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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욱래 Jun 07. 2024

1. 승마장 가는 길

장편 현장소설 《카페 가는 길》

1. 승마장 가는 길


  젊었을 때까지는 나는 내가 신(神)이거나  적어도 신과 같다고 여겼다. 언젠가는 늙고 약해져 죽으리라고는 일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심장은 계속 들끓었고 온몸에 기운이 뻗쳐 어떨 때는 견디기 어려울 정도였다. 진종일 중노동을 해야 하는 날에도 나는 신처럼 몸을 움직였고, 그렇게 몸을 혹사한 날도 새벽녘까지 좀체 잠이 오지 않았다. 어떻게 조금 눈을 붙였다가 뜨면 다시 몸에 기력이 충만해졌다. 

  세월은 흘렀다. 나이 스물여섯에 어쩌다가 다친 다음 허리 왼쪽으로 통증이 오기 시작했는데 그 다리에 힘이 가지를 않았다. 사십 살이 되었나 싶더니 마흔다섯 살도 넘어 버렸다. 내일모레면 오십인데 무슨 일로 급박한 동작중에 왼 발목이 돌아갔고그것도 난생처음 겪는 일이었다통증이 끔찍했다. 반깁스하고 난 다음부터는 오래 걷거나 계속 서 있기 힘들게끔 되었다. 발목은 아직 부은 채로 승마장에 일하러 다닐 때였다. 아침 7시 30분, 늦어도 40분에는 집을 나서야 했다. 내 집은 유럽의 성을 닮은 4층 건물인데도 그 시절은 그 성을 누려볼 수가 없었다. 

  승마장 가는 길에 나는 때때로 불행했다. 그쪽에서 ‘말 일’이라고 하는 승마장 노역은 과도하게 피로했다. 나는 승마 교관―다른 호칭으로는 코치―이었으나 마필관리사를 두지 않아 내가 마방(馬房)도 매일같이 열두 개에서 열여섯 개까지를 치워야 했다. 헤라클레스의 열두 가지 고역 중 다섯 번째 난사가 삼십 년간 삼천 마리의 가축이 싸놓은 아우게아스 왕의 마구간을 치우는 일이었다.

  제 월급을 받는 노동력의 마지막 땀 한 방울까지 다 쥐어짜 내겠다는 심보의 승마장 대표가 패악질을 벌일 때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되뇌었다. 

  ‘내 이름은 막시무스 데시무스 메리디우스. 북부 군 총사령관이자 펠릭스 군단의 군단장이었으며…….’*




  빚은 2000만 원이었다. 그 빚은 ‘생활비’란 것으로 썼는데, 꼭 돈이 없으면 먹고 싶은 것이 더 많아지는지 닭튀김 몇 번 시킨 것 같은데 다 없어져 버렸다. 가능한 한 빠르게 빚을 갚아야 했다. 승마장 급여로는 돈을 모을 수가 없었다. 역시 ‘생활비’로 다 나갔고, 그것으로도 항상 모자랐다. 

  언제 신춘문예 건을 들여다보다가 그 2000만 원을 준다는 신문이 있었다. 다른 신문들은 중편소설 부문이 없었고 그 신문의 중편소설에만 상금을 준다는 것이어서 그 2000만 원은 딱 내 돈이었고 정확히 빚진 만큼이었다. 나는 열심히 써 두고 다시 승마장에 들어온 것이었다. 마방 치울 때는 분진 때문에 마스크를 껴야 한다. 이때부터 나는 마스크 착용이 얼굴에 익게끔 되었다.  


  한 손에 망치 들고 건설하면서

  한 손에 총칼 들고 나가 싸우자.(〈향토방위의 노래〉)  


  일하면서 글 쓰고 글 쓰면서 일할 것이다. 그렇다. 내 집을 지켜야 한다. 돈을 벌어야 한다. 날은 점점 추워지는데 나는 고달픈 삭신을 움직이며 자주 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예비군에 민방위대까지 아주 오래전에 다 지난 나이로.  


  내 강토 지키세 이 목숨 다해

  일하며 싸우고 싸우며 일하세.(〈향토방위의 노래〉)


  이제 내일이면 해가 바뀌는 데도 전화는 오지 않았다. 내 작품은 여섯 편이 오른 본심에도 껴있지 않았다. 이럴 수는 없었다. 나머지 다섯 편은 본문을 볼 수 없어서 어떨는지 몰라도 그 2000만 원을 받아 간 당선작은 가관이었다. 시류에 맞춘 소재주의로 커밍아웃 얘기였다. 그 지저분한 당선작의 내용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 

  여전히 계속 마방들을 치워야 했다. 헤라클레스의 열두 가지 과제에는 끝이 있었으나 나는 자고 나면 다시 승마장이었다. 저녁마다 몸이 녹초가 되었다. 목욕탕 더운물에 몸을 담그고 있어도 여간해서는 땀도 잘 나지 않았다. 이러다가는 아무것도 못 하고 노동만 하다가 죽을 것 같았다. 피곤의 독(毒). 그것은 죽음에 근접해 있었다.




  그 가을도 거의 지나가는 것 같았다. 이른 시각이었다. 십여 미터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두텁고 차가운 안갯속에 누런 것들이 한꺼번에 둔탁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차를 세우고 내렸더니 은행잎들이었다. 인도와 차도에 동전처럼 쌓이는 그 은행잎들을 빼고는 일순 시간은 정지한 듯했다. 그 적막한 길을 나와 돌자 나는 깜짝 놀랐다. 그 이르고 시뿌연 시각에 나 말고도 또다시 그날 치의 고역을 치르러 가는 차들이 끝 모르게 꼬리를 물고 있었다. 차들은 서로 꽁무니를 밀듯 조금씩 조금씩 진행했다. 무의미한 진행. 희망 없는 대열.……. 나는 나 자신을 포함하여 그 고역의 행렬 전체가 참담했다.




2000년 영화 <글래디에이터Gladiator> 중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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