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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달래 Feb 07. 2024

이럴 거면 결혼은 왜 한 거야~

EP.6. 포기

나 홀로 육아전쟁


정희의 신혼생활은 외적으로는 남들과 다를 바가 없이 보였으나 정희에게는 고독한 시간이었다.

정희는 졸업을 하자마자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고 동시에 아이가 들어섰다. 친구들이 누리는 처녀 시절을 만끽할 틈도 없이 남편을 만나 2학년때부터 연애 같지 않은 연애를 하고 학창 시절 그 흔한 나이트나 학사주점에도 한번 못 가보고 23살에 아기엄마가 되었다. 그 나이 친구들은 클럽이다 해외여행 다 하며 보내고 있을 텐데 정희는 임신을 하고 딸 쌍둥이를 낳는다.


그렇게 아이들 양육을 하느라 심신이 지쳐있을 때 정희남편은 회사에 나가면 밤늦게까지 안 들어오는 날이 많았다. 한두 번은 참을 만했다. 아니 한 두 달 1,2년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육아에 정신이 없었다.


'어느 정도 하다가 말겠지 술도...'라는 생각으로 기다리고 기다렸다.

쌍둥이 기저귀라도 한번 갈아주기를, 육아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내가 좀 도와줘야 하는데 라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남편을 기대했다. 정희의 큰 착각이었다.


아이들이 돌 전후 까지는 밤새 뒤척거려야 하고 잠도 못 자고 수유를 해야 하는데 남편이란 사람은 옆에 있질 않았다. 정희는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살이 44킬로도 안나가게 말랐고 보기에 나이는 30대 이상으로 초췌해 보였다.

친정엄마가 가끔 올라오셔서 딸을 보고

"힘들어서 어쩌냐 쌍둥이 키우기가 두 배는 힘들 텐데..." 하시며 안쓰러워하셨다.

거의 매일 늦게 들어오는 사위에게도

"자네 왜 그리 바쁜가 술도 적당히 마셔야지?"라고 한 마디씩 하기도 했으나 하루이틀 조금 일찍 들어오다가도 다시 그 생활이 반복되었고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공무원 월급에 생활이 빡빡한 것을 안 엄마는 한번 오시면 일주일 씩이라도 정희 곁에서 집안일에, 장 봐다가 냉장고를 채워주시고 잠시 딸의 숨통을 트여주셨으나 혼자 계실 아빠한테 내려가셔야만 했다. 정희는 아이들 분유값이라도 보태려고 개인 피아노레슨을 하기도 하였다. 거의 쉴틈이 없었다.

쌍둥이를 키우느라 정희는 20대를 그렇게 정신없이 보낸다. 어느덧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다닐 때니 20대 후반즈음 되었다.


남편의 이해할 수 없는 것들


정희는 아이들이 태어난 후 남편과 거의 각방을 쓰게 된다. 남편에게 왜 그리 늦냐고 물으면 자기 말로 일과 후에도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며 밤늦게나 새벽에 들어오고 당직이 5일에 한 번씩 있어서 집에 있는 시간은 거의 없다. 정희 혼자 거의 낮이나 밤이나 아이들과 지내는 일이 많게 되었다.

다른 친구들 아빠처럼 같이 자전거도 타고 놀이터에서 놀고 싶은 쌍둥이들은

"엄마, 아빠 오늘 오는 날이야?"라고 물을 정도로  아빠의 얼굴 보는 시간이 었고 따뜻한 사랑을 받질 못했다. 아빠가 해야 할 일들까지 하다 보니 아이들에게 마음이 더 아려왔다.

이 남자는 술을 매일 먹고 새벽에 조간신문과 같이 들어오는 습관성 알코올홀릭이다. 주말에 어쩌다 당직이 없는 날에는 종일 술냄새를 방안에 내뿜으며 취침을 해야 한다. 정희는 애들 아빠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아이 둘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가기 일쑤다.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건지 선천적으로 술을 좋아하는 건지 하루라도 술을 먹지 않는 날이 거의 없다.


결혼 전에는 매일 만나지 않았고 술을 이렇게 까지 사모하는 사람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정희아빠가 술을 거의 안 드시기 때문에 이 또한 정희에게는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이었다.


새벽에 1시고 2시고 어떤 때는 연락도 없이 친구들을 끌고 들어와 술상을 보라 한다.

방 두 칸짜리 공무원아파트에 사는 그런 집에 사람들을 끌고 오는 마음은 도대체 뭔지 알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희는 출근하는 사람 꼭 따뜻한 밥을 해주라는 친정엄마의 당부에 아침마다 술국을 끓인다. 그날 아침도 어김없이 북엇국을 후루룩 마시며 속을 달래는 남편에게 사정하듯이 말을 한다.


"오늘은 일찍  좀 들어와요. 대화가 필요해 우리는."


그렇지만 이 남자는 정희의 대화 시도에 반응조차 하지 않고 습관적인 행동을 계속한다. 사는 5년 동안 거의 한 번도 진지한 대화에 하지 않았다. 정희 속은 문들어질 대로 문들어졌다. 아이들 앞에서 큰소리 내는 걸 보여주고 싶질 않아서 정희는 속으로 속으로만 삭였다. 부부싸움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을 위해서였다. 참다 보면 오늘은 안 그러겠지를 무던히도 되뇌었다. 속시원히 대화를 하고 나면 어린아이들 사탕주며 달래듯이 반성을 할 줄 알았다. 내 속을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늘 허공에 대고 독백을 했고 돌아오는 메아리뿐이었다. 


남편은 응하질 않았다. 밖에서는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직장생활을 잘하는 과장님으로 지내는 건 맞을지 모르나 집안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와이프의 마음을 헤아리거나 공감하는 마음은 전혀 보이질 않는다. 정희는 공무원 월급에 아이들 유치원비를 마이너스를 받아 보내게 되는 현실이 스트레스가 되었고 남편이 집안을 나 몰라라 하는 이 관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술값은 누가 내는 건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정희 모르는 비자금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술을 3차 정도로 끝내고 새벽에 들어오는 날은 피곤해 지쳐 자고 있는 사람을 깨워 관계를 요구하는 그 남자. 더 이상 이관계를 계속해야 할까...


왜 결혼은 하자고 한 거야?



새벽 1시, 아직도 귀가하지 않은 남편.

전화를 걸었다.

뚜~뚜우~열 번이 더 울려도 받질 않는다. 어떤 때는 끊으려고 할 때 받기도 한다. 그러면 음악소리인지 밴드소리인지 시끌 벌적한 소리가 전화 속에서 뭉개진다.

"도대체 이 시간에 뭐 하는 거야? 집에는 안 와?"

"응 곧 갈게 다 끝났어..."

늘 이런 식이었다.

"곧 갈게"라는 말을 하고도      '살아있음 됐지? ''라는 생각인지 그러고도 늘 새벽녘 즈음 귀가하는 남편을 5년을 보아왔다. 정희마음은 이미 돌같이 딱딱하게 굳어져갔다.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은 조금씩 경멸의 마음으로 짙어져 갔다.

술 취한 남편의 얼굴을 보는 것도 이제 지쳐간다. 새벽에 경비실 아저씨의 인터폰소리로  가슴을 쓸어내린다.

"과장님 1층에 계신데 의식이 없으셔요."

잠옷바람에 외투하나 걸치고 내려가서 경비아저씨랑 인간 들것을 해서 집까지 올라온다.


'도대체 집까지는 어떻게 온 거야?'

낮에 경비아저씨 얼굴 뵈기도 민망하다. 이런 날이 계속되면 이 동네 살기도 부끄러울 것 같다.


'내가 뭘 잘 못 살았나? 왜 나는 이렇게 사는 거지?'


왜 결혼을 하자고 해서 나를 로라를 만드는 거야?


포기

그날도 정희는 아이들을 침대에 재우고 10층 베란다에서 창문을 연다. 찬바람이 훅 들어온다. 커튼이 안쪽으로 날려 정희얼굴을 휘감아 숨이 딱 막힌다. 내려다본 아파트 1층엔 잔디가 거의 말라있고 드문드문 잎이 다 떨어진 은행나무가 정희를 닮은 것 같다고 느껴졌다.


사는 의미가 없다. 무슨 낙으로 내가 살고 있는 거지?

내가 이런 생활을 하려고 결혼이란 걸 했단 말이지, 내가 이렇게 살려고 저 남자의 사탕발림에 속아 넘어갔단 말이지? 머릿속으로 자기만을 바라보고 사랑해 주시는 엄마 아빠의 모습이 스쳐 지나가며 눈물이 주주룩 떨어진다.


오른발을 베란다 창에 걸었다. 왼쪽 발을 살짝 들어주었더니 뛸 만큼 자세가 나왔다.

그 시간에 불이 켜진 집들이 뿌옇게 흐려지며 흔들거린다.

'이렇게 하면  과거를 지우게 되나.'


정희는 아이들이 자고 있는 침대 쪽으로 얼굴을 돌려본다.

형광등이 꺼져있어 방전체가 희뿌연 하게 물든 듯 보였다.

벽시계가 2시를 가리키며 째깍, 째깍, 째깍... 시간을 달리고 있다.

두 딸아이가 덮은 둥 만 둥한 얇은 이불이 숨소리에 맞춰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보였다.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남편을 버리자.

아이들을 위해서만 살자.

아이들을 껴안고 다짐한다. 

정희는 그렇게 20대를 포기한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달래를 춤추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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