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친소>란 <내 친한 친구를 소개합니다>라는 말의 줄임말이다. 『열하일기』를 짧게라도 소개하려고 생각하는 와중에 이 말이 나를 찾아왔다. 2월부터 나는 입만 열면 연암, 연암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연암을 내 친구라고 불러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나에게 2024년은 김탁환의 해라서 일 년 내내 김탁환을 읽을 생각이다. 그러니 그의 글들이 18세기의 중심인물로 지목하고 있는 연암 박지원도 나의 반경 안에 들어와 있다.
『열하일기』는 연암 박지원이 1780년 5월 25일부터 10월 27일까지 중국 연경(=북경)을 거쳐 열하에 다녀온 기행문이다. 박지원은 청나라 건륭제의 만수절(=칠순 잔치) 축하 사절로 중국에 가는 조선 사신단에 동행했다. 천신만고 끝에 연경에 도착했으나 쉴 새 없이 열하까지 이어 달려가야 했으니, 황제가 열하의 피서산장에 가 있었기 때문이다. 생일 축하 사 신단인만큼 죽어도 황제의 생일 이전에 도착해야 한다.
책을 잡으면 먼저 빠른 속도로 훑어내려 줄거리부터 파악한다지만 『열하일기』는 내 수준을 넘는 책이라 나는 꽂히는 부분을 필사하고 동아리 톡에도 올리는 등 속도 늦추기 작전을 했다. 느낌과 생각을 그때그때 썼는데, 당연히 앞쪽에서는 못마땅하다가 뒤쪽에서는 이해가 되기도 하고 일기문답게 연대순이 되어야 할 것 같지만, 여기서 찔끔 저기서 찔끔 쓰다 보니 뒤죽박죽이 된다. 나는 브런치라는 수집상자에 글이라는 이름의 나비를 붙잡아 일단 핀을 꽂아 놓고 보는 중이다.
브런치 연재를 마무리할 때쯤 6월이다. 24일이 오면 동아리와 함께 『열하일기』를 읽기 시작하련다. 연암이 한양을 떠난 것은 5월 25일이지만 책은 도강-즉 압록강을 건널 때부터 시작한다. 국경을 넘으며 진짜 여행이구나,라는 실감이 났을 것이다. 책에 나오는 중심 사건을 그대로 따라 하는 독서법대로, 날짜를 얼추 맞추면 무더운 한여름 날씨에 애를 먹은 연암의 심정이 십분 공감될 것 같다. 읽을 분량이 그날그날 다르니 소제목을 참조하여 느슨하게 대충 정해야 할 것이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중국 청나라를 오랑캐라고 무시했지만, 박지원은 그 선진 문물을 유심히 관찰하며 배우고 본받으려는 자세를 갖추었다. 그런 시각으로 쓴 『열하일기』는 문체반정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야기할 정도로 당대의 지식인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정조 임금 시대부터 오랫동안 금서로 묶인 채 남몰래 필사본으로만 명맥을 이었다. 20세기 초엽에 다시 읽히기 시작했는데, 여러 번의 필사의 결과, 내용이 조금씩 다른 필사본 일곱 종이 남았더라는 것이다.
『열하일기』는 26권 10 책으로 1783년(정조 7년)에 완성되었다. 연암이 책을 쓰고 있는 동안 누군가가 그걸 읽고 필사하곤 했다. 그러니 그 초고(礎稿)가 오탈자를 교정하지 않고 그냥 시중에 풀려버린 셈이다. 문체반정 탓에 찢어 발개지고 빨간책의 대명사로 욕을 먹으면서도 기특하게도 살아남았다. 친필본이 단국대에 보존되어 있단다. 언제 단국대에 갈 일을 만들어, 그 친필본을 보리라. 그걸 보면 이 시의 한 구절이 떠오르지 않으랴.
가까스로 두 팔 벌려 껴안아 보는/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이성부의 ‘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