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립스틱 짙게 바르고 May 12. 2024

40. ‘비인간’과 ‘인간’의 간극이란!

-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마는 나팔꽃’ 아니니.


한 사람이 있다.

내가 무척 그 내공이란 무엇인가 존경심 가득하게

지켜볼 기회가 있었던 분이다.


그가 어느날 함께 한 자리에서 말했다.

“나는 갱년기가 없었어, (에엥?)

진짜 갱년기가 뭔지 몰랐어.”

먹먹해진 기분. 아 ‘경지’가 이런 것이로구나.

매사에 진심을 다하고

자신과 남을 구별하지 않고서

헌신과 집중을 보여 준 이 사람의

갱년기 ‘프리패스’.


청년의 사춘기가 없다는 일이 우리에게 전해 주는

삶의 비일상성처럼

중년의 갱년기가 없으면 그 시간은 모두

일상적으로 전투하면서 흐른 것이다.


매일 쉼 없이 자기와 싸우고 홀로 서는 날들이다.





 

할 일이 너무 많아



우선, 할 일이 많지 않은 적이 없다.


목표를 세우고 자신에게 일어난 온갖 일들을

회피 본능으로 막지 않았다.

‘이건 내 일이야.’ 한번 생각했으면

남에게 미루지 않았다.

자신을 과시하지도 않고 고통을 비명 지르지도 않았다.

이런 것을 ‘책임감‘이라고도, ‘열정’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뭐라고 하든지 자신에겐 힘이 드는 방식이다.

직장에선 알아 주는 사람이 간혹 있긴 하지만

평균적으로 일에 소극적인 사람들에게 포위되면

그리 녹록한 전개를 맞지 못할 수 있다.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여러 조건이 ‘고립’과 ‘따돌림’으로 종결되면 그러하다.


그.래.서 난 (지금이야 말이지만)

아침에 눈 떴을 때 생각나는 일이

나를 살지우거나

내 자산이 증식되거나

내 몸값이라도 상승하는 일이 아니면

다시 눈감고 한숨 더 자는 것도 추천한다.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그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더란 말인가?!)





가만 있지 못하는 병



오늘 치료를 마치면서 원장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아프다는 건 하지 말라는 거에요.

하지 않는 게 좋아요.”


늘 무리를 했다.

몸이 못 받아들일 때까지, 그렇게까지...


직장은, 그렇다,

조금만 더 하면, 조금만 열심히 맞춰 보면

결과가 완전히 다르다는 생각만 했던 것 같다.


사랑도 그렇다.

내가 아픈 것을 서로가 잘 알고 있는 관계.

그래도 강행한다. 묘수를 찾아서, 희소성에 매달리며...

그.러.나.

‘사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인간이 ‘사실’을 보려고 하지 않을 뿐.


그러니까 쉼 없이 한 가지에 빠져드는 것을

나는 지병이라고 해야겠다.

이제 필요한 것은 ‘꾸준함’ 정도?

가만 있지 못해 병이 난 것은

분명 나을 거라 믿고

이제는 꾸준할 일이다.

몸이 받아들일 수 있게, 서서하게.

한 글, 한 글 브런치 글쓰기가, 지금 내게, 그러하다.





버린 것 아니에요



호텔에 소지품을 두고 나왔는데

메이드 분들이 벌써 청소를 마치고 나왔을 시각에

‘이게 없다!’란 것을 알아차렸다면


나는 계속 거기 신경을 쓴다.

쓰다가 포기하고는 생각한다.

물건이라서 그래

(내가 사랑하고 썼잖아.)’

물건인데도 그래

(물건도 아까운데 사람은 하물며)



중심업무지구 한복판에 내걸린 현수믹들이 조화인지? 부조화인지?


중심업무지구 한복판에 현수막들이 내걸려 있다.

서로 간에 노출성을 의식했는지 빈 틈이 없다.

화려한 건물들 외관을 가리고 선,

외치는 사람들이 눈 앞에 그려진다.


사적 이익을 추구한 적 없고

개인의 영달 위해 업무를 왜곡한 적이 없다.

업무를 방해 받은 적만 있다.

내가 나온 후에 내가 추진하다가

‘G'들의 트집과 터무니없는 방해 공작

때문에 좌초됐던 바를

내가 나오고 업무의 추진자가 새로 갈리니까

그제서야 깔았다고, 너무나 효과성이 좋았다고

왜 그 때 성대리가 “해 보자”고 할 때 안 했을까

자기들도 어리둥절해 한다는 말이 들려왔다.

(성대리가 하자고 했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속일 수가 있다.

이때 망가짐은 속아 넘어가는 상대방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망가진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해 왔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최선을 다해 일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했으며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었다고 말할 때,


그들은 대부분

갱년기를 몰랐던 그 분이나,

질시와 푸대접을 받고

잡은 일을 손에서 놓아야 했던 성대리가 아니다.

그들은 우리 두 명을 제외한 98명이다.

입담이 걸어서 쉬지않고 제 업적을 옹호하며 입을

놀리더라도 그들은 그저 98명이다.

98명이 일하지 않아도 그들이 자연 퇴직할 때까지

관리 관청도 손을 대지 못하는걸

98명은 잘 이용하고 있다.


사랑한다면서

포켓에서 하나씩 둘씩 곶감을 빼어 주고는

포켓에 얼은 손조차 넣지 못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같이 길을 갈 수 있을까.?


끊임없이 “나는 ‘인간’이오.” 주장하지만

나는 알았다. 그들과 함께라면 내가 행복을 느낄리가 없다는 것을.

왜냐하면

일을 그렇게 받아쓰기 하듯 해 가지고는

그리고 사람을 동냥 주듯이 대해 가지고는

되지가 않는 것이다.

뭐가 안 되냐고? ‘인간’이 되지 않는다.


어느날 나는 그 모든 것이 ’비인간적‘임을 느꼈다.

전면적으로 사랑하고 자신의 전부를 걸지 않으면

일도 사랑도 지킬 수가 없다는 것을!!

그.래.서. 난,

나는 버리지 않았다.


두고 나온 거다.

내가 사랑한 그 일을. 그이를.

내가 없지만 잘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한스푼.

내가 없으니 잘 되나 보자는 마음도 한스푼.

나는 인.간.이니까.





작가의 이전글 39. 길은 여러 갈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