칵퉤 칵퉤.
공황 장애의 공식적인 정의가 어떻게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저 정도면 공황장애라고 불러도 되겠다 싶은 친구들이 서넛 있습니다. 다들 말을 안 한다 뿐이지 아마 더 있겠죠.
임직원이 예닐곱 인 작은 회사에 다니는 친구는 새벽 세시쯤에 늘 잠이 깬다고 합니다. 요즘에 새벽에 깨는 사람들이 많아서 아예 새벽 각성이라는 용어도 있다네요. 가슴이 답답하고 울화통이 치밀어서 숨쉬기가 힘들데요. 어디 가서 길길이 날뛰고 싶은데 그 새벽에 갈 데도 없고, 서울 한복판에서 날뛰기는 더 어렵습니다. 결국은 뒤척뒤척하다가 출근 시간이 다 돼서야 깜빡 잠이 든다고 합니다.
본격적인 스테이지는 출근과 동시에 시작되는데, 공격대 구성이 재미있습니다. 이사라는 냥반은 사장의 매형이고, 과장이란 뇨자는 사장의 딸내미입니다. 이사는 아직도 발주서를 못 읽고, 딸내미는 2시에 출근해서 4시에 퇴근한다고 해요.
특히 이 딸내미가 참 사람이 해맑고 영혼이 순수한 사람이라, 친구들 사이에서는 미똘이로 불립니다. "대리"는 원래 영어라며, 대리의 스펠링을 묻는다던가 (데.. 뤼? Deary?), 박싱 테이프 사 오랬더니 3M "크리스탈" 스카치 테이프를 한 박스 사 온다던가.. 왜 크리스탈이냐고 물었더니, 더 맑고 투명하면 받는 사람이 기분 좋을 것 같아서 그랬다네요. 벌이는 일들이 하나같이 범상치 않아서 팬클럽도 있습니다. 제가 회장이지요.
본인은 죽을라고 하지만..
인생 노빠꾸인 우리는 뭐.. 다 미똘이편입니다.
“야.. 이 속세에 찌든 드러운 영혼아. 니가 그 순수한 마음을 알아? 손톱만한 테푸로 박싱 하기가 어디 쉬운 일이냐? 나도 크리스탈 테프 붙인 상자 한 번 받아봤으면 좋겠다.”
얼마 전에는 창고 정리하러 들어가더니, 출고 날짜 대신 박스 크기순으로 정리를 해 놨다던가.. 뭐.. 그랬다고 합니다.
인테리어를 하는 친구는 공사 대금을 떼었습니다. 상황을 들어보니 이건 각자의 입장이 좀 다를 것 같긴 한데, 조그만 사무실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돈이라 아예 사업을 접었습니다. 운전하다 말고 갑자기 숨을 못 쉬겠어서 병원 앞에 차를 세우고 응급실로 뛰어가는데, 경비 아저씨가 막 쫓아오시더랍니다.
"거기 차 세우면 안 됩니다!"
"아저씨. 죄송한데 제가 지금 숨이 안 쉬어져요. 응급실 가는 길이에요"
"알겠는데, 그래도 차는 거기 세우면 안 됩니다. 요 아래 주차장에 다시 주차하세요"
결국 다시 뛰어가서 주차장에 잘 세우고 입원했는데, 온갖 검사를 다 해봐도 아무것도 안 나옵니다. 정신과 의사인 처남이 풀 스토리를 듣더니만, 1년 반 정도 소송하면 반쯤 건지겠지만, 그러다가 정말 죽을 수도 있다고 그냥 포기하자고 했데요. 하지만 그 얘기를 전해 들은 친구들은 '걔는 의사니까 그런 소리가 나오지, 개인 사업자가 1억을 어떻게 접냐'로..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1억이면 뭐..목숨 걸만하죠.. 몸은 가만히 놔두면 낫지만, 돈은 바라만 보고 있어도 계속 없어지잖아요.
또 다른 놈은 멀쩡히 회사 다니다 한 방에 인생이 꼬일 뻔했습니다. 계약 하나가 틀어진 모양이에요. 큰돈이긴 한데 그 회사 규모를 생각하면 푼 돈입니다. 나름 잘 나가는 부장 진급 대상자였지만 사고가 한번 나자 온갖 놈들이 다 달라붙어 물어뜯은 것 같습니다. 그 친구랑은 몇 년을 같이 일해 봤으니 어떤 사람인지 빤히 알죠. 서글서글하고 일 잘해요.
얘는 스트레스 검사를 무슨 크다란 기계로 했다고 합니다. 제가 했던 설문지에 체크하는 검사랑은 아예 다른 건가 봐요. 결과는 '너 지금 초등학생 지능'.. 과중한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으면 사고력과 판단력이 크게 떨어진다고 합니다. 다행히 이 친구는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제가 8kg이 찌는 동안, 얘는 8kg이 빠졌더라구요. 저만 보면 자전거 같이 타자고 권하는데, 멋모르고 인천 한번 따라갔다가 응꼬가 결려서 바로 때려치웠습니다.
애랑 와이프를 캐나다로 보낸 기러기 아빠는 얼마 전에 아파트를 팔았습니다. 자기 집 팔고 아는 사장님네 빈 집으로 들어갔는데, 슬쩍 보니 차도 BMW에서 스타렉스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이놈도 얼마 전부터 뜬 눈으로 밤을 새우더니만, 요즘엔 숨쉬기도 힘들다고 합니다. 이 놈 자식이 제일 걱정돼서 틈틈이 연락을 해보는데, 일이 다 마무리된 다음에야 대수롭지 않은 척 얘기하는 친구라.. 그저 별일 없이 잘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마나님은 밥을 못 먹습니다. 위장 쪽에 문제가 있나 싶어 내시경을 해 봤는데,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합니다. 뭘 먹어도 소화를 못해서 석 달 만에 거의 10kg이 빠졌습니다. 얼굴이 검게 타고 기력이 없어서 이러다 진짜 큰일 나겠다 싶었어요. 내과에, 마사지에, 침도 맞고, 한약도 먹고, 정신과도 다니는데 차도가 없습니다.
회사에서 있었던 갈등이 원인이었습니다. 가끔 경력과 직급이 꼬이는 경우가 있잖아요. 거기에 친분까지 엮여서 마음고생이 심했나 봅니다. 그 친구에게 다 털어놓고 회사 때려치우기로 한 뒤부터 천천히 좋아졌습니다. 허심탄회하게 앉아서 서로 울며불며 이야기를 나누고, 진심어린 사과를 받았다고 합니다. 저는 비싼 갈비를 먹어서 나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요? 전 얼마 전에 또 쓰러졌지요. 맥주 350cc 한 잔 했는데 영 속이 미식거리며 어지럽더니, 눈 뜨니까 노약자석에 누워서 토하고 있습니다. 과음해서 지하철에다 토하는 취객 취급이라 뭔가 좀 마이 억울한데.. 이게 또 완전히 틀린 얘기는 아니긴 해서.. 저혈당 쇼크 같다고 합니다. 원인은 모르고, 원인을 모르니 치료 방법도 없고. 그냥 우리 나이대부터 슬슬 랜덤하게 나온다는군요. 술 담배를 줄이고,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잠을 충분히 잔 뒤, 음식은 골고루 먹으면서, 운동으로 살을 빼면 좋아진다고 합니다. (의사들이 이거 다 복붙해서 돌려쓰는 것 같아요.) 약물 쇼크랑 저혈당 쇼크는 전조 증상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았다... 가 수확이라면 수확이지요.
다들 누군가에게 일부러 못되게 굴려고 하는 건 아닙니다. 그저 상황이 안 맞거나, 성격이 안 맞거나, 표현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일들이겠죠. 물론 그중에는 한 5%쯤 정말 뻔뻔하고 못된 놈들도 있긴 합니다. 여자 문제 복잡한 걸로 유명한 놈이 육아책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거나, 저 자식은 아무리 봐도 소시오패스의 표상이지 싶은 놈이 교단에 서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일 열심히 해서 실력만으로 교수 자리를 따낸 친구나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거 진짜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자기 몸 아파가며 동생들 뒷바라지해서 간호사, 법무사 만들어 내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누가 벼랑 끝으로 몬 사람은 없지만
다들 벼랑 끝에 있다보니
가끔은 고슴도치도 되고
어쩔 땐 숟가락 살인마도 됩니다.
그냥..
그저 다들 열심히 살아내길 바랍니다.
덧)
어디서 들었는지 잊어버렸습니다만..
애인이랑 헤어지면
"동료"들은 위로를 건넨다고 합니다.
"친구"들은.."ㅋㅋㅋㅋㅋㅋ"라고 한데요.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비이이잉신."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