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립스틱 짙게 바르고 May 08. 2024

39. 길은 여러 갈래다.

-  그걸 모르는 사람만 바보가 된다.


돌아보자면,

사람을 만나면 얼마간 후엔 헤어지게 된다

걸 터득할 때가 나도 지났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때도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기억에서 멀어졌다


개중에는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내가 진심을 다해서 사랑한 이들도 포함된다.


아무리 사랑했던 사람도 내 마음이 가는 것

따라잡지 못했고

아무리 내 곁에 있어 주길 바란다 해도

진작에 마음이 가 버린 사람 역시

내게 상처를 크게 남겼다.

모두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서로가 그러려고 그런 것이 아니었지만

잡은 손을 강제로 놓아야 할 때가 왔다는 걸

서로가 알고 있었다.


그래저래 사람을 만나고 알게 된다는 것을

난 피하지 않았고

최선을 다한 것 같이 느껴질 때도

늘 모자란 것 같은 ‘사랑’의 기운이 난 좋았다.


사랑도 자라면서 ‘변화’하는 법. 그런데

안타깝게도 간혹 ‘변질’됐다.





‘안정’과 ‘변화’ 사이에서



어제가 그 어제와 같고

오늘 한 일이 어제 한 일과 같은 것이

언젠가부터 나와 잘 맞지 않았다.

왜 했던 일을 또 하지?


나에게 했던 일을 또 해야 하는 이유는

‘잘 하기 위해서’이거나

 ‘ 그 일이 너무 좋아서’이거나 그도 아니라면

그야말로 ‘잘 할 때까지 하는’ 것이어야 했다.


부장/차장/과장의 직급이 없고

오직 과장 뿐인 세계에서 오랫동안 나 또한

오늘 별 일이 없어서

내일도 별 일 없는 삶에 의지해 왔다.

무슨 리듬이라는 게

어린이날 대체공휴일처럼 ‘주어지는 것’ 밖엔

없었기 때문에

리듬 있게 살아 보질 못했다.


세상 끝내주는 단조로움 속에

튀었던 나를 지금이야 용서가 되지만

용서란 진작 내가 구했어야 되는 문제였던지, 그저

나를 둘러싼 직장 내 시선에 늘 신경을 쓰고 살았다.

나는 열정이 강한, 하지만 약한 사람이었다.


지금도 언뜻 다르지 않은 듯

하지만 달라진 나는 나에게 신경 쓰고 산다.

누군가 동료가 인사를 잘 받지 않는다면 예전엔

 ‘내가 뭐 책 잡혔나?’,

‘어머 저 사람이 날 싫어하나 봐! 어떻게 하면 좋아’

로 스스로를 들볶았다면


요즘 나는 같은 현상에 대해 다른 반응을 한다.

‘기분 안 좋은 일이 있나 보네?’,

‘딴 생각 하느라 못 봤나 ? 담에 인사하지 뭐~.’

라는 식이 됐다. 어깨 으쓱 한번은 덤이고.


내가 지금 신경 쓰고 관리하는 일들은

일일이 남들한테 에너지를 분산해 갖고는

성공적이 되기가 어렵다.

어떨땐 집중하느라 내가 불과 얼마전

‘직장 사회에서 밀려나고 차단당하고

결국 커리어를 부수고 탈출한’

그 똑같은 사람인지를 잊을 때도 있다.





원칙을 세우고 원칙과 다르면 가지 않는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세이노의 가르침’, 세이노, 5쪽)’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세이노‘님 책을 읽고 있다.


애인을 기다리듯 두근거려서

시간을 쪼개 책장을 펼치며 읽는다.


그의 ‘가르침’ 중에

정말 한 구석 찔림을 느끼게 한 대목이 있다.


“제로 점에서 출발하였던 경험이 없는 그들”

(47쪽)이다.

내 옛 동료들?

따돌린 자들??

아니 아니, 나다!


나에게는 죽었다 깨난 경험이 있다 생각하고

쓰러졌다 재기 중인 이 경험은 어느 하나라도

헛되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나도 ‘그들’처럼

정리해고 당할 염려 없는 직장과

좀 적다 싶지만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에

안주해 왔다. 위험을 감수할 생각을 회피했다.

그 안에선 뭔가 바꿔보려 했던 나 자신마저도!!


새로운 일을 하고자 할 때

큰 불안과 공포를 느껴서 손발이 오그라드는 이유가 직업의 높은 ‘안정성’에 있었다.


하긴 변수가 너무 많다.

잘못 흐름을 타면 폭망할 가능성도 엄청 신경 쓰인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말이다.

나는 ‘안정’ 대신 ‘변화’를 택하기로 한다.

도저히 ‘안정’할 수 없어서.


무언가에 대한 ‘사랑’과 열정 같은 것이

내적으로 타오르고 있지 않으면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아서


도저히 그런 지지부진함을 참을 ‘용기’가 나에겐 없다.


삶이 더 몇번에 걸쳐서 나를 속일 테지만

그땐 그것을 선택한 내 눈과 내 손가락을

호호 불어주면서

원칙만 생각하자.

내가 무엇을 원했는지가 원칙이다.

‘원하지 않았으니 가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헤어질 때가 되면 헤어져 주자.

힘들게 그사람을 보내고 홀로 서 있는 나를

대견하게 여기고

더 잘 먹여 주고 바삐 움직여 주자.

좋은 날이 올 테니.





후회는 없다. 사랑할 만큼 사랑했다.



사랑했다. 그러나 헤어졌다.

이 말을 내가 할 줄이야.


https://www.donga.com/news/Entertainment/article/all/20110611/37941124/5

‘명언’을 들었을 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세월은 나로 하여금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것을

남이 원하는 것과 맞바꾸지 못하도록

나를 각성시켰다.


사랑했다. 일도 사랑도.

당분간 둘 다 하지 못할 것 같다.

그러나 진실로 난 후회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사랑을 주었고

내가 할 수 있는 베스트를 했다.

그게 모두 남을 위한 것이었다고는 할 수 없더라도

나 자신을 위한 것도 아니었기에

이별이 온 것 같다.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묻기 전에

나는 준비하여야 겠다.

변화에 합당한

날개를 달 수 있도록,

만의 하나라도 땅에 추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나는 이런 방어적인 삶을 살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면, 날더라도 추락 안 할 것 같다.


떠나기 전 그이의 중얼거림처럼.

“하니까 되는구나!”

사는 동안 반복해서 많이 경험하고 싶다.

그걸 그이가 알았으면 좋겠다는

내생각은 아마 망상이었을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ttV9YVqSi94&pp=ygUl64uk7IucIOyCrOueke2VoCDsiJgg7J6I7J2E6rmMIO2PrOunqA%3D%3D

‘다시 일은 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작가의 이전글 38. 여기까지 이야기해야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