일정을 맞추기가 쉽지 않음에도 가족 행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웬만하면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새 식구로 들어온 며느리들도 하나같이 집안 분위기에 잘 스며들었다. 참 특별한 가족이 아닐 수 없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재미있고 에너지 넘치는 사람이 우리 남편이었다.

재치 있는 입담, 상대방을 기분 좋게 만드는 칭찬과 배려, 활기 넘치는 모습으로 분위기를 주도했다.

가족 모두가 인정하는 그의 달란트였다. 무엇보다 그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웃을 일이 많았고, 그가 있는 곳이면 그곳이 특별한 공간이 되었다.





우연히 그의 핸드폰을 보았는데 내 이름이 '일심동체'로 저장되어 있었다.

'내 사랑 수정이에서 언제 바꾼 거지?' 일심동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그와 일심동체가 되어 오래도록 함께 늙어갈 상상을 하며,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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